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황소(Raging Bull, 1980)]
 브롱스의 권투 선수 제이크 라 모타(로버트 드 니로)는 어느 날 동네 수영장에서 열다섯 살 성숙한 소녀 비키(캐시 모리아티)를 보고 한 눈에 반한다. 동네 갱스터인 살비(프랭크 빈센트)가 그녀와 친한 것 같지만, 그리고 자신은 이미 결혼한 몸이지만, 그는 아무튼 비키에게 접근해보기로 한다. 비키가 참석할 것으로 알려진 교회 연례 댄스 파티에서 제이크는 저 멀리 친구들과 함께 앉아있는 비키를 발견하나 이내 살비가 다가와 그녀를 밖으로 데려가 버린다. 제이크는 주저하며 둘을 따라간다. 하지만 그가 문을 나설 즈음 비키는 이미 살비의 차에 탄 채 멀어져 가고 있다. 한편, 파티장에서는 말썽을 부리던 멕시코인들이 문 밖으로 쫓겨나가는 참. 사라져 가는 비키를 멍하니 바라보며 문간에 있던 제이크는 무리에 합세하여 화풀이라도 하듯 멕시코인들을 몰아낸다. 소동이 마무리되고 제이크가 클럽 문 뒤로 사라지는 순간, 조금 전 그가 멕시코인들에게 소리칠 때와는 다른, 후시 녹음으로 입혀진 것이 분명한 목소리가 들린다. "왔던 곳으로 돌아가(Go back to where you came from)."

