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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낮이 되면 낮잠의 유혹이 슬슬 밀려옵니다만, 그래도 [마지막 지령]은 꽤 오래 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었던 영화인지라 TV 앞에서 아령 들고 운동하며 꿋꿋하게 보았습니다. 뉴 아메리칸 시네마 시기의 대표작 중 한 편인데다 주인공이 잭 니콜슨이라고 하면 안 보기는 힘들죠.
사실 영화 시작하자마자, 그러니까 콜럼비아 로고가 뜨자마자 '앗, 좆됐다'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팬 앤 스캔 버전이더군요. 원래 화면비는 1.85:1입니다. 혹시 팬 앤 스캔이 아니라 오픈 매트가 아닐까(즉, 1.85:1로 찍은 것을 좌우를 잘라 4:3으로 만든 게 아니라, 원래 4:3으로 만든 뒤 위아래를 가려서 1.85:1로 상영했던 영화를 다시 위아래를 펼쳐서 4:3으로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좀 더 들여다보았는데, 화면 구도를 보아하니까 팬 앤 스캔이 확실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보는 내내 좀 신경이 쓰였고 '저 검은 부분에 이러저러한 것이 보이겠지'하면서 좌우를 상상력으로 채워서 감상하는 썩 기쁘지 않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냥 꺼 버리고 나중에 DVD로나 볼까 했습니다만 보고 싶은 영화가 있을 때마다 DVD 사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참고 봤죠. 화면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하자면, 마지막 엔딩 크레딧 보고 놀랐는데, 촬영감독이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76)]와 [성난 황소(Raging Bull, 1980)]의 마이클 채프먼이더군요. 알고 보니 채프먼의 촬영감독 데뷔작이라고 합니다. 화면비가 더 아쉬워졌습니다. [택시 드라이버]나 [성난 황소]를 떠올려 보면 (물론 스콜세지의 영향이 컸겠습니다만) 채프먼은 고정된 프레임을 잘 잡는 촬영감독이었거든요. [마지막 지령]에서도 잘린 화면으로나마 그런 기색이 곧잘 드러나더군요. 예를 들면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 셋이서 소풍 간 장면 같은. 아마 DVD로 다시 보면 힘이 더 많이 살아나는 영화가 될 것 같았습니다. 처음부터 팍팍 느껴지는 것 : 할 애쉬비는 편집자 출신의 연출가였고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마음껏 뛰놀라고 하면서 좀 막 나간 경우에도 "그 정도면 내가 처리해낼 수 있다"라는 태도를 보였다는데(그래서 배우들은 좋아했다고 합니다), 확실히 탄탄하게 짜인 계획 없이 이리저리 찍어본 뒤에 편집실에서 완성한 티가 역력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이지 라이더(Easy Rider, 1969)]나 [와일드 번치(The Wild Bunch, 1969)] 같은 실험적이고 강렬한 편집이 빛을 발하는 영화처럼 들리지만 그런 것은 아니고 오히려 얌전하게 진행되는 축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다만 장면의 리듬을 보면 촬영 당시에 "자, 어디까지 가나 해 보자"하면서 막 찍었고, 편집실에서 그 장면의 일부만을 발췌해서 영화에 끼워 넣었다는 느낌이 납니다. 종종 '저 뒤에 대화가 좀 더 있었겠는데' 싶은 순간들이 있더군요. 물론 그렇게 해도 영화가 되는 것은 할 애쉬비가 솜씨 좋은 편집자인 덕분도 있겠습니다만 이 작품이 앞뒤가 긴밀하게 짜인 플롯 중심의 영화라기보다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하여 에피소드를 나열해 가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40달러를 훔쳤다는 죄로 징역 8년에 불명예제대를 선고받은 불행한 해군 메도우스(랜디 퀘이드)를 군대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불량 군인 "망할 놈" 버데스키(잭 니콜슨)와 "노새" 멀홀(오티스 영)이 감옥까지 이송하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메도우스가 너무 과하다 싶은 형을 선고 받은 것은 그 40달러가 소아마비 어린이를 위한 모금함에서 훔친 것이었는데 하필 그 모금을 해군 사령관의 부인이 주관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이름난 작품 중 하나라고 해서 [보니와 클라이드(Bonnie and Clyde, 1967)]랄지 [차이나타운(Chinatown, 1974)](특히 각본가가 바로 [차이나타운]의 로버트 타운입니다. 참고로 로버트 타운은 [차이나타운]의 각본 때문에 아주아주아주아주 유명해졌지만 [마지막 지령]처럼 좀 방만해 보이는 이야기를 썼다고 해도 그리 놀랍진 않습니다. 