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페이스(Scarface, 1932)]
 오늘날 하워드 혹스가 연출한 고전 갱스터 영화 [스카페이스]를 보고 있노라면 한 가지 의문─1933년과 2005년의 [킹콩(King Kong)]을 떠올리게 하는─이 생긴다. 우리에게 1983년에 나온 '형님' 알 파치노의 [스카페이스(Scarface)]가 있다면, 그보다 50년 전에 나온 폴 무니의 [스카페이스]는 과연 필요한가? 그리고 이 의문에 대한 답변은, [킹콩]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렇다, 이다.

 영화를 '찍는' 게 아니라 '그려내는' 시대의 관객들이 무엇보다도 분명히 마음에 새겨둬야 할 것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기술들 사이에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시네마스코프 사이즈와 칼라 필름은 스탠다드 사이즈와 흑백 필름보다 더 훌륭하지 않다. 그건 말 그대로 그냥 다른 기술일 뿐이다. 팔레트는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넓어지는 것뿐이다. 에메랄드 색을 내게 됐다고 해서 녹색을 버리는 화가가 있을까? 따라서 '옛날 영화'에 대한 오만과 편견은 접어둘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는 그다지 우월하지 않다.
 그래도 기술에 있어서 시간의 흐름은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고 싶다면─그런 건 결국 '요즘 영화'도 마찬가지다. 기술의 최첨단을 달리는 조지 루카스 씨도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낡은 영화를 자꾸 뜯어고치지 않았던가. 게다가 [스타워즈(Star Wars, 1977)]보다 9년 앞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고칠 부분 하나 없는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2001:A Space Odyssey, 1968)]를 생각하노라면 사실 그 기술의 낡음이란 시대와 발전의 문제라기보다는 연출가의 비전과 성향에 달린 문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부디 '옛 걸작'을 볼 때 눈을 한층 내리깔고 보지 마시길. 거꾸로 말해서, 옛 걸작을 낡았다고 무시하는 오만방자한 태도로 리메이크를 하다가는 좋은 꼴 못 본다. 성공한 리메이크의 핵심은 원작에 대한 존중과, 원작의 핵심을 새로 의미 있게 해석하는 시각에 있다. 그리고 이건 훌륭한 리메이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옛 걸작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도 된다. 둘의 차이는 같은 핵심을 어떤 시각으로, 어떤 도구를 이용해 그려내느냐의 차이에 있으므로.
 이 시각과 도구라는 측면에서, 하워드 혹스의 [스카페이스]는 매우 흥미롭다. 고전기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과 그 안의 작가들 사이의 긴장관계를 명백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이 작품을 꼽겠다. 당시에도 그랬겠지만, 제작규정(1930년대에 할리우드에 존재했던, 일종의 검열 규율)을 피해 비전을 드러내려는 하워드 혹스의 연출은 알 파치노의 유탄발사기 만큼이나 정력적인 데가 있다. 일단 제작규정에 걸리지 않도록 비위는 맞춰주면서 오히려 그 비위 맞추는 부분을 이용해서 자신의 영화를 더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 그의 솜씨 속에 담긴 반항아의 기운은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그것만큼 욕구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보다 신사적이다.

