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들-2007년 9월 1일
 00. 얼마간 컴퓨터 사용을 극도로 최소화할 생각이다. 반기계주의자였던 적은 없는 것 같지만(솔직히 말하면 크로넨버그가 보여주는 인간-기계의 합성에 대해서 매혹마저 느끼는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화를 두고 인간의 육신이 무너지고 변형되는 것의 공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그런 형상들을 좀 탐닉하게 된다. 내 배에 세로로 구멍이 뚫리고 살아 숨쉬고 있는 비디오테이프가 들어온다면 어떤 기분일까…) 가끔씩 기계에 묶여 있는 느낌이 싫어질 때가 있는데 요즘이 좀 그렇다. 휴대폰에서부터 시작됐는데, 출근할 때 휴대폰을 가지고 나가기는 하는데 가방 안에 처박아두고 퇴근할 때까지 한 번도 안 보기 시작한지도 꽤 오래 되었다(그래서 어제는 애인이 아일랜드에서 네 번이나 전화했는데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내가 컴퓨터로 뭘 하는가 생각을 해보니까 책하고 DVD 사고, 글 쓰고, 정보를 얻는 데에 쓰는데, 하루 정도 생각해 보니까 그것뿐이라면 얼마간 없어도 될 것 같았다. 물론 최근에 책과 DVD를 몰아서 구입한 것에 대한 핑계는 아니다.

 
 01.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The Maltese Falcon)]를 다 읽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레이먼드 챈들러의 책보다 훨씬 읽기 쉽다. 이미 챈들러에게 익숙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읽기 쉬웠던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플롯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적절하게 앞의 미스터리를 풀어주는 게 있어서 좀 더 따라가기 쉬운 책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여간 아주 즐겁게 읽었다. 존 휴스턴이 연출한 영화를 봤을 때도 험프리 보가트가 연기한 탐정 샘 스페이드란 자의 모습에 경악하면서 봤는데 소설은 한술 더 뜬다(특히 "에피는 천사야." 최고다! 마초적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렇지만 내가 에피였어도 이런 남자 옆에서 친밀한 비서 노릇 계속 하고 싶을 것 같다). 필립 말로는 냉소적인 것 같아도 언제나 품위와 격조를 가지고 있는데 샘 스페이드는 곧잘 웃고 있지만 어지간한 악당들보다 더 야비하다. 고정아 역자의 번역이 정말 탁월해서, 끝까지 여자에게 꼬박꼬박 존댓말 쓰고 부드럽게 문장을 내뱉으면서도 사람 속을 면도날로 삭삭 그어 내리는 듯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토록 비정한 사내를 보니, 또는 그렇게 비정해야만 하는 상황을 보니, 이미 필름 누아르의 극점은 여기 다 있었구나 싶었다. 아무래도 필립 말로 때문에 챈들러 쪽이 좀 더 인지도가 있지 않은가 싶으나 [몰타의 매] 하나만으로도 해밋을 좋아해 버릴 것 같다. 책 뒤에 실린 연보를 보니 해밋은 작가 경력이 대단히 짧고 장편은 다섯 편 밖에 쓰지 않은 작가다. 단편은 그렇다 치고 장편 수가 적다면 열린책들 성격상 전작주의로 나서 봐도 좋지 않을까? 열린책들에 졸라 볼 일이다. 적어도 [붉은 수확(Red Harvest)]과 [유리 열쇠(The Glass Key)]는 보고 싶다.

 여하튼 이렇게 돼 놔서, 조만간 기회가 생기면 그냥 [몰타의 매] 디스크 세 장짜리 스페셜 에디션 버전 DVD를 사 버려야겠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를 믿고 기다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고, 더군다나 [리오 브라보(Rio Bravo, 1959)] 이후 DVD의 한국어 자막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는지라 기다림의 끝에서 뭘 만나게 될지도 의심스럽고. 코드1 사는 게 속 편하지.
 그나저나 다시 봐도 험프리 보가트는 의외로 인상이 풍부하구나. 저 얼굴은 딱 샘 스페이드의 얼굴 아닌가. [깊은 잠(The Big Sleep, 1946)]의 능글맞은 필립 말로하고는 완전 딴판이다.