 멕시코인들과의 소란 바로 뒤에 따라오는 대사이기 때문에, 이 말은 멕시코인들에게 던지는 말─"멕시코로 꺼져버려, 이 새끼들아"─로 받아들이기 쉽다. 특히 스콜세지의 영화들에서 곧잘 드러나는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의 타 민족에 대한 관습적인 차별 의식을 염두에 두고 보면 더욱 그렇게 들린다. 하지만 하필이면 제이크가 클럽으로 돌아 들어가는 순간에, 그 전까지 크게 들리던 소음을 덮으면서, 후시 녹음의 느낌을 감추지 않고 삽입한 그 대사는 제이크 자신의 독백처럼 들리기도 한다. 멕시코인들과의 소란이 벌어지기 전까지 비키를 바라보고 있던 제이크의 눈길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 멍한 눈길을 애써 거둔 뒤 엉뚱한 사람들에게 괜히 화풀이를 하고 돌아서는 태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이크의 모든 관심사는 이미 비키에게 맞춰져 있지만, 그는 동시에 동네 갱스터와 얽혀 이용당하고 싶지도 않고 아내도 있는 스스로의 처지를 느끼며 "왔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성난 황소]의 주제가 거기 있다. 제이크에게는 강박적인 욕망이 있는데, 그 욕망은 곧잘 가로막히고, 제이크는 그 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좌절을 들이부어 댄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욕망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점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문제는 그가 그래도 여전히 비키에게 집적거린다는 것, 즉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는 대신 일단 무작정 저질러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까지였으면 그렇고 그런 민폐쟁이 개망나니에 불과했겠지만, 제이크 라 모타는 한 걸음 더 간다. 그는 자신이 민폐쟁이 개망나니라는 것과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항상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 또한 누군가에게 들이부어야 할 좌절로 찾아온다. 그 누군가는 바로 자신이다. [성난 황소]는 자신이 만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을 고통스럽게 하고, 다시 그런 자신을 벌하기 위해 스스로를 학대하는 자에 관한 이야기다. [비열한 거리(Mean Streets, 1973)]의 비열한 자 찰리와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76)]의 징벌자 트래비스를 한 사람으로 합치면 이렇게 될까.
 많은 사람들이 [성난 황소]를 권투 영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 말은 여기에서 권투가 별로 나오지 않는단 의미가 아니라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스포츠로서의 권투가 지니는 영역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의미다. 영화 초반 벌어지는 제이크와 지미 리브스(플로이드 앤더슨)의 경기는 이 영화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선언하는 듯하다. 제이크는 지미 리브스를 쓰러뜨리지만 홈 어드밴티지에 밀려 승리를 빼앗기고, 결과에 흥분한 관중들은 난동을 부린다. 이 난동은 두 가지 인상적인 운동 이미지로 시작하고 끝난다. 링 밖에서 링 안으로 의자를 집어던지는 것과 링 안에서 링 밖으로 사람을 집어던지는 것. 그건 제이크 라 모타가 권투를 대하는 방식이다.
 많은 권투 영화에서 링은 세상에 마지막 남은 깨끗한 공간이다. 가난에 쪼들리건 인종 차별을 당하건 조작 경기를 강요당하건 간에 일단 링 안에 들어선 선수는 그 안에서만큼은 상대 선수와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삶과 정면승부 할 수 있다. 따라서 권투 영화에서 링은 자존의 공간이다. 그런데 [성난 황소]에서는 그 신성불가침의 공간이 무너진다. 심판들이 이런저런 이유에 의해서 납득할 수 없는 판정을 내린다거나 조작 경기를 강요하는 갱의 협박이 먹혀들기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제이크 자신이 권투 경기를 자존의 기회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링 안에서 기량을 펼쳐 스스로의 존엄성을 찾는데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라면 판정이 어떻게 나오든, 또는 조작 경기에 응하지 않은 탓에 해를 입든 적어도 경기 순간만큼은 숭고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이크는 자신의 실력에는 관심이 없다. 사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경기에서 다 이길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래봤자 이미 틀 안에 갇힌 이상 자신은 충분히 위대해질 수 없다는 점이며(손이 작아서 헤비급 선수로 활약할 수 없다. 갱과 손잡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이겨 봐도 타이틀전을 치를 기회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화가 나 있다는 점이다. 괜히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고, 괜히 "이 황소가 성낼 무대를 주오."라고 읊는 것이 아니며, 괜히 "성난 황소"가 아니다. 따라서 그에게 링은 깨끗한 승부의 공간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화낼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승패보다는 어떻게 때리는가, 어떻게 맞는가 자체가 중요한 심리의 공간. 링은 세상과 격리된 공간이 아니라 세상의 연장이 된다. 권투장 밖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제이크에게 주는 분노는 권투를 통해 표현되고, 권투를 통해 표현된 분노의 결과가 다시 권투장 밖의 제이크에게 새로운 시련을 안겨준다.
