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일 평론가의 어떤 무례함
 아래의 다소 우울한 글에 ArborDay 님께서 다신 덧글을 보니 (본문의 맥락과는 별개로) 이야기해보고 싶어지는 게 있습니다. 정성일 평론가가 [레디앙]에 쓴 글 "폭력 공포 영화 속에 감춰진 '부동산' 담론"이라는 글을 읽고 들었던 생각에 관한 거죠.

 먼저 가볍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 정성일의 저 글은 전체적으로 기분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간신히 이해하면서, 혹은 이해한 척 하면서, 그리고 때때로 감탄하면서)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 그 글은 영화잡지에 실은 비평이 아니라 "열정과 진보, 그리고 유혹의 미디어"를 표방하고 있는 인터넷 신문 [레디앙]에 실린 칼럼이었고, [짝패(2006)]와 [비열한 거리(2006)]와 [아파트(2006)]라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영화가 지금 이 순간 한국의 영화로서 부지불식간에 반영하고 있는 사회상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요. 일종의 문화연구적 관점이라고 해야 할 텐데, 저는 (한때 김성곤 교수의 팬인 적도 있어서인지) 그런 관점의 글에도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작품이든지 그 작품의 창조자가 몸담고 있는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는 건 거의 사실일 테고, 그런 반영의 양상을 잘 읽어낸다면, 혹은 최소한 반영처럼 보이는 부분들을 통해 사회를 바라본다면 그것 또한 좋은, '사회에 대한' 시각이 될 것입니다. ('사회에 대한'에 작은따옴표를 붙인 건 물론 그게 '영화에 대한' 시각과 동일해질 수만은 없다는 걸 강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사회에 대해 상당히 무지한 편인 저는 정성일의 글이 어느 정도로 핵심을 찌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꽤 담백하고 타당하게 느껴지는 글이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습니다.

 뭐, 그건 사실 이 글에서 전혀 중요한 게 아니고… 중요한 건, 그러나 저 글이 전체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는 성질을 좀 긁었다는 겁니다. 문제의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올해 상반기에 본 영화 중 세 편의 영화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류승완의 〈짝패〉와 유하의 〈비열한 거리〉, 그리고 안병기의 〈아파트〉이다. 세 편 모두 내가 좋아하지 않는 영화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못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편의 영화를 곧 잊었다. 당연하지!

 문제는 위 부분이 들어간 문단이 바로 저 "당연하지!"에서 끝나고, 다음 문단부터는 세 편의 영화가 아니라 세 편의 영화를 통해 아파트 문제에 대해 눈을 돌리는 내용이라는 겁니다. 물론 그런 전개 자체는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다시 말하지만 저 글은 영화잡지의 비평문이 아니라 [레디앙]의 칼럼이었고, 정성일은 그 칼럼들에서 영화를 '통해' 사회를 보는 형태의 글을 쓰고 있으며, 이번에 쓴 글은 아파트 문제에 관한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글에서 두 번째 문단은 전체 글의 주제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저처럼 블로그에 가볍게 글을 쓰는 경우에는 괜찮겠지만 좀 더 공적인 지면에 돈까지 받고 쓰는 글이 중구난방 격으로 이리저리 주제를 옮겨가서는 안 되겠지요. 저도 아마 이 글이 공적인 지면에 쓰는 거였다면 두 번째 문단을 뺐을 겁니다. 사실, 블로그에 쓰는 글이라고는 해도 하고자 하는 말을 좀 더 명확하게 해두고 싶다면 두 번째 문단을 뺀 뒤에 이 글이 다 끝난 다음에 제가 흔히 하는 방식으로 덧.을 달아 그 내용이 사족임을 명백히 한 뒤에 붙여두는 게 좋겠지요. 하지만 일단 여기서는 저 두 번째 문단이 이 글 전체의 주제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족이라는 점이 분명히 밝혀졌으니, (그리고 그런 내용을 언급함으로써 의미가 없던 두 번째 문단에 의미를 부여했으니) 그냥 두기로 하겠습니다.

