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나는 60년대 말~70년대 미국에서 나온 질 나쁜(못 만들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들을 무척 좋아한다. 그 유행은 하나의 이미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바로 청회색 콘크리트 사이를 배회하는 승냥이 같은 사내들의 모습이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그렇게 순탄치 않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 세상 속에서 맞서 싸우고, 굴복하고, 타락했던 사내들도 이미 있었다. 하지만 이 이상한 시기의 사내들은 뭔가 다르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말이 없다. 펄프 픽션의 영향을 받은 1940년대의 필름 누아르 사조만 하더라도 사립 탐정들과 범죄자들은 시니컬하고 멋있는 대사를 장면마다 쉴 새 없이 뱉고 다녔다. 하기야 이 사조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하드보일드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만 하더라도 사립 탐정 필립 말로의 입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중얼거리고 있지 않던가. 그들은 세상이 몹시 망가졌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 안에서 냉소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재무장하면서 고결해지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이 70년대의 후배들은 말이 없다. 이들에게는 자기 확인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 고결해지고자 하는 의지도 필요 없다. 솔직히 말해서, 목적이라는 걸 가지고 행동하는지 자체가 의심스럽다. 심지어 범죄자 잡는 경찰들조차도 직업적 사명감이나 정의감 때문에 그렇게 목숨을 걸고 질주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굉장히 공허한 인간들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유가 없어서 그런 걸까? 애초에 흔들릴 이유가 없기 때문일까? 독하기는 또 이들 만한 이들이 없다. 하나 같이 액션 스타스럽지 않은 몸에 주름진 얼굴을 지닌 이 아저씨들은 걸핏하면 주먹부터 날리고 총을 쏘고 대낮의 도로를 무차별로 질주한다. 그런 걸 해치워내는 자기가 잘났다는 생각은 전혀 없이(자신의 잘남을 극한까지 추구해서 자신을 확인하곤 하는 장철이나 장 피에르 멜빌과는 다르다!─물론 그들의 영화도 무척 멋있고 좋다).

말이 적어서 관객들이 재미없어 할까봐 걱정되었던 것일까? 대신 이런 사내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만든 연출자들은 잘난 걸 드러내려고 아주 환장을 했다. 요즘에는 촌스럽다면서 쓰기 싫어한다는(우리나라에선 박찬욱 감독의 성공 이후로 다시 좀 나오는 것 같다) 줌 렌즈를 팍팍 쓴다든지, 갑자기 거친 핸드헬드 컷을 넣는다든지, 초점 바뀌는 게 선명히 보이게끔 과격하게 초점도 바꾼다든지, 앵글도 이상하게 잡는 촬영이라든지. 거기에 종종 약 먹은 끼를 보이곤 하는 편집 같은 게 더해져 만들어낸 화면은 그 나름 매력적인 데가 있다. 너무 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 시대에는 그게 어울린다는 느낌. 거기다가 지기지기징징 빠밤~ 하는 악기음 같기도 하고 전자음 같기도 한 BGM과, 감상자를 종종 움찔하게 만드는 가짜 피와, 고전기 테크니칼라의 화려찬란한 색들이나 디지털 색보정이 없었던 시절에 화면을 마지못해 칠하다가 나온 것처럼 보이는 색감까지. 이 시기의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란 실로 세기가 바뀌기 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유행을 한데 모아놓은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그 이상한 세계를 누비고 다닌 이런저런 배우들 중에서도 나는 특히 리 마빈을 사랑하는데, 그건 일단은 존 부어맨 감독의 [포인트 블랭크(Point Blank, 1967)]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초현실주의 필름 누아르라고 할 만한 이 영화에서 리 마빈이 연기한 악당 워커는 한탕 하던 도중 친구에게 배신당한 뒤 간신히, 그리고 기어이 도시로 돌아와서는 친구와 그 일당을 찾아다닌다. 다 필요 없고 돈 내놓으라고. 그런데 이 세월이 금주법 시대 갱스터들이 활보하던 그 세월이 아닌지라 폭력 조직은 죄다 합법적인 기업으로 변해버렸고, 신용사회로 들어선 이 땅에선 암만 총을 쏴봐야 당장 현금으로 거액의 돈다발을 내줄 수 있는 놈이 없어서 결국 좌절하게 된다는, 우스꽝스러운 동시에 악몽 같은 영화다. 여기서 부질없이 콘크리트 도시 속을 배회하는 리 마빈의 모습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걸음걸이 자체로 이미 자신이 유령과 다름없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듯한 그 모습.
