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7년 6월 14일에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에서 출시한 [리오 브라보(Rio Bravo, 1959)] DVD의 한국어 자막에 대한 의견을 정리한 글입니다. 이 글은 크게 세 가지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작성되었습니다.
① DVD의 한국어 자막이 생략하거나 오역한 대사에 관해 언급함으로써 이 [리오 브라보] DVD에 수록된 한국어 자막으로만 이 영화를 즐긴 감상자들에게 좀 더 분명한 영화 이해의 기회를 제공하며,
② 2007년 8월 10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필름포럼에서 열릴 "하워드 혹스 회고전"의 [리오 브라보] 상영용 자막 제작에 도움을 주고,
③ 향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에서 차세대 매체로 [리오 브라보]를 다시 한 번 출시할 때 DVD에 사용한 자막을 수정하여 수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단지 오역을 지적하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설령 괜찮게 보아 넘길만한 번역이라도 다시 한 번 원문을 보고 그 의미를 좀 더 분명히 옮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인가, 하고 주의를 환기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으며,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즉석에서 제시한 대안들이 아니라 원문과 한국어 자막의 차이에 주목하는 것 자체임을 염두에 두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영어에도, 영화에도 전문가가 아닌 제가 감히 '좀 더 나은 자막을 위해 주의를 환기하겠다'며 이런 글을 작성하는 것은 좀 당돌하고 어이없는 일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아직 시작도 않은 필름포럼의 "하워드 혹스 회고전"을 염두에 두면서 미리 상영용 자막을 제작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전 외화의 한국어 자막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지 오래입니다. 지난 3년여 동안 서울아트시네마나 필름포럼을 다니면서 예술영화전용극장에서 의식을 갖고 열심히 준비하여 개최한 상영회라고 해서 자막이 충분히 믿을 만한 것이기만 한 것도 아님을 알게 됐고, 또 많은 DVD 타이틀의 한국어 자막을 보면서 기업체에서 다수 대중을 대상으로 판매하기 위해 만든 타이틀의 자막이라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게 됐습니다(사실 안 좋은 경우가 훨씬 더 많지요).
또는, 대한민국에서 어떤 혹스 팬이 지금 [리오 브라보]의 더 나은 자막을 위해 엄청나게 피땀 흘려가며 노력하고 있고, 그 결과가 반드시 "하워드 혹스 회고전" 개최나 차세대 매체 [리오 브라보]의 출시 전에 나와주어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야 말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도 힘듭니다. 혹은 저도 [리오 브라보]를 볼만큼은 본 혹스 팬인데, '나보다 더 영어 잘 하는 누군가가 그런 작업을 해주고 있겠지, 언젠가 더 나은 세상이 올 거야'하는 식으로 생각만 하고 있는 건 오히려 좀 게으른 태도가 아니겠는가 싶기도 합니다.
어쨌든 제게는 이 경애해 마지않는 영화가 그 의미를 충분히 살려주는 자막을 통해 더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하고, 이 글이 잘난 체 하는 것으로 여겨져서 '쟤 왜 저러냐' 싶은 시선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어떻게든 향후 있을 다른 분들의 [리오 브라보] 관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냥 이 정신나간 작업을 해보겠습니다. 혹은 얼굴에 철판 깔고, 필름포럼 관계자 분이든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관계자 분이든 아무튼 [리오 브라보] 상영을 책임져주실 분들께 이 글을 읽어주십사 하고 부탁도 드려볼 생각입니다.
물론, 저는 제가 한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다만 다른 사람들은 나서지 않을 것 같아서 나서보았을 뿐입니다. 건설적인 비판은 언제든지 환영하며, 다양한 의견들을 통해 [리오 브라보]의 자막 문제에 좀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기쁠 뿐입니다. 영화 속 대사의 번역이라는 것이 당연히 언어와 관련된 것만은 아니고, 반드시 영화 속 내용의 맥락을 고려하여야 하며, 저도 그 점을 충분히 지적하고 있는 만큼, 이 글은 [리오 브라보]의 내용 이해에 대한 어떤 발언으로서도 기능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맘 먹고 쓴 감상문처럼 자세하지는 못하겠지만요. 그런 맥락에서의 논의도 가능할 것입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이 글은 [리오 브라보]의 온갖 장면들, 대사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냥 줄거리를 말하는 수준이 아니라 재치 있는 대사나 세세한 설정들을 곧잘 언급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그러한 내용에 대한 해석까지 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화를 보신 분만 읽으셔야 합니다.