 다시 정성일의 글로 돌아와서, 문제는 그 글이 아파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정성일이 [짝패], [비열한 거리], [아파트]에 대한 '영화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 평가의 이유를 전혀 밝히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물론 다음 문단에서 정성일은 [씨네21]의 김소영 평론가가 쓴 칼럼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이 세 편의 영화를 언급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고 있긴 합니다만, 그의 문장은 단지 동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쓴 문장치고는 거칩니다. 세 편의 영화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욱할 만하지요. 그리고 당연히, 정성일이 자신의 거친 태도에 대한 이유를 전혀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욱한 사람들'은 대체 자신들이 좋아하는 영화가 한 소리 들어야 하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럼? 결국 이건 그냥 한 번 긁어본 거죠. 덕분에 저 부분은 마치 이렇게 들립니다. '이 세 편의 영화는 못 만든 영화야. 못 만든 이유? 너무 명백하잖아. 그렇게 당연한 부분까지 말해야해? 이봐, 지금 이 글에는 거기까지 다뤄줄 여유는 없다고'

 여기에는 배려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정말 나는 이유조차, 그러니까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니라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조차 모르겠는데 상대방은 나를 열렬히 미워하고 있는 황당한 경우가 있죠? 그거랑 비슷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이 글은 정성일을 탓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정성일의 글은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 역할을 했을 뿐, 사실 이런 경우는 너무나도 흔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 블로그에서도 이런 종류의 무례함을 느끼신 분들이 계실 수 있을 겁니다.

 대체 이런 곤혹스러운 상황은 왜 발생하는 걸까요?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니겠습니다만, 대상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정성일이 꽤 자주 사용하는 표현으로는 '교양')가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영화에는 180도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이 글은 그 '모르시는 분들'을 무시하는 것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간단히 얘기하자면 이런 겁니다. A와 B 두 사람이 마주보고 대화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기본적인 대화 연출법은 A가 말할 때 A의 모습을 보여주고 B가 말할 때 B의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려면 A를 보여주는 카메라와 B를 보여주는 카메라, 해서 카메라가 두 대 있어야겠죠? (물론 카메라 하나를 갖다 놓고 같은 대화를 두 번 해서 한 번은 A만 찍고 한 번은 B만 찍고 할 수도 있을 테고 뭐 하나로 찍은 여러 방법이 있겠습니다만 넘어가자고요. 어차피 그 경우에도 이 180도 법칙은 지켜져야 하니까) 문제는 이 두 카메라를 어디다 놓을 것이냐는 겁니다. 여기서 180도 법칙이 등장합니다. 마주보고 얘기 중인 A와 B를 연결하는 가상의 직선을 하나 그립니다. 이 선을 상상선이라고도 합니다. 이때 두 카메라는 모두 상상선의 어느 한쪽 편에만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는 상상선 왼쪽, 다른 하나는 상상선 오른쪽에 있으면 안 된다는 거죠.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음, 그림이 없어서 설명하기가 힘드니까 직접 그려보시면서 생각해보세요. A가 위쪽에 있고 B가 아래쪽에 있다고 가정을 하고, 상상선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 상상선의 왼쪽에 카메라 두 대를 배치합니다. A를 찍을 카메라 A'는 B의 왼쪽에서 A를 바라보도록 놓고, B를 찍을 카메라 B'는 A의 오른쪽에서 B를 바라보도록 놓아야겠죠. 두 사람은 지금 마주보고 대화하는 중이니까, 마주보고 대화하고 있다는 상황을 알리려면요. 그래놓고 이제 상상해보세요. 카메라 A'와 B'에 찍힌 화면을 보면 A와 B는 화면의 어느 쪽에 있고 어느 쪽을 보며 말을 할까요? 당연히 A는 화면의 왼쪽에 서서 오른쪽을 보며 말을 할 테고, B는 화면의 오른쪽에 서서 왼쪽을 보며 말하고 있겠지요? 만약 카메라 A'와 B'가 상상선의 오른쪽에 배치되어 있다면, 반대로 A는 화면의 오른쪽, B는 화면의 왼쪽에 나올 겁니다… 자, 머릿속으로 생각들 해보셨습니까? 좋습니다. 그러니까 상상선의 어느 편에 서느냐 하는 게 화면 속 인물의 위치를 결정한다는 거죠.

