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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드디어 1주년이다. 무슨 1주년? 연애 1주년? 아니, 공익근무 소집 1주년. 1년 전 오늘, 나는 다가오고야 말 훈련소 생활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마지막 잠'을 청했다. 그로부터 1년. 기념 삼아 휴가를 써서 열심히 놀았다. 남들은 그래도 1년 지났다고 마냥 좋아할 것 같기도 한데, 지난 1년 간 내가 얼마나 남는 일들을 했는지 돌이켜 보면 기쁨보다는 걱정이 더 앞서는 것 같다. 그래도 일단은 자축이다. (주말 동안 글 몇 편 써놨다가 한꺼번에 공개하는 거도 다 자축하려고 하는 짓이다)
1. 최근 로리 존슨이 지휘하고 런던 스튜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버나드 허먼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 1959)] 오리지널 스코어 앨범을 사서 열심히 듣고 있다. 이 앨범 말고 실제로 영화에 쓰인 음악들을 몽땅 추출해서 만든 앨범도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수입반이 보이지 않기도 하고, 그건 너무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해서 일단은 이 앨범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역시 버나드 허먼의 음악에 후회는 없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의 유작인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76)]의 음악이지만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와 [싸이코(Psycho, 1960)] 음악도 틈만 나면 흥얼거릴 정도로 좋아한다(둘 다 솔 바스의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 디자인이 기가 막히기 때문에 좋아하기도 한다). 아쉬운 건 버나드 허먼이 작곡한 드 팔마 영화의 앨범은 찾기 힘들다는 것. [자매(Sisters, 1973)]의 오리지널 스코어 앨범은 2. 벅스 뮤직이 유료로 전환한 뒤에도 (어쩌면 이전보다 훨씬 마음 편하게) 애용하고 있다. 언젠가 친구가 우리나라 음반 쇼핑몰이 벅스 뮤직 정도로만 앨범을 갖춰줬으면 좋겠다고 한탄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과연,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앨범들이 발견되곤 해서 요즘도 깜짝깜짝 놀라고 한다. 이를테면 아마존에서도 절판된 [칼리토(Carlito's Way, 1993)] 오리지널 스코어 앨범 같은 것. 최근에는 벅스에 다리오 아르젠토 영화 음악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록 그룹 고블린의 앨범이 여섯 개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서 즐겨 듣고 있다. [짙은 적색(Profondo Rosso, 1975)], [서스피리아(Suspiria, 1977)], [페노미나(Phenomena, 1985)] 등의 앨범이 있는 가운데, 물론 영화를 본 [시체들의 새벽(Dawn of the Dead, 1978)] 앨범이 가장 반갑다. 3. 말이 나온 김에 하는 이야기지만, 최근에 이탈리아 공포 영화들을 무척 보고 싶어서 미국에서 출시된(영어 자막이 있어야 볼 테니까) 마리오 바바와 다리오 아르젠토의 영화 DVD들을 찾아봤다. 참 절망적이었다. 마리오 바바의 공포 영화들은 나온 건 많은데 출시사들이 하나 같이 좀 후진 곳이어서 화질 음질 수준이 개판이거나, 영어 자막이 없었고(클로즈드 캡션도 없다) 그래도 좀 폼 잡고 낼 줄 아는 앵커베이에서 전담한 다리오 아르젠토의 경우도 자막 없이 영어 더빙으로만 출시되어 있었다. 그나마 [짙은 적색]은 영어 자막이 있고 [서스피리아]는 클로즈드 캡션이 있었기에 그래도 이게 아르젠토의 대표작인데 마침 잘됐다 싶어서 구입하려고 했으나… 좀 더 알아보니 [짙은 적색]은 엔딩 장면에서 화면을 마음대로 멈춰버려 원래 영화의 감흥이 망가졌다고 욕을 먹고 있었고 [서스피리아]는 지들 맘대로 사운드 볼륨을 조정하거나 일부 사운드 요소를 빼먹어 놓고는 잘못한 거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는 얘기가 많았다(최고의 판본이라는 이탈리아 판과 비교해 보니 화면비도 달랐다). 어디서 마음 단단히 먹고 회고전을 해주거나, 차세대 매체를 통해 제대로 나오기 전에는 이탈리아 공포 영화와는 연이 없을 듯하다. 4. 추석 연휴에 맞춰서 허영만의 [타짜] 개정판을 사다가 열심히 보았더니 갑자기 장편 만화병에 걸려버렸다. 그래서 책꽂이에 꽂아뒀던 강경옥의 [별빛 속에]도 꺼내보고 어제까지는 고우영의 [삼국지]를 열심히 봤더랬다. [삼국지]는 예전에는 참 많이 읽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흥미가 시들해져 등을 돌렸다. 