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 EBS 일요시네마 - [하얀 열기]
 내일 EBS에서 오후 2시 20분 일요시네마 시간에 라울 월시 감독의 [하얀 열기(White Heat, 1949)]를 방영해줍니다. 2개월 전 서울아트시네마의 "할리우드 갱스터/액션 특별전"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때 못 보셨거나 다시 보고 싶으신 분들께는 좋은 기회가 되겠습니다. 1949년 영화라서 화면비 잘릴 염려도 없고, 아마 장면이 편집될 리도 없을 테고, 심지어 크레딧 잘릴 걱정도 할 필요 없겠죠.

 유일한 걱정이라면 혹시 EBS에서 어떤 미친 양반이 이 영화에 색을 입힌 걸 틀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건데(실제로 지난달에 존 휴스턴의 갱스터/필름 누아르 [키 라르고(Key Largo, 1948)]를 그 따위 버전으로 방영한 바 있습니다. 이 잡것들아, 흑백이 칼라보다 기술적으로 열등한 게 아니거든? 하면서 TV 확 꺼버렸죠) 그건 아니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아무튼 흠 잡을 데 없이 뛰어난 작품이니 꼭 한 번 보시길. 특히 남자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영화 찍으시는 우리나라 감독님들께서 두루두루 보시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김지운 감독이 차기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관련 인터뷰에서 여성 캐릭터는 전혀 없냐는 질문에 대해 "남자 영화에 억지로 여성 캐릭터를 넣어 억지 로맨스를 만드는 일은 끔찍하다."라는 답변을 했던데 솔직히 좀 게으른 답변이라고 봅니다. 남자 영화에 여성 캐릭터가 끼어들 구석은 로맨스 밖에 없나 뭐? 남자들 싸우는 데에 여자는 끼어들 수도 없나? [하얀 열기]에 조연으로 나오는, 액션은 하나도 없고 명대사도 없는(과연?) 두 여자들이 풍기는 존재감을 보고 나면 그런 말은 쏙 들어갈 겁니다. 하긴,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류의 영화에서 [하얀 열기] 정도의 성취를 이룩한 영화는 그리 많지 않겠습니다만…….



 덧. 참고로 다음 주 EBS 일요시네마 상영작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Strangers on a Train, 1951)]입니다.
by sabbath | 2006/10/21 23:57 | 20050523~20061228 | 트랙백 | 덧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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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6/10/22 00:3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6/10/22 00:4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한군』 at 2006/10/22 00:48
티비없는자는 그저 괴로워 할 뿐.
Commented by 파인로 at 2006/10/22 01:06
"오, 이걸 어쩌란 말이오"
배치기, '마이동풍' 中
Commented at 2006/10/22 02:3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오기렌 at 2006/10/22 09:14
흑백 그대로 방영을 할 것 같더군요. 예고편도 그렇게 나오던데. 저도 엄청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제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도 그렇고. EBS 영화들의 퀄리티가 왜 이렇게 공중파랑 차이가 날까요.
Commented by sabbath at 2006/10/22 09:52
비공개 1 / 아니, 그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내년에 디스크 세 장짜리 DVD가 나온다고 하니 기회되면 다시 보세요. 대사로만 범벅인 것 같지만 사실 정교한 카메라워크도 있고 그렇습니다(고전기 할리우드 장인들이 만든 영화가 다 그렇죠 뭐). 저는 그 영화 보고 보기의 야비함에 충격 받았어요. 나중에 제임스 캐그니 나오는 갱스터 영화를 보니까 원래 보기는 그런 느낌의 배역을 맡으면서 인기를 얻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말타의 매]는 뭐랄까, [포효하는 20년대]의 비열함과 [깊은 잠]의 냉소가 결합된 형태의 야비함을 보여줬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런 부분이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6/10/22 09:53
『한군』, 파인로 / 교우관계를 넓히세요. 일요일 점심 무렵에 찾아가도 문전박대하지 않을, TV 있는 집으로. (무슨 동네 사람들 부잣집에 모여서 역도산 경기 보는 소리를…)
Commented by sabbath at 2006/10/22 10:04
비공개 2 / 역시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의외로 고전기 할리우드의 남성 중심 장르 영화에서 의외로 여성 캐릭터가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그 시대에만 가능했던 '스타성' 때문일까, 아니면 단지 이야기의 모든 요소에 충실하고자 했던 장인들의 솜씨에서 비롯된 것일까 하는 의문은 남지만… 아무튼 히치콕의 금발 여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남성 호르몬 냄새에 견딜 수 없을 것처럼 인식되어 있는 존 포드나 하워드 혹스의 웨스턴을 봐도 요즘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유명 인기 액션 영화들과는 한참 다른 격조를 지닌 여성 캐릭터들이 나오니 말이야.

