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1994)]
 임권택의 [태백산맥]을 보았다. 임권택 DVD 박스 세트를 수개월 전에 사 두고도 여태껏 [춘향뎐(2000)]만을 두고두고 보느라 다른 작품을 보지 않고 있다가 [천년학(2007)] 개봉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서편제(1993)]를 꺼내 보았더니 그제야 다른 작품이 손에 잡히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사실 지난주에 보았던 [서편제]는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것치고는 충분히 와 닿지 않아 또 다른 작품을 보기까지는 시간을 좀 두어야겠구나 하고 있었는데 어제 [천년학]을 먼저 본 친구가 '네 말대로 적응 안 된다'는 문자를 보낸 것을 보고 문득 [천년학]을 보기 전에 임권택 감독의 영화 한 편을 더 봐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열심히 본 적이 없다는 그 친구에게 아마 [천년학]이 쉽게 맞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까닭은 다른 무엇보다도 (나는 [취화선(2001)]을 통해서 보았던)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시간을 쳐내고 사건을 배치하는 편집 때문이었는데, 친구에게 말은 그리 했어도 나라고 거기에 더 익숙하다거나 할 것도 없기에 좀 더 눈과 귀를 그 리듬에 맞춰두고 싶었다.

 사실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도 있고, [축제(1996)]도 있고, 오랜만에 [취화선]을 다시 보았어도 좋았을 일인데 굳이 [태백산맥]을 꺼낸 것은 나로서도 좀 의아한 일이긴 하다. 일단 이 영화는 임권택 감독이 만든 영화 중 가장 길다. 2시간 44분. 한편 나는 근현대사는 수능에 잘 안 나온다는 이유로 좀처럼 세세히 가르쳐주지 않는 고등학교 국사 수업을 마친 뒤로 따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알려 해본 적이 없는지라 해방 직후의 좌·우 대립에 대해서도 통 알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조정래의 원작을 읽어본 적이 없다. 마지막 것은 특히 걱정이 되었는데, 예전에 읽은 임권택-정성일 대담집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에서 원작이 워낙에 베스트셀러여서 각색에도 한계가 있었고 관객들이 책을 읽었으리라는 점에 좀 더 무게를 두어 연출했으며, 일종의 책에 대한 독후감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튼, 영화를 보았다. 긴 영화들은 '아, 오늘은 왠지…'가 찾아왔을 때 봐두지 않으면 다시 기회가 오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다행히, 영화를 따라가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2시간 44분짜리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머릿속에 남는 이름은 김범우(안성기), 염상진(김명곤), 염상구(김갑수) 셋뿐이었지만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거의 거두절미하고 툭툭 들이대는 장면의 연쇄 속에서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기억하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불현듯 앞에 나왔던 장면들을 불러들이면서 형상을 갖춰 나가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한 장면이 마음의 준비 없이 갑자기 시작되면서 인물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당장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일단 그저 도리 없이 행위를 애써 따라가야만 한다(내 생각에는 거기서 따라가 보는가 아니면 '뭐 이래'하고 물러나는가에서 판가름이 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인물들이 행하는 행동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점차 이들이 (그 장면에는 등장하지도 않는) 다른 사람들과 어떠한 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서 영화의 앞과 뒤가 맞아가고 사람들도 살아나기 시작한다. 물론 그것은 각각의 장면이 그 순간 가장 중요한 요소를 붙들고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나는 이런 영화들을 만날 때 기쁨을 느낀다. 이들은 관객이 못 쫓아올까봐 거듭거듭 중언부언하거나 아예 발길질을 해대며 내모는 대신에 각각의 장면에서 중심이 되는 부분을 제대로 보여주기만 한다면 관객이 앞을 기억하고 뒤를 맞추며 따라와 줄 것이라고 믿어주는 영화다. 말하자면 '불러들이는' 영화. 극의 구조를 완성하는 일을 기꺼이 보는 사람에게 맡기면서 그 안에서 함께 묻어가자고 청하는 그 태도가 나를 감읍하게 하고, 필사적으로 함께 가고 싶어지게 한다. 그래서 나는 정신없이 보았다.