황석영이나 장정일 본을 읽어보고 싶기는 했는데 열권씩 하는 책, 게다가 크게 흥미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닌 책을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에 본 고우영 본은 참 오랜만에 만난 [삼국지]인 셈인데… 중간 중간 여러모로 놀랐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을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는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싶기도 하고. 나관중이 소설화하면서 유비를 밀어주기 위해 첨가했을 부분들의 톤이 확 튀어보여서 새삼 이게 무엇보다도 가공의 이야기로서 받아들이며 즐겨둘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전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고우영의 유머나 과격한 묘사에 놀라기도 했다. 특히 곧잘 이문열 삼국지와 엮여 이야기되는 고우영의 '해석'이 인상적이었는데, 해석 운운하기 이전에 이 가공의 이야기 속에서 관계 맺고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에 설득력 있게 깊이를 더해보고자 하는 노력이 느껴져 감동했다. 예전에는 (스포일러 있음!!!!!) 관우가 죽든, 장비가 죽든, 유비가 죽든, 공명이 죽든 크게 심란해하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공명의 죽음으로 끝나는 마지막 권을 덮으려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나저나 [삼국지]가 끝나버렸으니 이제 또 어떤 장편 만화로 나의 병을 달랠꼬? 5. 행복한책읽기에서 SF 무크지 [HAPPY SF] 2호의 출간을 준비하면서 "SF 팬들이 꼽은 꼭 나와야 할 SF 베스트 20"이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 참여할 수 있으니 보고 싶어 미치겠는데 안 나오는 작품이 있어 속만 타는 분들께서는 모쪼록 많이들 참여하시여 좋은 자극을 주시길. 워낙에 가난한 시장이라서 재깍재깍 나오지는 않겠지만 물고 늘어지면 10년이나 20년 쯤 후에는 필히 나오리라 믿는다. 6. 추석 연휴에 방 정리를 좀 했다. 방 가운데 큼지막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소파 하나를 내놓고, 구석구석에 쌓여있던 CD와 책을 정리했다.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CD 수납장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컴퓨터 게임 CD들이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계륵 같아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일단은 정리하여 쇼핑백에 담아두었다. 그리고 일단 깔끔하게 정리는 했지만 책장도 포화 상태라서 좀 비워야 앞으로 책도 사고 DVD도 살 수 있을 것 같고… 그냥 버릴까 또 블로그에 내놓을까 하다가 그래도 후자가 낫겠지 싶어서 일단은 놔뒀다. 스스로에게 블로그에 목록을 올릴 때는 사진도 찍어서 올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핑계를 대면서 내친 김에 그 동안 생각만 하고 사두지 않았던 니켈-수소 충전지와 초급속 충전기 세트까지 샀는데, 일단 사서 충전지 넣고 디카를 만지고 하다 보니 '아니 이걸 뭐 하러 찍어서 올려. 그냥 전처럼 목록만 올리면 되지. 그런데 기왕 샀으니 찍긴 찍어야 할 것도 같은데…….'하면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래도 자꾸자꾸 뭔가를 사고 있으니까 올해 안에는 어떻게든 올리겠지 뭐. 7. 추석 때는 별 다른 게 없었다. 만날 친척들도 많지 않고 특별히 장만한 음식도 없고. 그저 연휴를 대비하여 사둔 DVD 몇 장과 만화책들만 부여잡고 살았는데… 괜찮았다고 자평하고 싶다. 특히 평소에는 시간 아까워서 못 보는 DVD의 부록들을 느긋하게 차근차근 봤더니 어찌나 즐겁던지. 부록들을 볼 때 가장 즐거운 건 영화를 볼 때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협동작업의 결과물로서의 영화'를 되새기게 된다는 점인 것 같다. 이 사람 저 사람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자기들이 어떤 식으로 맡은 일들을 해냈고 그게 또 다른 동료에게는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야기해주는 걸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그것도 잘 만든 부록에서나 느낄 수 있는 기분이지만. (대충 양만 채운 부록들은 적절한 체계가 없어서 지루한 칭찬과 더듬거림 범벅이 되기 쉽다) 8. 불러도 대답이 없으면 지친다. 부모님의 관계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이 점을 특히 자주 느끼고 있다. 편지도 결국 답장 곧잘 써 주는 사람에게 더 많이 보내게 되고 문자도 답문 잘 보내는 사람에게 더 많이 보내게 된다. 단순히 호감도의 문제인가 싶었는데 그렇다기보다는 그만큼 말을 통한 소통이 자주 이루어지고 서로에게 하고픈 말이 생겨나야 그걸 바탕으로 또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겠지. 뭐, 상황 분석이 중요한 건 아니고, 문제는 그럼 대답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 나갈 거냐는 거다. 답이 없어서 막막하다. 