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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드 베크와 세르주 투비아나가 쓴 프랑수아 트뤼포 전기 [트뤼포-시네필의 영원한 초상(Francois Truffaut)]을 지난 달에 읽었는데, 영화 서적이나 전기, 어느 쪽으로도 손꼽을 수 있을 만큼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다만 그 직후에 읽은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의 힘이 워낙 강렬하여 언급을 게을리 했을 뿐) 대체 무슨 조사를 저리도 많이 했나 싶을 정도로 프랑수아 트뤼포의 생애를 세밀하게 따라가는데, 전기 작가의 재구성 능력도 훌륭하기야 했지만, 그 속에 관계자의 증언 같은 1차 사료를 가득 첨부하여 더욱 흥미로웠다. 프랑수아 트뤼포 자신이 뭐든지 모으고 분류하는 수집/메모/편지광이었기에 자료가 많이 남을 수 있는 기본 요건은 갖춰져 있었겠으나 실제로 그 자료들을 보관해온 사람들을 생각하고, 또 그들의 세세한 증언을 듣고 있노라면 참으로 무지막지하게 노력을 들인 책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영화사상 최고의 영화광인 트뤼포는 자기 인생마저 영화로 바꾸고 싶어했던 사람인 만큼 척 보기에도 멋들어진 이야기들을 많이 했고, 덩달아 이 책도 명언의 보고나 다름없다. 게다가 말만 한 게 아니라 그 자신 신랄한 혀와 애정 어린 눈길을 겸비한 준엄한 평론가로서 영화계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글을 쓰며 논쟁을 벌였고, 감독이 된 후에는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의 기수로서 1년에 한 편 꼴로 영화를 찍으며 온갖 사람들과 만났으니, 얼마나 멋진 대목이 많을 것인가. 그리고 그 수많은 명장면 중에서도 가장 내 마음을 끈 부분은 바로 다음 대목이었다. 세르비아-피에르-1세 거리의 아파트 안에는 로라와 에바의 방이 각각 있어, 두 딸은 보통 여기서 주말을 보냈다. 1973년 봄, 로라는 14세였고 에바는 12세였다. 트뤼포는 촬영이 없을 때는 두 딸과 함께 책과 영화에 탐닉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두 딸들의 성격 차이에도 깊은 관심을 지녔다. 몽상가 기질을 지닌 큰딸 로라는 문학적 재능이 있었고, 낭만적 기질이 덜한 에바는 좀더 활동적이었다. 에바는 이렇게 기억한다. "내가 아버지와 함께 고른 영화들은 늘 템포가 아주 빠르고 매우 건조하면서 폭력적인 영화, 이를테면 랑, 스터지스, 알드리치, 큐브릭의 영화들이었다. 아버지는 로라와는 이런 종류의 영화들을 볼 수 없었다. 아버지는 로라와 있을 때면, 취향과 감정의 측면에서 자신의 개성 가운데 또다른 면을 좀더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형태로 분출시켰다. 조지 큐커, 펠리니, 히치콕, 프레드 아스테어의 뮤지컬 코미디 영화, W. C. 필드의 코미디, 또는 〈판도라Pandora〉 같은 영화, 1970년대에 재개봉된 채플린의 위대한 코미디 전작 등이었다. 세 명 모두 일치했던 것은 〈세 명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A Letter to Three Wives〉,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 등 맨키위츠의 몇몇 영화, 폴란스키의 몇몇 작품, 달턴 트롬보의 〈조니는 전쟁에 나갔다Johnny Got His Gun〉 등이었다. 우리 두 명은 의무적으로 아버지를 따라 당시의 싸구려 프랑스 영화들을 보러 다녔다. 아버지는 지디, 몰리나로, 드 브로카 등의 영화로부터 터무니 없는 트릭이나 낡아빠진 개그, 경이적인 대담성을 찾아내고서는 웃음보를 터뜨리곤 했다. 〈멋진 남자Le Magnifique〉, 〈랍비 야곱Rabbi Jacob〉, 〈화가 치밀어 올라La Moutarde me monte au nez〉 같은 영화였다. 로라와 나에게서 아버지는 자신의 두 가지 개성, 두 가지 특색에 각기 관심을 쏟았다. 고등사범학교 입학을 꿈꾸던 로라는 프루스트와 19세기 문학을 전부 읽었다. 나는 전혀 침착하지 못해서 책 앞에 앉힐 수도 없었다. 나중에 아버지가 내게 처음에는 챈들러를, 다음에는 체스터 하임스, 구디스,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 읽어야 할 책을 주셨을 때까지는 그랬다." 아버지로서의 저런 자상함! …에도 감명 받을 수 있겠지만, 나 자신은 가정을 꾸린다는 것에 대해 그렇게 적극적/긍정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터라, 내가 감명 받은 이유는 좀 더 본질적인 부분 때문이었다. 