한국어 자막계에는 고질적인 병폐가 몇 가지 있다고 하겠습니다만(대표적으로 연령차에 대한 아무런 맥락이 없는 데도 남자는 반말, 여자는 존대말을 쓴달지) 이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 지나치게 위계 질서랄까 직위를 부각시킨다는 것. 왜 "챈스"라고 하면 될 걸 "보안관님"이라고 합니까? 자막을 만들 때는 글자 수를 줄이는 데에 혈안이 돼 있을 텐데 굳이 두 글자나 늘려 가며 직위를 쓸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사실 보기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대사는 이 영화의 세 번째 대사이며, 존 웨인이 연기한 인물의 이름이 처음 나오고, 또한 도입부에서 아직 어떤 관계인지 확실하지 않았던 두드(딘 마틴)와 챈스의 관계를 어렴풋이 드러내 주는 대사입니다. 즉, 그가 "보안관님"이라고 말하지 않고 "챈스"라고 부르는 순간, 두드는 법 질서의 수호자를 돕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어떤 친근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을 돕는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DVD에서는 이후 "챈스"를 "보안관님"이라고 표기하는 장면이 수없이 되풀이 되는데, 저는 그 모든 경우에 반대합니다. 하워드 혹스의 영화에서 남성 공동체는 심지어 군대를 다루는 영화에서조차 위계 질서에 의해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존감에 의해 대등한 관계를 맺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고, 저는 실제 대사가 지시하지 않는다면 굳이 "부하"랄지 "부관" 같은 표기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도 "부하"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군요. 앞으로도 윌러(워드 본드)의 "men"을 "부하"로 표기하는 경우가 자주 나오는데, 윌러는 그냥 상인이고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피고용인입니다. 너무 "부하"를 강조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글쎄, 이놈의 대한민국 사회는 "부하직원"의 사회이긴 합니다만.
그건 그렇고, 마차에서 내리지 말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죠. "일행더러 마차 곁에 있으라고 하세요."가 더 맞습니다. 이 대사 전에도, 그리고 후에도 화면을 통해 제시되지만 윌러의 일행들이 몽땅 마차에 타고 있는 게 아닙니다. 마차는 물품을 운반하기 위해 쓰고 있고, 사람들은 그 주변에서 말을 타고 따라가며 호위 중이지요.
두드가 자신의 별명 "보라촌"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묻자 윌러가 대답하는 부분입니다. 뭐 오역이랄 건 없는데, 원래 의미를 살려 "스페인어는 잘 몰라서."로 옮기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미국 남부, 멕시코/스페인 문화의 영향이 좀 묻어나는 편이거든요. 호텔 주인 카를로스와 아내 콘수엘라도 그렇고, 나중에 나오는 음악 "데구엘료"도 그렇고. 대사의 디테일을 통해 그런 느낌을 좀 살렸으면 좋겠습니다.
스페인어로 주정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보라촌"이라는 모욕적인 별명으로 부르기는 불편하다면, 그 전에는 자신이 "두드"라고 불렸으니 그렇게 불러달라는 대사입니다. 몇 가지 생각해 볼만한 문제가 있군요.
일단 이 대사의 의미를 완전히 살려서 짧게 옮기자면 "그 이름이 불편하시면, 예전엔 다들 절 두드라고 불렀죠." 정도가 될 텐데… 이것이 충분히 짧은지는 모르겠습니다. 글쎄, DVD에 쓰기에는 적당한 길이 같은데요. 저는 적어도 "그렇게 부르시든가"보다는 "그게 불편하시면" 쪽이 더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예전엔 다들 절 두드라고 불렀죠."라는 대사는 이 사내가 주정뱅이 보라촌이 되기 전에 다른 과거를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대사이니 역시 좀 살면 좋긴 하겠습니다.
한편, Dude를 어떻게 옮길 것인가도 생각해 봄직 합니다. 이거는 이름이 아니라 별명이죠. 어이, 쨔샤, 얌마, 등등 친근하게 부르는 말 정도가 될 텐데, 의미를 살릴 것인지 그냥 "두드"라고 할 것인지(참, "듀드"보다는 "두드"로 옮겨야 할 것입니다. dude에는 두 가지 발음이 있는데 "듀드"는 좀 잘난 체 하는 멋쟁이라는 뉘앙스고 "두드"는 친한 친구를 부르는 느낌이 있어요. 여기서 이 인물의 특성상 후자일 것입니다)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뒤에 나올 스텀피Stumpy(월터 브레넌)와 페더스Feathers(앤지 디킨슨)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둘 모두 절름발이, 깃털이라는 의미의 별명입니다. 뭐 반드시 의미를 살려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그래도 고려는 해봄직 합니다. 특히 페더스는. 이것은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죠. 참고로 "Dude"가 인물의 이름으로 나오는데 "두드"라고 번역하지 않고 "짜샤"로 번역한 한국어 자막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유니버셜에서 출시한 코엔 형제의 [위대한 레보스키(The Big Lebowski, 1998)]입니다. 언뜻 듣기에 웃기고 어색할 것 같지만 아주 잘 된 번역이었습니다. 그냥 단역도 아니고 주인공 이름이 "Dude"라서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수없이 "짜샤"가 나오는 데도요. 제 생각에 이 영화에서는 "짜샤"는 너무 세고, 그냥 "어이" 정도로 번역해 보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사정 설명은 안 해주고 그저 자기더러 이래라 저래라 명령만 하니까 열 받은 윌러 씨가 친구인 챈스를 만나 투덜거리는 부분입니다. 오역이라기보다는 의도적인 창작이겠습니다. 아마 반어법을 쓰는 윌러의 유머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기 위한 번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죠? 그냥 있는 그대로 유머를 전달하면 안 되나요? "무슨 일인지 말하지 마. 궁금해하게 내버려 두라고. 익숙해지고 있어. 기분 아주 좋군 그래."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윌러의 어조, 표정 등이 이미 이 사람이 불만에 가득 차 있다는 걸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데 왜 애써서 풀어 설명해줘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생긴 것만 보면 틀린 번역은 아닌데 뉘앙스는 아니죠. 이 대사는 챈스가 윌러에게 사정 설명 안 하고 또 명령만 내리려 하니까 분통이 터져 죽게 생긴 윌러가 "이봐, 이 팻 윌러 성질 몰라서 그러나?"하는 부분입니다. 이런 대사야말로 의역이 필요한 대사인데 이걸 그대로 옮기면 오히려 대사가 어색해집니다.