 영화 중 하워드 혹스가 제작규정에 입 맞춰주는 부분은 아주 노골적이다. 1년 전에 나온 윌리엄 웰먼의 [공공의 적(The Public Enemy, 1931)]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시작 전에는 이 영화는 갱스터를 미화하는 영화가 아니라 현대 도시 사회의 범죄를 보여줌으로써 정부로 하여금 그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는 안내문이 뜬다. 그리고 영화 중간 중간 경찰과 언론은 토니 카몬테(폴 무니)로 대표되는 갱스터를 열심히 헐뜯으며 시민의 각성을 요구하는 일장연설을 펼친다. 특히 언론사 사장의 일장연설 장면은 낯뜨거울 정도인데, 이 사장은 카메라를 슬쩍슬쩍 곁눈질하면서(즉, 관객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시민들이 정부의 주인인 만큼 우리가 나서서 법제를 만들고 갱스터들을 소탕해야 한다고 격렬하게 주장한다.
 물론 하워드 혹스가 이들의 주장에 무게를 싣고 있지 않다는 것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제작규정이 본격적으로 할리우드를 휩쓸면서 등장한 변종 갱스터 영화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일이지만, [스카페이스]는 입으로는 공권력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볼거리는 심심하게 처리하여 관객이 상대적으로 활력 넘치는 갱스터의 세계에 주목하게 한다. 이건 서사 구조, 특히 대사를 가진 시청각 예술이라는 영화의 특징을 교묘히 활용한 예라고 할 수 있겠는데, 검열을 피하는 데 써먹을 대사들은 경찰들에게 몰아주는 대신 영화의 주된 원천, 영상과 소리는 갱스터에게 몰아주는 식이다. 과연, [스카페이스]의 경찰들은 후대의 경찰들보다 훨씬 더 원형적으로 재미없다. (보다 후대의 갱스터 영화에 등장하는 경찰들은 나름대로 입체감이 부여되는 대신 그 입체감 때문에 갱스터와 동질감을 느끼는 방향으로 변하곤 한다)

 반면 갱스터들의 세계는 어떠한가? 주인공 토니 카몬테를 연기한 폴 무니는 알 파치노의 라이벌로 손색이 없다. 얼굴에 생긴 십자형의 상처와 단정히 가르마를 탄 머리, 그리고 독특한 얼굴형과 과장된 대사처리(대사 자체의 위트보다는 그 말투가 더 두드러진다), 손을 들어 이마 앞에서 툭 끊어내듯이 인사를 보내는 고유의 제스처는 이 캐릭터에게 재미를, 매력을 부여한다. 토니의 친구이자 오른팔인 리날도(조지 래프트)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 1952)]와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 1959)]에까지 인용된(그리고 물론 배트맨 시리즈의 투페이스도 떠오른다) 저 유명한 제스처, 오른손으로 동전 튕겨 올리기를 선보인다. 토니의 비서 안젤로(빈스 바넷)는 하워드 혹스식 각본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캐릭터로, 역시 복장과 억양을 통해 그 바보스러움이 표현된다. 그리고 토니의 동생 체스카(앤 드보락)의 무성영화 배우 같은 얼굴 분장과 격정적인 연기 또한 뛰어나다. 따분한 설교나 늘어놓는 경찰과 언론의 힘으로는 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
 자, 캐릭터는 이 정도로 해두고, 연출을 보자. 1932년이니 당연히 폭력 묘사에 대한 수용 범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좁았다. 처절한 피칠갑을 기대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한 쇼트 내에서 총 쏘는 모습과 맞는 모습이 동시에 나오는 것을 보는 것도 무리다. (있긴 한데 쏘는 쪽이 화면 뒤쪽에서 차에 탄 채 지나가면서 쏘는 정도다) 하지만 내용은 갱스터들이 새로 도입된 기관단총을 들고 도시를 휩쓰는 이야기. 하워드 혹스는 여기서 경탄할만한 연출을 통해 이 영화의 폭력을─[비행사(The Aviator, 2004)]에 나왔듯이─문제작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만다.