사실 리 마빈은 처음부터 뭔가 좀 달랐다. 그는 아직 고전기 할리우드의 힘이 조금은 남아있던 시절에 악역 전문 배우로 이런저런 영화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게 프리츠 랑의 [거대한 열기(The Big Heat, 1953)], 로버트 알드리치의 [공격(Attack, 1956)], 존 포드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 1962)] 같은 영화들인데, 이 영화들에 나온 리 마빈은 등장 횟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등장했을 때 만큼은 주인공들과 맞먹는 힘을 발휘하며 이야기를 지탱했다. 악당으로서의 리 마빈은 자신의 우위를 믿어 의심치 않는 비열한으로 등장하여 여유만만한 태도로 웃거나 과격한 폭력을 행사하곤 했다. (난 솔직히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그가 채찍을 휘두르며 행패 부리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물론 팬이라서 그런 거겠지만…)
그런가 하면 그는 악역으로서 정의의 심판(?)을 받을 때도 흔한 악당 두목들처럼 주인공이 부하들을 모조리 없애면 "이, 이럴 수가!" 하다가 한 방 맞고 멍청하게 죽는다든가, 혹은 주인공을 궁지에 몰아넣고는 잘난 척 하다가 뒤통수를 얻어맞는 식의 한심함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바닥에 구르며 비굴하게 저항할 때조차 인상적이고 멋있는 악당이었다. 특히 얼굴에 화상을 입고 주인공에게 쫓겨 총알 세례를 받는 [거대한 열기]에서 보면 거의 개처럼 쫓기면서도 총을 쏘고 발악하는데, 괜히 폼 잡다가 죽거나 실력이 딸려서 엑스트라처럼 쓰러지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거창한 목표나 음모 같은 건 없고, 그러니까 궁지에 몰렸다고 해서 멍하니 당할 생각도 없고, 아무튼 난 끝까지 한 번 붙어보겠다는 식의 태도.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역시 리 마빈의 매력이 빛을 발하는 건 본격적으로 주연 생활을 시작하면서 출연한 하드보일드 풍 필름 누아르/액션 영화들에서다. 첫 주연작(이자, [포인트 블랭크]와 더불어 '리 마빈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인 돈 시겔 감독의 [킬러(The Killers, 1964)]에서부터 그는 아주 이상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의뢰를 받고 목표를 죽이러 갔는데 목표가 된 사람이 너무 태연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자 호기심을 느끼고는 뒷조사를 하게 되는 살인청부업자. 그는 말로는 궁금하다느니 돈을 벌 수 있을거라느니 하면서 죽은 사람의 과거를 캐고 다니는데, 열심히 증인들을 두들겨 패고 죽이는 와중에도 사실은 사건이 진행되거나 말거나 진실이 밝혀지거나 말거나 나랑은 상관없다는 듯한 느낌을 주는 초연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그리고 그 과정에서 언뜻언뜻 내비치는 비열한 육식동물의 미소!)이 무척 기묘하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굉장히 전문가다운 태도를 보이며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면서도 정작 그 일과 묘하게 동떨어진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는 듯한 모습, 그게 리 마빈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어떻게 반응해야 할 때 아예 반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최소한으로 반응하거나 그마저도 속으로 감춰뒀다가 종종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 동안 쌓아뒀던 걸 확! 풀어버리고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가는 그의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리 마빈의 위치는 알랭 들롱이나 스티브 맥퀸 같은 과묵한 터프가이보다는 버스터 키튼이나 주성치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옆에서 뭔 일이 일어나건 초지일관 자기 리듬을 고수하며 하드보일드 세계 속에 이상한 균열을 만드는 남자, 그가 리 마빈이다.