먼저 이 DVD의 한국어 자막은 Thanks를 꾸준히 "감사해요"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몇 번 더 나오겠습니다만 이것이 은근히 어색합니다.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등등을 그때그때 맞게 쓰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걸 중점적으로 지적하자는 것은 아니고요. 그 다음에 콜로라도(리키 넬슨)와 챈스가 주고 받는 대사를 본 의미를 살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말썽은 싫어요." "그럼 시작하질 마." 이 다음에 바로 콜로라도가 "그럴게요. 혹시 말썽 피우게 되면 미리 말씀드리죠."라는 말로 맞받아치는데(이 대사는 번역이 잘 되었기에 캡처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의 대사 주고 받기가 더 살아나길 바랍니다. 그리 어렵거나 긴 대사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 한국어 자막은 자꾸 챈스의 대사를 뉘앙스, 돌려 말하기 등등 제거하고 간단하게 옮겨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거 하면서 인물의 이미지를 살린다느니 하는 소리 하지 마십쇼. 절대로 좋은 번역 아닙니다. [리오 브라보]의 챈스/존 웨인은 결코 무뚝뚝하고 위압적으로 구는 마초/가부장 우두머리 이미지만을 내세우는 인물이 아닙니다.
이것만 캡처해 놓으니 무슨 순간인지 알기가 힘들겠군요. 하지만 어차피 이 글은 [리오 브라보]를 본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니까.
챈스가 윌러에게 마차를 저쪽 울타리(이것도 corral이니 정확히 말하면 가축 우리겠지만 뭐…) 옆에 두라고 하자 윌러가 "그렇게 해야겠지."라고 말하는 순간입니다. 이어서 그의 어투를 들은 챈스가 "왜?"하면 윌러가 지금 마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하필 자기 마차에는 기름과 폭약이 실려 있다, 분위기가 험악한 것 같은데 그런 걸 근처에 둬도 괜찮겠느냐, 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아무튼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건 "맞혀 볼까?"라는 의역이 굳이 필요한가 하는 거예요. 저는 그냥 "맞혀 볼까?" "뭘?"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시키는대로 해야겠지." "왜 그래?"하는 편을 선호합니다.
강가(그런데 creek을 "강"으로 옮겨도 되겠습니까?)에 쌓아두거나 버뎃 창고 옆에 두는 게 아니라 "강가에 두면 돼요. 버뎃네 창고 옆에요."입니다. 버뎃네 창고가 강가에 있는 거라고요.
그리고 "폭파시킬 거엔 그곳이 제격이죠."라니. 한국어로서 어색하기도 하고 의미가 좀 안 삽니다. 지금 뭘 "폭파시키" 자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윌러의 마차에는 폭약이 실려 있는데 혹시라도 실수로(마을 분위기가 험악한 상태니까) 폭발하면 어쩌냐, 그러니까 저기 강가 버뎃 창고 근처에 두자, 혹시 폭발하더라도 딱 좋지 않겠냐(버뎃이 바로 마을을 험악하게 만든 악당이니까), 이런 대사입니다. "폭발하더라도 거기면 괜찮겠죠."랄지 "거기라면 폭발해도 되겠죠." 정도로 옮겨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프닝에서 잡아 넣은 악당 조 버뎃의 죄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윌러가 "살인인가?"라고 말하자 챈스가 답하는 거죠. 앞서 언급했듯이 저는 챈스의 대사들이 지나치게 간략화되는 게 싫습니다. 뭐 길게 옮기자는 것도 아니잖아요. "달리 뭐겠나." 정도만 해도 이 사람의 화법이 살아날 겁니다.
현 상황에서 윌러는(그리고 관객은) 아직 챈스의 동료가 몇인지 모르죠. "자네도 이미 반은 만났어."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에게 사람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챈스의 화법이 참 좋습니다. "둘 중 하나"라는 식으로 미리 친절하게 알려주는 자막이 되진 맙시다.
좀 신경 곤두세울 문제. 이 DVD 자막의 큰 결점 중 하나는 스텀피가 절름발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스텀피에 대해서 항상 "늙은이"나 "늙다리" 정도로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늙다리"라는 표현으로 그의 나이와 다리를 모두 지적한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보통 "늙다리"라는 표현은 그냥 나이든 사람에 대한 경멸이랄까… 그런 뉘앙스를 띠는 거지 누가 그 어휘를 듣고 "아, 저 사람은 나이가 들었고 다리도 불편하구나"라고 받아들이지는 않지요. 반면 실제 대사는 분명히 스텀피가 절름발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애초에 Stumpy라는 호칭부터가 이름이 아니라 별명일 터인데, stump에 의족이랄지, 다리를 익살스럽게 부르는 식의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game-legged라는 표현도 있고 나중에 가면 스텀피를 old cripple이라고 일컫는 대사가 곧잘 나옵니다. 무엇보다도 이 요소가 영화 말미 최후의 결전 직전에 중요하게 사용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스텀피가 절름발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절름발이 노인네랑 주정뱅이가 전부야?"가 좋을 것입니다.