 [태백산맥]은 그 안에서, 다시 말하지만 2시간 44분 동안, 3년의 세월을 펼쳤다 접어내고 다시 펼치기를 반복하며 풀어낸다. 그 때 그 세월의 속도와 무게에 숨이 막힌다. 1948년 10월의 여순 반란사건으로 시작한 영화가 얼마 지나지 않아 좌익의 벌교 점령으로 넘어갔다가 며칠 되지도 않아 다시 우익의 점령으로 옮겨갔을 때, 나는 거의 아찔해졌다. 거기까지 10분이다. 설마 이 밀도와 속도로 그 길이를 감당하겠다는 걸까, 라고 생각했을 때 [태백산맥]은 정말로 그러고 있었다. 그 길이로 그 세월을 담으려드는 한국 영화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 앞에 무릎을 꿇고 싶었다. 물론 이 말은 '우리나라도 이렇게 긴 영화를 찍다니!'라는 말이 아니다. 2시간 20분짜리 [타짜(2006)]가 대대적인 흥행 몰이를 한 시대인데 상영시간가지고 놀랄까.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우리나라의 시간이다. 좌익과 우익이 자신들 외의 모든 다른 사람들을 인질삼아 살육을 반복하는 3년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눈 돌리는 일 없이 냉정하게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 '버리는', 이걸 담아내고야 말겠다는 그 징한 고집이 진을 빠지게 한다.
 (그런 면에서 [태백산맥]을 보는 내 머릿속에 떠오른 영화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復讐するは我にあり, 1979)]과 최양일의 [피와 뼈(血と骨, 2004)]였다. 아마 이 영화들의 힘 또한 해석 불가능한 무뢰한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에 소개된 흥미로운 사건. 최양일은 [태백산맥]의 촬영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징한 고집이 담아내는 광경은 고집보다 더 징하다. 많은 사람들이 미쳐서 서로를 죽이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영화가 막 시작하고 김범우가 처음 등장하여 벌교의 길거리를 거닐다 보는 것은 우익 진압군 한 사람이 백주대낮에, 바로 옆에 다른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 데, 아무렇지도 않게 권총으로 사람의 등을 쏘는 모습이다. 멀찍이서 펼쳐지는 그 참혹하리만큼 무심한 죽음을 보고 있으면 제발 좀 말려달라는 심정이 되는데, 이야기는 그게 시작이다. 빨치산들이 숨어있는 산 아래의 마을, 낮에 우익 세력이 와서 마을의 '빨갱이'들을 잡아죽이고 나면 밤에 좌익 세력이 산에서 내려와 '반동분자'들을 처단한다. 이념 자체에는 관심이 없는 마을 사람들이라고 멀뚱멀뚱 앉아서 당하는 게 아니다. 적극적으로 당한다. 우익 세력들이 와서 좌익 세력에 대해 모른 척 하는 마을 남자 한 명을 임의로 끌어내어 그 자리에서 처형하고자 하자 그의 아내가 울부짖으며 달려 나와 밀고를 시작한다. 밀고는 거의 필사적이다. 물론 그 중에 좌익 사상가는 아무도 없다. 아줌마 남편이 빨치산 들어갔잖아, 아저씨 아들이 들어갔잖아, 영감은 소를 줬잖아(사실 그 노인은 전날 밤 빨치산들에게 소를 강제로 빼앗기고 주저앉아 운 사람인데!). 모두 죽는다. 그러면 밤에 찾아온 좌익 세력들은 다시 그 밀고자 부부를 죽인다. 결국 우익은 마을 사람들을 몰아낸 뒤 마을을 불태운다. 영화는 이걸 굉장히 짧은 장면의 연쇄로 담아내어 한 장면에 한 쪽씩 죽어나가기를 양쪽에서 반복하는 일종의 몽타주를 만든다. 기계적인 보복의 리듬.
 물론 죽이는 사람도 죽는 사람도 기계는 아니므로 그 징한 살육은 무덤덤하게 볼 수 없다. 이건 '그들도 사람이었다' 류의 체면치레, 참혹한 죽음 속에서 흘리는 눈물과 부르짖음 같은 상투적(이어서는 안 되겠지만 상투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에는 다만 '너는 어느 쪽이냐'는 기계적인 이분법과 살육의 논리에 인간의 망설임, 정분, 염치, 증오, 광신을 갖다 붙였을 때 나오는 막막함만이 가득하다. 빨치산의 아내와 정사 중에 이웃 아낙이 집을 찾아오자 장지문에서 보이지 않는 방 귀퉁이로 숨는 염상구, 처음 만난 홀아비와 과부 사이에 벌어지는 은근한 육담, 빨갱이 자식이라고 놀린 아이를 두들겨 팬 뒤 집구석에 숨은 염상진의 아들과 염상진의 처에게 욕설을 퍼붓는 맞은 아이의 어미, 선거 때 상대편에 붙었던 이를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의원, 지주이면서도 좌익에게 죽지 않은 아비를 두었다는 이유로 김범우에게 린치를 가하는 죽은 지주의 아들들……. 좋았던 시절에 대한 소회나 비극에 대한 애끓는 비탄은 없이, 그들은 다만 그 안에서 인간적으로 영합하고 부딪치며 살아간다. [태백산맥]은 '이 비참한 행위를 한 그들도 알고 보면 사람이었다'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 속에서 이렇게 사람답게 미쳐간다'의 이야기다.