 그 스스로 "플롯보다는 인물 중심의 영화를 만든다"고 말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는 보통의 극영화들에 비해 각각의 사건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은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자잘한 시간들이 툭툭 잘려나가고 굵직한 사건들만이 던져지듯 제시된다.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다음 장면에서 "2년 후"라는 자막이 뜨는 식이다. 하지만 허술하고 불친절한 전개는 아니다. 각 장면을 연결하는 연결고리가 시간이나 공간, 행위의 연속성에 바탕을 두는 대신 감정의 연속성에 바탕을 두고 있을 뿐이다. 영화광으로서의 스콜세지가 갖는 고전기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애정은 언뜻 보기에 실제로 그가 만드는 영화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흥미진진한 사건의 외양 아래 부글거리는 감정을 꾸준히 좇으며 영화의 중요한 흐름으로 잡는다는 점에서는 존 포드, 하워드 혹스, 존 휴스턴 같은 이들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차이가 있다면 선배들이 철저하게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 자체의 힘을 믿고 영화를 만들면서 인물의 속마음(그리고 상황을 바라보는 연출자 자신의 마음)은 그 아래에 감추어 거의 무의식적으로 기능하게 한 반면 누벨바그를 거친 스콜세지는 매끄러운 이야기체를 거부하면서 자투리 시간을 쳐낸 뒤에 듬성듬성하게 놓인 사건들 사이로 감정이 끓어올라오게 만들었다는 점일 것이다(그럴 필요야 없겠지만, 아무튼 이것이 스콜세지가 이스트우드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 그래서 스콜세지 영화에서는 장면과 장면 사이의 뚝! 끊긴 지점이 중요하다. 다른 말로 하면 왜 이 장면 다음에 하필 저 장면이 나오는가 하는 물음이 특히 중요해진다. 그거야 뭐 원래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자주 찍으니 실제 사건이 일어난 순서겠지, 하고 넘어가는 대신 오히려 한 인물의 긴 삶에 관한 실화를 통째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저 부분들만 발췌했는지를 눈여겨보면, 인물의 심리 변화가 각 장면들을 가로질러 엮어가며 놓여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스콜세지 영화의 외양은 리틀 이탤리 세계 혹은 실존 인물의 과거를 더할 나위 없이 '사실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쉽지만 전체 구성의 논리는 인물의 감정을 기준으로 하여 극도로 정제/선택되어 있다.
 매 장면의 연출도 그런 식이다.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그 사건들은 객관적 사실 이상으로 주관적 인상을 위해 표현된다. 아마 모두가 권투 장면을 이야기할 것이다. 권투 영화도 아닌 주제에 권투 영화계를 평정해버린 [성난 황소] 속 권투 장면은 거의 제이크의 꿈처럼 보일 지경이다. '권투'를 찍으려했다면 불가능했을 쇼트들이 연달아 등장하며 스포츠로서의 이미지들은 내팽개친 채로 때린다는 것과 맞는다는 것에만 주목한다. 이건 [록키(Rocky, 1976)]나 [알리(Ali, 2001)]보다는 차라리 [와일드 번치(The Wild Bunch, 1969)]나 [랄수신탐(辣手神探, 1992)]에 가깝다. 말초신경 자극적인 스펙터클에 불과하다고? 글쎄. 스콜세지의 스펙터클에는 굉장한 볼거리라고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정서적 충격이 있다. 카메라는 종종 제이크가 내지르는 주먹의 관성에 밀리는 듯이 상대 선수가 펀치를 맞은 후에도 운동을 멈추지 않고 더 나간다. 어퍼컷을 먹이는 순간 프레임 전체가 펀치를 맞은 듯 위로 크게 들썩이는가 하면 훅을 내질렀을 때는 아예 팔이 내질러진 방향을 따라 360도로 돌아버린다. 제이크에게 맞아 휘청이고 무너지는 상대 선수를 집요하게 따라가서 아예 함께 링 밖으로 튀어 나가거나 바닥에 쓰러지기까지 한다. 모든 장면의 목표는 단 하나, 제이크가 내뿜는 파괴적 힘을 고스란히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주먹이 몸을 때리는 순간보다 더 무서운 건 때리기 직전, 때리기 위해 다가서는 순간이다. 그럴 때 고속 촬영된 제이크의 모습에는 아예 "죽여버리겠어"가 새겨져 있다. 또는 프레임을 가로질러 상대에게 달려들 때는 폭주기관차가 따로 없다. 운동 이미지도 운동 이미지지만, 그런 순간들에 귀를 기울여 보면 영혼이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음향 효과 담당자 이름까지 들먹이는 관습은 없는 세상인지라 좀처럼 언급되지 않는 이름이지만, 음향 효과 담당 편집자 프랭크 워너는 [성난 황소]의 일등 공신 중 하나다. 그는 권투 경기장에서 들릴 리 없는 끔찍한 소리들을 끌어들였다. 글러브가 몸을 두들기는 소리도 이미 남다르지만 그 직전에 들려오는 소리들─갑자기 찾아든 정적 속에서 불길하게 울려 퍼지는 쿵쿵거림, 결코 관중석에서 나온 것은 아닌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 제이크가 달려드는 순간 울리는 코끼리 울음 소리 따위를 들어보면 공포 영화가 따로 없다. 슈거 레이 로빈슨(조니 반즈)과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동물의 왕국 100회 특집을 방불케 하는 소리가 들린다. 벼락처럼 내려꽂히는 로빈슨의 주먹에서는 실제로 천둥소리가 난다. 그 주먹은 제이크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말 그대로의 천벌이다. 때로는 소름끼치는 침묵의 순간도 있는데, 그 때 저 멀리서는 기도 소리 같은 웅얼거림이 들린다. 권투 경기를 직업이나 스포츠가 아니라 영혼을 걸고 치르는 고해성사로서 치르는 자에게는 더 없이 잘 어울린다.

 권투 장면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지쳐버리기 때문인지(그렇다고 그 얘기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성난 황소]의 다른 장면들은 줄거리의 측면에서만 언급되곤 한다. 하지만 시청각적으로 만만찮기는─그럼으로써 제이크의 내면을 안내하기로는 이 쪽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슬로 모션. 어차피 한 사람의 영화 테크닉을 총망라할 수는 없는 일이지마는, 그렇더라도 스콜세지 특유의 연출을 거론할 때 핸드헬드 또는 스테디 캠의 복잡한 카메라워크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쉬운 일이다. 그는 데뷔작 [내 문을 두드리는 이는 누구일까(Who's That Knocking at My Door, 1968)]에서부터 슬로 모션을 다뤄왔으며 세 번째 작품 [비열한 거리]에서 이미 그걸로 명장면을 만들어낸 슬로 모션의 대가이다. 샘 페킨파와 장철과 오우삼과 브라이언 드 팔마가 폭력과 붕괴와 파멸의 순간을 무한정 늘려가며 고통에 몰두하거나 때로는 거기서 이른바 '폭력 미학'을 찾을 때 스콜세지는 슬로 모션을 인물의 시선에 붙여 사용했다. [비열한 거리]에서 문젯거리를 안고 들어오는 자니 보이를 바라보는 찰리의 시선, [택시 드라이버]에서 뉴욕에 강림한 '천사' 베시를 바라보는 트래비스의 시선, [좋은 친구들(Good Fellas, 1990)]에서 창 밖의 갱스터 세상을 바라보는 소년 헨리의 시선 등. 스콜세지에게 슬로 모션은 욕망과 강박의 시간을 위한 도구다.