한가지 더. 이 자막은 drunk를 항상 "술주정뱅이"로 옮깁니다. 글자 수 줄이는 게 중요한 작업인데 왜 "주정뱅이"라고 하지 않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실제로도 "술주정뱅이"라는 식의 표현보다는 "주정뱅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혹은 더 줄이자면 "술꾼"도 가능할 것입니다. 다섯 글자나 쓴다고 해서 뭔가 독특한 뉘앙스가 붙는 것도 아닙니다. 번역 과정에서 말을 줄일 부분은 이런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챈스가 "what"을 강조해서 말하지요. 좀 힘이 실려 있는데, 챈스의 기준에서 볼 때 윌러는 좋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동료들을 곧잘 모욕하는(이 문제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나옵니다) 생각 부족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대사는 윌러의 폄하에 맞서서 동료들에 대한 챈스의 신뢰를 살짝 보여주는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셈이지."보다는 "그들이 내 전부일세."라는 식으로 더 강하게 표현하면 좋겠습니다.
관사로 들어온 챈스가 스텀피에게 아까 왜 (안에 있으라는 내 말 안 듣고) 나왔냐고 하자 스텀피가 뭔 일 있으면 도와주려고 나간 건데 속도 모르고 그러냐고 투덜거리죠. 그러면 챈스가 "영감님 밖에 나왔다가 총 맞으면 더 곤란해져요."라고 대답합니다. 그에 대해 스텀피가 다시 한 번 투덜거리는 대사입니다. 지금 번역도 오역은 아닌데, 정확히 스텀피가 뭐에 대해 투덜거리는지 명확히 전달이 안 되네요. "자네가 곤란해진다고? 총 맞아 죽는 건 나인데?"라는 식으로 번역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직후 두드가 들어오자 스텀피가 챈스 저 친구 말하는 것 좀 들어보라는 듯이 내뱉는 대사가 "Dude, I guess we better used to it."입니다. 챈스 저 놈은 남 일은 생각도 안 해주고 자기 밖에 모른다는 말이 바로 이어지지요(이 투덜거림은 영화 끝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챈스와 스텀피 사이의 관계에 있어 핵심이에요). 원래 의미를 그대로 옮기면 좀 어색할 것 같고 ─ "두드, 우리가 익숙해지는 게 좋겠어." ─ 뉘앙스를 고려해서 "두드, 저 친구 말하는 것 좀 봐."라고 옮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 대사까지 연결하자면 "두드, 저 친구 말하는 것 좀 봐. 항상 자기 밖에 모른다니까."쯤 되겠습니다.
이어서 스텀피가 감옥 안으로 가서 조와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스텀피가 챈스에 대한 불만을 조 쪽으로 옮겨가자 ─ "조, 내 말 듣냐?" ─ 조가 하는 대사지요. 역시 오역은 아니지만 "듣는다"는 것의 의미를 살려서. "듣고 있어. 하지만 오래 듣진 않을 걸."로 옮기는 편이 더 분위기가 살 것입니다.
당연히 오역 아니고, 사실 수정할 필요도 없는데, 저는 언제나 이 대사가 "아주 물침대에서 자게 해주지!"로 번역되면 더 웃길 것이라는 쓸데없는 로망을 가지고 있어서 한 번 적어 봅니다.
조와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 뒤(두드가 자신의 술버릇을 놀리는 조에게 맥주병을 던집니다. 못 맞춰요) 감옥에서 나온 두드에게 챈스가 맥주를 마시겠느냐고 하면서 "방금 건 괜히 버렸잖나."라고 말하자 두드가 대답하는 부분입니다. "못 맞춰서 그렇지 낭비는 아니었어요."라고 대답합니다.
챈스가 관사를 나서며 스텀피에게 다녀오겠다고 말하자 스텀피가 하는 대사입니다. "안 돌아오면 조랑 둘이서 울고 있지 뭐." 이쯤 되겠습니다. 사실 아주 웃기는 농담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번역은 너무 챈스와 스텀피의 티격태격에만 집중하네요.
호텔에 간 챈스가 호텔 주인 카를로스와 만나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카를로스가 공연히 콘수엘라랑 티격태격한 뒤에 나누는 대사죠. 뭐 썩 나쁘지 않은 번역이긴 했는데 재치가 좀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화를 풀게 해주는 것도 즐거울 거예요"라는 번역이 어색합니다. 이 번역대로라면 카를로스가 콘수엘라의 화를 풀어주며 스스로 즐거워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콘수엘라가 화가 났다면 자신의 화를 푸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낄 거라는 이야기인데요. "괜히 긁고 그러나." "여자를 아니까 그런 겁니다. 이제 화를 내든 미안해하든 할 텐데, 화를 낸다면 화를 풀며 즐거워 할 테고, 미안해 하더라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이쯤이면 되려나요?