 그는 먼저 1927년에 [재즈 싱어(The Jazz Singer)]를 통해 등장한 유성영화의 가능성을 십분 활용하여 영화 전체에서 음을 제거하는 연출을 시도한다. 물론 고전기 할리우드 영화는 BGM 하나 없는 조용한 모습을 띠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스카페이스]의 고요함은 그야말로 침묵에 가깝다. 가끔 문소리와 발소리 정도가 나는 걸 제외하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인물들의 대사뿐이다. 주변 환경의 소음은 거의 없다. (이 점이 오늘날 이 영화의 감상을 다소 버겁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 침묵의 상태에서 폭력 묘사가 등장할 때 울려 퍼지는 총소리와 자동차 소리, 건물이 폭발하고 유리창이 깨지며 어느 여인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는 듣는 이의 귀청을 꿰뚫을 정도로 따갑다.
 시각적인 자극도 만만치 않게 강렬하다. 갱단의 보스 루이 코스텔로(해리 J. 브자)가 죽음을 맞이하는 도입부에서 카메라는 5분 30초 동안 컷 없이 식당 앞의 가로등에서 식당 안의 깊숙한 통로까지를 훑으면서 부의 정상에 오른 갱스터와, 그림자를 드리우며 다가오는 암살자를 한 번에 담아낸다. 이 코스텔로의 죽음에서 사용되는 죽음의 표식들, 그림자와 휘파람 소리는 영화의 뒷부분에서 다시 한 번 인상적으로 사용된다. 이어서 코스텔로를 죽이고 그 뒤를 이은 신흥 보스 자니 로보(오스굿 퍼킨스)가 토니 일당을 시켜 남쪽파를 휩쓰는 부분은 대단하진 않지만 도입부와 마찬가지로 [스카페이스]의 폭력 묘사, 즉 '보여주지 않는 묘사'를 담고 있다. 여기서는 [공공의 적]의 라스트에서 주인공이 최후의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사용되었던 연출, 즉 총격전이 벌어지는 장소의 외부에서 요란한 소리만을 들려주는 표현법이 사용된다. 하워드 혹스는 이 폭력을 암시하는 연출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용한다.

 자니에게 저항하는 상대 갱단의 보스가 죽는 장면에서는 드디어 죽음의 표식 'X'가 등장한다. 사체가 발견된 위치를 X로 표시했던 실제의 전통에서 따온 이 X는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에서부터 등장하여 줄곧 죽음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그림자와 사물들이 화면 위에 그려내는 X는 결국 이 영화를 온갖 곳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영화로 만든다. 특히 북쪽파를 몰살시키는 장면에서 지붕의 목재 구조물이 일곱 개의 X자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뒤 카메라를 내려 벽에 비친 일곱 사람의 그림자를 보여주고, 그 그림자 위로 총알구멍이 나타나면서 그림자가 쓰러진 뒤 다시 카메라가 올라가 일곱 개의 X자를 보여주는 장면은 거의 시적인 아름다움을 제공한다고 할만하다. 또 죽음을 상징하는 소도구들은 어떤가. 예컨대 던져 올린 상태에서 총을 맞는 바람에 다시 손바닥 위로 떨어지지 못하는 동전, 아홉 개의 볼링핀이 쓰러진 상태에서 위태롭게 빙글빙글 돌다가 결국 쓰러지고 마는 마지막 볼링핀, 그리고 피로 물든 나날들을 표현해주는 기관단총과 달력. [스카페이스]의 폭력 장면들이 7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깊은 인상을 전해주는 것은 이런 간접적인 묘사가 불러오는 감흥 때문일 것이다.
 물론 [스카페이스]의 매력이 시각적인 연출에만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하워드 혹스 특유의 유머와 구성이 담겨 있다. 물론 비교적 초기작인 만큼 30년대 후반 이후의 대표작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캐릭터의 반복적인 대사나 행동을 서로 다른 상황 속에 배치하여 제각기 다른 감정을 끌어내는 혹스 영화의 특징은 여기서도 찾아볼 수 있다. 비서 안젤로의 캐릭터는 바로 그걸 위해서 존재한다. 안젤로는 복장부터가 바보스럽게 보이는 인물로, 비서이면서도 글을 쓸 줄도 모르고 발음도 제대로 하지 못해 토니에게 구박받는다. 영화 속에서는 안젤로가 전화를 받는 장면이 세 번 반복되는데, 첫 번째 전화 받는 장면이 순수하게 이 캐릭터의 우둔함을 부각시키면서 유머를 끌어낸다면 두 번째 전화 받는 장면은 같은 상황을 총격전 속에 배치함으로써 총격전의 충격을 유머로 바꿔준다. 세 번째 전화 받는 장면에서, 안젤로는 마침내 전화를 받아 전화 건 사람의 이름을 듣고, 그리고 죽는다. 총을 맞은 상태에서도 벨이 울리는 전화를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그리고 이름을 받아낸 자신이 대견하다는 듯이 "이름을 받았어요."라고 말하면서 쓰러지는 이 캐릭터의 비장함은 어떤 면에서는 토니의 자기파괴적인 광기를 뛰어넘는 데가 있다. 혹스는 이렇게 몇 번의 장면만으로도 캐릭터에 깊이를 부여한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170분짜리 버전을 본 뒤 혹스의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러닝타임이 93분밖에 안 되는 이 영화가 드 팔마의 영화만큼이나 토니라는 인물(드 팔마 버전의 주인공 이름은 토니 몬타나다)을 잘 형상화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고전기 할리우드 영화 특유의 경제성을 토대로, 폴 무니의 토니는 알 파치노의 토니만큼 부와 섹스, 보스의 자리와 여동생에게 집착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물론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제스처들로 토니의 성격을 표현해 낸 폴 무니의 연기나 시의적절한 클로즈업으로 단숨에 토니의 격정을 표현해 준 하워드 혹스의 연출 외에도 벤 헥트가 쓰고 하워드 혹스가 다듬은 각본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이를 테면 자니의 집에 들어선 토니나 훗날 토니의 집에 간 그의 연인 포피(카렌 몰리)가 자꾸 expensive라는 어휘를 강조하는 것, 그리고 저 유명한 '세상은 너의 것' 같은 문구는 토니의 상승욕구를 표현해준다. 그가 북쪽파를 섬멸한 뒤에 난데없이 극장에 가서 연극을 보면서 그 내용에 심취해 부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퀀스는 갱스터로서 토니가 가지고 있는 그런 상승욕구가 결국 사회적 신분의 상승에 대한 욕구와 다를 바 없음을 선명하게 보여준다(이거야 뭐, 우리네 졸부들의 교양에 대한 집착과 정확히 일맥상통하는 사실 아니겠나).