 02. 최근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의 열한 번째 인터뷰집 [영화, 감독을 말하다]가 출간됐다. 작년에 나왔던 [감독, 열정의 말하다]의 후속편격인 책이다. 이번에는 김태용, 박진표, 박찬욱, 이송희일, 임상수, 최동훈 감독과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정성일 평론가가 임권택 감독 인터뷰하듯 영화 내용을 두고 꼬치꼬치 캐물으며 나가는 형식의 인터뷰는 아니기 때문에 '영화' 인터뷰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좀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21세기 한국의 영화업계 종사자로서 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데에는 더없이 흥미로운 책이라고 본다. 특히 (나는 아직 [그때 그 사람들(2005)] 밖에 안 봤는데도) 임상수 감독과의 인터뷰가 의외의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물론 팬으로서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를 가장 기대했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일 터. 박찬욱 감독에 관해서라면 웬만큼 읽을 만한 글들을 읽어왔지만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이후의 입장도 궁금했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 편력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재밌으며, 차기작이랄지 훗날 만들어보고 싶은 영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거우니까. 특히 조만간 출시될 복수 3부작 박스세트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역시나 있었다. 그 중 그간 CJ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던 내용이 있어 옮겨본다.

지승호 : 최근 복수 3부작 배우들과의 기념촬영을 하셨잖아요. 복수 3부작 DVD 박스 세트를 기념하기 위해서 하신 것 같은데, 이번에 또 특별한 게 들어 있습니까?

박찬욱 : 〈복수〉는 소스 자체가 달라져서 어느 정도 화질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샤프니스나 이런 면에서 좋아졌고, 색보정도 새로 합니다. 그건 내일 할 건데, 이번에는 제가 색보정을 하나하나 직접 하면서 좀 더 본래 의도에 근접한 색을 만들려고 해요.

 DVD Prime 같은 데서는 복수 3부작 박스세트를 두고 말들이 많은데, 나는 CJ 엔터테인먼트의 고질병인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출시 연기'를 제외하면 불만이 없다. 부가영상이 별로 추가된 게 없다고 불평하는 건 이상한 노릇이고(우리나라의 영화 2차 산업 시장에서는 '다음 버전에 추가로 넣어 우려먹는데 쓰려고 남겨둔 부가상영' 같은 게 존재하기 힘들다. DVD 초판도 다 못 파는 나라에서 그런 게 있으면 처음 DVD 낼 때 다 넣는 게 당연하지. 아니면 DVD를 힘줘서 만들 만큼 시장성이 없기 때문에 아예 안 넣거나), 음성해설 추가도 당연히 되었고, 패키지도 새로 잘 만들었던데 뭘 더 바라겠는가. 화질과 음질이야 [올드보이(2003)]와 [친절한 금자씨(2005)]는 이미 할 만큼 했고 [복수는 나의 것(2002)]만 화질 보정을 하면 됐는데 그게 됐다니 당연히 구입할 생각이다.


 03. 9월 4일에 북미에서 [짝패(2006)] DVD가 출시된다(이게 작년 영화란 말인가! 하도 이야기를 많이 해서 내게는 점점 어린 시절에 보았던 추억의 영화 급으로 기억되고 있는데). 혹시 뭐 새로운 거 붙은 게 있나 봤으나 내용물은 한국판 DVD와 동일한 듯. 원래 포스터 디자인이 좋았던 덕분에 DVD 재킷도 괜히 주연 배우 얼굴만 크게 박아 놓은 멋대가리 없는 꼴로 나오지 않고 멋있게 나와 기쁘다. 웨인스타인 컴퍼니의 드래곤 다이너스티 시리즈로 출시되는데, 작년부터 홍콩 액션 영화를 주로 출시하던 레이블이다. 그 계열 타이틀을 구입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리뷰들을 보면 DVD 질에 믿음이 가는지라 안심이다. 장철의 [독비도(獨臂刀, 1967)],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警察故事, 1985)]랄지 오우삼의 [첩혈쌍웅(喋血双雄, 1989)], 엽위신의 [살파랑(殺破狼, 2005)] 등등이 다 거기서 나왔다. [짝패]도 그런 맥락에서 인식이 되는구나 싶다. 홍콩 영화로 오인될 가능성이 높겠다는 걸 제외하면 좋은 일이겠지. DVD 재킷의 인용구를 [맥심(Maxim)]에서 따왔다는 게 재밌다.


