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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 중인(정확히 말하면 현재는 안 하지요. 6월 10일까지 "서울 Lesbian Gay Bisexual Transsexual 필름 페스티벌"을 하고 11은 쉬었다가 12일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오슨 웰스 특별전" 상영작 중에는 웰스의 후기 걸작 중 하나인 [악의 손길(Touch of Evil, 1958)]이 있지요. 웰스가 10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와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등에 업고(과연?) 찰튼 헤스턴, 자넷 리 같은 스타들을 기용해서 찍은 일종의 메이저 영화로, 웰스 영화 중에서 뿐만 아니라 필름 누아르의 역사,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명성과는 달리(그리고 웰스의 명성에는 걸맞게) 제작사로부터 갖은 핍박을 당했지요. 일단 찰튼 헤스턴, 자넷 리에다 오슨 웰스라는 스타 배우들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튜디오 측에서는 이 영화를 B무비처럼 취급하여 배급했고, 웰스 영화들이 대게 그랬듯이 역시나 최종 편집에 엄청나게 간섭을 했습니다. 결국 유니버셜은 웰스를 무시하고 자기네들 마음대로 편집을 했습니다. 웰스는 그 스튜디오 편집본을 본 뒤 장장 58페이지에 이르는 메모를 남겼습니다. 스튜디오 측에 [악의 손길]을 자기 의도에 맞게 고쳐줄 것을 당부하는 글로, 어떤 장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는 세세한 내용을 적어둔 글이었지요. 스튜디오는 그 의견을 일부분 수용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의견은 무시당했고, [악의 손길]은 95분짜리 영화로 극장에 걸렸습니다.
이후 1980년대에 UCLA에서 [악의 손길]의 108분짜리 필름을 발견했고, 이 버전은 한 동안 감독판으로 불리며 돌아다녔습니다. 미국에서 비디오가 출시될 당시에는 이 버전을 기반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감독판은 아니었지요. 웰스가 스튜디오와 편집권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나왔던 버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1998년, 제작자 릭 슈미들린과 편집자 월터 머치는 오슨 웰스가 남긴 메모를 기반으로 이 영화를 복원하는 일에 착수하여 감독의 의도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복원판입니다. 이 버전은 극장 개봉도 거쳤으며, DVD로도 출시되었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 측에서는 "오슨 웰스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이번에 상영되는 [악의 손길]이 바로 그 98년 복원판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6월 3일에 실제로 상영하는 것을 보니 58년판이었어요. 뭐, 불만은 없습니다. 오히려 보기 힘든 버전을 본 기쁨을 좀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상영 후에 DJUNA의 영화낙서판 회원이신 Wolverine 님께서 이 58년판과 복원판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올리셨더군요. 영화 상영 후 강연을 진행한 오슨 웰스 필름 아카이브 운영자 질리언 그레이버 여사는 두 버전 사이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했지만 두 버전은 상영 시간의 차이가 크니까 분명 다른 부분이 있을 거라고 하시면서요. 네, 확실히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58년판을 본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곧장 복원판 DVD를 꺼내서 빠르게 재생하면서 '어, 이건 어제 극장에서 못 본 건데?' 하는 부분들을 찾아보았어요. 다음은 그 결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영화 내용을 열심히 이야기 할 터이니 [악의 손길]을 보신 분들만 읽어주시길. 일단, 이것은 제가 58년판을 보면서 복원판과 가장 차이가 난다고 느낀 부분이고, 실제로 IMDB 게시판 같은 데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인데, 저 유명한 오프닝 롱테이크에 차이가 있습니다. 