 토니와 체스카의 근친상간적 남매 관계는 이 영화에서 특히 돋보이는 부분 중 하나다. 드 팔마 버전에서 엘바이라 핸콕(미셸 파이퍼) 때문에 토니 몬타나의 동생 지나 몬타나(매리 엘리자베스 마스트란토니오)가 잘 기억에 남지 않았다면─물론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지만 그 다음에 저 유명한 "Say hello to my little friend!"가 나오는 걸 어쩌겠나─혹스 버전에서는 거꾸로 체스카 때문에 포피가 잘 보이지 않는다. 혹스는 이 체스카라는 인물에 상당히 공을 들인 것 같다. 무성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분장을 한 이 여인은 고전기 갱스터 영화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는 '갱스터의 아름다운 연인'이나 '갱스터의 인자한 어머니'가 아니라 또 한 사람의 갱스터다. 남정네를 집안으로 끌어들여 키스하다가도 토니가 쥐어 준 돈에 남자를 버리는가 하면 자신을 외면하려고 애쓰는 리날도 앞에서 춤을 추며 추파를 던지고 그의 소심함을 비웃는 그 태도는 필름 누아르의 팜므 파탈이 지닌 은근한 유혹이 아니라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무법자의 태도다. 체스카가 토니의 인사법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 그리고 "오빠는 나야."라고 말하는 것 등을 통해서도 나타나는 이 갱스터성은 [하얀 열기(White Heat, 1949)]의 마 자렛(마가렛 와이철리)이나 [그리솜 갱단(The Grissom Gang, 1971)]의 글래디스 그리솜(아이린 데일리)을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다. 결국 체스카는 토니의 거울상으로서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둘 사이는 남매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깝게 표현된다.
 토니가 체스카 때문에 보이는 공황 상태는 상당히 재미있다. 체스카와 몰래 결혼한 리날도를 홧김에 죽여버리는 것과 죽어 가는 체스카에게 매달리는 것은 모두 그가 동생에게 보이는 과도한 집착을 드러내는데, 체스카의 말처럼 그는 동생을 잃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이기를, "리날도는 그렇지 않았어." 여기서 나타나는 토니의 유아성은 [스카페이스]의 또 다른 축이다. 그토록 매력적으로 그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이 갱스터에게 거리를 두게 하는 요인이 바로 그의 유아적인 태도다. 토니가 리날도, 포피와 함께 식당에 있다가 북쪽파에게 습격을 받는 장면에서 보이는 천진난만한 모습이 그의 성격을 집약해서 보여준다고 하겠는데, 여기서 토니는 자신이 습격 받은 것에는 전혀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북쪽파가 사용한 신무기─기관단총에 놀라며 자신도 하나 얻고 싶어서 못 견디는 모습을 보인다. 이 유아성은 앞서 말한 연극 장면에서의 '졸부성'과도 겹치면서 갱스터 세계에 대한 매혹과 동경과 거부감 모두를 감싸안는다. 즉, 치밀한 사고와 이념으로 무장하고 체제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있으니까 반항한다'는 식의 막무가내적 태도가 던져주는 해방의 쾌감이랄까. 대공황 직후의 관객들이 요구했을 법한 이런 쾌감은 물론 끝에 가서는 사회의 규제 안에서 쓰러지고 말지만, 적어도 기관단총을 들고 창 밖으로 총알을 쏟아 부으며 광소를 흘리는 토니 카몬테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인정할 수밖에. 토니의 욕망이 이 사회 안에 잠재해 있는 욕망 중 하나라는 것을. 그리고 경찰이 토니를 죽인 데에 사용한 무기가 기관단총이라는 사실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스카페이스]는 아직 제작규정이 고전기 할리우드를 완전히 찍어누르기 전에 만들어진 가장 훌륭한 초기 갱스터 영화다.