 그 중에서도 [성난 황소]는 슬로 모션의 집대성이라 할만하다. 훈련장에 들어오는 살비의 모습, 수영장에서 물장구 치는 비키의 모습, 살비와 함께 클럽을 나서는 비키의 모습, 데이트 중 자신을 뒤돌아보는 비키의 모습, 클럽 저편에서 자신을 부르는 갱 두목 토미(니콜라스 콜라산토)의 모습, 타이틀전을 주선해준 토미에게 조이와 비키가 인사하는 모습… 그 때 주변 소리는 최소화되고, 낭만적인 BGM이 들리거나,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상대가 나누는 대사만이 크게 들리거나, 다음 순간에 나와야 할 대사가 미리 들린다. 어느 쪽이든 그 길게 이어지는 시선은 제이크의 강박을(그것이 매혹이든 의혹이든 분노든)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시점 쇼트에 슬로 모션이 사용될 때의 의미는 '오래 보고 있음'이 아니라 '본 것이 오래도록 남음'이다. 그 순간들은 실제의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제이크가 받아들인 사건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분명, 여기서 드라마의 핵심은 플롯의 전개가 아니라 심리의 전개에 있으며 제이크의 집착이 전면에 드러난다.
 한편, 넋이 나가게 만드는 카메라 움직임과 편집 때문에 간과되곤 하지만 스콜세지는 프레임을 짜는 데에 집착하는 감독이다. 심지어 그토록 잘 다루는 스테디캠도 처음에는 프레임을 다른 사람─스테디캠 기사─에게 맡겨야 하기에 기피했다고 할 정도인데, 확실히 [성난 황소]에서 권투장 밖의 카메라는 언뜻 보기에는 특별한 재주를 부리지 않고 그냥 인물들을 얌전히 비추고만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모든 쇼트가 철저한 계산 끝에 배치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카메라의 위치와 그에 따른 구도가 압권인데, 이동을 최소화하면서도 장면의 핵심 정서를 명확하게 포착할 수 있게 설계된 프레임 덕분에 그냥 쇼트 하나만으로 영화적 아름다움이 발생한다. (그 상황이 아름다운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하고 말이다)
 제이크가 조이나 비키에게 버림받은 채 넓고 깊은 프레임 한 구석에 덩그러니 버려져 서 있는 모습들이 아마 가장 두드러지는 예이겠지만 그보다 내가 각별히 아끼는 장면은 제이크가 지미 리브스에게 지고 나서 집에 돌아와 깽판치거나 비키를 처음 집 안으로 끌고 들어와 수작을 거는 등의 '가정집 대화' 장면들이다. 보이는 거야 흔하디 흔하고 뻔하디 뻔한 집구석이지만 딥포커스로 깊이를 강조하고 정갈한 구도로 담아낸 각각의 쇼트들은 제이크의 심리를 바라보기에 가장 적당하게 '만들어져' 있다. 제이크는 그 집 안에 비키를 끌어들여 놓고는 "아빠? 아빠? 시장 가셨나?" 하면서 깊은 집구석을 휘적휘적 돌아다니고, 프레임 좌우에 균형을 맞춰 앉아있는 걸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비키를 자기 허벅지 위에 앉게 하고, 어수선한 식당이며 볼 것 없는 복도를 산만하게 돌아다니다 화장실까지 괜히 기웃거린다. 그러다 마침내 마치 집 구경의 일환인양 비키를 침실로 안내해 침대 위에 앉히기까지 했을 때, 카메라는 둘을 얌전히 바라보고만 있는 척 하지만 비키의 허리 뒤에 슬쩍 둘러진 제이크의 팔을 보기에 딱 좋은 각도에 자리를 잡고 있고, 둘이 침대에 앉을 때는 같이 따라가는 척하다가 좀 더 화면 좌측으로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은 화면 우측에 치우치게 해놓고는 침대를 넓게 비추는 식으로 논평까지 한다. 카메라가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러고도 제이크의 마음을 모르겠니? 그런데 그 순간 비키가 '나도 당신이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아'라는 듯 침대에서 일어나 버리는 바람에 미리 침대까지 가 있던 카메라는 황급히 그녀를 쫓아간다. 실로 유머가 한 가득, 제이크의 속셈은 빤히 들여다보이고, 그 속셈을 알지만 내심 싱글거리며 능숙하게 놀려먹는 비키의 짓궂음이 돋보인다. 소리는 또 어떤지. 음악은 창문 밖 어디서, 혹은 다른 방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듯 조그마하게 들리며 집 안의 정적을 감싸 돈다. 제이크와 비키도 말은 필요 없다는 듯이 들릴 듯 말 듯 소곤거린다. 그러다 두 사람이 침대로 돌아가는 순간 음악의 끝마디가 경쾌하게 터진다. 뒤이어 곧장 권투 경기가 펼쳐지는데, 이토록 즐거운 기분을 품고 갔으니 제이크가 라이벌 슈거 레이 로빈슨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두는 건 당연한 결과다. [성난 황소]의 매 장면은 별 것 아니게 보이는 순간에조차 제이크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짜여 있고, 한 순간 그를 이해했다 싶으면 다음 순간을 끌어들이며 그 이해를 확인하고 확장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는 결국 그 심리의 장 안에서 무엇에 왜 집착하는 것일까. 조이가 묻는다. "대체 뭐가 문제야?" 제이크는 자신의 손이 작기 때문에 헤비급에서 뛸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실력이 훨씬 낫다는 걸 알지만 태생적인 한계에 갇혀 있기에 그는 화가 나 있다. 조이는 애초에 어쩔 수 없는 문제로 고민하지 말고 다음 경기나 생각하라고 한다. 맞는 말 같다. 그런데 해봤자 안 되기는 미들급에서도 마찬가지다. 토미는 제이크를 포섭하려 하지만 제이크는 그들을 피한다. 그 고충을 토로하는 토미의 부하 살비에게 조이가 말한다. "형은 혼자 힘으로 해내고 싶어 해." 그 말을 할 때 조이와 살비는 (그리고 토미도) 모두 제이크가 멍청하다고 말한다. 조직과 손을 잡지 않으면 결코 타이틀전 출전권을 얻을 수 없으므로. 제이크는 링에 갇히듯 세상에 갇혀있다. 갖가지 납득할 수 없는 심판 판정 정도야 당연히 따르는 덤이다. 제이크는 그 굴레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모르는 듯이 싸운다. 모르는 듯이 싸우기 때문에 아무리 주먹을 휘둘러봐야 거기서 벗어날 수 없고, 모르는 듯이 싸우기 때문에 그 자신처럼 싸우지 않는 모든 이들을 상처 입힌다. 그리고 모르는 듯이 싸우기 때문에 마침내 지쳤을 때 타협해버리는 것이고, 그 결과 이루려던 걸 이루는 순간 오히려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스콜세지는 요한복음의 구절을 빌어 제이크를 눈 먼 자에 비유하는데, 아닌게 아니라 그는 정말로 눈이 먼 셈이다. 드 니로는 이미 [비열한 거리]에서 [뉴욕, 뉴욕(New York, New York, 1977)]에 이르기까지 연달아 세 차례 막무가내로 어리석게 싸우는 인물을 연기했지만 제이크 라 모타 만큼 그 어리석음에 갇힌 자는 없었다.
 제이크의 추락, 자기 파괴를 이해하기 위해 [성난 황소]는 그의 어리석음이 파괴한 것, 그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도 세심히 다룬다. 제이크의 아내 비키와 동생 조이는 제이크 만큼이나 흥미로운 인물들이다. 순수하다 싶을 정도로 직선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제이크의 모습에서 복잡한 내면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그의 태도가 이 두 사람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비키와 조이는 이 고립된 사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다.