복원판은 롱테이크의 길이가 더 길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 그런 차이는 없는 것 같고(처음과 끝이 명확한 롱테이크니까, 만약 길이에 차이가 있으려면 아예 다른 테이크를 썼어야 했을 텐데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확실한 차이는 BGM과 오프닝 크레딧의 유무입니다. 오슨 웰스는 원래 이 장면에서 관객이 폭탄을 실은 자동차와 바가스/수지 커플이 교차되어 가는 상황의 서스펜스에 집중하게 하기 위해 BGM도 넣지 않고 오프닝 크레딧도 없앴습니다(그래서 감독판을 보시면 영화 다 끝나고서야 제작진 크레딧이나 영화 제목이 나옵니다). 하지만 58년판은 이 롱테이크에서 크레딧이 나오고 헨리 맨시니의 멋들어진 음악이 나옵니다. 오랫동안 이 영화를 보아온 팬들에게는 이 음악 때문에 58년판이 더 좋은 버전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예를 들어 조지 로메로 감독 같은 이도 2002년에 있었던 [Sight and Sound]의 "최고의 영화 10편" 앙케이트에서 [악의 손길]을 꼽으면서 "솔직히 말해서 누가 [시민 케인]을 원하겠나? 나는 [악의 손길]을 영원히 가져갈 테다. 근데 '복원'판은 아냐. 맨시니를 내놔!"라고 말한 바 있어요. 저는 BGM과 오프닝 크레딧 없이 서스펜스로 사람을 압도하는 감독판 버전을 먼저 보았습니다만 확실히 헨리 맨시니의 음악이 좋긴 좋더군요. O.S.T. 없나 찾아봤을 정도로요(있습니다. 구하기가 조금 귀찮게 생겼지만). [악의 손길] 복원판 오프닝 그리고, 처음 수사를 시작하다가 행크가 문득 피아뇰라 소리를 듣고 타냐의 가게를 찾게 되지요? 58년판에서는 여기서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장면 다음에 곧바로 수지가 모텔에서 그랜디 패거리에게 위협 받는 장면(길 건너 호텔에서 손전등을 비추는)으로 넘어갑니다만 복원판에서는 행크가 타냐와의 대화를 끝냈을 무렵 피트가 찾아와 바가스가 공격 받았다고 말합니다. 가게 밖으로 나가면 모든 수사관들이 모여 있고, 바가스는 거기서 자신이 공격 받은 건 상관없지만 수지가 미국 쪽 국경에서 웬 녀석들에게 끌려갔다고 말하면서 화를 냅니다. 행크는 그들은 바가스와 그 부하들이 최근에 압박해왔던 그랜디 패밀리일 거라면서 이죽거리고, 둘의 대립이 격화됩니다(행크가 놈들이 그랜디 패거리라는 것은 자신의 직감이 말해준다고 하니까 바가스는 그럼 그 직감이 내 아내가 겪었던 문제도 말해주더냐고 받아치는 식으로). 행크는 하지만 수지가 욕설을 들은 것도 아니고 강제로 끌려 간 것도 아니고, 여하튼 그랜디 패거리가 범죄를 행한 건 아니니까 수사는 없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바가스의 화를 돋우지요. ![]() ![]() ![]() ![]() ![]() ![]() 복원판에서는 이 부분이 아주 자세하게 첨가되어 있습니다. 일단 바가스-수지가 차를 몰고 모텔을 찾아서 가는 과정에서 수지는 졸린 태도로 앉아있고 바가스는 열심히 이번 사건의 의미에 대해서,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이라는 위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수지는 그런 이야기는 관심 없다는 듯이 굴고요. 바가스는 수지가 관심 없어하니까 조금 기분 상해하지만 수지의 애교에 이내 마음이 풀어져서 잠시 차를 멈추고 키스를 합니다. 그러는 사이 그랜디가 둘을 미행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리고 그렇게 있는데 피트와 슈왈츠가 바가스-수지 커플 맞은편에서 차를 몰고 와서는 행크가 뭔가 감을 잡은 것 같은데 바가스도 오라고 했다면서 당장 가자고 합니다. 바가스는 수지를 내버려두고 떠나고, 피트가 대신 바가스의 차를 몰고 수지를 모텔로 데려다줍니다. 여기서 피트가 차를 바꿔 탈 때 행크의 지팡이를 가지고 타 버려서 낭패하는 모습이 나오고, 그 연장선상에서 행크의 다리가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 설명이 나옵니다. (행크가 피트 대신 총을 맞아서 다리를 다친 건데, 이거는 결말 부분에서 행크가 "내가 자네를 위해 총을 맞은 게 이번이 두 번째군"하는 대사를 통해 더 확장되지요) 그리고 그랜디는 그 와중에 계속 바가스의 차를 미행 중인데, 피트는 그런 그랜디를 발견하여 체포한 뒤 수지를 모텔에 데려다주고(이 장면들이 꽤 깁니다. 계속 대화가 있어요. 