 04. 웅진지식하우스의 팬덤스토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제임스 모로의 [하느님 끌기(Towing Jehovah)] 읽는 중. 이제 막 읽기 시작해서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는 없고, 다만 책 외양에서 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 프리츠 라이버의 [아내가 마법을 쓴다(Conjure Wife)]도 그랬는데, 이 팬덤스토리 시리즈의 표지는 언뜻 보기에는 책날개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책날개를 아예 표지 안쪽에 붙여버린 모양새다.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거니와 책 펼 때마다 표지와 날개 사이에 살짝 벌어지는 부분이 생기면서 표지가 앞으로 볼록 튀어나오는 게 느껴져 신경이 쓰인다. 뭔가 의도가 있기야 있겠지만 그냥 좀 평범하게 만들면 안 되나? 독자가 느끼기에는 이렇게 해서 얻는 이득이 없다.

 한편, "하느님"은 하늘에 있는 존재라는 의미로 크리스트교 외의 영역에서도 절대자를 칭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고, 크리스트교의 신을 말하려면 하나뿐인 존재라는 의미로 "하나님"이라고 써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일단 국어사전 상에는 크리스트교의 개념도 "하느님"이라고 표기할 수 있다고 돼있다. 그러나 크리스트교 신자들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나야 이제 크리스트교 신자라고 말하기는 곤란한 처지니까). 한편 제목은 Jehovah라고 돼 있는데, 본문에서 "하느님"이라는 어휘가 나오는 경우 원문의 어휘는 무엇이었을지도 좀 궁금하다. 물론 책 제목을 "여호와 끌기"가 아니라 "하느님 끌기"로 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05.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는 정말 재밌을 것 같다. 경쟁 부문 중에서는 브라이언 드 팔마의 [편집된(Redacted, 2007)], 미이케 타카시의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スキヤキ ウエスタン ジャンゴ, 2007)], 캐네스 브래너의 [발자국(Sleuth, 2007)], 이안의 [색, 계(色, 戒, 2007)], 조 롸이트의 [속죄(Atonement, 2007)]가 궁금하다. [속죄]와 [색, 계]는 11월에 우리나라에서 개봉한다니 무척 기쁜데(하긴, 둘 다 들여오기 쉽게 생겼잖냐) 나머지 영화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드 팔마 영화는 무슨 마이클 무어 영화 들여오듯이 들여와야 될 것 같은 느낌이고, [발자국]은 별로 인기가 없을 것 같고,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 같은 경우는 [킬 빌 Vol.1(Kill Bill Vol.1, 2003)]이나 [데스페라도(Desperado, 1995)] 수입하는 기분으로 수입해서 상영해도 좋지 않나?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 예고편


[색, 계] 예고편

 아, 그리고 두기봉의 신작 [신탐(神探, 2007)]은 아직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작년 지아장커의 [삼협호인(三峽好人, 2006)]처럼 깜짝 초청 방식으로 경쟁부문에 초대될 것이 매우 유력하다고 한다. 이것도 당연히 열혈 기대작.