 비키는 스콜세지 영화의 여자들 중 가장 흥미로운 축에 속한다. [앨리스는 더 이상 여기 살지 않는다(Alice Doesn't Live Here Anymore, 1974)]의 앨리스, [좋은 친구들]의 카렌, [카지노(Casino, 1995)]의 진저에 비교해보아도 그렇다. 주인공 제이크가 극심한 의처증을 지닌 채 비키를 챔피언 벨트처럼 취급하고 있으며, 영화의 상당 부분이 제이크의 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연출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영화에서 비키의 존재감이 이토록 크게 다가오는 것은 경이롭다. 로버트 드 니로와 조 페시의 연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열아홉 신인이었던 캐시 모리아티가 자신의 데뷔작에서 15살 소녀부터 삶에 넌덜머리를 내는 세 아이의 어머니까지를 아우르며 보여준 연기야말로 놓쳐서는 안 된다. 대체 15살 소녀가 어떻게 동네의 중년 갱스터들과 교분을 갖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비키는 제이크와 만났을 때 이미 세상에 대해, 특히 남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녀의 표정과 몸짓을 살펴본다면 분명 제이크가 비키를 선택한 게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를 선택한 것이며 제이크가 비키를 침대로 이끈 것이 아니라 비키가 자신을 침대로 안내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 것임을 느낄 수 있다. 그녀는 단지 잠시 돈 많은 남자와 놀아보려는 것일까, 아니면 이 남자에게 모종의 애정을 느끼고 있는 걸까?
 내 생각에는 후자다. 캐시 모리아티는 스콜세지 영화에서 보기 드문 애정의 순간을 만들어 낸다(아마 [택시 드라이버]에서 조디 포스터와 하비 케이틀이 보여준 애정 정도가 이에 비할 수 있을 듯하다). 박찬욱은 [성난 황소]에 대한 자신의 글에서 제이크는 비키의 몸에, 비키는 제이크의 돈에 끌려 관계를 시작한다고 지적한 바 있고, 그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비키에게는 그 이상의 감정도 발견된다. 그 감정이 금세 배신당하고 깨어질지언정 거기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비키가 살비 패거리와 어울려 술 마시는 모습을 본 조이가 그녀를 불러내어 말다툼을 벌인다. 어느 순간, 조이가 쏘아붙이다. "그럴 거면 결혼은 왜 했어?" 비키는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답한다. "그를 사랑하니까!" 그녀의 단호한 어조에 담긴 것은 무신경하게 반복사용 되는 관습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다. "정말 사랑한다고?" "그래, 난 그를 사랑해." 여기에 다음 대사가 더해진다. "하지만 날 더러 어쩌라고? 그 자식은 이제 나랑 떡칠 생각도 않는데!" 이미 진행되고 있는 붕괴의 와중에 내비치는 비키의 감정은 결코 제이크가 자신을 함부로 대하고 의심하는 데에 대한 일차원적인 분노만이 아니다. 캐시 모리아티는 그 속에서 비키가 지난 날 제이크와 함께 품고 있었던, 그러나 지금은 무너지고 있는 기대와 희망, 애정을 살짝 내비친다. 제이크는 오래도록 깨닫지 못하지만, 욕망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제이크 곁에서 그와 대등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왔을 비키가 보인다. 자기 세상에 눈 먼 자가 보지 못하는 건 그런 것들이다.
 조이는 그가 처한 위치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살비에게 말하는 것처럼, 그는 중간에 낀 자다. 제이크와 비키 사이, 제이크와 살비/토미 사이에 위치한 조이는 상황에 따라 이 편에 붙었다 저 편에 붙었다 하기를 반복하지만 그의 행위가 모순이라거나 줏대없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 행위의 이면에는 언제나 제이크를 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위한다' 정도의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겉보기와는 달리 실상 자신의 삶을 내비치는 일 없이 오로지 제이크에게만 묶여 사는 쪽은 비키가 아니라 조이다. 제이크를 달래든 그에게 맞서 소리치든 비키를 돌봐주든 욕하든 토미 일당과 가깝게 지내든 무엇을 하든 간에 그 결정에서 조이 자신을 위한 욕망은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심지어 결혼조차 형과 짝을 맞추기 위해 한 것 같다. 살비 패거리, 제이크의 첫 아내 등이 두 사람을 "호모"라고 부르거니와, 제이크-조이의 관계를 형제애의 구도가 아니라 연인의 구도로 보는 것에는 아무런 무리도 없다(스콜세지는 [성난 황소]가 동성애 텍스트라는 평론가 로빈 우드의 주장에 대해 연출 과정에서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를 두고 보니 그 해석에 동의할 수 있었노라고 답했다). 어느 쪽이든 문제는 명백하다. 한쪽만이 다른 한쪽에 전력을 다해 헌신하고 있으며 다른 한 쪽은 그 점을 이해하고 감사하기는커녕 오해하고 핍박하고 있다. 비키의 경우보다 훨씬 더 무참한 상황이다. 제이크가 권투 선수 인생을 마감하는 게 조이와 떨어진 후이고 제이크가 밑바닥으로 추락한 뒤 만나는 사람이 (비키가 아니라) 조이인 것도 당연하다. 제이크는 자신이 홀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지만, 실은 자기 삶의 매니저를 보지 못했다.
 제이크가 조이와 비키의 관계를 의심한 끝에 둘을 두들겨 팬 후, 저녁 늦게 비키가 집으로 돌아와 말없이 가방을 싼다. 제이크는 비키를 붙잡고 떠나지 말아달라고 한다. 개망나니의 터무니없는 수작인가? 하지만 비키에게는 체념과 애석함, 미련과 애정이 엿보인다. 심지어 제이크에게서조차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아마 이 영화에서 제이크가 비키에게 가장 진실된 애정을 표현하는 순간일 것이다). 다음 경기에서 그는 도전자를 맞이해 13라운드까지 계속 얻어맞다가 최후의 순간 단숨에 전세를 역전시킨다. 비키가 그러했던 것처럼, 조이에게도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조이에게 전화해보라고 권하는 것도 다름 아닌 비키다. 그러나 제이크는 결국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고 만다. 이유는 다음 장면에 나온다. 슈거 레이 로빈슨과의 결전. 그는 계속 맞는다. 다리가 휘청이지만 로프에 몸을 의지하여 경기를 계속하고, 계속 맞는다. 얼굴에서 핀 튀가 온 몸을 붉게 물들인다. 로프에 팔을 걸치고 선 그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흉내 내듯 수난극을 벌인다. 자신의 죄를 대속하고 싶은 것이다. 문득 조이가 토미에게 제이크의 고집을 설명하며 한 말이 떠오른다. "예수도 가끔은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는 건데 형은 그런 거 쥐뿔도 없어요." 제이크는 혼자 힘으로 타이틀을 거머쥐려 했던 것처럼 혼자 힘으로 죄를 씻어보려 한다. 어리석다.
 그 '필사적인' 어리석음이 제이크 라 모타를 존중케 한다. 그 거대한 분노, 모든 것을 파괴하며 그 눈 먼 투쟁을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을 존중하고 싶다.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잘못을 저질렀던 방법 그대로 잘못을 만회하려 든다. 죄를 너무나 잘 알기에 도리어 죄가 어딨는지 모르는 듯 속죄한다. 그의 삶이 품고 있는 파괴적인 힘은 그 자신에게도 공평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공평함이 나를 무릎 꿇게 만든다. 회개는 교회가 아니라 거리에서 하는 거라는 말을 품고 살고, 자신의 손을 촛불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즉석에서 징벌을 가하지만 결국 누군가 자신에게 찾아와 진정으로 벌을 내려주기를 기다리기만 하며 사는 [비열한 거리]의 찰리 정도로는 발뒤꿈치에도 미치지 못할 삶의 힘이 제이크에게는 있다. 찬탄하지는 못할지라도 경외하고픈 순수함이다.
 물론 그 힘이 문제를 해결해주지는─속죄할 수 있게 해주지는 않는다. 권투를 그만 두고 술집을 운영하다 미성년자 매춘 알선 혐의로 감옥에 갇힌 제이크는 벽을 두들기며 부르짖는다. "왜! 왜! 왜! 왜!" 한순간, 그는 주먹을 휘두르려다 멈추고 자신의 손을 감싸며 주저앉는다. "내 손!" 우스꽝스럽고 슬픈 깨달음이다. 자신을 속죄하기 위해 자신에게 벌을 가하기란 그토록 힘들다. 스스로를 잊고 충분히 벌을 가할 수는 없은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런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날, 수화기 너머의 조이에게 말을 건넸더라면…….
 [성난 황소]의 마지막 두 장면을 볼 때마다 궁금해진다. 제이크는 조이와 우연히 만나고, 그를 따라가 부둥켜안고 키스한다. 조이는 그런 제이크를 피하려 들다가 다음에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뜬다. 나중에 둘은 만났을까?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일하는 제이크는 무대에 나서기 전 분장실에서 대사 연습을 한다. 엘리야 카잔의 영화 [부둣가에서(On the Waterfront, 1954)]의 한 대목이다. 말론 브랜도가 연기한 주인공 테리 말로이는 재능 있는 권투 선수였지만 갱과 결탁한 형 찰리의 조작 경기 요구에 응했다가 신세를 망친 채 건달로 살아가고 있다. 옛 일을 회상하며 동생의 불행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찰리에게 테리가 말한다. "그건 너 때문이었어, 찰리. 내 형이면서. 날 조금만 돌봐줬어야지. 정말 조금만 더 돌봐줬어야지. 푼돈에 다운 당하게 하지 말고 조금만 더 돌봐줬어야지. 넌 이해 못해. 난 잘 나갈 수 있었어. 도전자가 될 수 있었어. 뭔가 될 수 있었다고……." 제이크는 권투 선수인 테리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형으로서 동생 테리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일까? 그는 여전히 남들을 원망하나? 아니면 마침내 자신의 죄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게 된 걸까?
 답이 주어지는 대신, 분장실에 직원이 들어와 곧 공연이 시작된다고 알린다. 그 직원을 연기한 사람은 마틴 스콜세지다. 스콜세지는 [택시 드라이버]의 성공 후 자만에 빠졌고, 시대는 자만을 부추기는 '작가주의 감독'의 시대였다. 그는 초대형 뮤지컬 [뉴욕, 뉴욕]을 세부 계획도 세우지 않고 즉흥 연출에 의존하며 방만하게 찍었고, 완성된 영화는 삭제 개봉되어 비평과 흥행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이듬해 스콜세지는 당시 그가 생각하기로 자신의 최고 걸작이었던 [마지막 왈츠(The Last Waltz, 1978)]를 완성했지만 그는 그게 자기 작품이 아니라 거기 참여한 다른 사람들이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만들고 싶은 이야깃거리가 없었다. 로버트 드 니로가 [성난 황소]를 하자고 해서 폴 슈레이더에게 각본을 맡겨두긴 했지만 사실 스콜세지는 그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영화 대신 마약에 절어있었고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록 스타처럼 몸을 굴렸다. 1978년 노동절 즈음의 텔루라이드 영화제에서 그는 마침내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는 눈, 코, 귀에서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온몸에서 내출혈이 일어났다. 병실을 찾은 로버트 드 니로는 [성난 황소]의 대본을 꺼내며 말했다. "대체 무슨 짓이야? 왜 자신에게 그런 짓을 하는 거야? 이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아? 넌 이 영화를 누구보다도 잘 만들 수 있어." 그 순간 스콜세지는 자신이 제이크 라 모타임을 깨달았고, 자신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바로 그 스콜세지가 분장실에 들어와 제이크를 본다. 자막이 올라간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소경이었던 자를 다시 불러 이르되,
"하나님 앞에 진실을 말하라. 우리는 이 자가 죄인임을 아노라."
그가 답하기를
"그가 죄인인지 아닌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단 하나 내가 아는 것은
내가 한 때 눈멀었으나 이제는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경인 제이크가 하는 말일까? 그건 모르겠다. 제이크를 보는 내가 하는 말일까? 물론이다.








