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 김기덕 열세 번째 작품 [시간] 예고편
 사실은 아직도 신작이 안 나왔다는 사실을 기이하게 여겼어야 했을 텐데. [씨네21] 549호 전영객잔 코너에서 정성일이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정성일의 글은 여전히 어려운 감이 있고, 특히 [KINO] 시절에 쓴 글을 보면 반감이 솟구치기도 하지만(무엇보다도 브라이언 드 팔마 특집에서 쓴 글. 감독에 대한 내 애정과 정성일의 글에 대한 내 이해도가 반비례하는 바람에 이 사람이 나한테 원한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대한민국 땅에 몇 안 되는 열혈 임권택, 김기덕 지지자라는 것만으로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씨네21] 549호에서 그는 5와 1/2 페이지를 빼곡하게 채워 김기덕의 열세 번째 신작 [시간]을 소개했다. 그건 정말 '소개'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각오로 그 글을 썼다.

그러므로 급기야 내가 '할 수 없이'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실 남이 보지 않은 영화를 쓸 때에는 지나치게 친절해야 하기 때문에 피상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나는 이 일을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더 김기덕의 〈시간〉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사방의 블로그에 글이 오르고, 팔방의 카페에서 토론되고, 싸이월드로 글이 퍼 날라지고, 마침내 장사꾼들을 부추겨서 이 영화가 영화관에서 개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본주의는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발생한다는 간단한 원리. 물론 이런 지지는 김기덕과의 친분과 아무 상관이 없다(그리고 그렇게 친한 것 같지도 않다. 그가 나에게 이 영화를 '공식적'으로 보여준 것이 아니며, 나는 그의 배려 없이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쓰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시간〉을 보았고, 이 영화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 어떤 이유도 없다. / 정성일, "반복 안에서 찾은 새로움-김기덕 감독의 신작 〈시간〉을 최초로 보고 쓰다"

 이렇게 말한 다음 정성일은 여러 개의 문단을 통해 [시간]의 줄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준다. 그 내용이 너무 재밌어서, 나는 이 영화를 꼭 보고 싶어졌다. 물론 그 전까지 본 김기덕의 영화, [사마리아(2003)], [빈 집(2004)], [활(2005)]이 모두 재미있었기에 그렇지 않아도 김기덕의 신작이 나오면 보려 했지만, 정성일의 글을 읽은 뒤에는 '꼭'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정성일의 낚시에 걸려주어야 한다. 마침 예고편이 나왔다기에 구글의 도움을 빌려 어느 외국 사이트에서 그걸 찾았다. 그래서 올리기로 했다.

 솔직히, [활]의 전국관객 수가 1450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 일종의 유치한 자부심 같은 걸 가지고 살았다. 앞으로 계속 김기덕 영화를 보는 사람이 된다면, 그 유치한 자부심은 더 커지게 될지도 모른다. 부디 이 영화가 개봉되고, 적당한 수(많은 수이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의 사람이 보아서 내가 오만하게 자라는 것을 막아주었으면 한다.






 덧. 그러나 나도 소극적인 지지자 중 하나일 뿐이다. 항상 [섬(2000)], [수취인불명(2001)], [나쁜 남자(2002)] DVD의 구입을 망설이게 된다. 물론 타이틀 가격이 상당히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번에도 비트윈에서 출시한 김기덕 감독 박스세트를 앞에 두고 한참 망설이다가 때마침 알프레드 히치콕 박스세트가 중고 시장에 등장하는 바람에 그 쪽으로 발길을 옮겨 버렸다. 의무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텐데, 그래도 어쩐지 미안하다.
by sabbath | 2006/05/02 20:40 | 20050523~20061228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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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오기렌 at 2006/05/04 07:09
"알프레드 히치콕 박스세트가 중고 시장에 등장하는 바람에 그 쪽으로 발길을 옮겨 버렸다."

이런 경우 저도 있죠. :-) 스펙트럼에서 나오는 한국 영화 HD 텔레시네 시리즈 디비디를 차근차근 구입하고 있는 중인데, 이번에 테네시 윌리암스 콜렉션이 워너에서 나오는 바람에 그 쪽으로 발길을 돌렸어요. 네, 의무감을 가질 필요는 없는데 말이죠. 너무 미안하더라구요. 그래도 임권택 감독의 축제나 태백산맥은 언제나 위시리스트의 수위에 있답니다.

근데 알프레드 히치콕의 박스세트라니? 도대체 어떤 것? 워낙에 많아서리. 워너? 유니버셜? 크라이테리언?
Commented by sabbath at 2006/05/04 07:33
오기렌 / 유니버셜 14디스크요 :-D
Commented by 헤르메스 at 2006/05/05 00:38
스크랩 고마워. 난생 처음으로 외국사이트에 회원가입한 것 같아. 신기하네...
Commented by WINDeeR at 2006/05/07 00:51
소식 듣고 찾아왔었요 ^^
기억하실려나 ^^;
여전히 멋진 활동 하시는 듯?
바쁘신지 다른 쪽에는 글을 안 쓰셔서 ㅋ
잘 지내니는지 모르겠네요 ^^:
Commented by sabbath at 2006/05/07 19:46
WINDeeR / 물론 기억하죠. 오랜만입니다. 특별히 바쁜 건 아닙니다만 황금가지에서 뭘 할 게 없더라고요.
Commented by ○○○ at 2006/05/08 12:09
DVD구매를 시작하면 <섬>은 꼭 사고 싶은 타이틀인데 막상 시작하게 되면 어쩔지 모르겠네요..
(새침떼기님 블로그에서 들렸습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6/05/08 12:35
○○○ / [섬]은 지금도 절판돼서 상당히 구하기 힘든 타이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재판이 나올 분위기도 아니고 해서 더욱 위기감이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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