애초에 도무지 각본을 완성하질 못하는 각본가로 악명도 높았다고 해요)처럼 매섭게 나가는 영화는 아니고, 외려 종종 요즘 만들었다고 해도 믿었겠다 싶을 정도로 얌전한 구석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 안에 깃든 뿌리 깊은 병폐를 집요하게 추적한다든지 주변의 모든 것에 대고 반항의 총구를 들이대는 이야기가 아니라 두 사람의 군인이 굉장히 사소하고 부당해 보이는 명령을 끊임없이 궁시렁궁시렁 하고 딴 짓도 하지만 결국 끝까지 이행하는 내용이거든요.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다른 폭발적인 영화들에 비해서는 좀 맥이 빠질 수밖에 없는데, 제 생각에는 그렇게 맥 빠지라고 만든 영화 맞는 것 같습니다. 버데스키와 멀홀은 메도우스의 순둥이 기질을 비웃으면서 이 선량한 친구를 좀 타락시키고 자기가 처한 상황에 화를 낼 줄 알게 만들고 싶어 합니다만 사실 그네들도 별 소리를 다 해봐야 명령을 수행하는 군인인데다 뭐 거창한 사회 비판 의식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고 그냥 자기들 하는 짓이 싫고 얘가 불쌍해 보이고 그 정도뿐이죠. 중간에 남묘호렌게쿄 사람들과 만나서 파티하는 장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들은 여자 앞에서 폼 잡으면서 바다 사나이란 무엇인가 하는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꼬셔볼 생각만 하고 있다가 문득 상대방이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뭐 이딴 거 묻는 정신 나간 여자가 다 있어'라는 듯한 표정으로 "까라면 까야죠. 그게 남자입니다." 같은 대답 밖에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친구들이니 기껏 메도우스의 반항기를 키워놓고는 그가 진짜로 도망가니까 "이 나쁜 새끼"하면서 권총 자루로 두들겨 패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이것을 사회에 대한 무력감 또는 조롱으로까지 읽을 수 있겠지만 어찌됐든 맥 빠지는 건 사실이네요. 물론 그 무력감을 되게 진지하게 폼 잡으면서 보여주기보다는 일종의 코미디로 보여주는 만큼 보는 재미는 있습니다. 버데스키와 멀홀이 메도우스 앞에서 선생처럼 잔뜩 폼을 잡다가도 술 취하면 망가지고 돌발 상황 발생하면 당황하고 하는 꼴이 우스운 것은 부인할 수 없으니까요. 어쨌든 간에 [마지막 지령]을 끝까지 볼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해 가던 젊은 잭 니콜슨의 연기입니다. 그 사람은 이 때 이미 전성기였습니다. 이 [마지막 지령] 앞에는 [이지 라이더]와 [다섯 가지 쉬운 곡들(Five Easy Pieces, 1970)]이 있고 바로 뒤로 [차이나타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1975)], [여행자(Professione: Reporter, 1975)]가 포진해 있습니다. 요즘은 보통 잭 니콜슨 하면 [배트맨(Batman, 1989)]의 조커처럼 굉장한 열기를 내뿜는 반항아 이미지를 쉽게 떠올리는 것 같은데 사실 젊은 시절 구축한 니콜슨의 이미지는 같은 반항아라고 하더라도 막 알 파치노처럼 날뛰면서 소리 지르고 화면을 잡아먹는 것보다는 프레임 안에서 다른 인물들과 융합하면서 그 속에 슬쩍슬쩍 자신만의 독특한 게으름, 귀차니즘을 내비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아이 썅 귀찮은데'하면서 이마에 주름잡고 삐딱느릿하게 행동하다가 상황이 자기 뜻에 맞게 혼란일변도로 흘러가주면 킬킬 거리면서 악마 같은 미소를 짓고). [마지막 지령]에서도 등장장면부터 시작해 거의 모든 장면에서 그런 연기를 펼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가 나이 들면서 자주 보여준 내지르는 연기를 기대하신 분들은 실망하셨을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확 앞으로 나서는 연기도 "계곡 사이의 요들송" 장면 같은 부분에서 튀지 않게 잘 나타났고, 여러모로 잭 니콜슨의 핵심을 보여주는 연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아간 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보다는 팬 앤 스캔으로 잘린 화면 때문에 니콜슨의 연기를 담아내는 공간이 좀 모자라게 되지 않았나 생각했어요. 영화를 이야기할 때 편의상 촬영, 편집, 음악, 연기 등등의 요소를 따로 떼어놓고 하나씩 이야기하게 되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죄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법이죠. 배우가 암만 잘 해봐야 화면에 잘 안 넣어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 생각에 팬 앤 스캔 버전은 잭 니콜슨의 아우라를 품을 만한 여백을 없애버린 듯했습니다. 