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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유한 상인이 있었다. 그는 평생을 재산 불리기에 바친 끝에 세상을 다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풍족한 부를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나이가 들어 몸은 비대해지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허옇고 덥수룩해진 채, 젊고 야심 없는 비서 한 사람만을 데리고 특별히 가는 곳도 없이 그렇게 자신의 거대한 저택 안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그에게 낙이라고는 그저 평생을 모아온 사업 장부들을 비서에게 읽게 한 뒤 가만히 앉아 그 기록들을 들으면서 자신이 과거에 거두었던 승리를 되새기는 것뿐이었다.
어느 날 밤, 또 한 권의 장부 읽기를 마친 비서는 방 안에 있는 모든 장부를 두 번 이상씩 되풀이해 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인이 그에게 그럼 장부 말고 다른 사람들이 읽는 것 같은 책을 읽어보라고 하자 그는 성경의 이사야서를 읽었다. 허구의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노인은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비서는 선지자의 예언이라고 답했다. 예언이라고? 이미 일어난 일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아온 노인은 그런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무리 글을 읽어주어도 그 내용을 완강히 부인하는 노인 앞에서 비서는 포기하고 돌아서려 했다. 그 때, 노인은 이야기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겠다며 자신이 과거 배를 타고 다닐 때 선원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 옛날, 어느 부유한 노인이 있었다. 어느 날 그 노인은 길가를 지나다 한 선원을 보고 말을 걸었다. "자네는 참 잘생긴 청년이로군. 오늘 밤 5기니를 벌어보지 않겠는가?" 선원은 흔쾌히 노인을 따라 나섰고, 호화로운 저녁을 대접받은 뒤, 침실로 안내되었다. 그 침실 안에는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 벌거벗은 채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노인이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비서는 자신도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놀라는 노인에게, 그는 그런 이야기는 세계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저 선원들 사이에 퍼져 있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다면 그 이야기를 진실로 만들겠노라고 선언했다. 그는 자신이 이야기 속의 노인 역을 맡을 테고 직접 거리에 나가 선원을 고를 터이니 이야기에 등장할 여자를 찾아놓으라고 명령했다. 비서는 그렇게 했다. 마침내 어느 날 밤, 이야기 속의 세 사람이 차례로 등장했다. 세 사람 모두 자신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이미 알고 있었고, 그들은 이야기를 재현하여 사실로 만들었다. 이야기를 마쳤을 때, 그들은 모두 떠나야했다. 떠나가는 선원 뒤에서, 비서가 말했다. "이제 당신은 사람들에게 진실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군요." 선원은 대답했다. "아뇨, 결코 말하지 않을 겁니다. 5기니가 아니라 500기니를 준다고 한들 이 이야기는 말하지 않으렵니다." 선원은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떠나야 했고, 여자는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보내야 했으며, 노인이 완성한 '진실'은 그렇게 영원히 세상에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1970년부터 1985년까지 오슨 웰스와 교류하며 작품에 함께 했던 촬영감독 게리 그레이버와 게리의 아내 질리언 그레이버는 웰스로부터 개인 소장품이었던 필름들을 건네받았다. 그 필름들에는 웰스의 유명한 작품들 외에도 스크린 테스트 촬영본이랄지 미완성작들의 촬영본 등 웰스가 생전에 작업하며 남긴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82년 즈음 L.A.에 오슨 웰스 필름 아카이브를 만들어 그 필름들을 보존하는 동시에 전 세계 시네마테크 등을 돌아다니며 웰스의 영화들을 상영하였다. 2006년 11월 16일 게리 그레이버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뜬 뒤에도 질리언은 그 일을 계속해왔다. 2007년 5월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열린 "오슨 웰스 특별전"은 바로 그 오슨 웰스 필름 아카이브의 협찬을 통해 이루어졌고, 질리언 그레이버는 남편의 50년지기 친구이자 역시 오슨 웰스와 종종 작업을 함께 했던 글렌 제이콥슨과 함께 한국을 찾아 강연을 했다. 이 상영회는 6월 1일부터 서울의 서울아트시네마에서도 열렸으며, 그레이버와 제이콥슨은 여기에도 참석하여 역시 세 번의 강연을 했다. 6월 2일, 서울아트시네마의 4회차 상영─게리 그레이버가 연출한 오슨 웰스 다큐멘터리인 [오슨 웰스와 일하며(Working on Orson Welles, 1993)]─이 끝나고 이뤄진 강연도 그 중 하나였다. 두 개의 언어가 통역을 통해 오가면서 이루어지는 강연이라는 게 대게 그렇듯이 분위기는 좀 느슨했다. 