챈스가 가져다준 소포를 받은 카를로스가 이 소포 보시면 제가 여자를 얼마나 잘 아는지 알게 되실 겁니다, 라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지금의 번역으로는 소포와 카를로스가 여자를 잘 아는 것과의 관계가 이어져 와닿지 않네요.
이건, 너무 직접적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거 입으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되세요?" 정도의 대사라고 생각했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You sure want me to do that?"은 이 대사에 이어지는 게 아니라 카를로스의 행동에 반응하는 대사라고 봤습니다. 즉, 이런 거죠.
카를로스 : 이거 입으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되세요?
카를로스가 속옷을 챈스의 다리에 갖다 댄다.
챈스 : 지금 나보고 입어보라는 건가?
드디어 페더스 등장. 처음부터 챈스를 놀려 먹는데, "Until I saw those things"가 생략되지 않았음 좋겠습니다. 페더스가 챈스의 남성적 권위를 놀려먹으면서 무너뜨린다는 것은 이 영화의 중심 주제 중 하나입니다. "그거 보기 전까진 수건을 찾고 있었죠. 목욕을 하고 싶어서요."라고 옮기면 안 될까요.
알콜 중독 금단현상으로 고생하는 두드에게 스텀피가 맥주를 권하지만 두드는 실컷 마셨지만 소용 없었다며 거절합니다. 그러자 스텀피가 하는 말입니다. 오역은 아닌데, "내일쯤 되면 효과가 나타날 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즉,
"아무 소용도 없어요." "내일쯤 돼야 효과가 나타날 걸."과
"아무 소용도 없어요." "내일쯤 되면 효과가 나타날 걸."
…의 차이. 그러니까 술을 더 마시라고 권하는 입장에서는 후자가 더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내일쯤 되면 효과가 나타날 테니까 더 마셔, 이런 느낌. 내일쯤 돼야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할 때는 내일쯤 돼야 효과가 나타날 테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내일까지 기다려, 이런 뉘앙스잖아요.
금단현상으로 고생하는 두드의 모습을 보다 못한 챈스가 마을이라도 한 바퀴 순찰하고 오자며 나온 뒤 나누는 대화입니다. 한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상대방이 같은 어휘를 이용하여 받아치는 식의 대사가 참 자주 나오는 편인데, 여기서도 take를 가지고 두 사람의 대사가 엮이고 있습니다. 그 느낌이 좀 더 살면 좋겠습니다. "그냥 앉아 있기 힘들더라고." "제가 힘들어하더란 말씀이시겠죠." 쯤?
당장은 어색하게 들리더라도 이건 좀 직역을 해서 "자네가 숙취를 발명이라도 한 줄 아나?"하는 식으로 invent를 살리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다음에 두드가 "특허를 받아도 될 걸요."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이 대사는 이대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순찰 후 호텔에서 윌러와 나누는 대화입니다. 별 불만은 없는데, "필요하잖아."보다는 "구할 수 있잖나."가 좋을 것입니다. 즉, 이 영화의 핵심 중 하나는 챈스와 그 일당들이 단 한 번도 누구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문제를 알아서 해결하고자 하고, 누가 돕겠다고 하더라도 자원자의 실력이 부족하면 됐으니까 가 보라고 합니다. 챈스가 보안관보를 필요로하지만 못 구한다기보다는 구할 수도 있는데 구하려 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후에 계속 제시되는 내용이므로 지금 자막으로 나가도 이해에 무리는 없습니다만 이 대사도 어차피 그런 내용이니까 의미를 살려주면 좋겠지요.
다시 한 번 언급해두고 넘어가겠습니다. 윌러가 자꾸 "부하"라고 말하는 게 거슬립니다. 부하가 아니고, 부하라고 말하고 있지도 않다고요. 윌러가 시킨다고 해서 무조건 시킨대로 해주는 이들이 아니라는 건 바로 다음에 콜로라도와의 짤막한 대화에서도 제시됩니다. 부하가 아니에요!
챈스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자 윌러가 그럼 어쩔 거냐, 있는 거라고는 절름발이 늙은이랑 여기 있는… 하다가 멈칫하자 두드가 윌러의 심중을 알아채고는 대꾸하는 대목입니다. 의미는 맞는데, "보라촌"을 쓰면 안 되겠습니까? 보라촌이 경멸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니까요. "보라촌이라고 불러주시죠."
"너무 심했네."는 너무 심한 것 같아요. 그렇게 강한 느낌의 대사는 아니잖습니까. "지나쳤네." 정도면 될 것입니다.
"내가 지나쳤지만 나쁜 뜻은 아니었네." 문장의 잇고 끊김을 살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말은 말았어야 했는데."하고 한 박자 쉰 뒤 "나쁜 뜻은 아니었지만 저 친구는 항상…"하면서 계속 이어지는 대사니까요.
오버하지 맙시다. 물론 두드의 실력이 좋았다는 게 바로 다음 대사를 통해 나오지만, 벌써부터 이렇게. 그냥 "내 부관이었어."면 족합니다.