 그런데 만약 A'는 상상선 왼쪽에, B'는 상상선 오른쪽에 배치되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A'가 찍은 A는 화면의 왼편에서 화면 오른쪽을 바라보며 말을 하겠죠? 그런데 B'가 찍은 B도 화면의 왼편에서 화면 오른쪽을 바라보며 말을 하고 있게 됩니다. 두 카메라가 찍은 대화 장면을 붙이면 어떻게 될까요? 두 사람은 마주보고 대화하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둘 다 같은 쪽에 서서 같은 쪽을 바라보며 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요? 그건 그래도 일관성이 있다고 해두지만, 만약 매 대사마다 자꾸 그렇게 카메라 위치가 상상선을 넘나든다면? 결국 관객은 누가 누구를 향해 어느 쪽에서 말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어질 겁니다. 180도 법칙은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등장했습니다.

 한편, 45도 법칙이라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이건 뭐냐면, 180도 법칙을 지키며 대화 장면을 찍을 때 그 180도선, 즉 상상선에 수직인 직선을 또 하나 긋습니다. 90도 선이라고 해두죠. 물론 두 직선의 교차점은 A와 B의 중간 부분일 테고요. 그럼 공간이 직선 두 개로 이등분 되겠지요? (사등분이라고 해야겠지만, 180도 법칙을 지킨다면 상상선 좌우 어느 한 쪽은 버려야 하니까 아예 생각을 하지 말기로 하고요) 그 공간 속의 45도 되는 지점에서 인물을 찍어야 하고, 그 선을 넘어서 인물을 찍게 되면 180도 법칙을 지키면서 찍더라도 두 인물이 서로를 마주보지 않고 엉뚱한 곳을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고 합니다.

 '있다고 합니다', '된다고 합니다' 같은 어미를 통해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180도 법칙은 이해하고 있는데 45도 법칙에 대해서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있는 대화 장면에서 둘의 시선이 맞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러나 정성일의 지식 하에서, 어쨌든 이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당연한 법칙이고, 어떤 영화가 그걸 지키지 못해 대화 장면에서 시선이 맞지 않을 때, 그 영화는 기본적으로, '영화적'으로 못 만든 영화입니다. 정성일이 어떤 영화를 두고 못 만들었다고 할 때는 대게 이런 뉘앙스를 풍깁니다. 일단 기술적으로 부족하다는 거죠. 비슷한 예로는 '편집이 안 붙는다'도 있습니다. 정성일은 봉준호 감독의 [지리멸렬(1994)]과 [살인의 추억(2003)]을 두고 추적 시퀀스에서 편집을 완전히 잘못 했다고 말했는데, 전 그건 아예 모르겠어요.

 아무튼, 자, 과연 45도 법칙을 지키지 못해서 '못 만든' 영화가 있을 때, 그 영화가 못 만든 영화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45도 법칙을 설명하고 있어야 합니까?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미적분 틀린 것을 설명하기 위해 곱셈부터 가르칠 수는 없겠지요. 제 생각에 이런 식의 무례함은 바로 이 문제에서 나오는 듯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꽤 당연하게 느껴지는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일일이 이야기하기는 힘들 뿐더러, 전체의 주제에서 벗어날 우려도 있습니다. 제가 180도 법칙과 45도 법칙을 이야기하기 위해 쓴 네 문단을 보시길. 얼마나 튀어보입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건 그래. 근데 설명은 생략이야'라고 말하는 게 정당화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할 거면 애초에 '이건 그래'라는 말을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고 싶다면, 자세한 설명은 아니더라도 그 판단을 이끌어낸 이유의 개요라도 말은 해줘야 할 겁니다. 적어도 못 만든 영화가 있을 때 최소한 45도 법칙을 제대로 못 지킨 대화 장면이 무척 거슬렸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할 필요는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조차 하지 않으면 결국 난데없이 '너 이거 틀렸다'고 말해놓고 어디가 틀렸는지 모르겠어서 쩔쩔매는 학생에게 '그런 것도 몰라서 틀리냐, 병신아'라고 말하는 재수 없는 선생이 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짓은 숨은그림찾기 만드는 사람이나 하는 거고, 비평의 위치에서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건 무례한 일일 뿐입니다.

