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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하워드 혹스가 연출한 고전 갱스터 영화 [스카페이스]를 보고 있노라면 한 가지 의문─1933년과 2005년의 [킹콩(King Kong)]을 떠올리게 하는─이 생긴다. 우리에게 1983년에 나온 '형님' 알 파치노의 [스카페이스(Scarface)]가 있다면, 그보다 50년 전에 나온 폴 무니의 [스카페이스]는 과연 필요한가? 그리고 이 의문에 대한 답변은, [킹콩]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렇다, 이다.
영화를 '찍는' 게 아니라 '그려내는' 시대의 관객들이 무엇보다도 분명히 마음에 새겨둬야 할 것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기술들 사이에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시네마스코프 사이즈와 칼라 필름은 스탠다드 사이즈와 흑백 필름보다 더 훌륭하지 않다. 그건 말 그대로 그냥 다른 기술일 뿐이다. 팔레트는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넓어지는 것뿐이다. 에메랄드 색을 내게 됐다고 해서 녹색을 버리는 화가가 있을까? 따라서 '옛날 영화'에 대한 오만과 편견은 접어둘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는 그다지 우월하지 않다. ![]() 그러니 부디 '옛 걸작'을 볼 때 눈을 한층 내리깔고 보지 마시길. 거꾸로 말해서, 옛 걸작을 낡았다고 무시하는 오만방자한 태도로 리메이크를 하다가는 좋은 꼴 못 본다. 성공한 리메이크의 핵심은 원작에 대한 존중과, 원작의 핵심을 새로 의미 있게 해석하는 시각에 있다. 그리고 이건 훌륭한 리메이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옛 걸작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도 된다. 둘의 차이는 같은 핵심을 어떤 시각으로, 어떤 도구를 이용해 그려내느냐의 차이에 있으므로. ![]() 영화 중 하워드 혹스가 제작규정에 입 맞춰주는 부분은 아주 노골적이다. 1년 전에 나온 윌리엄 웰먼의 [공공의 적(The Public Enemy, 1931)]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시작 전에는 이 영화는 갱스터를 미화하는 영화가 아니라 현대 도시 사회의 범죄를 보여줌으로써 정부로 하여금 그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는 안내문이 뜬다. 그리고 영화 중간 중간 경찰과 언론은 토니 카몬테(폴 무니)로 대표되는 갱스터를 열심히 헐뜯으며 시민의 각성을 요구하는 일장연설을 펼친다. 특히 언론사 사장의 일장연설 장면은 낯뜨거울 정도인데, 이 사장은 카메라를 슬쩍슬쩍 곁눈질하면서(즉, 관객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시민들이 정부의 주인인 만큼 우리가 나서서 법제를 만들고 갱스터들을 소탕해야 한다고 격렬하게 주장한다. ![]() 반면 갱스터들의 세계는 어떠한가? 주인공 토니 카몬테를 연기한 폴 무니는 알 파치노의 라이벌로 손색이 없다. 얼굴에 생긴 십자형의 상처와 단정히 가르마를 탄 머리, 그리고 독특한 얼굴형과 과장된 대사처리(대사 자체의 위트보다는 그 말투가 더 두드러진다), 손을 들어 이마 앞에서 툭 끊어내듯이 인사를 보내는 고유의 제스처는 이 캐릭터에게 재미를, 매력을 부여한다. 토니의 친구이자 오른팔인 리날도(조지 래프트)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 1952)]와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 1959)]에까지 인용된(그리고 물론 배트맨 시리즈의 투페이스도 떠오른다) 저 유명한 제스처, 오른손으로 동전 튕겨 올리기를 선보인다. 토니의 비서 안젤로(빈스 바넷)는 하워드 혹스식 각본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캐릭터로, 역시 복장과 억양을 통해 그 바보스러움이 표현된다. 그리고 토니의 동생 체스카(앤 드보락)의 무성영화 배우 같은 얼굴 분장과 격정적인 연기 또한 뛰어나다. 따분한 설교나 늘어놓는 경찰과 언론의 힘으로는 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 ![]() 그는 먼저 1927년에 [재즈 싱어(The Jazz Singer)]를 통해 등장한 유성영화의 가능성을 십분 활용하여 영화 전체에서 음을 제거하는 연출을 시도한다. 물론 고전기 할리우드 영화는 BGM 하나 없는 조용한 모습을 띠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스카페이스]의 고요함은 그야말로 침묵에 가깝다. 가끔 문소리와 발소리 정도가 나는 걸 제외하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인물들의 대사뿐이다. 주변 환경의 소음은 거의 없다. (이 점이 오늘날 이 영화의 감상을 다소 버겁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 침묵의 상태에서 폭력 묘사가 등장할 때 울려 퍼지는 총소리와 자동차 소리, 건물이 폭발하고 유리창이 깨지며 어느 여인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는 듣는 이의 귀청을 꿰뚫을 정도로 따갑다. ![]() 자니에게 저항하는 상대 갱단의 보스가 죽는 장면에서는 드디어 죽음의 표식 'X'가 등장한다. 사체가 발견된 위치를 X로 표시했던 실제의 전통에서 따온 이 X는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에서부터 등장하여 줄곧 죽음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그림자와 사물들이 화면 위에 그려내는 X는 결국 이 영화를 온갖 곳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영화로 만든다. 특히 북쪽파를 몰살시키는 장면에서 지붕의 목재 구조물이 일곱 개의 X자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뒤 카메라를 내려 벽에 비친 일곱 사람의 그림자를 보여주고, 그 그림자 위로 총알구멍이 나타나면서 그림자가 쓰러진 뒤 다시 카메라가 올라가 일곱 개의 X자를 보여주는 장면은 거의 시적인 아름다움을 제공한다고 할만하다. 