마이클 리치 감독의 [프라임 컷]은 그런 리 마빈의 매력을 맛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마이클 리치 감독은 이 영화 이후에 찍은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후보자(The Candidate, 1972)]라든가 [미소(Smile, 1975)] 같은 작품을 통해 사회에 대한 예리한 시선을 담은 풍자극을 선보이며 떴다가 80년대 보수화되는 미국 사회 속에서 풍자보다는 코미디에 무게를 두며 스러져 간 감독이라고 하는데, 그런 이력이야 어찌됐든 간에 [프라임 컷]은 그렇게 거창하고 깊이 있는 영화는 아니다. 리 마빈과 진 해크만이라는 두 스타의 명성을 이용해 만든 과격하고 악랄하며, 종종 기묘한(≒ 나름대로 유머 감각을 발휘한 것 같은) 순간들이 끼어들곤 하는 6~70년대 풍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라고 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미국 동부 지역 갱스터의 돈을 빌려다가 갚지 않은 채 수금자들을 말 그대로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돌려보내는 축산업자 매리 앤(진 해크만)과, 그렇게 돈을 뜯긴 갱스터의 의뢰를 받고 다시 한 번 수금하러 온 해결사 닉 데블린(리 마빈) 사이에 형성되는 대결 구도는 분명히 미국 문화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동부 대 서부의 대결 구도라고 할 수 있을 테고, 이는 영화 속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그걸로 어떻게든 논문을 써야하는 학부생이면 모를까, 그 구도의 상징 의미 같은 것에 매달릴 필요는 없을 듯하다. (혹시 정말 그런 학부생이라면 영화의 배경이 캔자스라는 것을 가지고 말장난을 해보길 바란다.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 1939)]와 연결하시라) 서부가 개척과 자유와 미래의 희망을 품고 있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고, [프라임 컷]의 캔자스 벌판에는 지난날 동부에서 온 변호사 랜섬 스토다드와 서부의 무법자 리버티 밸런스를 구분해주었던 선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매리 앤이나 닉이나 사람 때리고 죽이는 일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싹바가지가 완전바가지인 한통속이고, 오프닝에 등장하는 매리 앤의 기계화 도축 시스템은 이 영화에서 '기계 문명'과 '야만'이 대립보다는 차라리 야합하고 있음을 분명히 해준다. (매리 앤의 대사에도 나온다. "난 미국인들이 원하는 걸 제공하고 있어!" 그나저나 소시지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오프닝은 처음 볼 때는 정말 역겨웠다. 이 영화에서 리 마빈이 나오지 않는 장면 중 최고의 장면이 아닐까. 오프닝 타이틀 디자인도 멋지고)