 더군다나, 수학과는 달리 예술의 영역에서, 어떤 '법칙'들은 법칙이 아니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비판을 가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마침 좋은 예가 있습니다. 콜린 님께서 오늘 올리신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에 대한 글에는 정성일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쇼트가 잘 붙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저는 시퀀스 간의 연결에는 꽤 주목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한 시퀀스 내에서 쇼트의 연결에까지 집중하는 능력은 아직 많이 부족해서,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 편집에 관한 정성일의 지적을 이해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괴물] 편집에 대한 콜린 님의 지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저는 편집의 도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콜린 님은 그 '도'가 [괴물]이라는 전체 작품을 위해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했으며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 영화 전체의 가치를 낮춰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정성일이 '이건 틀렸어. 어쩜 이렇게 틀릴 수가 있냐'라고 이죽거리는 동안 콜린 님은 '이건 틀렸어. 그런데 그게 꼭 틀린 건 아닐지도 몰라'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둘의 차이는 명백합니다. 정성일의 글을 읽고 있으면 대체 내가 모르는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동시에 불쾌해집니다. 콜린 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대체 내가 모르는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고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결론은? 결국 이건 교양의 문제라기보다는 신중한 예의의 문제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는 겁니다.

 그리고… 정성일은 [짝패]가 왜 못 만든 영화인지 친절하고 자세하게 강의할 생각은 없을 테고, 저 역시 정성일을 보게 되더라도 묻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으니, 저는 정성일의 긁는 소리보다는 훨씬 자세하게 쓴 제 감상문 쪽을 신봉하렵니다. [짝패]는 걸작입니다.



 덧 하나. 아무튼 [레디앙]의 편집진 측에서는 실수를 저지른 셈입니다. 정성일이 쓴 글의 본문 중간 중간에 발췌 문구를 굵은 글씨로 처리하여 삽입해뒀는데, 그 중 "못 만들어서 재미없는 세편의 영화"라는 문구는 전체 글의 요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족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별 관심 없는 사람도 지나가다가 한 번이라도 읽게 만들려드는 스포츠 신문들의 작태를 연상케 하기도 하네요.


 덧 둘. 글이 길다고 안 읽고 내려오신 분들 계실 텐데요, 이 글의 주제는 축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거 너무 좋아하지 마시란 거죠.
by sabbath | 2006/08/17 00:32 | 20050523~20061228 | 트랙백(2) | 핑백(1)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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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D E L I .. at 2006/08/18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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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ath님의 사이트에서 정성일 평론가의 어떤 무례함이라는 글을 읽다가 덧글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짝패]와 [비열한 거리]를 상반기 국내 최고 영화로 꼽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진흥위원회의 박스오피스를 이용해서 상반기 국내 영화를 정리해봤습니다. ^^ 상반기 개봉영화는 모두 291편으로 영화제, 단편영화, 회고전, 관객이 0명이었던 영화를 제외하고 2006년 1월 1일 이후 개봉한 영화만을 추리면&......more

Tracked from 하민혁의 통신보안 at 2006/08/20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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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D E L I U S.. at 2007/08/15 20:46

... sabath님의 블로그에서 정성일 평론가의 어떤 무례함이라는 글을 읽다가 덧글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짝패]와 [비열한 거리]를 상반기 국내 최고 영화로 꼽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진흥위원회의 박스오 ... more