 그 속에서 종종 쇼트들의 아름다움은 내 마음을 꽉꽉 눌러대었다. 적은 수의 쇼트, 짧은 장면만으로 순간순간의 핵심을 짚고 넘어가며 이야기를 붙이려고 하는 창작자의 집념이 가득한 이 영화에서 각각의 쇼트들은 정말로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뭐랄까,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서 보아야 할 것을 보여주는 당연한 쇼트가 가진 아름다움이 있다. 특히 쇼트가 공간에 의지할 때 그 힘이 강해진다. 문지방을 경계로 갈라선 방 안과 방 밖의 사람들이 대화하는 모습, 도랑을 따라 철벅거리며 저 멀리 사라지는 빨치산의 모습, 김범우와 국민학교 교장이 토벌대장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벌교 읍내 거리에 선 모습. 잘 알려진 것처럼, 임권택의 영화가 자연으로 나가면 그 아찔함은 더해진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 뭐 그런 문제가 아니다. 우익 토벌군이 산 속을 뒤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이거 우리나라에서 찍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 속에 담긴 건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이 등산을 하면서 보게 되는 그 산의 모습이었다(특히 산길의 모습!). 이토록 산 많은 나라임을 고려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영화에서 그런 산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내 생각에 그 모든 쇼트의 아름다움은 각각의 풍경이 보이기를 원하는 대로 (혹은 우리가 평소에 그 풍경을 대하는 시선대로) 찍었기에 나온 것이다. 그래서 그걸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삶이 벌어지고 있는 세상의 질서가 느껴진다. 물론 그 안에서 칼질 총질을 일삼는 사람들을 보는 건 한스러운 일이다.
 [태백산맥]이 모든 면에서 뛰어난 영화가 못된다는 건 잘 안다. 알려진 버릇대로, 임권택은 가끔씩 관객들이 따라오질 못할까봐 염려하는 듯 설명하는 장면/대사를 집어넣는다. 종종 그 버릇이 영화에 잘 들어맞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춘향뎐] 끝에 이몽룡과 변학도가 짤막한 말을 주고받는 장면을 좋아한다) 이 영화에서는 아닌 경우가 더 많다. 대게 그 장면들은 거기까지 장면 연결의 논리를 따라온 관객에게는 불필요하게 여겨질 것이고, 그렇지 못한 관객에게는 허술한 구조를 감추려는 미봉책처럼 보일 것이다. 또 신인 배우들을 많이 쓰면서 배우의 능력에 크게 의지하지 않아 온 임권택의 영화에는 곧잘 난감한 연기들이 나오곤 한다. [태백산맥]에서는 신현준이 특히 그런데, 그가 오정해를 상대역으로 두고 펼치는 연기는 내가 지난 4년 간 본 것 중 최악에 속할 만했다. 이게 임권택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난점이라면 [태백산맥]만의 문제점들도 있다. 몇몇 인물들은 처치곤란 상태로 버려진 느낌이 든다(다행히, 신현준이 버려져서 그의 연기를 자주 보지 않아도 되었다). 소화(오정해)는 좀 아슬아슬하게 붙어있고, 학교 선생이자 좌익 사상가인 이지숙(과 그 연인 안창민)은 언뜻언뜻 드러나는 신여성으로서의 캐릭터는 흥미로우나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 원래 2부작으로 계획한 영화가 촬영 도중 한 편으로 줄면서 생긴 문제일수도 있고, 연출자가 인물에 정을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을 담는 질서의 쇼트, 칼로 내려치듯 잘라내며 붙여나간 장면, 그 붙임을 관객이 이해해 주리라는 믿음, 그 믿음 안에서 누구도 애써 다루려하지 않았던 시간과 공간을 끝까지 지켜보겠노라고 고집하는 의지, [태백산맥]에 담긴 그 모든 굳건함 속에서, 나는 이 영화를 껴안고 가고 싶어졌다. 이 이후에 누가 다시 이런 방식으로 그 시대를 담지는 못하리라고, 조금 서글프게 추측해보면서.