물론 그 사람 행동이나 얼굴이야 잘 보이지만 그것들이 감싸 안는 주변 공간이 삭제되어서, 연기가 작아보였던 게 아니냐는 말이지요. 그런 면에서 여러모로 제대로 된 화면비로 다시 보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코드1 DVD에 한국어 자막도 있겠다, 훗날을 기약하겠습니다. ![]() 덧 하나. 피터 비스킨드가 쓴 [헐리웃 문화혁명(Easy Riders, Raging Bulls)]을 보면 원래 로버트 타운의 각본에서는 첫 7분 동안 fuck이 342번 나왔다는 얘기가 나옵니다만 물론 완성본은 그렇게 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7분 동안 fuck을 342번 넣으면서 제대로 된 대사를 전개할 수나 있나 모르겠습니다. 보통 많이 들어간다 하는 영화도 영화 한 편에 그렇게 들어가는 법인데(fuck으로 유명한 [스카페이스(Scarface, 1983)]도 170분 동안 207번이잖아요). 그냥 제작 당시에 이 영화에 참여한 자들의 반항기를 알려주는 과장된 일화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덧 둘. 촬영감독이 마이클 채프먼이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엔딩 크레딧은 비장의 무기를 하나 더 감춰두고 있었습니다. 캐스팅을 보니 Taxi Driver - Michael Chapman이라고 나오더군요. 극 중에 세 군인이 창녀촌을 찾기 위해 적당히 때 묻어 보이는 택시 운전사를 골라잡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 골라 잡힌 택시 운전사가 바로 마이클 채프먼이었습니다. 스콜세지 영화의 매끈한 프레이밍 때문에 깔끔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꽤 험해 보이더군요. 물론 [택시 드라이버]가 더 늦게 나온 영화니까 농담하자고 넣은 캐스팅은 아닙니다. 덧 셋. 다음 주 일요시네마 [소매치기(Pickpocket, 1959)]는 원래 화면비가 4:3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작년에 장 피에르 멜빌의 [사무라이(Samouraï, 1967)] 세미나 준비하면서 보았던 영화인데, 참 재밌었습니다. 로베르 브레송 팬이나 팬은 아니지만 영화사의 거장이라니 보겠다시는 분들 외에도 멜빌 영화의 팬이랄지 아니면 도스또예프스끼 팬들도 재밌게 볼만한 작품입니다. 브레송 하면 잠 오는 '예술 영화' 만드는 사람처럼 들리겠지만 [소매치기]는 제목 그대로 주인공이 소매치기인데 그가 소매치기하는 과정을 아주 공들여서, 멜빌이 강도질, 혹은 살인청부질 묘사하듯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범죄 영화 팬으로서의 관점을 취하더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물론 그런 것을 통해서 브레송이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은 따로 있는지라 소매치기 과정이 "리얼"하다기보다는 (멜빌 이상으로) 일종의 종교적 형식, 제의처럼 묘사되고 있고, 그 거리두기에 주목하지 않으면 푸하하하 (비)웃어버릴 수도 있지만… 뭐 어때요. 점심 배불리 먹고 일요일 오후에 느긋하게 앉아서 프랑스 흑백 범죄 영화보면서 웃는다고 안 될 건 없습니다. ![]() 덧 넷. 씨네꼼 게시판에만 혹시 본 사람 있으면 같이 잡담하자고 쓴 글인데 의외로 보기 좋게 나올 줄이야.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즉흥성이 감상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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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eyes at 08/19 말씀하신대로 류승완 감.. by sabbath at 08/17 참 말할 거리가 많은 영.. by 파인로 at 08/17 그쵸. 사실상 모든 프랑.. by sabbath at 08/16 아, 그것은… 저도 무.. by sabbath at 08/16 저도 그 글을 읽어보았.. by sabbath at 08/16 제작사 외유내강 측의 .. by sabbath at 08/16 소식 고맙습니다! 포스터.. by sabbath at 08/16 가끔은 너무 만든 사람에.. by sabbath at 08/16 먼저 안 보신 분들께는 .. by sabbath at 08/16 저도 만주 벌판 액션이 참.. by sabbath at 08/16 [다찌마와 리] 속편 또.. by sabbath at 08/16 오오, 드디어 올리셨군.. by Sion at 08/16 드팔마를 떠올리는 장면.. by 다찌대박 at 08/16 저는 그놈의 잘생겼다!가.. by 은혈의륜 at 08/16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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