 국제영화제가 열리면 (우리나라 작품이 출품되지 않은 한은) 경쟁 부문 이야기만 하기에 바쁜데, 비경쟁 부문도 출품작들이 참 재밌을 것 같다. 특히 회고전 목록이 정말 흥미진진하다. D. W. 그리피스의 [불관용(Intolerance, 1916)] 세 시간 버전, 존 포드의 [철마(The Iron Horse, 1924)], 버드 보티처의 웨스턴 다섯 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세 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초기작 두 편, 세르지오 레오네의 [달러 한 줌(Per un pugno di dollari, 1964)] 복원판, 그리고 1960년대 후반에 나온 이탈리안 웨스턴 서른한 편! 그 외에도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 최종판, 우디 앨런의 신작 [카산드라의 꿈(Cassandra's Dream, 2007)] 등등. 국제영화제를 올림픽으로 만들지 말고 이런 이야기들을 좀 많이 볼 수 있음 좋겠다. 예컨대 이탈리아 웨스턴 회고전을 따로 마련해서 서른한 편을 몰아서 틀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특집 기사를 만들고도 남을 일 아닌가 말이다.
by sabbath | 2007/09/02 00:34 | 살아가며 | 트랙백 | 덧글(26)
트랙백 주소 : http://sabbath.egloos.com/tb/162898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유로스 at 2007/09/02 02:18
이번호 [판타스틱]에 의하면 샘 스페이드는 마이크 해머 다음으로 단순무식 해결형 탐정이더군요(...) 복수삼부작도 차세대 매체로 나오겠죠? 요새 새로 나온다고 하는 영화들은 왠지 차세대로 나올 걸 생각하면 선뜻 지르기가 힘들어요. [짝패]의 그 구수한 사투리는 어떻게 번역할지 참 궁금해집니다.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을 주로 쓰고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을 주로 쓰지요. 하느님은 다른 종교에서도 씁니다. 드 팔마나 우디 앨런은 왠지 감독의 화려한 이름값 때문에 오히려 재미를 못 보는 것 같아요. 아,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도 개봉을 안 하면서 [아즈미 대혈전]을 개봉하는 우리나라의 예측불가능적 개봉사례는 정말. 그러고보니 [충사]가 이번 달에 개봉하더군요, [무시시]라는 제목으로.
Commented at 2007/09/02 06:5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07/09/02 13:04
아~~ 색, 계는 매혹적이에요....
역시.. 이안 감독의 화면은.. . 매혹적인것 같아요...

그리고.. 스키야끼 웨스턴 쟝고라..... 타란티노가 나오는게 당연하게 생각되네요..^^;;
갑자기.. <불고기 웨스턴 원스 어폰어 타임 인 코리아>를 누가 만든다면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Commented by woody79 at 2007/09/02 17:06
양조위의 저 얼굴은 익숙하면서 왠지 낯선데요. 기대작입니다, 색,계.
Commented by chloe at 2007/09/04 13:36
어쩌다 방문하여 글 잘 읽고 링크 모셔갑니다. 허락하신다면 살짝 훔쳐보러 종종 들르겠습니다.
Commented by sesism at 2007/09/04 17:53
아,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 예고편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색, 계는 무척 매혹적이구요. 양조위를 정말 좋아하는 저로선 색, 계 어서 보고 싶습니다.
Commented by 예하 at 2007/09/04 20:50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 요번 부산영화제 상영작에 올랐습니다!
Commented by 강민우 at 2007/09/05 08:50
복수 삼부작은 친절한 금자씨 빼고는 좋게 봤는데 꼭 사야겠네요. 이히~
Commented by wideawake at 2007/09/07 23:51
'블랙 달리아' 극장 걸리더군요. 아무 생각없이 '데스 프루프' 예매하러 cgv사이트 갔다가 엉겁결에 어?! 하고 소리질러버렸습니다; 드팔마 형님 올해 베니스에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등장하셨던데, 이번 신작은 과연 국내 들어오런는지 원.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9/08 17:43
유로스 / 저는 시장이야 어찌됐든 저를 기준으로 삼아서 '내가 차세대 매체 플레이어를 살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언제나 '아, 신경 쓰지 말고 DVD나 사자'는 답이 1초 안에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부담없이 삽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짝패] 사투리야 뭐, 번역 못하죠. [짝패]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한국영화 DVD를 볼 때 영어 자막을 켜 놓고 보다보면 대다수 자막들이 대사의 의미를 살리기는 해도 어감을 살리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나라 DVD들이 무슨 크라이테리언 DVD도 아니고, 영어 자막 만드는 데에 심각한 한계가 있긴 하겠지만요(최소한 의미는 아니까 '오역'은 아니겠구나 하는 정도?). 사실 대사의 어감이란 자막보다도 배우의 연기를 통해서 이해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아주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실제 영어권 감상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아하, 카톨릭은 "하느님"을 주로 쓰는군요. [하느님 끌기]에 나오는 크리스트교 세력은 바티칸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카톨릭 세력이니 만큼 그런 맥락에서도 적절하다 싶습니다.