 덧 하나. 사실 난 임권택 영화에서 연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 편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연기가 많이 나와서가 아니라, 감독 스스로가 연기자에게 크게 의지하지 않은 채 영화를 찍어오면서 깊고 폭 넓은 연기를 길게 담아내기보다는 세월을 툭툭 끊어내며 그 시간 속에서 사람을 살리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종종 난감한 연기가 튀어나와도 그게 영화의 맥을 끊지 않는다고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춘향뎐(2000)]은 주인공 춘향을 연기한 이효정의 연기가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 영화가 걸작인 건 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태백산맥]의 긴 시간을 따라가면서, 차츰 그 안에서 연기도 보게 되었다.

 연기 못한 사람만 언급하면 미안하니 여기서 잠시 언급하자면─두 염씨 형제의 연기는 아주 좋았다. [서편제(1993)]만 보아서는 알 수 없었던 김명곤의 진가를 알 수 있었고 김갑수는 단연 압권이다. 어째서 저 내공을 쓰는 영화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좋았다. '에효, 저런 남편 두고 사니 이 사람 앞으로 모질게 당하면서 살겠구나' 싶었던 염상진의 처를 연기한 정경순은 초반 취조실 장면에서 이미 본때를 보여주면서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몇 장면 나오지 않지만 홀아비 빨치산과 정분을 트는 장터네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신현준의 인상이 강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평균치로 따지면 전체적으로 여자 배우들 쪽이 더 낫지 않았나 싶다.


 덧 둘.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中

 〈태백산맥〉을 이데올로기나 인물, 소설, 이런 면에서 보지 말고 영화의 미학적 형식의 입장에서 본다면 에피소드가 쌓여가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에피소드들이 쌓여간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서로 각 씬들이 자기 방식의 목소리를 가지고 씬과 씬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영화가 전개됩니다. 〈태백산맥〉을 다시 보면서 평이하다는 이야기를 드렸지만 한편으로는 형식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 씬과 쇼트별로 복기(復碁)를 비교적 잘하는 편인데, 〈태백산맥〉은 무려 세 번이나 보고 나서도 나중에 생각해보면 이 씬이 저 씬의 앞에 있었나, 뒤에 있었나가 혼란스러워서 다시 확인해야 할 만큼 각자의 씬들이 자기 목소리를 갖고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씬을 어느 씬과 붙여나갈 것인가를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씬의 몽타주 영화입니다.

이제 나는 그거요, 어떤 멜로드라마나 어떤 단조로운 배역들을 가지고 가는 일이라면 씬의 순서가 혼란스러울 리가 없잖아요. 얘기가 질서를 가지고 가고 있으니까. 내 경우에는, 또 이거는 그렇게 찍을 수가 없는 영화잖아요. 따로따로 된 에피소드들이지만 그것들이 다 모여서 총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내기를 기대하는 거지, 그것이 다 모여서 주는 어떤 인상의 효과를 노리고 찍은 거지. 어떤 주제를 향해서 가고 있는 에피소드일 뿐이지, 전(前) 씬이 이랬으니까 다음 씬이 이어받아서 다음 얘기를 하는 그런 양식은 아니고, 그렇게 찍을 수도 없는 영화요, 하도 얘기가 많이 널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제 질문은 거기에 있습니다. 〈개벽〉, 〈태백산맥〉, 〈축제〉, 〈창〉, 〈취화선〉, 이 영화들의 소재가 무엇이든지 간에, 인물이 누구든지 간에, 공통점을 지닌 영화들입니다. 감독님은 인물이 살아가는 신간을 총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90년대에 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게 〈개벽〉 이전의 영화와 이후의 영화의 가장 근본적으로 다른 점인데, 문제는 영화란 것은 그림과 달라서, 그림은 보면 전체가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영화라는 것은 하여튼 쇼트를 좇아가면서, 쇼트가 만든 씬을 좇아가면서, 그 순서를 좇아가면서 볼 수밖에 없잖습니까? 시간-질서의 예술이기 때문에. 그래서 연출의 위치를 관객이 이해하지 못하면,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드라마를 붙잡기 힘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개벽〉 이후 공통점의 하나는 처음 보면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겁니다. 처음 볼 때는! 다시 한 번 본 다음에 씬이 붙잡히고, 두 번째 볼 때 비로소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어주거든요.