하긴 다시 생각해보면 6~70년대 미국 영화만 해도 아직 괜찮았던 것 같은데. 몇 개월 전에 덕 라이먼 감독의 [스미스 부부]를 봤는데 브래드 피트/안젤리나 졸리를 내세웠고, 모두가 피트보다는 졸리에 주목하고 있던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캐릭터의 심심함이 이루 말할 수 없더라고. 그것 참. 그런 면에서 보면 김지운처럼 '나 못해요'하고 아예 포기하는 게 낫긴 한데(영화 망칠 가능성이 줄어드니까), 위의 경우에는 '나 못해요'가 아니라 '그런 설정은 억지다'스러운 답이라서 좀 기분 상했어.

아무튼 그러니까 네가 하루빨리 영화 공부는 그만 두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가서 멋있는 증손녀/손녀/조카/딸/여동생/누나/처제/형수/이모/고모/어머니/할머니/증조할머니들이 스크린을 장악하는 액숀 영화 좀 만들어주면 안 되겠니니니니니니니니니… (메아리)
Commented by sabbath at 2006/10/22 10:05
오기렌 / 그렇담 다행이네요. EBS는… 미쳤나봐요. 그러니까 예전에도 국회의원들이 교육방송에서 뭔 영화를 그렇게 많이 트냐고 시비걸었다잖아요 :-/
Commented by 파인로 at 2006/10/22 15:53
White Heat를 네이버 사전에서 검색해보니…

1 (구리·철 등의) 백열(白熱) 《1500-1600℃》
2 (심적·육체적인) 극도의 긴장, (감정의) 격앙(激昻) 상태, (투쟁 등의) 치열한 상태

라는군요. <White Heat>도 <The Prestige>, <Grind House>, <The Cutting Edge> 같은 이름처럼 뭐라고 딱 집어서 번역하기 힘든 제목입니다.
그나저나 지금쯤 열심히들 보고 계시겠네요. 전 1시간 정도 신나게 보다가 일이 생겨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습니다ㅠㅠ 재미있게 보세요.
Commented by sabbath at 2006/10/22 16:40
파인로 / 근데 뜻은 다양하지만 그렇다고 번역이 어려울 것 까지는 없을 듯 합니다. 게으른 번역제들이 많아지면서 "한국어로 옮길 경우 그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운운하는 역자들의 변명이 많은데 이 경우에 "백열"이나 "하얀 열기"가 "white heat"에 비해 못할 건 없거든요. 어휘 자체의 의미를 뭐라 말하기 힘든 건 영어도 마찬가지인데, 이 작품은 하얀 열기의 상징을 주도면밀하게,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이 제목의 의미를 감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죠. 실제로 과거 TV에서 방영할 때는 "백열"이라는 제목이었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EBS라서 믿었는데 번역이 충분히 좋지는 않네요. 좋은 대사 몇 개가 자막 축약 과정에서 날아가버렸고 오역도 좀 있었고(특히 코디가 숲을 거닐면서 어머니와 대화했다고 고백하는 부분을 혼잣말을 했다느니, 어머니와의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번역한 건 많이 아쉬웠어요. "나 미친 것 같지?" 같은 대사가 즉각적으로 와닿는 부분인데…) 그렇네요. 코디-어머니의 모토인 "top of the world"를 "최고"라고 번역하니까 마지막 장면에서의 감정도 좀 약해지는 것 같고. ("세상 꼭대기"라고 했으면 "어머니, 세상 꼭대기예요!"라는 대사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이 특히 엄청나게 다가왔을 텐데) 그래도 방영한 것 자체가 대견한 일입니다마는. 조만간 DVD로 다시 보고 싶어질 듯.

