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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얼마간 컴퓨터 사용을 극도로 최소화할 생각이다. 반기계주의자였던 적은 없는 것 같지만(솔직히 말하면 크로넨버그가 보여주는 인간-기계의 합성에 대해서 매혹마저 느끼는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화를 두고 인간의 육신이 무너지고 변형되는 것의 공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그런 형상들을 좀 탐닉하게 된다. 내 배에 세로로 구멍이 뚫리고 살아 숨쉬고 있는 비디오테이프가 들어온다면 어떤 기분일까…) 가끔씩 기계에 묶여 있는 느낌이 싫어질 때가 있는데 요즘이 좀 그렇다. 휴대폰에서부터 시작됐는데, 출근할 때 휴대폰을 가지고 나가기는 하는데 가방 안에 처박아두고 퇴근할 때까지 한 번도 안 보기 시작한지도 꽤 오래 되었다(그래서 어제는 애인이 아일랜드에서 네 번이나 전화했는데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내가 컴퓨터로 뭘 하는가 생각을 해보니까 책하고 DVD 사고, 글 쓰고, 정보를 얻는 데에 쓰는데, 하루 정도 생각해 보니까 그것뿐이라면 얼마간 없어도 될 것 같았다. 물론 최근에 책과 DVD를 몰아서 구입한 것에 대한 핑계는 아니다.
01.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The Maltese Falcon)]를 다 읽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레이먼드 챈들러의 책보다 훨씬 읽기 쉽다. 이미 챈들러에게 익숙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읽기 쉬웠던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플롯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적절하게 앞의 미스터리를 풀어주는 게 있어서 좀 더 따라가기 쉬운 책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여간 아주 즐겁게 읽었다. 존 휴스턴이 연출한 영화를 봤을 때도 험프리 보가트가 연기한 탐정 샘 스페이드란 자의 모습에 경악하면서 봤는데 소설은 한술 더 뜬다(특히 "에피는 천사야." 최고다! 마초적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렇지만 내가 에피였어도 이런 남자 옆에서 친밀한 비서 노릇 계속 하고 싶을 것 같다). 필립 말로는 냉소적인 것 같아도 언제나 품위와 격조를 가지고 있는데 샘 스페이드는 곧잘 웃고 있지만 어지간한 악당들보다 더 야비하다. 고정아 역자의 번역이 정말 탁월해서, 끝까지 여자에게 꼬박꼬박 존댓말 쓰고 부드럽게 문장을 내뱉으면서도 사람 속을 면도날로 삭삭 그어 내리는 듯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토록 비정한 사내를 보니, 또는 그렇게 비정해야만 하는 상황을 보니, 이미 필름 누아르의 극점은 여기 다 있었구나 싶었다. 아무래도 필립 말로 때문에 챈들러 쪽이 좀 더 인지도가 있지 않은가 싶으나 [몰타의 매] 하나만으로도 해밋을 좋아해 버릴 것 같다. 책 뒤에 실린 연보를 보니 해밋은 작가 경력이 대단히 짧고 장편은 다섯 편 밖에 쓰지 않은 작가다. 단편은 그렇다 치고 장편 수가 적다면 열린책들 성격상 전작주의로 나서 봐도 좋지 않을까? 열린책들에 졸라 볼 일이다. 적어도 [붉은 수확(Red Harvest)]과 [유리 열쇠(The Glass Key)]는 보고 싶다. 여하튼 이렇게 돼 놔서, 조만간 기회가 생기면 그냥 [몰타의 매] 디스크 세 장짜리 스페셜 에디션 버전 DVD를 사 버려야겠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를 믿고 기다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고, 더군다나 [리오 브라보(Rio Bravo, 1959)] 이후 DVD의 한국어 자막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는지라 기다림의 끝에서 뭘 만나게 될지도 의심스럽고. 코드1 사는 게 속 편하지. ![]() 02. 최근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의 열한 번째 인터뷰집 [영화, 감독을 말하다]가 출간됐다. 작년에 나왔던 [감독, 열정의 말하다]의 후속편격인 책이다. 이번에는 김태용, 박진표, 박찬욱, 이송희일, 임상수, 최동훈 감독과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정성일 평론가가 임권택 감독 인터뷰하듯 영화 내용을 두고 꼬치꼬치 캐물으며 나가는 형식의 인터뷰는 아니기 때문에 '영화' 인터뷰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좀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21세기 한국의 영화업계 종사자로서 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데에는 더없이 흥미로운 책이라고 본다. 