더불어 질리언 그레이버는 영화에 관한 흥미로운 견해나 분석을 제시하는 평론가는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웰스에 관한 재미나고 주목할 만한 일화들을 많이 들려주지도 못했다. 아마 그녀의 강연은 오슨 웰스의 영화를 몇 편 보았고 이미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웰스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강연 도중, (적어도 내게는)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질리언 그레이버는 게리와 자신은 웰스의 [악의 손길(Touch of Evil, 1958)]을 가장 좋아한다면서 영화의 도입부에 나오는 저 유명한 "10분짜리 롱테이크"를 언급했다. 그건 좀 듣고 있기 부끄러워지는, 난감한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악의 손길]의 도입부 롱테이크는 사실 3분이 조금 넘을 뿐이기 때문이다. [악의 손길]은 웰스의 영화 중에서도 그렇게 보기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DVD가 출시되어 있을 정도(지금은 절판됐지만)이니 오죽할까. 그런데 정말 재밌게도, 이 [악의 손길]의 도입부 롱테이크 길이를 잘못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통은 3분이 좀 넘는다는 식으로 언급이 되긴 하지만 8분이라느니 10분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도 그리 낯설지는 않다. 아마 이런 오해는 어느 정도는 로버트 알트먼의 [플레이어(The Player, 1992)] 때문일 것이다. 할리우드의 제작 풍조에 대한 풍자극인 이 영화의 도입부는 8분에 이르는 롱테이크로 이루어져 있는데, 알트먼은 여기서 인물들의 입을 빌려 다른 영화 속의 롱테이크들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이 롱테이크를 '일부러' 롱테이크로 찍었다는 것을 밝힌다. 그 중 한 대목 ─ "요즘 영화들은 죄다 MTV 식이야. 컷, 컷, 컷!" "웰스가 찍은 [악의 손길]의 오프닝 쇼트는 6분 30초짜리죠." "6분 30초라고?" "아니 뭐, 아무튼 한 3, 4분쯤은 돼요." (혹은 이를테면 2007년 6월 4일 현재 Wikipedia의 Touch of Evil 항목을 보시길 : The opening shot is discussed briefly in the opening of Robert Altman's 1992 film, The Player, by two characters who work for a fictional Hollywood studio. The shot in which the discussion takes place is itself a similar type of extended, uninterrupted tracking shot that spans the first eight minutes of Touch of Evil. 번역하면 ─ 이 영화의 오프닝 쇼트는 로버트 알트먼의 1992년작 [플레이어]의 오프닝에서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두 등장인물들을 통해 짧게 언급된다. 그 대화가 등장하는 쇼트 자체가 [악의 손길] 초반 8분을 떠올리게 하는 긴 원테이크 트랙킹 쇼트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하나의 예일 뿐이지만, 오슨 웰스의 영화에 있어서 이런 식의 오해는 끝이 없다. [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이 너무나도 교과서적으로 소개된 끝에 생겨난 가공할 거짓말을 생각해 보시라 ─ 오슨 웰스와 촬영감독 그렉 톨랜드가 딥 포커스를 '발명'했다고? 혹은 그냥 더 간편하고 더 무책임한 오해. [시민 케인]은 그토록 보기만 해도 졸립고 암만 봐도 이딴 게 왜 "영화 사상 최고 걸작"인지는 알 수 없는 낡아빠진 고전 흑백 예술 영화인가? 혹은, '천재' 오슨 웰스는 그 끝없는 완벽주의와 오만함 때문에 제작사 입장은 생각도 않고 제작비를 마구 써댔으며 흥행에는 신경도 안 쓰고 그냥 자기 만들고 싶은 것만 꼴리는 대로 만들었는가? 이런 증거 불충분의 오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감독이 얼마나 영화가 아니라 말로써 그 이미지가 쌓여온 감독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마치 정밀한 거짓의 구조물들에 둘러싸인 것만 같은 그 모습. 심지어 그에 대해서 면밀하게 탐구하는 이들조차도 모든 거짓을 헤치고 완전한 진실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혹은, 모든 예술가들의 진실은 그토록 탐구 불가능한 것이겠지만 이처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무지를 깨닫게 하며 그 앞에서 좌절토록 하는 (혹은 그 때문에 더욱 매달리고 싶게끔 하는) 이는 없다. 대체 찰스 포스터 케인은 어떤 사람이었고 "로즈버드"는 무엇이란 말인가? 라는 질문은 사실은 찰스 포스터 케인을 연기하고 로즈버드라는 말을 읊조린 오슨 웰스를 위한 질문과도 같다. [오셀로(The Tragedy of Othello: The Moor of Venice, 1952)]를 보았다. 오슨 웰스의 셰익스피어 영화를 따라잡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그건 오슨 웰스의 문제이기 이전에 셰익스피어의 문제이기도 하다. 영어 혹은 셰익스피어에 능통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라 한국어 자막이 기를 쓰고 달려들어도) 그 현란한 대사들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게다가 웰스는 그 어려움을 더욱 크게 만든다. 