모텔이 비수기고, 이 모텔은 한적한 곳에 있어서 찾기 쉽지 않고 등등) 산체스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랜디의 차는 길에 버려둔 채 바가스의 차를 타고요. ![]() ![]() ![]() ![]() ![]() ![]() ![]() ![]() ![]() ![]() ![]() ![]() ![]() ![]() 58년판에서는 흔히 스튜디오에서 맘대로 잘라낸 장면들이 그렇듯이 잘라내더라도 이야기의 전개를 이해하는 데에 큰 무리는 없는 장면들이 잘렸지만 (그래서 복원판을 보신 분들께서 58년판과 별 차이가 없다고 기억하시는 것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피트가 행크의 지팡이를 전해주지 못했다든가 그랜디가 미행을 했다든가 슈왈츠가 바가스를 문서 보관소로 안내해준다든가 하는 것은 58년판에서도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대사를 통해서는 다 전달이 되니까요) 제가 보기에는 인물의 깊이랄지 나중에 반복되면서 깊은 감상을 자아냄직한 대사나 일화들이 사라지면서 영화의 맛이 떨어지게 된 듯합니다. 웰스는 특히 바가스-수지가 모텔로 향하면서 나누는 대화나 둘이 가다가 중간에 바가스가 떠나버린다는 설정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 두 사람의 사회적 위치나 국적 차이가 둘의 로맨스를 갈라놓는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기를 바랐고, 또 그렇게 두 사람이 불안정하게 떨어진 다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마침내 만나게 했을 때의 감흥도 중요시했대요. 바가스와 행크의 불화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겠지요. 참,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자면 실은 이번 상영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이렇게 없어진 장면들이 있었다는 게 아니라 화면비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략 4:3 화면비로 상영이 되었는데요, 원래 화면비는 1.85:1입니다. 근데 내내 화면이 잘렸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아서(인물들의 몸이 잘리는 일 없이, 마치 의도된 것처럼 프레임에 꽉 차 있더라고요) 확인해봤는데, IMDB에 따르면 네가티브 필름 화면비는 4:3이고 의도된 화면비는 1.85:1이라는군요. 그러니까 4:3으로 찍은 다음 위아래를 가려서 영사했던 것을 오픈 매트로 영사했나 봅니다. [거짓의 F(F for Fake, 1974)] 상영 때도 같은 일이 있었다는데, 관계자의 답변을 읽어보니 실수로 그런 것은 아니고, 뭔가 기술상의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현재 [악의 손길] 상영은 두 번 남았습니다. 6월 12일 화요일 오후 3시 30분과 20일 수요일 오후 3시 30분. 감독의 의도가 좀 더 분명히 살아있는 복원판이 아니면 보지 않겠어! 하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겠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실제 58년에 처음 대중에게 공개된 버전을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을 것 같습니다. 하도 잘라대서 대체 무슨 내용인지도 알 수 없고 뭐 그런 것은 아니거든요. 앞서 언급했듯이 헨리 맨시니의 음악이 담긴 오프닝의 분위기도 좋고요. 더군다나 우리나라에는 [검은 함정]이라는 제목으로 발매된 이 영화의 DVD는 현재로서는 구하기가 힘든 타이틀인지라 이 영화는 어떤 버전으로든지 일단 볼 수 있을 때 봐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최후의 필름 누아르'라는 위명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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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한 글 잘 읽었습니다..
by kinoeyes at 08/19 말씀하신대로 류승완 감.. by sabbath at 08/17 참 말할 거리가 많은 영.. by 파인로 at 08/17 그쵸. 사실상 모든 프랑.. by sabbath at 08/16 아, 그것은… 저도 무.. by sabbath at 08/16 저도 그 글을 읽어보았.. by sabbath at 08/16 제작사 외유내강 측의 .. by sabbath at 08/16 소식 고맙습니다! 포스터.. by sabbath at 08/16 가끔은 너무 만든 사람에.. by sabbath at 08/16 먼저 안 보신 분들께는 .. by sabbath at 08/16 저도 만주 벌판 액션이 참.. by sabbath at 08/16 [다찌마와 리] 속편 또.. by sabbath at 08/16 오오, 드디어 올리셨군.. by Sion at 08/16 드팔마를 떠올리는 장면.. by 다찌대박 at 08/16 저는 그놈의 잘생겼다!가.. by 은혈의륜 at 08/16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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