특히 (나는 아직 [그때 그 사람들(2005)] 밖에 안 봤는데도) 임상수 감독과의 인터뷰가 의외의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물론 팬으로서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를 가장 기대했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일 터. 박찬욱 감독에 관해서라면 웬만큼 읽을 만한 글들을 읽어왔지만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이후의 입장도 궁금했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 편력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재밌으며, 차기작이랄지 훗날 만들어보고 싶은 영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거우니까. 특히 조만간 출시될 복수 3부작 박스세트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역시나 있었다. 그 중 그간 CJ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던 내용이 있어 옮겨본다. 지승호 : 최근 복수 3부작 배우들과의 기념촬영을 하셨잖아요. 복수 3부작 DVD 박스 세트를 기념하기 위해서 하신 것 같은데, 이번에 또 특별한 게 들어 있습니까? 박찬욱 : 〈복수〉는 소스 자체가 달라져서 어느 정도 화질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샤프니스나 이런 면에서 좋아졌고, 색보정도 새로 합니다. 그건 내일 할 건데, 이번에는 제가 색보정을 하나하나 직접 하면서 좀 더 본래 의도에 근접한 색을 만들려고 해요. DVD Prime 같은 데서는 복수 3부작 박스세트를 두고 말들이 많은데, 나는 CJ 엔터테인먼트의 고질병인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출시 연기'를 제외하면 불만이 없다. 부가영상이 별로 추가된 게 없다고 불평하는 건 이상한 노릇이고(우리나라의 영화 2차 산업 시장에서는 '다음 버전에 추가로 넣어 우려먹는데 쓰려고 남겨둔 부가상영' 같은 게 존재하기 힘들다. DVD 초판도 다 못 파는 나라에서 그런 게 있으면 처음 DVD 낼 때 다 넣는 게 당연하지. 아니면 DVD를 힘줘서 만들 만큼 시장성이 없기 때문에 아예 안 넣거나), 음성해설 추가도 당연히 되었고, 패키지도 새로 잘 만들었던데 뭘 더 바라겠는가. 화질과 음질이야 [올드보이(2003)]와 [친절한 금자씨(2005)]는 이미 할 만큼 했고 [복수는 나의 것(2002)]만 화질 보정을 하면 됐는데 그게 됐다니 당연히 구입할 생각이다. ![]() ![]() ![]() ![]() 03. 9월 4일에 북미에서 [짝패(2006)] DVD가 출시된다(이게 작년 영화란 말인가! 하도 이야기를 많이 해서 내게는 점점 어린 시절에 보았던 추억의 영화 급으로 기억되고 있는데). 혹시 뭐 새로운 거 붙은 게 있나 봤으나 내용물은 한국판 DVD와 동일한 듯. 원래 포스터 디자인이 좋았던 덕분에 DVD 재킷도 괜히 주연 배우 얼굴만 크게 박아 놓은 멋대가리 없는 꼴로 나오지 않고 멋있게 나와 기쁘다. 웨인스타인 컴퍼니의 드래곤 다이너스티 시리즈로 출시되는데, 작년부터 홍콩 액션 영화를 주로 출시하던 레이블이다. 그 계열 타이틀을 구입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리뷰들을 보면 DVD 질에 믿음이 가는지라 안심이다. 장철의 [독비도(獨臂刀, 1967)],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警察故事, 1985)]랄지 오우삼의 [첩혈쌍웅(喋血双雄, 1989)], 엽위신의 [살파랑(殺破狼, 2005)] 등등이 다 거기서 나왔다. [짝패]도 그런 맥락에서 인식이 되는구나 싶다. 홍콩 영화로 오인될 가능성이 높겠다는 걸 제외하면 좋은 일이겠지. DVD 재킷의 인용구를 [맥심(Maxim)]에서 따왔다는 게 재밌다. ![]() 04. 웅진지식하우스의 팬덤스토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제임스 모로의 [하느님 끌기(Towing Jehovah)] 읽는 중. 이제 막 읽기 시작해서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는 없고, 다만 책 외양에서 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 프리츠 라이버의 [아내가 마법을 쓴다(Conjure Wife)]도 그랬는데, 이 팬덤스토리 시리즈의 표지는 언뜻 보기에는 책날개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책날개를 아예 표지 안쪽에 붙여버린 모양새다.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거니와 책 펼 때마다 표지와 날개 사이에 살짝 벌어지는 부분이 생기면서 표지가 앞으로 볼록 튀어나오는 게 느껴져 신경이 쓰인다. 뭔가 의도가 있기야 있겠지만 그냥 좀 평범하게 만들면 안 되나? 독자가 느끼기에는 이렇게 해서 얻는 이득이 없다. 