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화에 대한 글을 써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3월 9일에 다른 블로그에 올렸던 글

 평론가나 기자처럼 영화를 보고 그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지도 않고, 그나마 영화를 취미로 보전하는 것조차 충분히 자유롭게 하기 힘든 영화 애호가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쓴다면 그 글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지난 몇 년 간 나름대로 영화를 보아오면서 무언가 오래도록 남을 만한, 훗날 읽어보아도 읽는 이에게 각별한 감흥을 줄만한 글을 남기려고 노력해보았지만 문득 그것이 힘들어지거나 심지어 불가능해졌음을 깨닫고 나니 그렇다면 이제 내가 영화에 대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나름대로 오랫동안(그래봐야 영화에 주의를 기울인지 채 5년도 되지 않았지만,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한 편의 영화가 지닌 모든 중요한 것들을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자세하고 분석적인 글을 써보겠다고 다짐했고 실제로 그렇게 써보았다. 그러나 들인 노력이 한 말이라면 얻은 만족은 한 줌도 못 되었다. 한 영화에 대한 나의 모든 생각을 담는 글이란 불가능하기도 할뿐더러 경험의 폭이나 빈도가 제한되어 있으니 그나마 기왕에 갖고 있던 생각이라는 것도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동안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최대치만이라도 펼쳐낸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 왔는데,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편에서는 뭔가 미심쩍게 보기는 했으나 말로 옮길 도리가 없어서 넘어가고만 많은 것들에 대한 결핍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욕심을 버릴 때가 된 것 같다. 영화의 비밀을 속속들이 캐내어 전달하는 위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마저도 버릴 때가 되었다. 혹은 그런 소망을 가지는 것은 내가 처해있는 물리적인 상황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기만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해가 갈수록 영화의 물리적인 특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영화는 예술이라는 추상적인 개념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상영 공간, 상영 매체, 상영 시간, 함께 보는 사람들, 영화를 보는 내 몸의 피로를 통해서 존재한다. 까놓고 말해서 내가 영화를 대하면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물리적 환경을 갖출 수 없는 형편인데 영화의 모든 빛을 받아들이고, 게다가 그걸 글을 통해 타인에게 전달까지 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는 건 거짓말이다. 그런 거짓말을 알면서도 되뇔 때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게 더 많다. 어떻게든 내가 본 것을 하나로 묶어내려는 과정에서 내 영화 보기는 필요 이상으로 먹물스럽게 변해버려서, 종종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과연 조금 전까지 영화를 보기나 한 건가 하는 의심마저 들곤 한다. 그럴 때 내가 본 건 영화가 아니라 그 영화를 어떻게든지 하나의 글로 정리하고 싶어 하는 내 허영심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정말로 그런 건 싫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꼭 무엇을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보고, 보고, 그리고 끝이라면, 그렇게 영화가 내 삶을 그냥 스쳐지나가기만 할 뿐이라면, 역시 나는 영화에 대한, 그리고 내 삶에 대한 미안함을 감추기 힘들 것 같다. 영화를 소비해버리고 싶지 않다. 항상 그렇게 생각한다. 영화는 탕진해버리기에는 너무 풍부한 경험이다. (물론 이 시점에서 당연히 이런 의문이 찾아온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영화인가?' 그러나 주변의 영화 친구들과 몇 번이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나는 아직 이 의문에는 답할 수 없다. 어쩌면 이건 궁극의 질문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영화다'는 점만은 꽤 명확해 보이니까, 계속 이 자리에 남아서 글을 이어서 써야겠다) 상영 시간이 다했을 때 쏜살같이 흘러가 버리고 말 영상과 음향을 몇 번이고 다시 불러들일 수 있도록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니 그렇게 하자. 너무 많은 것을 붙잡으려고 하는 태도는 이제 안녕이다. 다만 영화에 대한 한두 가지 직관들을 남겨두고 싶다. 영화와의 만남이 대단해지지 않아도 괜찮다. 산다는 게 항상 대단한 것만은 아니니까. 그래도 스크린이 제공해주는 빛과 소리가 내 마음에 남긴 흔적을 훗날 다시 불러낼 수 있다면 영화와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을 것이고 그 때는 또 다른 한두 가지 것들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영화가 감추고 있는 비밀의 끝자락을 움켜쥘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만남에 익숙해지고 싶다.
by sabbath | 2008/03/14 22:55 | 영화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1)
트랙백 주소 : http://sabbath.egloos.com/tb/172649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3/14 23:27
간지러운 말을 하는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새벗님은 진지하게 평론가의 길을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Commented at 2008/03/15 00:0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3/15 00:0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8/03/16 00:14
ArborDay / 반면 저는 항상 저 자신이 평론가는 절대 못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대관절 이 평론이라는 게 뭘 하는 건지에 대해서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8/03/16 00:14
비공개 / 시나리오요?!;;

다른 블로그는… 뭐, 거기에 쓴 글 두 개 다 여기로 옮겨버렸는데 공개하고 말고 할 거 있겠어요.
Commented by sesism at 2008/03/17 10:38
저 역시 sabbath님이 평론가가 된다면 저같은 독자에게는 참 좋은 일이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번역을 해주셔도 또한 저같은 관객에겐 좋은 일이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고요.
Commented by 인성 at 2008/03/22 17:15
아 되게 졸리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봤는 데 재미있더라. 주제가 먼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싹오싹한 거 하나만 가지고도 굉장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예전에 좋은 프로 평론이 뭔지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 데, 아마 다루고 있는 영화를 독자가 보도록 만드는 글이라더라.
5월에 휴가나가는 데 얼굴이나 보자. 술을 좋아하는 지 모르니까, 마시자는 이야기는 못하겠고.
Commented by sabbath at 2008/03/26 00:21
인성 / 술은 끊은 지 3년째야. 요즘 사는 꼴을 생각하면 어떨지 모르겠다만 그래도 5월에 나오면 연락 바람! (그나저나 형용 소식 알아? 얘는 말도 없이 군대를 간 건지, 폰을 바꾼 건지…)
Commented by 인성 at 2008/03/30 19:33
01092228992 이 번호 딴 걸로 바꿨지. 근데 바뀐 번호는 나도 안 적어서 모르겠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8/04/01 14:48
인성 / 그렇구나. 녀석,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본격적인 고시의 세계로 침잠한 것인가.
Commented by 인성 at 2008/04/12 16:42
그건 아니고, 내가 군대 온 이후로 한번 전화한 적이 있는 데, 나중에 그 번호를 잃어버렸다.
근데 여친도 생겼다더라. 1년 전에 일이긴 하지만.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