 덧 하나.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오프닝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내가 굳이 다시 할 필요가 있을까? 그 외에도 수많은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의외로 자주 언급되지 않는 장면 중 하나는 제이크가 마침내 타이틀전을 치를 때 라커룸에서 링까지 나아가는 모습을 한 번에 담은 스테디캠 롱테이크다.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라커룸에서 링까지 부드럽게 나가는 거야 뭐 스테디캠이니까 가능한 일이지만 링에 도착해서 카메라가 슬며시 공중에 떠서 링을 내려다보는 거다. '뭐야, 날았어?' 이제는 어떻게 찍었는지 알게 되어 김이 빠지는 감이 없잖아 있는데, 아무튼 나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영화라는 게 일종의 마술이라는 생각을 되새기게 된다.


 덧 둘. 유명한 영화에는 뒷이야기도 많다. 난 그 중 두 가지 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 하나는 피터 비스킨드가 쓴 [헐리웃 문화혁명(Easy Riders, Raging Bulls)]에 나오는 일화다.

 스콜쎄지는 이 영화를 55가와 6가에 있는 MGM 시사실에서 7월 중순 올벡과 스티븐 박에게 보여주었다. 스티븐 박의 묘사에 의하면 "완전히 고요한 가운데 천천히 불이 켜졌다. 사람들은 모두 말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 의례적인 박수조차 없었다. 마틴 스콜쎄지는 이 침묵에 위축된 듯 시사실 뒷벽에 몸을 기댔다. 앤디 올벡이 자리에서 일어나 활달하게 그에게 다가가더니 곧장 악수를 청하면서 조용히 '스콜쎄지 씨, 당신은 예술가요'라고 말했다." 스콜쎄지는 시사회가 끝난 후 한 젊은 여인에게 영화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녀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뛰어나갔다.

 또 다른 하나의 일화는 DVD에 수록된 영상을 통해 제이크 라 모타 자신이 들려준 것이다. 그는 [성난 황소] 제작에 깊이 참여해서 로버트 드 니로의 권투 연습은 물론 연기에까지 도움을 주었다. 영화가 개봉했을 때, 그는 비키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가 끝난 뒤 극장에서 나올 때쯤 제이크는 침울해져 있었다. 그는 비키에게 물었다. "내가 정말 저랬어?" 비키는 대답했다. "당신은 저거보다 더 했어."


 덧 셋. [성난 황소]의 한국어 자막과 나의 악연에 대해서는 여러 번 이야기한 것으로 기억한다. 2005년에 코드1 DVD로 이 영화를 본 이래로 나는 이 영화의 한국어 자막에 대해 강박적으로 매달렸다.

 - Divx 자막을 받아서 확인하고(처절한 오역이 가득했다),
 - 홍콩판 DVD를 사서 확인하고(안타깝게도 욕을 가리지 않고 번역한 것 외에는 장점이 별로 없었다. 일단 자막의 노란 색깔과 폰트가 엉망이었고, 표현은 한국어라고 말하기 민망했다),
 - 필름포럼 상영을 찾아가서 확인하고(준비 기간이 짧은 나머지 Divx 자막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었다. 자막이 오역투성이이니 고쳐달라고 지적했고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
 - 내가 직접 자막을 만들어 보고(배포한 적은 없다),
 -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한다기에 감히 내 자막을 보내 보고(물론 그대로 사용되지는 않았고 극장 상영에 맞게 많이 수정되었다. 어쨌든 지금까지 공식적인 상영에 사용된 자막 중에서는 가장 좋은 자막이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 한국판 DVD가 나온다기에 20세기 폭스에 메일을 보내 내가 자막을 검수하면 안 되겠냐고 해보고(답은 없었다. 20세기 폭스는 DVD 제작을 한 게 아니라 MGM 아시아 지부로부터 타이틀을 받아 공급만 한 것이었다),
 - 한국판 DVD를 사서 확인해 보고(슬프게도 홍콩판 DVD을 그대로 가져왔다),
 - 마침내 작년에 일본 소니 엔터테인먼트에서 출시한 Ultimate Edition 버전 DVD도 구입해 보았다.

 이 마지막 것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기에 여기서 간략하게 언급해 보자면…

 홍콩판과 한국판이 미국판을 가져오되 본편에 있는 음성해설 셋을 누락한 반면 일본판은 미국판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게다가 한층 더 나아가 미국판에 없는 DTS 트랙을 넣었다. 놀라운 점은 본편 뿐만 아니라 세 편의 음성해설에도 모두 한국어 자막이 있다는 것. 나는 본편 한국어 자막 확인 외에도 음성해설의 한국어 자막 때문에 이 DVD를 구입했다. 정말 기뻤던 건 이 음성해설은 일본측에서 DVD를 만들면서 번역을 한 것이기에 홍콩/한국판의 한국어 자막 담당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번역을 했다는 것이다. 음성해설의 번역이 정말 잘 되어 있다(오역이 두어 개 있긴 했는데 그 정도야 뭐).

 한편, 본편 자막은, 나는 처음 몇 분 정도를 보고 "홍콩판과 똑같잖아!"하면서 크게 실망했다. 홍콩판의 한국어 자막은 워낙에 그 어투가 특이해서(이를테면 "fuck"은 반드시 "우라질"로 번역한다)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음성해설을 켜놓고 보는 과정에서 음성해설 진행자들이 잠시 말을 멈추고 있으면 본편의 대사가 자막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걸 보니 홍콩판 번역과 다른 부분도 있는 거다. 몇 부분을 확인해보았는데 결과적으로 말하면 일본판 DVD의 한국어 자막은 홍콩판 DVD를 기반으로 하되 일부분을 수정한 듯하다. 전체를 다 보지는 않아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앞부분에는 분명 오역이 있었고) 아마 이 정도면 상영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기대하고 있다. 일단 폰트나 자막 색깔부터가 월등히 좋으니.