제작비가 없어서 다른 감독들의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여 돈을 번 뒤 그 돈으로 영화를 찍는 방식으로 4년 동안 틈틈이 찍어 붙여 만든 [오셀로]는 정말 엄청난 속도를 자랑한다. 무엇보다도 일단 영화가 90여분에 불과하다. 여기서 웰스는 롱테이크 이상으로 짧은 컷들을 자주 사용했다. 솔직히 말해서 순식간에 휙휙 바뀌고 있는 컷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한국어 자막을 보고 셰익스피어 대사를 읽는다는 것은 환장할 노릇이다. 물론 쇼트는 종종 기막히게 아름답다. 특히 대사 한 마디 없이 진행되는 오프닝의 인상은 압도적이다. 하지만 아무튼 그 멋진 베니스에서 오셀로와 그 장인 브라반시오가 데스데모나를 두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속도로 실랑이를 벌이고, 또 금세 그 언쟁이 끝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설마 이것은 일종의 삽화 넣은 요약본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만다. ![]() ![]() ![]() ![]() 나는 아직 그 중 다섯 조각을 보았을 뿐이다. 이번 "오슨 웰스 특별전"에서는 전체 상영작 중 단 두 작품만이 35mm 프린트로 상영되며, 다른 열 작품(나머지 하나는 웰스의 작품이 아니라 웰스에 관한 게리 그레이버의 다큐멘터리)은 16mm 프린트로 상영된다. 안타깝지만 프린트들의 상태는 좋지 않다. 화면에 내리는 비나 내내 들리는 잡음 정도는 물론 익숙한 것이겠으나 이번에는 영사 사고도 제법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이틀 동안 16mm 상영작 네 편, 35mm 상영작 한 편, 베타테입 상영작 한 편을 보았는데 뒤의 둘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16mm 상영작 네 편을 보면서 상영이 중단되는 형태의 영사 사고가 세 번 있었다. 영사실의 실수가 아니라 필름의 한계 때문이다). 당연히 화면의 선명도에도 한계가 있어서, 오슨 웰스 특유의 깊은 공간 연출을 충분히 맛보기는 무리다. 필름의 질감이나 스크린의 크기를 염두에 두더라도, 아마 상당수 작품들은 DVD로 보는 편이 더 좋은 감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별 작품에 대한 감상만을 염두에 둘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시민 케인]을, [상하이에서 온 여인]을, [악의 손길]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작품들을 총괄하는 오슨 웰스라는 이름의 영화를 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것은 정말 간절한 마음을 안고 찾아가야 할 기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접근성이 높은 웰스 영화인 [시민 케인], [상하이에서 온 여인], [악의 손길]은 모두 웰스가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연출한 미국 영화다. DVD로 그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1930년대 영화들과 [시민 케인]의 생김새가 얼마나 같고 또 다른지에 관해서 말하고 싶어지거나 혹은 필름 누아르 이야기를 자꾸 끌어들이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 영화들을 B무비 전문 영화사에서 촬영한 저예산 영화 [맥베스]나 4년 동안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찍어 붙인 깐느 황금종려상 수상작 독립 영화 [오셀로], 프랑스/스페인/스위스에서 찍은 괴악한 필름 누아르(?) [아카딘 씨], 프랑스 방송국에서 돈을 얻어 찍은 한 시간짜리 소극 [영원한 이야기] 사이에 넣고 함께 볼 때 그 안에서 보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그걸 보고 싶으면 정말이지 '함께' 보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특히 [심야의 종소리(Campanadas a Medianoche, 1965)]와 [영원한 이야기]는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싶다. 물론, 정말로 웰스처럼, [오셀로] 찍듯이, 수 년에 걸쳐 세계 각지의 시네마테크를 돌아다니며 한 조각씩 맞추겠다는 관객이 있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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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한 글 잘 읽었습니다..
by kinoeyes at 08/19 말씀하신대로 류승완 감.. by sabbath at 08/17 참 말할 거리가 많은 영.. by 파인로 at 08/17 그쵸. 사실상 모든 프랑.. by sabbath at 08/16 아, 그것은… 저도 무.. by sabbath at 08/16 저도 그 글을 읽어보았.. by sabbath at 08/16 제작사 외유내강 측의 .. by sabbath at 08/16 소식 고맙습니다! 포스터.. by sabbath at 08/16 가끔은 너무 만든 사람에.. by sabbath at 08/16 먼저 안 보신 분들께는 .. by sabbath at 08/16 저도 만주 벌판 액션이 참.. by sabbath at 08/16 [다찌마와 리] 속편 또.. by sabbath at 08/16 오오, 드디어 올리셨군.. by Sion at 08/16 드팔마를 떠올리는 장면.. by 다찌대박 at 08/16 저는 그놈의 잘생겼다!가.. by 은혈의륜 at 08/16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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