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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출근해서 컴퓨터를 켰을 때 제일 먼저 들은 소식은 로버트 알트먼 감독이 세상을 떴다는 것이었다. 충격이 컸다. 나흘 전에 광주극장에서 [프레리 홈 컴패니언(A Prairie Home Companion, 2006)]을 보고 '와, 이 사람이 [우리 같은 도둑들(Thieves Like Us, 1974)]이나 [플레이어(The Player, 1992)] 만들었던 사람(그 둘밖에 보지 않았다. 진수는 다른 데에 있다는 얘기를 무지하게 많이 들었음에도…)이란 말이야?' 하고 놀랐는데. 게다가 엔딩 크레딧에 폴 토마스 앤더슨에 대한 감사 인사가 나오기에 낄낄거리며 웃었는데. 얼마 전 잭 팰런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와는 느낌이 완전 다르다. 잭 팰런스는 "로버트 알드리치 회고전"을 통해 만난 '과거의 배우'였던 반면 로버트 알트먼은 나흘 전 최신작을 본 '오늘의 감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로버트 알트먼의 팬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심지어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처음 본 그의 영화는 씨네꼼에서 뉴 아메리칸 시네마 세미나를 할 때 본 [우리 같은 도둑들]이었다. 그 뒤로 다시 보지 않아 그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제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당시에는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 때 우리가 세미나 텍스트로 쓰던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Hollywood from Vietnam to Reagan)]의 저자 로빈 우드는 알트먼을 "젠체하는 멍청이"라고 '까고' 있었다. 로빈 우드의 말이 뭔 말인지 통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텍스트가 그거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동안 관심이 없었다. 2005년에 어쩌다가 [플레이어] DVD를 구입해서 봤을 때 '와, 이거 정말 죽인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약간 잘난 척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아마 '로빈 우드 겉핥기'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가장 큰 문제는 그 DVD의 한국어 자막이 엉망이라는 거였다. 오프닝의 그 주옥 같은 오역들!). 그래서였는지 그 이후에도, 알트먼의 진수로 알려진 영화들의 목록은 꿰고 있었지만 좀처럼 찾아보진 않았다. 국내에 출시된 [패션쇼(Pret-a-Porter, 1994)]는 그냥 무시했고, [고스포드 파크(Gosford Park, 2001)]는 걸작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자꾸 구입을 미뤘다. [기나긴 이별(The Long Goodbye, 1973)]은 레이몬드 챈들러와 필름 누아르에 대한 사랑으로 결국 구입했지만(그것도 할인 행사 때) 아직도 보지 않았다. [매쉬(MASH, 1970)]는 중고 비디오 파는 곳에서 싼 맛에 구입해놓고 역시 보지 않았고, 필름포럼의 "70년대 미국영화 특선"에서 상영한 [내쉬빌(Nashville, 1975)]도 건너뛰었다. 크라이테리언에서 [세 여인(3 Women, 1977)]과 [숏 컷(Short Cuts, 1993)]을 출시했지만 대사가 많아 못 알아들을 것 같아 사지 않았다. 그나마 많이 보고 싶었던 건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McCabe & Mrs. Miller, 1971)]이었는데, 홍콩판 DVD에는 한국어 자막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이건 [매쉬]도 마찬가지다) 역시 구입을 미뤘다. 아, 이 잔인할 정도의 미룸. 그렇게 알트먼에 대한 관심을 의도적으로 차단하면서 살다가, 그가 현역 감독이라는 걸 잊어버릴 즈음, 그는 200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아갔다. 난 시상식 방송은 보지 않았는데, 다만 후일 메릴 스트립과 릴리 톰린이 평생공로상 시상자로 나와 알트먼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고 영어는 못 알아들어도 참 웃기다는 생각은 했다. 사람들은 그게 알트먼 영화의 스타일에 대한 오마주라고 했다. 끊임없이 말을 겹치면서 중언부언하기. 그리고는 [프레리 홈 컴패니언]이 나왔다. 알트만이 영화 완성 전에 죽을까봐 제작사에서 폴 토마스 앤더슨을 대체 감독으로 내정해두고 있었다는 웃기는 이야기와 함께. 