상황이 그러하니 '오, 우리네 세계의 옛 꿈을 간직하고 있던 저 벌판이 이제는 이렇게 황폐한 영혼이 우글거리는 악의 소굴로 변질되고 말았구나!' 이런 정서는 눈을 씻고 봐도 보려야 볼 수가 없으며, 오로지 과묵 혹은 과격한 남자들의 악다구니를 즐기기만 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사실 [프라임 컷] 속 동부 대 서부, 문명 대 야만의 구도는 오히려 이렇게 '어차피 다 썩었으니까 그런 건 신경 끄고 우라지게, 신나게 붙어보자꾸나'하는 전제를 인정한 다음에야 의미를 갖는다. 그 구도가 갖는 불균형의 맛이 리 마빈이라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느낌과 썩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한 발자국 붕 떠 있는 듯한 리 마빈의 초연한 태도가, 이상야릇한 농촌으로 간 도시 출신 갱이 활약 한다는 [프라임 컷]의 설정과 결합할 때, 거기서는 아주 묘하고 불쾌하면서도 짜릿한 쾌감이 발생한다. 예컨대 갈퀴를 집어던져서 캐딜락 옆구리에 꽂아버린다든지, 아름다운 벌판 위에서 콤바인이 날을 갈며 추격해온다든지(당연히 히치콕 오마주다) 하는 장면이 담고 있는 폭력적 쾌감 같은 것. 특히 영화 중반에 나온 캔자스 주민 축제 장면의 정서가 아주 기가 막히다. 물론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노는 가운데 군중 사이를 달리며 쫓고 쫓기는 주인공과 악당의 모습은 숱한 영화들이 사용한 것이지마는, 여기서는 그 이전에 애들이 키운 애완용 소를 빼앗아가는 악당이라든가, 총에 맞고 우유를 흘리는 젖소 모양의 우유통, 혹은 칠면조 표적 맞추기 대회를 하고 있다가 주인공을 발견하고 헐레벌떡 벌판을 내달리는 지저분한 사내들 같은 기괴하고 파렴치한 느낌의 유머들이 흘러나온다.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섬찟섬찟 하다가도 동시에 '아니 이게 웬 말도 안 되는 장난이야' 싶어 유쾌한 기분이 들고 마는데, 이런 정서적 균열이야말로 [프라임 컷]의 묘미이자 리 마빈의 매력이다.


이 야릇한 즐거움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 커져서, 매리 앤의 반격을 받아 부하를 잃은 닉이 열 받아서는 매리 앤의 농장을 찾아가는 장면부터는 아주 죽인다. 하늘에서는 난데없이 천둥번개가 번쩍 우르릉 쾅쾅, 앞좌석에 앉은 닉의 똘마니는 "God damn them." 같은 대사를 주문처럼 되뇌고, 닉은 그 뒤에서 조용히 자동소총 탄창을 묶어 가방에 넣고, BGM은 요란살벌.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분위기를 깐 다음 해바라기가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벌판에 도착한 닉은 위 아래로 회색 양복을 쫙 빼 입은 상태에서 전혀 안 어울리는 갈색 숄더백을 (디자인이 멋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 네모난 서류가방인데 아래쪽에 레이스 풍 장식까지 달려 있다!) 메고 해바라기들 틈을 쏘다니며 남들 다 산탄총이나 권총 쏘는데 자기 혼자 S&W M76 기관단총을 요란하게 쏘아댄다. 바로 그 황당한 풍경 속에서 리 마빈의 백발이 구름 낀 하늘을 배경으로 살짝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 이것이 바로 리 마빈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대체 그런 폼 안 나는 상황에서조차 특별한 대사나 동작 없이 그저 하는 듯 마는 듯 안 해버리는 연기만으로 여전히 자기의 매력을 고스란히 뿜어내는 이가 몇이나 되랴.