대사 리듬의 문제. "좋은 여잔 아니었지만 말해줄 수 없었어." 한 번 쉬고, "말했더니 날 죽이려들더군." 하는 식으로. 제가 보기에 이 자막은 여러 문장으로 이루어진 대사를 지나치게 함축하는 경향이 있어요. 기본 의미는 살지만 그게 인물의 말하기 방식을 통해 나타나는 성격과는 안 어울린다고 봅니다.
혹스의 전문가주의가 잘 드러나는 대사입니다. 정확히 옮기자면 "내가 도우면 안 되겠나?" "자넨 실력이 안 돼."입니다. 일단 "내게 도와달라고 하지 그래?"는 좀 어색하고 인물에 안 맞아요. 불필요하게 직역하는 버릇은 좀 버리세요. 챈스는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성격의 인물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넨 안 돼."는 챈스가 거절하는 이유를 명확히 밝혀주지 않습니다. 실력 문제를 언급해야 해요. 바로 다음에 계속해서 실력의 문제가 언급이 되기 때문에.
오, 지금 보니 여기서는 "술주정뱅이"라고 하지 않았군요. 하지만 오버하셨어요. 그냥 실제 대사처럼 중간에서 말을 끊어먹는 게 좋겠습니다. "하지만 나도 최소한…" 정도로 말입니다. 이미 한 번 말실수를 한 사람이 또 다시 주정뱅이니 뭐니 하면서 없는 사람을 폄하하는 언사를 내뱉게 하는 것도 좀 심하지 않습니까.
콜로라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실력의 문제가 거론됩니다. "실력이 좋다면 쓰겠지만 선택은 본인이 해야지." 챈스가 윌러의 도움은 거절했지만 콜로라도는 실력을 봐서 쓸 수도 있겠다고 말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콜로라도가 챈스 돕기를 거절한 뒤 하는 말입니다. 콜로라도는 이 "No offence"를 나중에 한 번 더 사용하는데, 두 경우 모두 챈스에게 상처가 될 만한 말을 한 뒤에 "나쁜 뜻은 없습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특히 뒤에 이어질 두 번째 경우에서는 콜로라도가 "No offence again."하면서 첫 번째 경우를 되새기기까지 합니다. "죄송해요"는 지나치게 온건한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챈스가 페더스를 사기 도박꾼으로 몰면서 마을에서 추방하려 하자 페더스가 항의합니다. "간단하군요. 돈은 돌려주고 마차로 떠나라." 그 다음에 이어지는 대사인데, "그렇게는 안돼요."는 의지적인 측면이 덜하다고 보았습니다. "But I'm not goona make it that easy."는 좀 더 항거의 의지가 분명하잖아요. "그렇게 간단히 넘어가진 않겠어요."가 좀 더 분명히 페더스의 성격을 드러내 줄 것입니다. 좀 길다면 "그렇게 넘어가주진 않겠어요."도 좋겠고.
챈스의 태도를 역으로 받아치면서 반대 논리를 펴는 과정이니 만큼 문장 연결이 더 매끄러우면 좋겠습니다. "화나게 하시는군요. 카드를 가졌냐고 묻지도 않았잖아요. 그러니 내가 가지고 있단 걸 증명하셔야겠죠. 그러려면 몸수색을 하셔야겠고요." 뒤의 두 문장에 접속사가 붙으면 될 겁니다.
설렁설렁 넘어가기 좋은 부분이네요. 정확한 의미는 "소매는 좁아서 안되겠지만 허리춤이라면 또 모르죠."
자꾸 그렇게 나오면 확 몸수색 해버린다! 하는 챈스를 페더스가 놀립니다. "글쎄요, 과연 하실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엔 당황하신 것 같은데. 당황하지 않으셨다면…" 이 때, 방문 밖에서 콜로라도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당황하지 않으셨어도, 당황하셔야 돼요." 왜냐면 콜로라도가 지금부터 페더스가 사기 도박꾼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테니까. 뭐 그런 내용입니다. "당황하셔야죠."를 좀 더 미래 시제의 느낌으로 바꿔보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진 당황하지 않으셨더라도 이제 제 말 듣고 나면 당황하시게 될 걸요, 하는 느낌으로.
의미를 명확히 하길 바랍니다. 페더스는 여기서 "제가 어떻게 해야했죠? 말해주세요."라고 말한 뒤 "그 전단지가 나온 게 이번이 처음이 아녜요."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냥 "의심받은 게 처음은 아니니까."라고 해버리면 의미가 모호해집니다. 사기도박꾼으로 의심 받은 게 처음은 아니니까, 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가 있는데, 사실 페더스는 자신이 이미 사기도박꾼 전단지에 묘사된 그 여자가 맞다고 인정한 상태거든요. 그럼 말이 좀 이상하죠. 전단지에 올라 있는 그 여자가 맞긴 한데 그 여자로 의심받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니까 어떻게 해야할지 가르쳐달라고?
역시 챈스의 어투를 살리는 차원에서. "이런 친구는 많지 않은데."