이건 어쩐지 무척 보고 싶었다. 몇 주를 기다리자 광주에도 이 영화가 개봉했고, 마침내 지난 토요일에 나는 알트먼의 영화를 세 번째로 만났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영화였다. 영화는 구닥다리 라디오 쇼 "프레리 홈 컴패니언"의 마지막 방송을 다룬다. 방송 녹화 현장에는(이 쇼는 라디오 방송이지만 극장에 터를 잡고 청중들 앞에서 실제로 콘서트처럼 공연을 하면서 그걸 방송에 내보낸다) 그간 이 쇼에 몸을 바쳐온 출연자들, 스탭들이 우글거리고, 그들은 무대와 분장실을 오가며 끊임없이 말도 안 되는 수다를 떤다. 그 와중에 천사가(진짜다) 나타나 극장을 배회하고, 노쇠한 가수는 자신의 마지막 공연을 끝낸 뒤 죽음을 맞이하고, 극장을 인수해 그 터에 주차장을 만들기로 한 깐깐한 인수자가 그 마지막 쇼를 지켜본다. 105분의 러닝타임은 한 사람의 삶을 포착하기에도 짧은 시간. 그 모든 등장인물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프레리 홈 컴패니언]은 다만 그들이 이 마지막 순간에 어쩔 수 없이(방송은 해야하고, 죽을 사람은 죽어야 하고, 극장은 인수해야 하니까) 벌이는 혼란스러우면서도 즐거운 축제를 보여주고, 끝내 관객에게 아무 것도 말이 안 되는 이 영화가 바로 삶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버린다. 나는 그 풍경을 잡아내는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편집의 논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그러니까, 왜 카메라가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지, 왜 이 장면 다음에 저 장면이 붙는지 통 모르는 상태로) 영화를 따라가기에만 급급해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다 영화가 돼 버린다는 사실에 솔직히 경악했다. 저 나이의 거장은 마음내키는 대로 해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혹은 내가 '알트먼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게 나흘 전이었는데, 이렇게 세상을 뜨다니. 망연자실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이 죽음은 너무나도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영화사 속의 신화 중 하나인 뉴 아메리칸 시네마 시대가 진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틴 스콜세지도, 브라이언 드 팔마도, 윌리엄 프레드킨도, 로만 폴란스키도, 아서 펜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도, 테렌스 멜릭도, 마이클 치미노도, 스티븐 스필버그도, 조지 루카스도 이제 정. 말. 로. 죽. 을. 수. 있. 다. 는 느낌. 물론 실제 나이 차이는 좀 있지만 나는 그들을 항상 같은 세대로 인식하고 있다. 추모 영상은 이게 가장 적당할 듯 하다. 올해 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알트먼이 공로상을 받을 때 메릴 스트립과 릴리 톰린이 한 알트먼 오마주, 그리고 [프레리 홈 컴패니언]에서 두 사람이 부른 노래 한 곡. 덧. 아, 근데 내가 농담 삼아 하곤 하는 소리지만, 그럼 내년에는 로버트 알트먼 회고전 해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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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한 글 잘 읽었습니다..
by kinoeyes at 08/19 말씀하신대로 류승완 감.. by sabbath at 08/17 참 말할 거리가 많은 영.. by 파인로 at 08/17 그쵸. 사실상 모든 프랑.. by sabbath at 08/16 아, 그것은… 저도 무.. by sabbath at 08/16 저도 그 글을 읽어보았.. by sabbath at 08/16 제작사 외유내강 측의 .. by sabbath at 08/16 소식 고맙습니다! 포스터.. by sabbath at 08/16 가끔은 너무 만든 사람에.. by sabbath at 08/16 먼저 안 보신 분들께는 .. by sabbath at 08/16 저도 만주 벌판 액션이 참.. by sabbath at 08/16 [다찌마와 리] 속편 또.. by sabbath at 08/16 오오, 드디어 올리셨군.. by Sion at 08/16 드팔마를 떠올리는 장면.. by 다찌대박 at 08/16 저는 그놈의 잘생겼다!가.. by 은혈의륜 at 08/16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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