Commented by 파인로 at 2006/08/17 01:23
정성일 평론가가 <짝패>나 <비열한 거리>, <아파트>에 대한 평을 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더라도 기분이 불쾌해지는 건 어쩔 수 없군요. (이런 표현이 우습긴 하지만)2006년 후반기에 <괴물>이 있다면 상반기에는 <짝패>가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네모스카이시어 at 2006/08/17 01:40
두번째 덧이 확 와닿는군요.
Commented by mhead at 2006/08/17 01:44
가상선이라고도 불리우는 이미지라인(혹은 이미지너리라인)은 안지키면 화면이나 편집의 질을 떠나 관객이 대화의 상황 자체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지켜지는 편집의 원칙이지만(물론 파괴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45도 법칙이라는건 '꼭' 지켜야한다는 이야기도 편집의 질을 따지는 '기준'이라는 이야기도 들어본적이 없네요. 평론가들의 평론은 뭐라고 하든 별로 관심이 없다지만 일단 까대고보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글은 정말 보기좋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ArborDay at 2006/08/17 02:15
전 기본적으로 평론가들의 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건 제가 경제학 교수들의 연구보고서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와도 비슷한데, 돈을 받는 위치가 되거나 혹은 인맥이 형성되고 나면 자신의 신념을 올곧게 글에 투영하는게 생각보다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들의 글은 배울 것이 있거나,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역할들을 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기 때문에 틈나는대로 읽어주긴 하지만.
아는 것의 차이를 떠나서, 근본적으로 취향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은 짜증날만 합니다. 제가 정성일 평론가에게 심한 불쾌감을 가졌던 것은, 씨네마테크 서울과 관련해서 이런 영화들을 보지 않은 사람과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라며 말했던 칼럼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 말이 하고자 하는 뜻은 압니다만, 사소하게 거슬리는건 어쩔 수 없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이 유난히 취향을 타기 때문일겁니다. 아마도.
Commented by 카샤 at 2006/08/17 08:06
세상에나.「짝패」를 싫어할수 있는 남자도 있는거군요 (..)
Commented by marlowe at 2006/08/17 09:28
동감입니다. 평론가들이 자주 내비치는 우월의식('어머, 넌 이런 것도 모르니?')을 보면 짜증나요.
웃기는 건, 그런 글일 수록 격한 논쟁을 불러일으켜서 그들의 몸값을 올려준다는 거죠.
Commented by echobelly at 2006/08/17 13:09
'못 만들었다'라는 말은 사실 굉장히 광범위한 영역을 포함하고 있는 말이라 좀더 설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잊어버렸다'라는 말이 한 마디로 그 영화들에 대한 '가치판단'을 끝내버리는군요. 평론가가 세간의 눈치를 보며 제 뜻을 굽힐 필요야 없다고 생각하지만, 저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짝패>는 올해 상반기 최고 영화 맞아요. ;ㅁ;
Commented by keelee at 2006/08/17 18:20
음, 언제나 진지하고 자세한 글 정말 잘보고 있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짝패 디비디는 도대체 언제나오는겨!라는 혼잣말을. ^ ^
아, 그리고 링크 신고합니다~ ^ ^
Commented by 노바리 at 2006/08/17 19:17
한국영화 재미없어, 란 오랜 제 입버릇을 간만에 쏙 들어가게 해준 영화가 짝패와 괴물이었는데, 뭐 전능한 평론가의 권위에 의해 정말로 못만든 영화로 선언되더라도 전 사랑하렵니다. 뭐 꼭 걸작만 사랑하란 법 있나요. 45도 법칙은 저도 처음 보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그게 그토록 영화적 완성도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면 180도 법칙을 공공연히 무시하고 무지막지한 점프컷을 자랑하는 고다르의 <미치광이 삐에로>는 못 만든 영화일까요.
Commented by sabbath at 2006/08/17 19:50