윌러가 죽고 나서 콜로라도가 함께 범인을 잡으러 가겠다고 하자 챈스가 말합니다. "자네 보스 죽인 놈을 잡겠단 건가?" 그러자 콜로라도가 말하죠. "Wouldn't you?" 정말 자막 만들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냥 "네."가 아녜요. 정확한 의미는 "보안관님께서 제 입장이셨음 안 그러시겠어요?"입니다. 하지만 "Wouldn't you?"는 두 어절 밖에 안 되고, 그렇게 긴 자막을 넣어서 풀이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챈스가 이 반문에 대꾸하면서 "나였으면 애초에 죽게 하지도 않았어."라고 대답한다는 겁니다("나라면 처음부터 보호했을 걸."이라니, 역시 좀 어색합니다). 그러니 콜로라도의 반문을 어느 정도 살려야 해요. "보안관님이시라면요?"랄지 "제 입장이 돼보세요."랄지 하는 걸 생각해보지만 딱 이거다 싶은 답은 안 떠오르네요.
어이, 방금 죽은 친구더러 "시체"라니. 좀 심했다. "이런 친구는 많지 않은데."하면서 좀 감상에 잠기기까지 했으면서.
범인이 도망가는 걸 보고 두드가 총을 쏘지만 잡질 못합니다. "놈이 부상당했을 수도 있죠."에는 winged him이라는 표현의 느낌이 안 삽니다. 그러니까 두드는 놈을 확실히 잡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방금 쏜 총에 맞았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건데, 이 점이 나중에 중요하게 재활용되기 때문에 두드가 맞췄을 수도 있다는 느낌을 강조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부상당했을 수도 있다고만 하면, 부상은 꼭 총 맞아서 당하는 게 아니니까 느낌이 퇴색되는 것 같아요. "맞췄을지도 몰라요." 정도면 어떻습니까?
왜 대사에 안 나온 걸 미리 설명을 해줍니까. "아직 도망 못 갔어요. 아님 제가 여기 서있겠어요?"라는 대사입니다. 어디로 도망갔는지는 아직 얘기 안 했어요.
범인이 버뎃의 술집으로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은 챈스가 "지금 저기 들어가잔 얘긴가?"라고 묻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입니다. "그럼요." "좋아."라니. 좀 쓸데 없는 대사 같지 않으십니까? 원래 의미는 더 풍부합니다. "안 들어가요?" "예전엔 그랬지만." 그러니까 챈스는 옛날, 아직 술꾼이 아니었던 시절의 두드를 거론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두드가 과연 옛날 만큼 실력 발휘를 하겠느냐고 우회적으로 묻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대사들도 계속 이 문제의 맥락에서 나오는 대사들입니다.
"안에 버뎃 부하들이 열 명쯤 있을 텐데."라는 챈스의 말에(두드에게 과연 들어갈 배짱이 있는지 떠보는 말이겠죠) 두드가 대답하는 겁니다. 잘못된 번역은 아닌데, "더 있을 수도 있고요."가 좀 더 느낌이 살지 않을까요.
오랜만에 만나는 중대한 오역! 나중에 다시 나옵니다만, 이것은 분명한 오역입니다. 지금의 번역대로라면 두드는 챈스와 함께 보안관 노릇을 할 때 항상 뒷문을 맡았다는 의미가 됩니다(뒤에 이어지는 오역을 보면 번역자가 이런 의미로 번역했다는 게 좀 더 확실해 집니다). 하지만 그런 의미가 전혀 아녜요. 두드는 지난 2년 간 총을 버리고 술꾼으로 살며 온갖 멸시를 당해왔습니다. 바로 그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 동안 항상 뒷문으로 다녔어요. 놈들이 절 앞문으로 다니게 해주질 않았거든요." 이런 의미입니다. 이 영화 전체가 두드가 어떤 식으로 자존을 회복하느냐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만큼 이것은 정말 중요한 대사이고, 결코 지금처럼 번역돼서는 안 됩니다. 뒤에 이어질 오역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죠.
앞문으로 가겠다는 두드의 말에 "할 수 있겠나?"라고 묻는 챈스. 두드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대신 "그걸 확인해 보고 싶어요."라고 말합니다. 그에 대해 챈스가 대답합니다. "나도 그래." 그러니까 "좋네."가 아니라 "나도 그래."입니다. 즉 나도 자네가 다시 예전처럼 의지를 가지고 맞설 수 있는지 알고 싶다고 답하는 겁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신뢰의 문제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답변이죠.
간단한 오역. 총을 빼서 내려놓는 게 아니라 총집이 걸린 벨트를 풀어서 내려놓는 겁니다. "총대를 풀어 내려놓고"는 안 될까요?
버뎃 부하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사이 두드의 뒤편에서 바텐더 찰리가 움직이자 챈스가 주의를 줍니다. 이때 두드는 아주 노련한 전문가처럼, 흘낏 돌아보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There's no reason for you to move, Charlie."라고 합니다. 의미는 맞는데, "움직일 필요 있나, 찰리."라고 좀 유들유들하게 말하는 편이 분위기에 맞겠다 싶습니다.