 여담이지만, [성난 황소]의 한국어 자막에 실망하는 법은 간단하다. 첫 장면에서 1964년의 제이크 라 모타가 무대 대사를 연습하는 도중 "A horse! A Horse! My kingdom for a horse!"라는 대사를 읊는다. 아직까지 내가 본 바로는 그 대사를 제대로 번역한 한국어 자막이 없었다(서울아트시네마는 어땠더라? 흐음…). 그 대사는 제이크가 셰익스피어를 인용하는 것으로, [리처드 3세]에서 리처드 3세가 전장에서 말을 잃은 뒤 "말을 다오! 말을! 말 한 마리만 주면 내 왕국을 주겠다!"고 절규하는 것인데 흔히 "말! 말! 내 말의 왕국이여!"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번역되었다. 사실 상징 의미는 부여할 수 있을지언정 영화 내용 자체를 오해하게 만들 정도로 큰 오역은 아니니까 봐줄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언제나 거기서 이미 실망하곤 했다. (그런데 사실 못 봐 줄 정도로 엄청나게 큰 오역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오역이 지나치게 잦으면 도저히 영화에 집중할 수 없다)
 어쨌든 DVD가 그렇게 나와버려서 [성난 황소]의 좋은 한국어 자막을 즐기는 건 힘들어졌다. 먼 훗날 차세대 매체든 차차세대 매체든 [성난 황소]가 다시 한 번 출시될 때를 기약하는 수밖에. 우습게도, 나는 저 많은 난리를 친 끝에 [성난 황소]를 영어 자막 없이도 볼 수 있게 되었고, 내 DVD 장에는 [성난 황소] DVD가 네 종 꽂혀 있다(웃긴 건 그게 미국, 홍콩, 한국, 일본판이 아니라 미국판 둘에 한국, 일본판이라는 점이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가에 관해서는 또 언젠가 얘기할 날이 있겠지. 홍콩판은 내게 마틴 스콜세지를 소개해 준 애인에게 선물했다).


 덧 넷. [성난 황소]의 O.S.T.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반이다. 디스크 두 장에 서른여섯 곡의 음악(트랙 수는 37트랙. 한 트랙은 극중 제이크의 무대 대사 트랙)을 수록하고 있는데 처음 이 음반을 들었을 때 극수소의 곡을 제외하고는 도무지 영화 속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당황했다. 음악이 너무나 장면에 잘 들어맞아서 아예 음악으로서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스콜세지가 상당수의 음악들을 전면에 드러나게 하는 대신 창문 밖 어딘가의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듯이 사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음악들을 영화 속에서 들어보려고 한 덕분에 영화 속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실 이 글도 [성난 황소]의 소리에 관해서 이야기하고자 쓰기 시작한 글이었으나…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은 영화가 있는 법이다.


 덧 다섯. 스노우캣이 그린 [성난 황소]를 좋아한다.
by sabbath | 2007/03/31 22:01 | 영화 감상문 | 트랙백 | 덧글(28)
트랙백 주소 : http://sabbath.egloos.com/tb/153837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dabi at 2007/04/01 04:58
정말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충격 at 2007/04/01 08:16
일본판 음성해설 사이사이 나오는 본편자막은 실제 본편자막을 유용한 것이 아니라
일본판에서 새로 음성해설 번역을 맡은 번역자가 임의로 넣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것일
공산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그 부분만 실제 본편자막과 대조해보시면 확인되겠네요.
Commented at 2007/04/01 09:0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4/01 09:40
dabi /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4/01 10:08
충격 / 저도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서플에서 발췌하는 본편 영상의 자막이 본편과 다른 경우 같은 건 굉장히 흔하잖아요) 그 부분도 확인한 뒤 쓴 것입니다^^ 분명히 일본판에서 수정된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이크가 비키 꼬시면서 "아름답단말 들어봤어? 항상 듣겠지."하는 대사가 홍콩판에서는 "아름답단말 들어봤어?" 다음에 비키가 그 말을 받아서 "항상 들어요." -_- 라고 하는 식으로 번역했는데 이것이 제대로 수정됐죠. 아무튼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4/01 10:08
비공개 / 아뇨, 제가 아닐 거예요. 수염도 머리도 안 기릅니다(머리는 방치하니까 가끔은 '기른다'고 말할 수 있는 길이가 되기도 하겠지만 최근 몇 달 간은 아니고, 수염은 한때 기른 적이 있었지만 요즘은 날마다 면도해요). 3월 16일에 한 번 말씀하신 것과 같은 상황을 연출한 바는 있지만요.
Commented by 고재필 at 2007/04/01 11:04
뭉클했던 기억을 되살려주네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oIHLo at 2007/04/01 14:40
전에 위성방송에서 방영하던 것을 보았는데, 그것도 자막이 제대로 되었을지는 모르겠네요.
중간부터 보기 시작해서... (슈거 레이 로빈슨과의 경기 전에 마피아 사람들이 와서 유세부리는 장면부터로 기억합니다.)
정말 푹 빠져 봤습니다. HD로 이 영상을 다시 접하니 필름만한 감흥은 없었지만, 그래도 다시 봐도 대단하더군요.
Commented at 2007/04/01 15:2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4/01 18:34
oIHLo / 그 외에 시네마테크 부산의 "월드시네마 III", 대전 아트시네마의 "대전 둔지미 영화제", 대구 동성아트홀의 "시네필의 향연-고전영화특별전"에서도 상영했으니 더 나은 공식적 자막이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요.

(그나저나 슈거 레이 로빈슨과의 경기 전에 마피아들이 유세부리는 장면은 없습니다^^; 아마 말씀하신 부분은 마르셀 세르단과의 타이틀전 직전에 비가 와서 경기가 하루 연기되는 바람에 호텔방에서 성질 부리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토미가 격려차 왔다 가는데 비키가 작별 인사하면서 키스했다고 제이크가 때리는…)

