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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의 [태백산맥]을 보았다. 임권택 DVD 박스 세트를 수개월 전에 사 두고도 여태껏 [춘향뎐(2000)]만을 두고두고 보느라 다른 작품을 보지 않고 있다가 [천년학(2007)] 개봉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서편제(1993)]를 꺼내 보았더니 그제야 다른 작품이 손에 잡히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사실 지난주에 보았던 [서편제]는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것치고는 충분히 와 닿지 않아 또 다른 작품을 보기까지는 시간을 좀 두어야겠구나 하고 있었는데 어제 [천년학]을 먼저 본 친구가 '네 말대로 적응 안 된다'는 문자를 보낸 것을 보고 문득 [천년학]을 보기 전에 임권택 감독의 영화 한 편을 더 봐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열심히 본 적이 없다는 그 친구에게 아마 [천년학]이 쉽게 맞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까닭은 다른 무엇보다도 (나는 [취화선(2001)]을 통해서 보았던)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시간을 쳐내고 사건을 배치하는 편집 때문이었는데, 친구에게 말은 그리 했어도 나라고 거기에 더 익숙하다거나 할 것도 없기에 좀 더 눈과 귀를 그 리듬에 맞춰두고 싶었다.
사실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도 있고, [축제(1996)]도 있고, 오랜만에 [취화선]을 다시 보았어도 좋았을 일인데 굳이 [태백산맥]을 꺼낸 것은 나로서도 좀 의아한 일이긴 하다. 일단 이 영화는 임권택 감독이 만든 영화 중 가장 길다. 2시간 44분. 한편 나는 근현대사는 수능에 잘 안 나온다는 이유로 좀처럼 세세히 가르쳐주지 않는 고등학교 국사 수업을 마친 뒤로 따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알려 해본 적이 없는지라 해방 직후의 좌·우 대립에 대해서도 통 알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조정래의 원작을 읽어본 적이 없다. 마지막 것은 특히 걱정이 되었는데, 예전에 읽은 임권택-정성일 대담집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에서 원작이 워낙에 베스트셀러여서 각색에도 한계가 있었고 관객들이 책을 읽었으리라는 점에 좀 더 무게를 두어 연출했으며, 일종의 책에 대한 독후감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튼, 영화를 보았다. 긴 영화들은 '아, 오늘은 왠지…'가 찾아왔을 때 봐두지 않으면 다시 기회가 오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다. ![]() ![]() ![]() ![]() ![]() ![]() ![]() ![]() ![]() ![]() 덧 하나. 사실 난 임권택 영화에서 연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 편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연기가 많이 나와서가 아니라, 감독 스스로가 연기자에게 크게 의지하지 않은 채 영화를 찍어오면서 깊고 폭 넓은 연기를 길게 담아내기보다는 세월을 툭툭 끊어내며 그 시간 속에서 사람을 살리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종종 난감한 연기가 튀어나와도 그게 영화의 맥을 끊지 않는다고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춘향뎐(2000)]은 주인공 춘향을 연기한 이효정의 연기가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 영화가 걸작인 건 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태백산맥]의 긴 시간을 따라가면서, 차츰 그 안에서 연기도 보게 되었다. 연기 못한 사람만 언급하면 미안하니 여기서 잠시 언급하자면─두 염씨 형제의 연기는 아주 좋았다. [서편제(1993)]만 보아서는 알 수 없었던 김명곤의 진가를 알 수 있었고 김갑수는 단연 압권이다. 어째서 저 내공을 쓰는 영화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좋았다. '에효, 저런 남편 두고 사니 이 사람 앞으로 모질게 당하면서 살겠구나' 싶었던 염상진의 처를 연기한 정경순은 초반 취조실 장면에서 이미 본때를 보여주면서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몇 장면 나오지 않지만 홀아비 빨치산과 정분을 트는 장터네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신현준의 인상이 강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평균치로 따지면 전체적으로 여자 배우들 쪽이 더 낫지 않았나 싶다. ![]() ![]() 덧 둘.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中 〈태백산맥〉을 이데올로기나 인물, 소설, 이런 면에서 보지 말고 영화의 미학적 형식의 입장에서 본다면 에피소드가 쌓여가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에피소드들이 쌓여간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서로 각 씬들이 자기 방식의 목소리를 가지고 씬과 씬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영화가 전개됩니다. 〈태백산맥〉을 다시 보면서 평이하다는 이야기를 드렸지만 한편으로는 형식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 씬과 쇼트별로 복기(復碁)를 비교적 잘하는 편인데, 〈태백산맥〉은 무려 세 번이나 보고 나서도 나중에 생각해보면 이 씬이 저 씬의 앞에 있었나, 뒤에 있었나가 혼란스러워서 다시 확인해야 할 만큼 각자의 씬들이 자기 목소리를 갖고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씬을 어느 씬과 붙여나갈 것인가를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씬의 몽타주 영화입니다.