……(잠시 생각) 그것 참 큰일인데.

 총체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틀림없이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지만, 이것은 총체적 안목으로 영화를, 정말 조망하듯이 관객들도 감독님의 자리에 가서 같이 내려다봐야 되는데 처음 보는 사람은 전체가 당연히 보일 수가 없지 않습니까? 왜냐면 태어나서 처음 보는 영화니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임권택의 영화가 점점 더 형식미라는 점에서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드라마는 역설적으로 점점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반비례해서요. 그래서 보는 사람에 따라서 임권택의 영화가 90년대 이후에 점점 격조가 생겨나는 만큼 차가워지고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거는, 그거에 대해서 내가 설명을 하자면 한 번 봐서 그 안에 깊이 들어가기가 힘들다는 말은, 그거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니까. 이거는 차가워질 수밖에 없는 거요. 그거는 나이요, 나이. 나이가 쌓이면서 세상을 그렇게 흥분해서 볼 이유가 차츰차츰 없어져요. 그러니까 차가워질 수밖에 없지. 냉정하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고. 어떤 우여곡절 끝에 감격적인 장면이 있다고 할지라도 젊었을 때는 그 감격 안에 인물과 같이 들어가서 함께 하는데 지금의 나이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요. 관조할 수밖에 없다고. 나이가 그렇게 되는 거요. 내가 그런 것을 알아차리고 고치자, 그렇게 한다고 해서 고쳐지지는 않는 거요, 내 나이는. 그래서 내가 자꾸 나이 배긴 영화 한다는 소리가 그런 얘기요, 그런 얘기…….

 그러면 감독님이 추구하는 총체성의 형식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래서 나는 대충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한 씬 안에서도 그 안에 있는 총체성을, 그 씬이 드러내고 있는 총체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 그 씬이 갖고 있는 어떤 인상이 모이고 쌓여서 합해지면서 큰 총체로 크게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는 쪽이거든. 사람의 감정의 우여곡절을 따라서 쫓아다닌다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는 거요.

 그러면 역설적으로 〈만다라〉와 같은 작품을 다시는 만들지 않겠네요?

힘들죠, 힘들어. 이제는…… 그건 물러서는 거니까.

 영화적으로만 얘기하면 80년대 영화에 대해서, 90년대 영화는 감독님이 설정하는 어떤 씬에 대한 영화적 개념이 완전히 다른 쪽으로 옮겨간 거네요.

그러니까 더 건너뛴 것이 〈취화선〉 같은 영화인데, 나는 중간 중간에 자막으로 그 시대를 설명하는 것을 왜 영화의 진행에 그렇게 거슬리게 넣었냐는 소리를 막 들으면서도, 그리고 그런 설명이 짤막하게 들어갔다고 해서 그것을 누가 이해하겠냐, 또 아니면 다 아는 얘기다, 이런 건데, 그거를 온전히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다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때 간단한 것만 인상에 남으면 된다는 거요. 동학이 뭐인가 새롭게, 못 살겠다는 놈들이 뭐인가 살 길을 찾아서 일어났구나, 이런 간단한 인상들만 가지고 가도 아무 불편이 없다 이거요. 다 이해할 필요가 없다 이거요. 또 가령 화론을 이야기해도 그거를 다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거요. 요컨대 그 화론을 얘기하는 핵심만 이해하면, 아, 그런 거였구나, 그런 식으로 가되, 그런 세세한 이해 밖에 또 볼 것이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 내 영화 안에는. 그러니까 앞에보다는 훨씬 건너뛰고 있는 거요, 내가. 하지만 그걸 그렇다고 빼고 가면 모르는 사람은 왼통 모르는 소리만 하는 게 되는 거요.