한편 악당들, 특히 진 해크만의 연기도 일품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는 연기력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이미 그 두껍고 털이 숭숭 난 팔뚝을 내놓는 것만으로도 그냥 먹고 들어간다고 봐야 된다. 강렬한 오프닝 때문에 다져진 돼지고기의 이미지가 확 닿은 이후인지라 두툼한 근육-살덩어리만 봐도 단박에 저 놈은 진짜 나쁜 놈이라는 게 느껴지는 거다. 그런 강력한 이미지를 품은 채 등장 장면에서부터 식탁 한 가득 고기반찬을 늘어놓고 자기 접시에다가는 돼지 내장 요리를 수북하게 담아 우걱우걱 입에 넣으며 "이거 맛있어." 하고 윙크하는 진 해크만이란… 그리고 '영화적으로 좋은 악당'답게, 진 해크만의 그 능글맞고 야비한 태도는 무표정한 리 마빈과 제대로 충돌하면서 이 하드보일드 배우가 원래 가지고 있는 박력을 극대화 시킨다. 물론 리 마빈은 원래가 종종 별로 중요하지도 멋있지도 않은 대사를 명대사로 만들어 버리는 박력을 선보이는 배우이지만([킬러]에서 "이봐, 잠깐만 기다려보라고……."하는 악당에게 "너나 기다려You wait."하고 쏘아붙이는 것도 정말 멋지다), 매리 앤의 등장 장면에서 닉이 갑자기 포크로 접시를 내리치며 "Talk now, eat later."하고 말하는 순간의 박력은 진 해크만의 반응 쇼트가 있기에 더욱 살아난다. 이후에도 진 해크만은 잠깐잠깐 나와서 밉살맞은 웃음을 지어보이면서 분위기를 장악, 등장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닉을 위협하고 있는 모든 환경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확실하게 심어준다.


그밖에도 [프라임 컷]에는 시씨 스페이섹(이 영화로 데뷔했다)과 앤젤 톰킨스(처음 본 배우인데, 앤지 디킨슨 풍의 미인이라 그런지 비중에 비해 인상이 깊게 남는다) 같은 여배우들이 때로는 무의미하게 때로는 유의미한 척 홀딱 홀딱 벗고 나오는데도 항상 초연한 태도로 일관하는 리 마빈-영화 전체의 정서(그래서 보고 있으면 이게 여자의 성을 팔아먹고 있는 건지 어쩌자는 건지 당황스럽기도 하다)라든가, 정말 불필요해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빠지면 아쉬울 것 같은 장면(시카고에서 캔자스로 떠나기 전에 닉이 똘마니의 부모와 만나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언급하고 싶다)이 자꾸 끼어든다든가, 뭐 그렇게 한 번 정도 되새겨 볼만한 흥미로운 요소들이 제법 많다. 덕분에 [프라임 컷]은 생각 없이 돈 벌자고 만들었으며 보고 나서 30초 후에는 잊어버려도 될 전형적인 소비용 영화 이상의 매력을 품고 있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기는 한데… 글쎄, 그게 70년대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의 풍조인지, 리 마빈 영화의 풍조인지, 아니면 정말 [프라임 컷]만의 고유한 매력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리 마빈 영화'로서는 손꼽을만한, 암만 해도 체면이 있지 여기저기다 추천하고 다니면서 찬사를 늘어놓을 수는 없겠지마는 나 혼자서는 DVD 사다가 고이 모셔두고 이래저래 꺼내서 여러 번 보게 되는 그런 '작품'이다. 이런 악질 영화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
덧 하나. 성정이 바르지 못해서 그런가, 착하고 예쁘고 지적이고 정신적이고 고독하고 위대하고 뛰어나고… 뭐 그런 영화만 보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종종 괴리감을 느끼곤 한다. '으윽, 나는 아무래도 저질이야.' 이러면서. 그래서 그런지 짐 자무쉬라든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라든가 장 뤽 고다르라든가 뭐 그런 이름만 들으면 차분하고 지적이고 역사에 길이 남을 영화들을 만든 감독들이 미국산 폭력 영화, 통속 영화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걸 듣고 있으면 어쩐지 기분이 좋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짐 자무쉬가 1992년 6월에 [Film Comment] 지를 통해 자신에게 '죄의식을 동반한 즐거움guilty pleasure'을 주는 영화들을 소개하면서 리 마빈 영화를 언급했고, 그 중 [프라임 컷]도 있었기 때문.