으음, 덧글들의 양상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네요. 좀 당황했습니다. 영화 평론가들이나 정성일 평론가에게 짜증내자고 쓴 건 아니고, 그저 최근에 정성일의 글을 자주 읽었기에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예라서 계속 써먹었던 건데… 그렇다고 이번에는 정성일을 옹호하는 글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를 어이할꼬.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정성일이 180도 법칙이나 45도 법칙(이건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에서 알게 된 겁니다. 뒤에 따로 상상선에 관한 용어 설명을 달면서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있고)이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그에 벗어난 영화들은 다 개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님을 짚어두고 싶습니다. 그는 다만 그런 것들을 지킬 필요가 있는 영화들이 지키지 못하는 경우에 대해 분개(?)하는 듯 합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6/08/17 19:52
keelee / [짝패] DVD는 9월 21일 출시 예정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다음 카페에서 감독님으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즉, 오프 더 레코드라고 감출 필요는 없을 것 같은 정보에 따르면) [짝패] DVD 출시 즈음에 류승완 감독 전작─어쩌면 전설로만 전해져오던 습작 [변질헤드]까지도 포함한─박스세트도 나온다고 하던데, 공식적인 소식은 없어서 혹시 둘이 동시에 나오지 않고 [짝패] DVD가 먼저 나오면 어찌해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사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 [주먹이 운다] DVD를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게 좀 이상하긴 합니다만)
Commented by jenner at 2006/08/17 22:44
정성일 씨는 영화광의 세번 째 단계로 접어들어야 합니다. 두번 째 단계에 너무 오래 있었어요.
Commented by sabbath at 2006/08/17 22:48
jenner / 그렇잖아도 덧글들을 보면서 정성일 평론가의 감독 데뷔에 대한 농담이 떠올랐더랬습니다. "정성일의 감독 데뷔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에게 원한을 가진 감독들이 앞을 다투어 제작비를 줄 테니까." 뭐 그런 요지의 농담이었는데… 농담만은 아닌 것 같죠?
Commented by jenner at 2006/08/17 22:57
하하,그래도 정성일 씨 같은 평론가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인 건 확실하니까요.우리나라 최고의 평론가인건 부정하기 힘드니까요. 대항마가 필요해요. 김영진 평론가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Commented by 소룡 at 2006/08/18 00:57
아하하하 세번째 단계 ㅎ
Commented by sabbath at 2006/08/18 12:51
지금 보니 [짝패] DVD는 쇼핑몰마다 제각각이군요. 9월 1일이라는 곳도 있고, 9월 5일이라는 곳도 있고, 9월 21일이라는 곳도… 이 경우 가장 늦은 쪽이라고 생각하는 게 속이 편하겠죠.
Commented at 2006/08/19 08:0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방쩜 at 2006/08/20 20:58
들려서 글만 읽고 가다가 댓글을 처음 남깁니다. 정말 좋은 글이었습니다. 님의 '상처 입히지 않았으면'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가 비록 정성일을 높이 평가하고 영화 <짝패>를 걸작이라고 생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자주 들르겠습니다.
Commented by 노바리 at 2006/08/27 00:59
제 리플이 빼도박도 못하게 오롯이 비아냥으로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읽고 깨닫습니다. 최근에야 한두 줄씩 리플을 남기는 사람으로써 SabBath님께 결례란 생각도 들고요.
정성일 평론가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읽는 재미가 큰 / 가치있는 평론을 쓰는 분들 중 한 분이라 생각하고, 아직도 '언젠가 정말 멋진 평론을 쓰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할 정도로 영화평론에 관심이 많습니다만, 가끔은 평론이 가지는 말의 칼날이 영화의 사지를 잘라먹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전능한 권위 운운은 사실, 정 평론가님을 비꼰다기보다는, 못난 자기 푸념인 셈이죠. 평론은 때로 영화감독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무의식 속의 일관된 텍스트를 끄집어내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억울한 오욕의 발길질 아래로 떨어뜨리기도 하니까요.
...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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