그런데 한국어 자막 위성방송에 HD라… 저는 통 모르는 또 다른 TV의 세계가 있군요 O.O 물론 필름에 비할 수는 없는 거지만 DVD보다는 HD가 더… 흠, 하루빨리 차세대 매체가 널리 퍼지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4/01 18:37
비공개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많은 마술들이 그러하듯 영화 속 신기한 장면들의 핵심 비결도 대게는 무척 간단해서 알고 보면 맥빠지기까지 하죠(물론 숙련도의 문제가 있으니 마술사가 트릭을 가르쳐 준다고 해서 바로 그 정도 수준으로 따라할 수는 없는 거지만). 타이틀전 스테디캠 롱테이크에서 마지막에 카메라가 공중에 뜬 것은─스테디캠 기사가 제이크 뒤를 따라가다가 링에 이르면 크레인 위에 올라서고, 그러면 크레인이 스테디캠 기사를 들어올린 겁니다. 나참, 콜럼버스의 달걀 운운하는 얘기가 괜히 생긴 게 아니라니까요.
Commented by 『한군』 at 2007/04/01 20:25
역시, 자막의 오역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작품이겠죠?
그냥 영어 자막으로 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4/01 22:22
『한군』 / 한국판 DVD에 수록된 한국어 자막이 뭐 몽땅 틀린 것도 아니고 줄거리 이해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니까(그리고 얘들이 욕을 참 많이 한다는 것도─농담 아닙니다. 이런 건 보통 한국어 자막으로는 알 수 없지요. 이 영화에서 faggot이라는 욕이 자주 나온다는 게 동성애 해석으로 보자면 의미있을 가능성이 꽤 되지 않겠습니까?) 한국어 자막으로 한 번 보시고 영어 자막으로 다시 보시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듯합니다.
Commented by 『한군』 at 2007/04/01 23:21
sabbath///[빌리 엘리어트] 였나요. 그 영화에서도 주인공 빌리는 성깔있는 탄광촌 녀석답게 입에 욕을 달고 사는데, 한국어 번역에서는 욕이 다 사라져서 빌리의 성격이 조신한 아이처럼 되어 버렸다는 얘기가 생각나네요. -_-
Commented by oIHLo at 2007/04/02 00:59
아, 그 부분이 맞네요. 참 제 기억력이란 -_-
Commented by sisters at 2007/04/05 21:21
사바스님. 현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잡지를 발간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현재 필진을 구하고 있는데. 저는 사바스님이 해주셨으면 합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blog.naver.com/mbc7980에 한번 들러주세요. 저도 잡지의 필진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학생인데, 저보단 사바스님이 그곳에 적절한 분 같아 추천하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4/06 16:04
sisters / 소개해주신 곳은 제가 알고 있는 곳이군요. 실제로 잡지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별로 생각이 없네요.
Commented at 2007/04/10 21:4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4/10 23:01
비공개 / 그거 감상문이 아니라 감상문을 쓰지 못한 이유에 관한 글이어서, 처음 쓸 때는 이런 것도 괜찮지 않나 하면서 써봤는데 다시 보니 지는 기분이 들어서 싫었어.
Commented at 2007/04/13 01:4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4/13 07:57
비공개 / You can write in Englsh! ;-)

불완전할 것을 알면서도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불완전할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요. 어차피 하나의 매개를 통해서 의미가 전달되는 순간 그 의미는 '불순'해지겠지만 그게 나쁜 것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야 사실 나랑 상대방만 알면 그만이지만 영화의 경우에는 어떻게든 더 널리 퍼뜨려야겠다는 욕심도 개입하는지라 말하는 것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아마 저를 가장 기쁘게 하는 건 이 글을 읽은 사람이 [성난 황소]를 다시 보는 것일 거예요.

이상, 비공개 덧글을 달면서 사랑한다는 말도 안하고 그냥 가냐 이 쿨한 년아, 라고 생각하고 있는 애인님이었습니다. 오늘밤에 만나요♡
Commented at 2007/04/14 10:4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4/14 21:30
비공개 / 올린 이미지들은 제가 DVD에서 캡처한 뒤에 이미지 뷰어 프로그램인 ACDSee를 이용해 테두리의 검은 부분을 잘라내고 제가 사용하는 이글루스 스킨의 글쓰기 창 너비에 맞게 크기를 조절한 뒤에 올린 것입니다. 캡처의 경우 제가 컴퓨터로 DVD를 볼 때 쓰는 재생 프로그램인 Power DVD로 하고요. 거기 캡처 메뉴가 있거든요. 참고로 아나몰픽 화면을 담은 DVD의 경우 캡처할 때 Captured Aspect Ratio를 Original video source size가 아니라 Current video window size로 해놓고 캡처를 해야 화면비가 맞아요.
Commented by N. at 2007/04/19 02:04
ㅠ.ㅠ
Commented by forveritas at 2007/05/02 03:11
영화 속에 이런 것들도 있었다니 ㅋ 지금 당장 다시 달려가서 성난 황소를 다시금 보고 싶은 생각!.
제이크가 비키를 데리고 처음 집에 데리고 같을 때, '카메라가 킬킬 거리는 게 들리는 것 같다'는 말 완전 공감해요. 비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카메라도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장면이란 ㅎ
Commented by wideawake at 2007/05/03 01:22
보고 나서 한시라도 빨리 그에 대해 평하고픈 영화가 있는가 하면, 때론 너무나 경외하는 나머지 그 영화에 대해서 쓸 엄두가 나지 않는 영화가 있습니다. '성난 황소'는 제게 바로 그런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 감히 뭐라 말을 하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영화에 담긴 모든 것들을 올려다보는 거죠. 이 영화에 대해 쓰실 수 있었던 sabbath님이 부럽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영화의 핵심을 잘 쓰실 수 있었던 것도.

그건 그렇고 어느 선배에게 '레이징 불의 오프닝이 시작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간 드 팔마에게 이유를 묻자 저런 걸 봤는데 더 이상 남은 영화를 볼 필요가 있는가!!' 란 식의 야담을 들은 적이 있는데, 사실일까요? 타란티노와의 대담에서 오프닝 얘기를 하긴 했는데 저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고.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5/04 11:13
forveritas / 고마우이. 내 글을 읽고 다시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거야말로 내가 바랄 수 있는 최대의 찬사지.

하도 사람들이 폭력 폭력 해서 그렇지 사실 마틴 스콜세지는 유머 감각이 넘치는 감독이란 말이야. 그것도 영화 안에서 인물들이 하는 짓을 담아내는 영화 형식을 가지고 유머를 만드는, 독특한 감각의 소유자랄까. [특근]이 대표적인 예일 테고… [카지노]에서 편집을 가지고 유머를 만드는 솜씨에 까무라쳤던 게 아직도 생생히 기억 나.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5/04 11:20
wideawake / 아… 되게 힘들었어요. 그런 영화들, 많죠. 그래도 며칠, 몇 개월, 몇 년을 담아두고 계속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사고가 포화 상태에 이르러서 글로 풀어내야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 같아요. 요즘 저는 제가 영화 감상문을 씀으로서 그 영화에 대한 집착을 떠나보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간단히 예를 들어 말하자면 이 글을 쓴 이후에는 굳이 [성난 황소]를 "Best 10" 목록에 넣으면서 묶어두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는달까요. 더 편하게 볼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고.

말씀하신 야담은 사실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랬으면 타란티노에게(그 대담은 제 블로그의 '스크랩' 카테고리에 있습니다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요? 무엇보다도 드 팔마는 제이크 라 모타가 마르셀 세단과의 챔피언전을 치르기 위해 링으로 향하는 과정을 담은 스테디캠 롱테이크가 대단했고 그걸 본 다음부터 자신도 스테디캠 롱테이크를 더 잘 찍으려고 했다고 말하기까지 했는 걸요 :-) 그러고보니 스콜세지가 없었더라면 [언터처블], [칼리토], [스네이크 아이즈] 등에 나오는 이 악물고 찍은 듯한 스테디캠 롱테이크를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