드 팔마나 앨런이 재미를 못 본다는 말씀은, 영화제에서 상을 못 받는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만, 다른 한 편으로는 단골손님으로서 자주 초대받는다는 것으로 충분히 의미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드 팔마나 앨런의 '이름값'에는 자신의 세계를 확고히 구축한 뒤 그 안에서 활약한다는 인상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영화제에서 무슨무슨 상 받기 쉽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유로스 님께서 하신 말씀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보통 영화제가 상 주기를 원하는 것은 새로운 영역으로 더 나아가는(혹은 나아간다고 착각하게 하는) 영화들이니까요. 이를테면 마찬가지로 이름값이 화려한 왕가위나 지아장커, 구스 반 산트 등은 심지어 이번 신작이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르더라도 어쩐지 그랑프리를 노리는 경쟁작일 것 같잖아요. 허나 그러한 '이름값'에 대한 인상이 전적으로 틀린 것도 아니고, 당사자들은 어쩐지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어쩐지 이번 베니스를 기점으로 해서 영화제에서 뭐가 상 받고 어쩌고 하는 데에는 점점 신경을 끄게 될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의 출품작들을 경쟁 부문 뿐만 아니라 비경쟁 부문, 회고전 등등 모두 살펴본 것이 이번이 처음인데 그러고 나니까 새삼 황금종려상이니 금곰상이니 하는 것에 주목하는 게 얼마나 심심한 일인지 알겠더라고요.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9/08 17:47
비공개 / 반대로 저는 [브로크백 마운틴]을 아주 좋아하긴 했지만 이안의 팬은 아닌데 ─ [와호장룡]이나 [이성과 감성]도 안 봤습니다. 보고 싶습니다만 ─ [색, 계]는 예고편을 보는 순간 이것은 기어이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아시아에 서양 문물이 유입되던 시절의 풍경도 좋고, 그 안에서 활동하는 스파이의 이야기라는 사실에는 흥분을 금치 못했고, 탕 웨이라는 여자 배우의 모습이 (남들이 남자 같다고 씹거나 말거나) 무척 마음에 들거든요.

[몰타의 매]는, 존 휴스턴 버전 영화 아직 안 보셨음 한 번 보세요. 정말 죽입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9/08 17:51
닥슈나이더 / 한국 웨스턴이라면 김지운 감독이 연출 준비 중이고… 뭐, 6~70년대에 만들어진 만주 웨스턴도 있겠지요. 물론 충분히 내세울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들인지는 의문이지만요. 일본에도 그런 류의 문화가 상당히 발달해 있다고 들었는데(단적인 예로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어휘부터가 일본에서 나온 데다가 현재도 이탈리아 웨스턴 DVD가 가장 많이 소개된 곳이 일본이니…), 미이케 타케시 감독의 영화가 그런 전통에 기대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9/08 17:55
예하 / 말씀 듣고 찾아보니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의 미드나잇패션 프로그램에는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 뿐만 아니라 캐네스 브래너의 [Sleuth], 임영동/서극/두기봉의 [철삼각]도 있군요. 심히 보고 싶습니다. 고민 좀 해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9/08 18:42
wideawake / 예. 씨네21 홈페이지 보니까 11월 개봉 예정이더군요. 이번에는 정말 할 것 같지요? 왜 이렇게 늦어졌는지 아직도 궁금합니다.

영어로 된 베니스 기사를 조금 읽어봤는데 이번 드 팔마 신작은 (상영 전까지만 입에 오르내리다가 상영 직후 모든 담론이 사라지는 듯했던) 작년보다는 훨씬 더 얘깃거리가 되나 봅니다. 역시 경쟁부문에 오른 폴 해기스의 영화도 이라크전에 관한 영화라서 두 작품이 여러모로 비교도 되는 것 같고. 폴 해기스의 영화가 고전적 문법으로 나가는 드라마라면 드 팔마의 영화는 온갖 매체의 이미지를 결합해서 만든 작품으로, 일단 그 속의 이미지가 보는 이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밀어 넣는다는 점은 여러모로 언급되더군요. 디지털 영화로서도 의미가 있는 모양이던데, 정식 개봉되지 못하더라도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8" 프로그램으로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데쓰 프루프]는 재밌게 보셨습니까? 모두가 최후의 20분 짜리 자동차 추격전을 이야기하던데, 물론 저도 무척 신나게 보았습니다만 타란티노가 호언장담한 것처럼 역사에 길이 남을 정도로 굉장한 자동차 추격 장면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저는 초반부에 정글 줄리아가 애인에게 휴대폰으로 문자 보내는 장면에서 뻑갔습니다. 다들 애버나시의 휴대폰 벨소리에 즐거워하시는 모양이지만 제게 [데쓰 프루프] 최고의 음악은 그 장면에 흐르던 [파열] 음악이었죠. 드 팔마 열혈팬으로서 심지어 [킬 빌]의 분할 화면보다도 더 감동적이었어요 ㅠㅠ)b 오늘밤 감상작은 [파열]로 할까봐요.
Commented at 2007/09/08 21:0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9/08 23:06
비공개 / 음, 그 영화들이 좋다고 듣기는 했어요. 특히 [아이스 스톰]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일단 [이성과 감성]이랑 [와호장룡]이 궁금해요. 전자는 제인 오스틴 영화라서, 후자는 호금전 풍의 우아한 무협 영화라서.