 덧 하나. 고백 하나. 이 영화는 씨네코리아에서 출시한 립핑판 DVD로 봤다. 립핑판 DVD에 별 신경을 쓰지 않던 시기에 사서 봤는데 최근 이 타이틀을 코드1 정품으로 구입하려다가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알고 보니 이 타이틀은 단품으로 따로 출시가 된 게 아니라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 20주년 기념 디럭스 기프트 세트에 수록된 것이었다. 그 기프트 세트는 DVD 타이틀 두 개를 담기에는 불필요할 정도로 큰 박스 크기를 자랑하는 데다가 정가는 59.98달러. 게다가 나는 이미 한국에서 출시된 코드3번 드 팔마 [스카페이스]를 스페셜 에디션 버전으로 두 번이나 산 적이 있단 말이다. 그래서 결국 이 영화는 단품 DVD가 따로 출시되기 않는 한 립핑 DVD로 만족하기로 했다. 자막 싱크가 아주 약간 빠르거나 느린 부분이 있는 것, 그리고 가끔씩 두 사람의 대사 사이에 / 를 넣지 않아 한 사람의 대사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한국어 자막의 질은 양호하다.


 덧 둘. 공권력을 묘사하는 하워드 혹스의 냉담함은 이 영화의 DVD에 수록된 다른 버전의 엔딩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 같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 만들었느나 실제로 사용되지는 않은 이 다른 버전의 엔딩에서 토니는 경찰들에게 잡혀 재판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런데 호세 지오반니 감독의 [암흑가의 두 사람(Deux Hommes Dans La Ville, 1973)]처럼 이 엔딩에서의 교수형도 지나치게 삭막해서 자연스럽게 죽는 사람에게 동정을 표하게 된다. 비록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하워드 혹스가 이 영화에서 제작규정을 어떤 식으로 이용하는지에 관한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덧 셋. 반복되는 X 상징들.






by sabbath | 2006/04/13 15:51 | 20050523~20061228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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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BAD TASTE! at 2006/09/01 20:35

제목 : 스카페이스
이 영화에 대한 소개를 들은 것은, "영화의 이해"라는 참을 수 없이 지루한 수업의 한 가운데 였습니다. 강사는 무성의하게 헐리우드의 초창기 영화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고, 갱스터 무비의 몇몇 장르적 특성과 의미에 대해 지루하게 떠들어댔어요. 영화에 별다른 호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당시의 저로서는 무척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강사가 설명하는 <스카페이스>는 현재에도 충분한 재미를 전하는 영화라기 보......more

Commented by 이녘 at 2006/09/01 20:35
동전 던지기는 이 영화에서 시작했나 보군요. 루이가 죽는 장면은 정말 근사했어요. 폭력을 표현하지 못하는 한계가 오히려 더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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