또 죽음을 상징하는 소도구들은 어떤가. 예컨대 던져 올린 상태에서 총을 맞는 바람에 다시 손바닥 위로 떨어지지 못하는 동전, 아홉 개의 볼링핀이 쓰러진 상태에서 위태롭게 빙글빙글 돌다가 결국 쓰러지고 마는 마지막 볼링핀, 그리고 피로 물든 나날들을 표현해주는 기관단총과 달력. [스카페이스]의 폭력 장면들이 7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깊은 인상을 전해주는 것은 이런 간접적인 묘사가 불러오는 감흥 때문일 것이다. ![]() ![]() 토니와 체스카의 근친상간적 남매 관계는 이 영화에서 특히 돋보이는 부분 중 하나다. 드 팔마 버전에서 엘바이라 핸콕(미셸 파이퍼) 때문에 토니 몬타나의 동생 지나 몬타나(매리 엘리자베스 마스트란토니오)가 잘 기억에 남지 않았다면─물론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지만 그 다음에 저 유명한 "Say hello to my little friend!"가 나오는 걸 어쩌겠나─혹스 버전에서는 거꾸로 체스카 때문에 포피가 잘 보이지 않는다. 혹스는 이 체스카라는 인물에 상당히 공을 들인 것 같다. 무성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분장을 한 이 여인은 고전기 갱스터 영화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는 '갱스터의 아름다운 연인'이나 '갱스터의 인자한 어머니'가 아니라 또 한 사람의 갱스터다. 남정네를 집안으로 끌어들여 키스하다가도 토니가 쥐어 준 돈에 남자를 버리는가 하면 자신을 외면하려고 애쓰는 리날도 앞에서 춤을 추며 추파를 던지고 그의 소심함을 비웃는 그 태도는 필름 누아르의 팜므 파탈이 지닌 은근한 유혹이 아니라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무법자의 태도다. 체스카가 토니의 인사법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 그리고 "오빠는 나야."라고 말하는 것 등을 통해서도 나타나는 이 갱스터성은 [하얀 열기(White Heat, 1949)]의 마 자렛(마가렛 와이철리)이나 [그리솜 갱단(The Grissom Gang, 1971)]의 글래디스 그리솜(아이린 데일리)을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다. 결국 체스카는 토니의 거울상으로서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둘 사이는 남매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깝게 표현된다. ![]() ![]() ![]() 덧 하나. 고백 하나. 이 영화는 씨네코리아에서 출시한 립핑판 DVD로 봤다. 립핑판 DVD에 별 신경을 쓰지 않던 시기에 사서 봤는데 최근 이 타이틀을 코드1 정품으로 구입하려다가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알고 보니 이 타이틀은 단품으로 따로 출시가 된 게 아니라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 20주년 기념 디럭스 기프트 세트에 수록된 것이었다. 그 기프트 세트는 DVD 타이틀 두 개를 담기에는 불필요할 정도로 큰 박스 크기를 자랑하는 데다가 정가는 59.98달러. 게다가 나는 이미 한국에서 출시된 코드3번 드 팔마 [스카페이스]를 스페셜 에디션 버전으로 두 번이나 산 적이 있단 말이다. 그래서 결국 이 영화는 단품 DVD가 따로 출시되기 않는 한 립핑 DVD로 만족하기로 했다. 자막 싱크가 아주 약간 빠르거나 느린 부분이 있는 것, 그리고 가끔씩 두 사람의 대사 사이에 / 를 넣지 않아 한 사람의 대사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한국어 자막의 질은 양호하다. 덧 둘. 공권력을 묘사하는 하워드 혹스의 냉담함은 이 영화의 DVD에 수록된 다른 버전의 엔딩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 같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 만들었느나 실제로 사용되지는 않은 이 다른 버전의 엔딩에서 토니는 경찰들에게 잡혀 재판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런데 호세 지오반니 감독의 [암흑가의 두 사람(Deux Hommes Dans La Ville, 1973)]처럼 이 엔딩에서의 교수형도 지나치게 삭막해서 자연스럽게 죽는 사람에게 동정을 표하게 된다. 비록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하워드 혹스가 이 영화에서 제작규정을 어떤 식으로 이용하는지에 관한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덧 셋. 반복되는 X 상징들.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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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한 글 잘 읽었습니다..
by kinoeyes at 08/19 말씀하신대로 류승완 감.. by sabbath at 08/17 참 말할 거리가 많은 영.. by 파인로 at 08/17 그쵸. 사실상 모든 프랑.. by sabbath at 08/16 아, 그것은… 저도 무.. by sabbath at 08/16 저도 그 글을 읽어보았.. by sabbath at 08/16 제작사 외유내강 측의 .. by sabbath at 08/16 소식 고맙습니다! 포스터.. by sabbath at 08/16 가끔은 너무 만든 사람에.. by sabbath at 08/16 먼저 안 보신 분들께는 .. by sabbath at 08/16 저도 만주 벌판 액션이 참.. by sabbath at 08/16 [다찌마와 리] 속편 또.. by sabbath at 08/16 오오, 드디어 올리셨군.. by Sion at 08/16 드팔마를 떠올리는 장면.. by 다찌대박 at 08/16 저는 그놈의 잘생겼다!가.. by 은혈의륜 at 08/16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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