네, 뭐, 손실이 많이 있겠지만 그런 거야 한 문화가 다른 문화로 넘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잃게 되는 거고, [짝패]는 기본적으로 '액션'이라는 개념에 충실한 영화이기 때문에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데쓰 프루프]… 글쎄요. 저는 오프닝 크레딧부터 엔딩 크레딧까지 시종일관 아주 신나게 봤는데 원하시는 종류의 영화일지는 모르겠습니다. 후반부를 생각하면 [블리트], [프렌치 커넥션], [L.A.에서 살다 죽기], 등등의 죽여주는 아날로그 자동차 추격 장면이 나오는 영화 좋아하시면 꼭 보셔야 한다고는 말씀드릴 수 있겠지만 그 외에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가 남에게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죠. 그렇다고 비슷한 다른 영화를 떠올려보자니, 생각나질 않아요. 심지어 '타란티노 영화 좋아하시면 보러 가세요'라고 말씀드리더라도 엄청난 오해가 생길 수 있을 그런 영화입니다. 항상 온갖 것을 끌어오지만 항상 고유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보니.

그나저나 "놓치면 아까울"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제 생각에 놓치면 아까울 영화는 이 세상에 없어요. 못 봤는데 아까울 게 뭐 있겠어요. 문제는 먼 훗날에 DVD 등을 이용해서 본 다음 '아, 이걸 극장에서 못 보다니, 아깝다'하고 말하게 되는 경우일 텐데, 그런 관점에서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지요. 만약 DVD로 [데쓰 프루프]를 보고 마음에 들었다면 극장에서 못 본 것을 안타까워 하게 될 거라고. 하지만 역시 그냥 그렇다는 얘기지 별 도움이 되는 소리는 아니죠 :-(
Commented at 2007/09/08 23:1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9/08 23:59
비공개 / 그렇죠. 자동차 추격이라는 것 자체가 정말 순수 테크닉 싸움인 것 같습니다. 액션의 종류가 극히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카메라 위치와 편집으로 승부를 하는. 정말 추격 장면을 만들어 보기 전에는 그 비결은 도저히 알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러나 그런 추격 장면을 만들 수 있는 시대도 이제는 지나버린 것 같습니다. 영화 만들기가 더 쉬워졌기 때문에 오히려 승부욕은 줄어든 느낌입니다. 이제는 윌리엄 프리드킨 선생께서 액션 영화 하나 더 만들겠다고 하셔도 스턴트맨에게 차에 탄 뒤 이러저러한 미친 짓을 해보라고 하면서 찍진 못하실 것 같지 않으십니까.

아, [데쓰 프루프] 이야기를 하면서 [L.A.에서 살다 죽기]를 언급한 건 그런 류의 아날로그 자동차 추격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지 물론 [데쓰 프루프]가 [L.A.에서 살다 죽기]의 수준에 이르렀단 얘긴 아니라는 점을 덧붙여둡니다. 자기 영화의 자동차 추격전이 영화 사상 최고 수준은 아니더라도 세 손가락 안에는 꼽힐 수 있을 것이라는 타란티노의 호언장담에 비하면 여러모로 부족했지요.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9/09 10:49
별로 신경 안 쓴다고 했지만, 결과가 워낙 재밌고 놀라워서 올림. 제64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수상작.