아니, 고작 그 정도로? 아니다. 실은 짐 자무쉬의 리 마빈 사랑은 아주 크고 깊다. 리 마빈 팬 중에서는 짐 자무쉬의 [커피와 담배(Coffee and Cigarettes, 2004)]를 보다 '앗, 저거!' 한 사람도 있을 텐데, 영화 중 한 장면에서 리 마빈의 초상화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 엉뚱한 등장이 하도 재밌어서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하고 알아봤다가 멋진 사실을 알게 됐다. 짐 자무쉬는 "리 마빈의 아들들"이라는 비밀 조직의 설립자라는 것. 비밀 조직인 만큼 정확한 회원 명단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짐 자무쉬 자신의 증언에 따르면 일단 톰 웨이츠, 존 루리, 리처드 보스는 확실하다고 한다. (그 외 닉 케이브, 이기 팝, 더스톤 무어, 미키 루니 등이 회원일 거라는 소문이 있다고) 가입 요건은 신체적으로 리 마빈과 관련이 있어 보여야, 다시 말해 리 마빈의 아들처럼 보여야 할 것. 이들은 때때로 모임을 갖고 함께 리 마빈 영화를 본다고 한다.
한편, 역시 [Film Coment] 지의 기사에서 짐 자무쉬가 증언한, "리 마빈의 아들들"에 관한 포복절도할만한 이야기 :
어느 날 톰 웨이츠가 캘리포니아 북부 소노마 카운티인가 어딘가에 있는 바에 갔는데 바텐더가 말을 걸었다.
"당신 톰 웨이츠 맞죠? 저기 있는 사람이 얘기 좀 하자던데요."
그 말을 들은 톰은 가게 어두운 구석 자리로 다가갔더니 거기 앉아있던 남자가 말했다.
"거기 앉지. 할 말이 있어."
톰은 상대의 태도를 보고는 좀 거칠게 나가기로 했다.
"뭔 개수작이야? 난 당신 몰라."
남자는 개의치 않고 톰에게 물었다.
"리 마빈의 아들들이라니, 그거 대체 뭐 하자는 지랄이야?"
"어라. 그건 비밀 조직이라서 말해줄 수 없어."
"마음에 안 드는군."
"댁이 무슨 상관이야."
그러자 남자의 대답.
"내가 리 마빈 아들이거든."
그 남자는 진짜 리 마빈의 아들이었고, 그 조직을 아버지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실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프라임 컷] 감상문을 썼다고도 할 수 있겠다.
덧 둘. 기왕 딴 소리 한 김에. 어제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Jaws, 1975)] 제작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스필버그는 '인디애나폴리스 호 이야기'로 유명한 퀸트 선장 역을 원래 리 마빈에게 맡기려고 했다고 한다. 리 마빈은 제의는 고맙지만 그걸 찍기보단 직접 낚시를 가는 게 좋겠다며 거절했다고. 역시 멋있어.
덧 셋. 리 마빈의 야비한 터프가이식 매력을 맛볼 수 있는 장면 하나. 매리 앤의 농장은 겉으로는 축산업을 하고 있지만 그 이면으로는 어릴 때는 고아원에서 기른 뒤 적당히 크면 마약을 먹여 가며 온실에서 길러낸 소녀들을 판매하는 일을 한다(말 그대로 소 돼지 기르듯 사람을 기르는 거다. 판매도 돼지우리에서 하고). 이 참혹한 광경을 목도한 닉은 발가벗겨진 채 팔리고 있는 소녀들 중 자신에게 도움을 청한 포피(시씨 스페이섹)를 막무가내로 꺼내 데려온다. 그리고 이런저런 옷을 선물하는데, 포피는 그 중 속이 비치는 얇은 녹색 드레스를 속옷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입고는 닉과 함께 식당으로 향한다. 닉은 알면서도 아무런 내색하지 않지만─이렇게 설명만 들으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싶은 상황이지만 리 마빈의 연기를 보면 이해가 돼 버린다─식당 손님들은 당연히 놀라면서 힐끔힐끔 쳐다본다. 전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사람들의 시선을 알아챈 포피가 두려워 하는 기색을 보이자… (이하는 대사 한 마디 없이 진행되는 장면이다)
리 마빈의 연기를 충분히 보셨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