한편, "하느님"은 하늘에 있는 존재라는 의미로 크리스트교 외의 영역에서도 절대자를 칭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고, 크리스트교의 신을 말하려면 하나뿐인 존재라는 의미로 "하나님"이라고 써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일단 국어사전 상에는 크리스트교의 개념도 "하느님"이라고 표기할 수 있다고 돼있다. 그러나 크리스트교 신자들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나야 이제 크리스트교 신자라고 말하기는 곤란한 처지니까). 한편 제목은 Jehovah라고 돼 있는데, 본문에서 "하느님"이라는 어휘가 나오는 경우 원문의 어휘는 무엇이었을지도 좀 궁금하다. 물론 책 제목을 "여호와 끌기"가 아니라 "하느님 끌기"로 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05.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는 정말 재밌을 것 같다. 경쟁 부문 중에서는 브라이언 드 팔마의 [편집된(Redacted, 2007)], 미이케 타카시의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スキヤキ ウエスタン ジャンゴ, 2007)], 캐네스 브래너의 [발자국(Sleuth, 2007)], 이안의 [색, 계(色, 戒, 2007)], 조 롸이트의 [속죄(Atonement, 2007)]가 궁금하다. [속죄]와 [색, 계]는 11월에 우리나라에서 개봉한다니 무척 기쁜데(하긴, 둘 다 들여오기 쉽게 생겼잖냐) 나머지 영화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드 팔마 영화는 무슨 마이클 무어 영화 들여오듯이 들여와야 될 것 같은 느낌이고, [발자국]은 별로 인기가 없을 것 같고,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 같은 경우는 [킬 빌 Vol.1(Kill Bill Vol.1, 2003)]이나 [데스페라도(Desperado, 1995)] 수입하는 기분으로 수입해서 상영해도 좋지 않나?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 예고편 [색, 계] 예고편 아, 그리고 두기봉의 신작 [신탐(神探, 2007)]은 아직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작년 지아장커의 [삼협호인(三峽好人, 2006)]처럼 깜짝 초청 방식으로 경쟁부문에 초대될 것이 매우 유력하다고 한다. 이것도 당연히 열혈 기대작. 국제영화제가 열리면 (우리나라 작품이 출품되지 않은 한은) 경쟁 부문 이야기만 하기에 바쁜데, 비경쟁 부문도 출품작들이 참 재밌을 것 같다. 특히 회고전 목록이 정말 흥미진진하다. D. W. 그리피스의 [불관용(Intolerance, 1916)] 세 시간 버전, 존 포드의 [철마(The Iron Horse, 1924)], 버드 보티처의 웨스턴 다섯 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세 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초기작 두 편, 세르지오 레오네의 [달러 한 줌(Per un pugno di dollari, 1964)] 복원판, 그리고 1960년대 후반에 나온 이탈리안 웨스턴 서른한 편! 그 외에도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 최종판, 우디 앨런의 신작 [카산드라의 꿈(Cassandra's Dream, 2007)] 등등. 국제영화제를 올림픽으로 만들지 말고 이런 이야기들을 좀 많이 볼 수 있음 좋겠다. 예컨대 이탈리아 웨스턴 회고전을 따로 마련해서 서른한 편을 몰아서 틀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특집 기사를 만들고도 남을 일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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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한 글 잘 읽었습니다..
by kinoeyes at 08/19 말씀하신대로 류승완 감.. by sabbath at 08/17 참 말할 거리가 많은 영.. by 파인로 at 08/17 그쵸. 사실상 모든 프랑.. by sabbath at 08/16 아, 그것은… 저도 무.. by sabbath at 08/16 저도 그 글을 읽어보았.. by sabbath at 08/16 제작사 외유내강 측의 .. by sabbath at 08/16 소식 고맙습니다! 포스터.. by sabbath at 08/16 가끔은 너무 만든 사람에.. by sabbath at 08/16 먼저 안 보신 분들께는 .. by sabbath at 08/16 저도 만주 벌판 액션이 참.. by sabbath at 08/16 [다찌마와 리] 속편 또.. by sabbath at 08/16 오오, 드디어 올리셨군.. by Sion at 08/16 드팔마를 떠올리는 장면.. by 다찌대박 at 08/16 저는 그놈의 잘생겼다!가.. by 은혈의륜 at 08/16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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