어떻게든 노력을 해보려고 해도 이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전에 소통을 많이 해왔으면 그걸 토대로 또 할 말이 생기니까 말을 자연스럽게 끌어나갈 수가 있는데 그런 맥락이 없으니까 노력을 시작하는 일이 무척 힘들어진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졸업할 때마다 친구들의 90% 이상을 홀라당 까먹었다. 훈련소 동기들의 경우도 그랬다(솔직히 굳이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면서 훈련소 시절을 되새기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기에 일부러 피한 게 크긴 하다. 혹시 이 글 보더라도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진 마시길. 잊어버릴 것까지는 없지만 굳이 떠올리고 싶지는 않은 28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서서히 대학교 친구들이 졸업을 향해 다가간다. (나는 아직도 최소 3년이 남았는데) 다들 내게는 전에 없이 소중하게 여겨지는데, 이렇게 비틀비틀하다가 이번에도 또 90%는 홀라당 까먹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 걱정된다. 9. [떠나간 사람들(The Departed, 2006)]의 평이 아주 좋아서 기쁘기 그지없다. 그런데 항상 투덜거리는 바이지만, 각색물이나 리메이크물에 대해 논할 때 원작과 비교하는 게 그토록 중요한 일인 걸까. 물론 듀나의 일부 글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게 영화 창작에 있어서 창조력의 원천을 살펴보는 부분에서는 꽤 유효한 일이 될 수 있지만 '원작은 이게 좋았는데 리메이크에는 그게 없어서 별로더군요'라는 식의 반응은 여전히 당혹스럽다. 추가 : 시카고 선타임즈의 평론가 로저 이버트의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편집장 짐 에머슨의 [떠나간 사람들]에 대한 간략한 코멘트를 읽고 감동했다. 그 글이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떠나간 사람들]은 스콜세지의 [카지노(Casino, 1995)] 이후─심지어 [좋은 친구들(Good Fellas, 1990)] 이후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최고 걸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영화를 (지나치게) 칭찬하는 글 중 몇몇은 황공하옵게도 다음과 같이 스콜세지를 다독여주시는 바람에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 "잘했어. 다시 자네 패거리에게 돌아오니까 좋지?"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거니와, 나는 이 영화가 스콜세지의 [비행사(The Aviator, 2004)] 이후 최고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순간 '미국에도 의인은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10. 최근 이글루스에 유행하던 스팸 트랙백, 나도 걸렸다. (항간에는 인기 블로그를 가르는 기준이라고도 하던데, 유노윤호를 생각해서라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며칠 간 열심히 지우고 스팸 차단 설정을 해도 안 되다가 결국 모든 검색엔진에서 내 블로그의 글들이 수집되지 않도록 설정을 하고 그 동안 스팸 트랙백이 걸렸던 글 몇 개를 트랙백 차단 상태로 바꿔두었더니 며칠 간 잠잠하다. 하지만 소통하기 위해 만든 블로그를 유지하려고 접근 통로를 줄이는 방법을 택하다니, 아무래도 속이 쓰리다. 사용자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이글루스 측에서 어떻게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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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한 글 잘 읽었습니다..
by kinoeyes at 08/19 말씀하신대로 류승완 감.. by sabbath at 08/17 참 말할 거리가 많은 영.. by 파인로 at 08/17 그쵸. 사실상 모든 프랑.. by sabbath at 08/16 아, 그것은… 저도 무.. by sabbath at 08/16 저도 그 글을 읽어보았.. by sabbath at 08/16 제작사 외유내강 측의 .. by sabbath at 08/16 소식 고맙습니다! 포스터.. by sabbath at 08/16 가끔은 너무 만든 사람에.. by sabbath at 08/16 먼저 안 보신 분들께는 .. by sabbath at 08/16 저도 만주 벌판 액션이 참.. by sabbath at 08/16 [다찌마와 리] 속편 또.. by sabbath at 08/16 오오, 드디어 올리셨군.. by Sion at 08/16 드팔마를 떠올리는 장면.. by 다찌대박 at 08/16 저는 그놈의 잘생겼다!가.. by 은혈의륜 at 08/16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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