 그러니까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법으로 바뀐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서, 80년대 영화가 테마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영화라면 90년대 영화들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영화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거는 내가 할 이야기가 아니라, 정성일이라는 평론가가 설명해야 할 문제지요. (웃음)
by sabbath | 2007/04/16 23:55 | 영화 감상문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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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ithrandir at 2007/04/18 02:37
태백산맥에서 김명곤씨 연기 참 좋았죠. 원작의 기골 장대한 사내 이미지보다는 강단있어보이는 김명곤씨가 오히려 염상진답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태백산맥은 개봉 직후에 비디오로 봤던 것 같은데 언제 dvd로라도 다시 봐야겠네요.

김명곤씨하니까 개벽에서의 짧지만 인상적인 연기도 생각납니다. 당시 로드쇼였던가 잡지에서 올해 가장 인상적인 연기 운운하는 기사를 보고 거의 10년만에서야 보았던 영화인데, 정말로 힘이 넘치더군요. 좋은 영화에서 자주 보고 싶은 배우 중 한 명이었는데... 으음...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4/18 08:14
mithrandir / 아, 원작에서는 그런 이미지군요. 역시 (야하다던데) 읽어봐야겠습니다. 영화에서 염상진이라는 인물이 참 인상적이었던게, 정 있는 모습과 지도자로서의 냉정함이 균형을 이루면서 냉혹하다든지 알고 보면 착한 놈이라든지 하는 단순한 판단을 내리기 힘들게 한다는 점이었어요. 산 속에서 총기 점검하는 장면에서 어린 빨치산이 "저는 총알이 세 발 밖에 없는데요." 그러니까 인자하게 웃으면서 "동지가 명사수가 되면 얼마든지 주겠소."하고 대답하는 장면 같은 거요. 대사만 두고 보면 무슨 헛수작이야 싶은데 사람 얼굴을 보니 믿음이 가더군요.

DVD가 좋기는 좋아요. 물론 저는 오프닝 크레딧에서부터 아악, 스크린에서 보고 싶어! 했지만요.

[개벽]하시니 mithrandir 님께서 거의 10년만에 [개벽] 보시고 듀게에 글 올리셨던 게 기억납니다, 저는^^;; "시호! 시호!"하셨는데. 저도 보고 싶네요. KMDB에서 김명곤 씨 찾아보니 21세기에는 영화를 하지 않으셨더군요. 또 어느 감독이 좋은 배역 맡기셔서 '재발견' 소리도 듣고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at 2007/04/21 22:2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4/22 10:19
비공개 / 정성일 평론가 말에 따르면 대략 [개벽]부터 전면에 드러났다고 하는데, 저는 많이 보지 못해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최근작들은 그런 것 같아요. 본문에서도 최양일 감독 이야기를 잠깐 했습니다만 요번에 [수]를 좋게 본 사람들이 그 영화의 비어있는 틈에 대해서 얘기하던데, (저는 [수]는 충분히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것과도 어느 정도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습니다.

[천년학]은… 그것 참. 정말 개봉 일주일 조금 넘은 영화가 예술영화 전용극장 상영작처럼 돼 버렸으니. 곤란할 따름입니다. 저도 한 번 더 보고 싶은데 (엔딩 크레딧을 자르지 않는 메가박스에서는) 하루에 한 번, 점심 시간에 상영하는지라 오늘 밖에 기회가 없네요. 다음 주말에는 걸려 있을지도 의문이고 전주에 가야하니… 설마 다다음 주 까지 걸려있을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고요.
Commented by mithrandir at 2007/04/22 17:17
그러고보니 이번에 문화부 장관이 바뀌었죠. 기대해도 될까요? :-)

천년학은 내일 보지 못하면 한동안 힘들텐데, 과연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4/22 17:55
mithrandir / 보신 뒤의 소감을 기대해 버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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