이제 나는 그거요, 어떤 멜로드라마나 어떤 단조로운 배역들을 가지고 가는 일이라면 씬의 순서가 혼란스러울 리가 없잖아요. 얘기가 질서를 가지고 가고 있으니까. 내 경우에는, 또 이거는 그렇게 찍을 수가 없는 영화잖아요. 따로따로 된 에피소드들이지만 그것들이 다 모여서 총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내기를 기대하는 거지, 그것이 다 모여서 주는 어떤 인상의 효과를 노리고 찍은 거지. 어떤 주제를 향해서 가고 있는 에피소드일 뿐이지, 전(前) 씬이 이랬으니까 다음 씬이 이어받아서 다음 얘기를 하는 그런 양식은 아니고, 그렇게 찍을 수도 없는 영화요, 하도 얘기가 많이 널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제 질문은 거기에 있습니다. 〈개벽〉, 〈태백산맥〉, 〈축제〉, 〈창〉, 〈취화선〉, 이 영화들의 소재가 무엇이든지 간에, 인물이 누구든지 간에, 공통점을 지닌 영화들입니다. 감독님은 인물이 살아가는 신간을 총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90년대에 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게 〈개벽〉 이전의 영화와 이후의 영화의 가장 근본적으로 다른 점인데, 문제는 영화란 것은 그림과 달라서, 그림은 보면 전체가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영화라는 것은 하여튼 쇼트를 좇아가면서, 쇼트가 만든 씬을 좇아가면서, 그 순서를 좇아가면서 볼 수밖에 없잖습니까? 시간-질서의 예술이기 때문에. 그래서 연출의 위치를 관객이 이해하지 못하면,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드라마를 붙잡기 힘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개벽〉 이후 공통점의 하나는 처음 보면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겁니다. 처음 볼 때는! 다시 한 번 본 다음에 씬이 붙잡히고, 두 번째 볼 때 비로소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어주거든요. ……(잠시 생각) 그것 참 큰일인데. 총체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틀림없이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지만, 이것은 총체적 안목으로 영화를, 정말 조망하듯이 관객들도 감독님의 자리에 가서 같이 내려다봐야 되는데 처음 보는 사람은 전체가 당연히 보일 수가 없지 않습니까? 왜냐면 태어나서 처음 보는 영화니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임권택의 영화가 점점 더 형식미라는 점에서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드라마는 역설적으로 점점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반비례해서요. 그래서 보는 사람에 따라서 임권택의 영화가 90년대 이후에 점점 격조가 생겨나는 만큼 차가워지고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거는, 그거에 대해서 내가 설명을 하자면 한 번 봐서 그 안에 깊이 들어가기가 힘들다는 말은, 그거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니까. 이거는 차가워질 수밖에 없는 거요. 그거는 나이요, 나이. 나이가 쌓이면서 세상을 그렇게 흥분해서 볼 이유가 차츰차츰 없어져요. 그러니까 차가워질 수밖에 없지. 냉정하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고. 어떤 우여곡절 끝에 감격적인 장면이 있다고 할지라도 젊었을 때는 그 감격 안에 인물과 같이 들어가서 함께 하는데 지금의 나이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요. 관조할 수밖에 없다고. 나이가 그렇게 되는 거요. 내가 그런 것을 알아차리고 고치자, 그렇게 한다고 해서 고쳐지지는 않는 거요, 내 나이는. 그래서 내가 자꾸 나이 배긴 영화 한다는 소리가 그런 얘기요, 그런 얘기……. 