황금사자상 : [색, 계]
은사자상 : 브라이언 드 팔마 - [편집된]
심사위원대상 : [나는 거기 없다] / [곡물의 비밀]
남우주연상 : 브래드 피트 -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여우우연상 : 케이트 블란쳇 - [나는 거기 없다]

역시 베니스가 칸 보다는 더 재밌는 것 같다. [나는 거기 없다] 예고편에서 밥 딜런을 연기하는 케이트 블란쳇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기대. 그나저나 15분 전에 새뮤얼 풀러 선생님의 데뷔작 [나는 제시 제임스를 쏘았다]를 입 쩍 벌리고 무릎 꿇으면서 봤는데 남우주연상이 제시 제임스를 연기한 브래드 피트에게 돌아가다니, 이 무슨 재미난 우연인지. [나는 제시 제임스를 쏘았다]는 로버트 포드에 관한 영화인 만큼 두 영화가 흥미로운 쌍을 이룰 수도 있겠다. (제임스 맨골드 연출, 크리스천 베일/러셀 크로의 [유마행 3시 10분]도 그렇고, 어쩌면 다시 한 번 웨스턴 장르의 재기를 기대할 수 있을지도?)

드 팔마 신작을 개봉하라!
Commented at 2007/09/09 11:5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9/09 13:42
대체 어떤 기자가 "곡물의 비밀"이라고 번역한 거람. 원제를 찾아보니 "La Graine et le mulet", [곡물과 노새]잖아. 다시, 제64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본상 시상 결과.

 황금사자상 : [색, 계(色, 戒)]
 은사자상 : 브라이언 드 팔마 - [편집된(Redacted)]
 심사위원 특별상 : [나는 거기 없다(I´m Not There)] / [곡물과 노새(La Graine et le mulet)]
 남우주연상 : 브래드 피트 -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The Assassination of Jesse James by the Coward Robert Ford)]
 여우주연상 : 케이트 블란쳇 - [나는 거기 없다]
 신인배우상 : 하프시아 헤르치 - [곡물과 노새]
 촬영상 : 로드리고 프리에토 - [색, 계]
 각본상 : 폴 래버티 - [자유로운 세상(It´s a Free World)]
 특별 공로상 : 니키타 미할로프
Commented by yun at 2007/09/10 14:08
ㅎㅎ 저도 갑자기 생뚱맞게 분위기가 바뀌면서 흘러나오는 블로우아웃 음악에 극장에서 혼자 (감격의)웃음을 풋!하고 터뜨리는 바람에 다들 이상하게쳐다보더군요. I can't wait to see you, hurry!!! 그리고 답장을 받은후 다시 이전분위기로 바뀌는..ㅎㅎ
그리고 마지막 엔딩장면은 65년작 Faster Pussycat Kill Kill의 오마주 느낌이 풀풀.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8282
Commented by yun at 2007/09/10 14:17
암튼 블로우아웃 음악에 (물론 배경음악이지만) 또 솔져블루를 비롯한 온갓 영화포스터들이 붙어있는 방과, 또 바로앞에 자신이나온 광고판을 못알아보는 스턴맨마이크한테 'I got one there too, Zatoichi' 라고 말하는 정글줄리는 타란티노같은 영화광인가봅니다.
Commented by 예하 at 2007/09/11 19:19
기적적입니다..
<철삼각>,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 <추적> 세 편이 미드나잇 패션 3로 해서, 한 타임으로 묶였네요!
혹시 오신다면 보시기도 편하게 되었어요. 일요일 밤이라는 점이 좀 걸리지만 말입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9/17 12:28
yun / 러스 메이어의 영화는 참 보고 싶은데 제대로 출시된 작품이 거의 없어서 못 보았습니다. 하지만 대충 어떤 경향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었던가는 들어왔기에, 말씀하신 느낌은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인형의 계곡 너머에]는 메이저 회사 영화라서 DVD가 잘 나왔나 본데 그거라도 볼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Commented by sabbath at 2007/09/17 12:29
예하 / 저도 시간표 보고 굉장히 놀랐습니다. 정말 마음에 들더군요. 부산에 가는 걸 심각하게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쟁쟁한 영화제들이 줄줄이 열리는 것이 부담스럽지만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