버뎃 부하 중 하나가 이 술집엔 아무도 안 들어왔다고 하자 챈스가 하는 말입니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이 자막은 물음표와 느낌표를 지나치게 좋아합니다. 자막을 제작할 때 그런 걸 많이 쓸 필요는 없습니다. 심지어 실제로 고함을 치거나 물음을 던질 때조차 자제하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건 어차피 배우들이 목소리를 이용해서 직접 전달을 해줍니다. 하물며 이 DVD의 자막처럼 원래 대사는 조용조용한데도 뉘앙스를 살린답시고 자꾸 물음표랑 느낌표를 집어 넣으면서 열혈 분위기를 조성하면 곤란하죠. 여기서도 챈스는 좀 더 조용히, 더 무섭게 협박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 말 기억해 두지."라고요. (그리고 잠시 후, 진짜 기억을 합니다)
"환영"은 너무 세련된 말 같습니다. "다시 헛것이 보이나?"가 좋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챈스가 너무 열혈이에요. 조용조용 말하는 게 더 무섭습니다. "총 집고 싶으면 집어 봐. 집어 보라니까." 솔직히 "집으라니까!"라고 해버리면 집기 싫어도 진짜 집어야 될 것 같잖아요.
역시 대사에 비해 앞서나가는 설명조 번역. 지금 두드는 살인범을 잡아서 자기 능력을 입증한 참이라 아주 여유롭고, 스스로를 좀 뽐내고 싶기까지 한 상태입니다. 말하자면 자신이 작성한 기획안을 파르륵 넘기면서 "야, 이거 내가 한 건데 죽이지?"라고 말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이야~ 누가 했는지 몰라도 차암 잘 했네."하는 분위기랄까. 여기서도 살인범의 품 속에서 나온 금화를 보면서 "이게 살인하는 대가로 받은…" 이러는 게 아니라 "이거 이 친구 건가 본데요."부터 시작해서 "어이구, 돈 참 힘들게 버시네."하는 식으로 말하는 겁니다. 지금 대사는 너무 열혈이에요. "네이선이 생각하는 사람 목숨 값인가 보죠." "거 참 돈 힘들게 버네."로 좀 더 유들유들하게 갑시다.
계속되는 열혈 모드. "청부 살인이라. 반짝이는 50달러 짜리 금화란 말이지." (참고로 이 "반짝이는 50달러 짜리 금화"라는 표현은 앞서 두드가 유들유들 모드일 때 쓴 말입니다. "이거 이 친구 건가 본데요. 반짝이는 50달러 짜리 금화네요.")
역시 좀 여유를 가집시다. "자네 주머니에도 하나 있나?"가 더 멋지지 않아요?
목숨이 위험하다느니 50달러라느니,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설명조입니다. "다음에 보내는 녀석들에겐 돈을 더 주라고 전해. 그럴 만하니까." 음, 솔직히 "'cause they're gonna earn it."을 재미있게 옮기기 힘드네요.
아무튼 챈스와 두드는 승리를 거둔 참이라 승자의 여유를 부리고 있습니다. 챈스는 슬슬 자리를 정리하려다가 조금 전 두드에게 동전을 던지며 모욕을 주었던 악당을 보고는 두드에게 말합니다. "자네 일 다 봤나?" 그러자 두드가 (역시 유들거리며) 그러죠. "바쁘세요?" 위 대사는 그에 대한 챈스의 대답입니다. "아니네."보다는 역시 두드에게 맞장구 쳐주는 듯한 느낌으로 "딱히 바쁘진 않아."랄지 "별로."라고 하는 편이 재밌겠습니다.
이제 두드는 자신을 모욕한 악당에게 가서 아까 타구에 던진 은화를 다시 줍게 만듭니다. "돈 다시 받고 싶나?" "응." 그 다음에 그냥 "가서 가져와."라고 할게 아니라 "방법은 알지?"라고 하는 게 두드의 여유와 자신만만함을 잘 살려줍니다.
이건 설명하기가 좀 힘든데… 그냥 간단히 대안만 말하자면 "난 이걸로 됐어요, 챈스."입니다. 핵심은 for me를 살려주는 것입니다. 자세한 건
로빈 우드의 저서 [Rio Bravo]를 참조하시길.
자, 앞서 앞문과 뒷문의 문제에 관한 오역이 있다고 했죠? 이것이 그 분명한 증거입니다. 이 자막의 번역자는 이 대화를 두드와 챈스 사이의 갈등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간 함께 일할 때 챈스는 항상 두드에게 뒷문을 맡겼단 거죠. 그러나 그건 완전한 오해입니다.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지난 2년 간 두드가 술집을 드나들며 겪었던 모욕을 극복하는 과정입니다. 앞서 앞문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이 '지난 2년 간 녀석들은 날 앞문으로 다니지 못하게 했는데 이제 한 번 들어가 보겠다'라는 의미라고 했지요. 이 대사는 그 말과 조응하고 있습니다. 두드가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챈스가 말합니다. "이젠 앞문으로 다녀도 될 거야." [리오 브라보]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입니다(그러고보니 두드의 자존 회복과 관련된 핵심 장면마다 치명적인 오역이 있다는 게 참 난감하군요. 나중에 하나 더 나옵니다. 이 DVD 자막의 번역자는 [리오 브라보]의 팬이 아니라는 점을 확신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