그러면 감독님이 추구하는 총체성의 형식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래서 나는 대충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한 씬 안에서도 그 안에 있는 총체성을, 그 씬이 드러내고 있는 총체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 그 씬이 갖고 있는 어떤 인상이 모이고 쌓여서 합해지면서 큰 총체로 크게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는 쪽이거든. 사람의 감정의 우여곡절을 따라서 쫓아다닌다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는 거요. 그러면 역설적으로 〈만다라〉와 같은 작품을 다시는 만들지 않겠네요? 힘들죠, 힘들어. 이제는…… 그건 물러서는 거니까. 영화적으로만 얘기하면 80년대 영화에 대해서, 90년대 영화는 감독님이 설정하는 어떤 씬에 대한 영화적 개념이 완전히 다른 쪽으로 옮겨간 거네요. 그러니까 더 건너뛴 것이 〈취화선〉 같은 영화인데, 나는 중간 중간에 자막으로 그 시대를 설명하는 것을 왜 영화의 진행에 그렇게 거슬리게 넣었냐는 소리를 막 들으면서도, 그리고 그런 설명이 짤막하게 들어갔다고 해서 그것을 누가 이해하겠냐, 또 아니면 다 아는 얘기다, 이런 건데, 그거를 온전히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다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때 간단한 것만 인상에 남으면 된다는 거요. 동학이 뭐인가 새롭게, 못 살겠다는 놈들이 뭐인가 살 길을 찾아서 일어났구나, 이런 간단한 인상들만 가지고 가도 아무 불편이 없다 이거요. 다 이해할 필요가 없다 이거요. 또 가령 화론을 이야기해도 그거를 다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거요. 요컨대 그 화론을 얘기하는 핵심만 이해하면, 아, 그런 거였구나, 그런 식으로 가되, 그런 세세한 이해 밖에 또 볼 것이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 내 영화 안에는. 그러니까 앞에보다는 훨씬 건너뛰고 있는 거요, 내가. 하지만 그걸 그렇다고 빼고 가면 모르는 사람은 왼통 모르는 소리만 하는 게 되는 거요. 그러니까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법으로 바뀐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서, 80년대 영화가 테마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영화라면 90년대 영화들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영화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거는 내가 할 이야기가 아니라, 정성일이라는 평론가가 설명해야 할 문제지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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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한 글 잘 읽었습니다..
by kinoeyes at 08/19 말씀하신대로 류승완 감.. by sabbath at 08/17 참 말할 거리가 많은 영.. by 파인로 at 08/17 그쵸. 사실상 모든 프랑.. by sabbath at 08/16 아, 그것은… 저도 무.. by sabbath at 08/16 저도 그 글을 읽어보았.. by sabbath at 08/16 제작사 외유내강 측의 .. by sabbath at 08/16 소식 고맙습니다! 포스터.. by sabbath at 08/16 가끔은 너무 만든 사람에.. by sabbath at 08/16 먼저 안 보신 분들께는 .. by sabbath at 08/16 저도 만주 벌판 액션이 참.. by sabbath at 08/16 [다찌마와 리] 속편 또.. by sabbath at 08/16 오오, 드디어 올리셨군.. by Sion at 08/16 드팔마를 떠올리는 장면.. by 다찌대박 at 08/16 저는 그놈의 잘생겼다!가.. by 은혈의륜 at 08/16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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