단상들, 혹은
 0. 당분간 글을 못 올립니다. 하고 있는 일들과 블로깅을 병행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덧글 정도는 달 수 있겠습니다만.

 
 
 1. 콘택트렌즈를 맞췄습니다. 전공 수업 기말고사 치르듯 땀을 뻘뻘 흘리며 수차례의 실패 끝에―거의 울고 싶었을 정도―가까스로 착용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연습해 보니 무척 쉽게 탈착이 가능해서, 괜히 안경점 직원을 원망하고 있는 중입니다. 옆에서 인상을 조금만 덜 썼어도 쉽게 탈착할 수 있었을 거라며 말이죠. 저처럼 학습 능력이 미진한 고객을 위해 안경점 직원 분들께서는 좀 더 “다들 그러니까 괜찮아”라는 미소를 지어주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유지비 문제도 있고, 제 활동의 상당 부분은 가만히 앉아 읽고 보는 일에 치중되어 있는지라 렌즈 활용도가 그리 높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물체들이 안경 쓸 때보다 더 크게 보여서 식사할 때 포만감이 두 배. 전 누드 빼빼로가 그렇게 큰 줄 몰랐습니다. 과체중의 원인은 안경 착용에 있다는 주제로 논문을 준비해 볼 생각입니다.



 2. 오늘은 어쩐지 추억의 음악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해서 〈대항해시대2 OST〉, 〈카우보이 비밥-BLUE〉,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OST〉,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OST〉 등을 듣고 있습니다. 〈대항해시대2 OST〉야 언제나 좋아하는 음반이고, 칸노 요코의 “공식 명반”인 〈카우보이 비밥-BLUE〉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뒤의 둘은 정말 오랜만에 듣는지라 더욱 감흥이 각별합니다.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OST〉는 솔직히 그렇게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이 만화 및 애니메이션과 함께 한 세월이 있어서 쉬이 넘길 수가 없군요. (그러고 보니 이제 만화도 다음 권이 마지막이죠? 20권에 이르는 동안 이 만화의 귀족주의는 극에 달해가고 있습니다만 투덜거리면서도 보기는 잘 보고 있습니다.)



 3. 요 근래의 추천 문화 상품을 하나만 꼽으라면 김기덕의 〈빈 집〉을 꼽겠습니다. 강추 마크라도 달아주고 싶은 심정이 됐지요. 〈사마리아〉를 보고 감동한 저로서도 정말 예상 밖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멀리 나간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다가 두 차례, 감탄에 겨워 소리까지 질렀으니까요. 정말이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부터의 김기덕은 진중하게 지지할만한 감독이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럴수록 행복한책읽기에서 출판한 『우리 시대의 인물읽기 3 - 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까지의 김기덕만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습니다.



 4. 4월에 이어 또 한 번 DVD 시장에서 맞붙게 될 〈주먹이 운다〉와 〈달콤한 인생〉. 과연 6월 최후의 승자는?

 …제게는 물어보나 마나 새뮤얼 풀러의 〈지옥의 영웅들 SE〉입니다. 워너 홈 비디오 코리아의 6월 출시 예정 목록을 처음 보고 〈이유 없는 반항 SE〉에 즐거워하고 〈에덴의 동쪽 SE〉에 감탄하다가 〈지옥의 영웅들 SE〉라는 이름을 보고 쓰러질 뻔 했습니다. 역시 기다리면 뭐든 결국은 나오는 걸까요. 새뮤얼 풀러의 영화를 한글 자막 DVD로 볼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거 보고 〈남쪽 거리의 소매치기〉만큼 마음에 들면 무자막을 감수하고라도 〈충격의 복도〉와 〈네이키드 키스〉를 질러버릴 생각입니다.



 여기까지가 어젯밤에 썼던 단상들. 여기까지 쓰고 졸려서 그냥 잤죠. 그리고… 대략 스물네 시간 가까이 지난 지금은 김기덕 감독의 〈활〉을 보고 독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영화가 우울했다기보다는 영화를 읽으려드는 저 자신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져서 그걸 되씹다보니 ‘과연 이 세상에서 궁극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까지 끌어내어 상처를 넓히는 중입니다. 최근에 영어회화 수업에서 개발도상국 문제 및 부의 재분배 이야기할 때도 생각했던 거지만 앎을 지닌 인간들에게서 희망을 찾는 건 너무 어려운 일로 느껴져요.

 그러나 우울증과는 별개로 〈활〉은 좋으니까 역시 추천. 오래도록 물고 늘어지다가 다쳐도 좋은 건 좋은 거죠. (흠. 오래도록 물고 늘어지다 다친다니. 꼭 활시위 이야기하는 것 같네. 아, 그렇다고 〈활〉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는 건 아니고요.)
by sabbath | 2005/05/14 22:49 | 20030930~20050514 | 덧글(9)
Commented by _권_ at 2005/05/14 23:13
사마리아까지 밖에 못본 것 같네요. 활과 빈집도 얼른 봐야겠어요. 그런데 많이 바쁘신가보네요...
Commented by sabbath at 2005/05/14 23:22
_권_ / 전 〈사마리아〉랑 〈빈 집〉, 〈활〉 밖에 안 봤어요. 따라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후의 김기덕 운운하는 건 사실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얻어 들은 데에서 나온 기만일 뿐이죠. 아무튼 전 김기덕 감독이 제시하는 가슴 아픈 문제들이… 좋습니다. 아니, 좋다는 건 이상해요. 아무튼 쉬이 넘겨지질 않습니다.

이것저것 손대고 있는 일이 많아서 좀 바쁘네요 :-)
Commented by Sion at 2005/05/14 23:39
저는 새벗 님의 사마리아 감상글을 보고 정말 감동 받았지만 역시 빠지지 않고 봄에도 불구하고 김기덕은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힘들군요. 이유야 여러가지 겠지만 음...;; 하시는 일 잘 진행 되길 빕니다. 날도 이제 점점 더 더워질테니 건강도 조심하시며 하세요-_-)/
Commented by 프리스티 at 2005/05/15 02:18
오늘 마침 TV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해줘서 방금 보고 왔습니다. 두번째 보는건데.. 볼수록 가슴이 에리네요.
Commented by 『한군』 at 2005/05/16 20:22
0. 아쉽군요~
2.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은 그 귀족주의에도 불구하고 마냥 좋더군요. 특별한 이유없이 그냥 좋은 작품 뭐 그런것...
3. 김기덕감독은 이름만 들어봤고 아직 작품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 땡김이 없어서 말이죠. 음음... 그런데 글을 보니 봐야겠다는 생각이 솔솔 나네요...
Commented by yurioi at 2005/05/17 16:34
<사마리아> 감상문은 이 블로그 어디쯤에 있지? 읽어보고 싶네. 그 때 못 읽어본 듯.
Commented by Jay at 2005/05/17 19:12
yurioi님/ 검색창은 좌측에 있습니다.;
Commented by 파람 at 2005/05/31 15:29
글너무 잘읽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 블로그 왓다갓다거린지
얼마 안됫는데 어떻게 읽어야하나요?
위에님은 새벗? 사바스? black sabbath 가 생각나네요.
Commented by 『한군』 at 2005/06/01 23:12
파람//왼쪽 알림의 'sabbath' 표기 문제 를 클릭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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