참, 그런데 화질 좋더군요. DVD 틀었나 싶게. VHS로 녹화하기는 했는데, 이럴 때마다 다른 녹화 매체가 좀 아쉽습니다.
Commented by 파인로 at 2006/10/22 17:19
다 보지도 않은 놈이 이런 말 하면 좀 웃기지만, 분명 <백열(전 이렇게 번역하렵니다)>이 걸작은 걸작이더라고요. 인상적인 열차 강도 오프닝, 최고 시속 60km로 조용히 펼쳐지는 박진감 만점의 3:1 자동차 추격전(게다가 추격 대상은 조직의 늙은 여두목!), 행크/빅이 여러번 부딪히게 되는 위기 상황의 연출 등등. 특히나 입을 헤 벌리며 봤던 건 빅이 겪는 위기인데, 자신이 잡아넣은 죄수와 맞부딪칠 뻔한 상황도 물론 멋지지만 압권이었던 것은 독방에서 귀환한 후 아내(실제로는 여직원) 사진을 빅이 못 알아봤을 때의 그 분위기였습니다. 게다가 한시름 놨다고 안심하기가 무섭게 던져지는 코디의 트릭 대사 : “잔꾀를 부렸는데, 잘 안됐어.”라니. 어휴, 간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튼 언제 한번 제대로 시간을 내서 다 봐야겠습니다. 새벗 님이 녹화하신 VHS라도 빌리면 좋을 텐데. 어떻게 안 될까요?(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Commented at 2006/10/22 18:0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6/10/22 18:1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6/10/22 18:53
파인로 / 아뇨아뇨, 앞만 봐도 그건 확실하죠. 거기까지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영화 너댓 편 만들 상황을 압축적으로, 하지만 핵심이나 깊이는 놓치지 않으면서 주루룩 이어나가는 솜씨가 압권인 영화니까요. 보신 부분 이후로 넘어가면 탈옥 영화, 필름 누아르식 복수극, 범죄 계획을 짜고 실행하는 강탈 영화, 총격 액션 영화 등등이 됩니다.

저도 그 코디의 트릭 대사 장면을 좋아합니다. 아주 스릴 넘치죠.

VHS는 물론 빌려드릴 수 있습니다 :-)
Commented by sabbath at 2006/10/22 18:58
비공개 / 보기는 그 시니컬함이 가장 큰 무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남자 배우 1위라는 건… [카사블랑카]의 주인공이니까 그럴 법도 하겠죠. 저는 로렌 바콜과 함께 출연한 하워드 혹스 감독의 영화들이나 존 휴스턴 감독의 영화들을 더 좋아합니다만(그 영화들에서 연기를 더 잘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옛 영화들이 묘사가 간결하고 상황이 빨리 진행된다는 지적에는 저도 동감합니다. 제가 잘 만든 고전기 할리우드 영화를 특히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데요, 오늘날의 영화에 비해 묘사의 시간이 짧으면서도 그 정서는 놓치지 않는, 핵심만을 짚어내는 솜씨들이 대단하거든요. 특히 배우들이 캐릭터를 구축하는 방식을 보자면 이 시기 배우들은 막 인상 쓰면서 카메라 돌아가는 시간을 낭비할만한 여유를 갖지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굉장히 즉각적이면서도 섬세하게 내면을 전달해야 되는데 그런 것도 잘 하고, 더불어 그런 순간들이 짧게 짧게 이어지는 방식으로 영화가 진행되다보니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인물의 속이 더 깊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파인로 at 2006/10/22 19:06
새벗 // 감사합니다!
Commented at 2006/10/23 00:0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6/10/23 00:29
비공개 / 이런, 영화계의 기대되는 인재가 하나 사라지는구나.

[귀향]의 가족/친구들이 남편 암매장 전문 회사를 조직해서 마드리드를 휩쓸고 다니는 영화라든가…

근데 전부터 오해가 있었는데, 나는 따띠 영화를 시험 기간에 보면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반대로 따띠 영화는 시험 기간에 봐야된다고 말했단다. 신경이 팽팽해지는 시험 기간에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말이야. 물론 팽팽한 긴장을 놓으면 안 되니까 네 말도 맞긴 해.
Commented by verybits at 2006/10/25 02:20
아, 자동차 추격전은 정말 대단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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