바로 문화적 체험을 권한다는 행위 말이다. 상대방의 성향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문화적 체험을 권하면서 함께 즐기는 그런 과정은 얼마나 매력적이란 말인가. 특히 에바가 트뤼포의 권유 때문에 레이먼드 챈들러를 접한 뒤 드디어 책을 읽게되었다는 부분은 읽을 때마다 감동적이다. 완전히 관심이 없는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입문하게 만든다는 게, 상대방의 성격을 세심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자신의 문화적 체험의 폭이 넓은데다가 그 체험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고난이도의 기술이 아닌가. 게다가 그런 안내자를 통해서 로라와 에바가 접하게 된 문화적 체험은 또 얼마나 부러운지. 어린 시절에 너무 압도적인 경험들을 많이 해 버린 게 아닐까 싶긴 하지만, 나는 혼자 발버둥쳐도 간신히 하나씩 보게 되는 걸작들을 떠다 먹여주는(그것도 억지로 먹인 것도 아니고!) 사람이 바로 옆에 있었다니. 나 또한 많은 안내자들을 통하여 장르 문학과 영화의 세계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들의 애정과 나의 애정이 일치하는 경우의 충격적인 쾌감을 알기에, 또한 그럼으로써 하나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기쁨을 알기에, 나는 트뤼포와 로라, 에바의 관계가 너무나도 황홀하게만 보인다. 마틴 스콜세지는 자기 영화를 찍을 때마다 스텝들을 모아놓고 고전 영화를 수십 편씩 보여준다는데, 그런 상영회 자리에 함께 있는 것과 비견할 만한 경험이 아닐까. 아, 그렇게 안내하고, 안내 받는 삶이야말로…! 덧 하나. 좀 더 안내자의 심리에 치우친 맥락에서, 온다 리쿠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三月は深き紅の淵を)]의 다음 대목도 엄청나게 웃으면서 읽었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대학 교수의 대사다. "(전략) 나는 영미문학이 전공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다 같이 읽고 '어때, 재밌지?'하고 강요하는 게 대부분인, 취미활동 같은 수업이죠. '뭐 이런 게 다 있어'하는 학생은 금세 떨어져나가고 나하고 취향이 맞는 학생만이 남기 때문에 꽤 화기애애한 수업이 된답니다. (후략)" 덧 둘. 그러나 사실 [트뤼포-시네필의 영원한 초상]에서 가장 끝내주는 말은 이거였다. "남자와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나는 히틀러, 사르트르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저녁 7시 이후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못 견딘다는 점이다. 내게 저녁 시간이란 사적인 장소에서 사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조용조용 말을 하는 시간이며, 속내 이야기를 위한 시간, 진실의 교류를 위한 시간이다. 영화 촬영의 행복감에 견줄 만한 유일한 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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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한 글 잘 읽었습니다..
by kinoeyes at 08/19 말씀하신대로 류승완 감.. by sabbath at 08/17 참 말할 거리가 많은 영.. by 파인로 at 08/17 그쵸. 사실상 모든 프랑.. by sabbath at 08/16 아, 그것은… 저도 무.. by sabbath at 08/16 저도 그 글을 읽어보았.. by sabbath at 08/16 제작사 외유내강 측의 .. by sabbath at 08/16 소식 고맙습니다! 포스터.. by sabbath at 08/16 가끔은 너무 만든 사람에.. by sabbath at 08/16 먼저 안 보신 분들께는 .. by sabbath at 08/16 저도 만주 벌판 액션이 참.. by sabbath at 08/16 [다찌마와 리] 속편 또.. by sabbath at 08/16 오오, 드디어 올리셨군.. by Sion at 08/16 드팔마를 떠올리는 장면.. by 다찌대박 at 08/16 저는 그놈의 잘생겼다!가.. by 은혈의륜 at 08/16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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