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십자로(1934)] - 한국영상자료원 개관영화제 변사 공연
 한국영상자료원 개관영화제를 통해 [청춘의 십자로]를 보았다. 안종화 감독의 1934년 작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영화이며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한국 무성영화(게다가 사운드의 도입 이전에 만들어진!)이기도 하다. 작년 말에 발견된 이 작품을 개관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하면서,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30년대의 영화 체험 풍경까지 "복원"하고자 하는 시도를 감행했다. 김태용 감독의 총연출로 이루어진 이 [청춘의 십자로] 상영은 본 영화에 앞서 일종의 마임 단막극과 [청춘의 십자로] 주제가(물론 21세기에 새로 작곡했다) 공연을 곁들였고, 상영 내내 변사가 스크린 옆에 앉아 해설을 들려주었으며, 영화 상영 도중과 상영 이후에도 한 번씩 극 중 인물의 의상을 갖춰 입은 배우들이 무대 위에 나와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는 그것이 영화 자체와는 큰 관련이 없는 하나의 이벤트로만 기능할 거라고 짐작하였으나 실제로 상영을 체험하고 나니 이것이 단발적인 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영화 매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스크린 위에 영사된 필름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그 형상은 신묘한 데가 있다. 영화에 사운드가 도입되기 직전에 만들어진(바로 다음 해인 1935년에 우리나라 영화에도 사운드가 도입되었다) 무성영화이기 때문에 영화의 시각적 언어를 다루는 솜씨에 있어 오히려 이후 몇 년 간 나온 유성영화들보다 더 나은 측면이 있지 않겠는가 예상을 해보았는데, 과연 극찬을 할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감탄은 할 만한 순간들이 적잖게 발견되었다. 경성으로 진입하는 기차의 앞머리에서 촬영한 첫 번째 장면만 해도 그 움직임이 주는 감흥이 남다르거니와, 영화 전편에 걸쳐서 카메라는 상당히 활발하게 이동하며 세상을 담아내고 있었다. 물론 남용되었다고 말할 만한 부분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영화 후반부에서 쇼트를 나누는 대신 거울을 이용하여 대화 장면을 연출하고자 하는 시도는 좋았으나 그것을 너무 과시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 있다. 그처럼, 이 영화의 창작자들은 그 내용보다도 영화라는 매체를 다룬다는 사실 자체에 가장 깊이 매혹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순간들이 있다) 특히 카메라가 자유로이 인물들과의 거리를 조절하면서 앞뒤로 오가고, 그렇게 프레임의 크기가 조정되는 가운데 새로운 인물들이 들어오거나 빠져나가는 장면들에서는 연출자의 자신감과 능숙함이 돋보였다. 또 시점 쇼트와 초점의 변화를 혼용하면서 인물의 심리를 표현해 내는 연출도 참신한 것은 아닐지라도 적확하게 쓰여 보기 좋았다. 좀 더 단순한 고정 쇼트의 경우에도 따분한 유성영화들에서 곧잘 볼 수 있는, 그냥 세트에 배우들 데려다 놓고 연극을 시켜놓은 뒤 그걸 성의 없이 찍은 듯한 순간은 보기 힘들었으며, 전반적으로 매 쇼트를 공들여 찍은 기색이 역력하였다. 인물들은 곧잘 화면의 앞뒤와 좌우를 나눠 가지면서 (예리한 딥 포커스 화면까지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더라도) 꽤 볼만한 모습을 펼쳐내었다. 그저 예쁘고 멋있게만 찍으려고 한 것은 아니고, 이야기의 전개에 복무하기에 충분히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는 것으로만 승부를 걸어야 하는 무성영화를 만들 때 창작자들은 이미지에 대한 남다른 민감함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 이미지들 속에서 농촌에서 경성으로 올라온 남녀가 당대의 한량─모던 보이들에게 수난을 겪으면서 애정을 키워나간다는 멜로드라마가 펼쳐지는데, 줄거리만으로는 실로 따분한 이야기이지만 30년대 조선 사회의 풍경에 밀착해 있는 이미지들은 전형적인 이야기의 지루함을 흥미진진함으로 바꿔준다. 나무가 한 가득 실린 지게랄지, 소가 돌리는 연자방아, 주유소와 골프, 현대식 가옥의 정원 등과 같은 소재들은 그 개념만 놓고 보자면야 딱히 흥미로울 데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치 기록영화를 보는 듯한 이 영화의 화면은 그러한 개념들을 머릿속에 떠올렸을 때 즉각적으로 떠오를 법한 전형적인 심상들을 밀어내면서 항상 어딘가 낯설고, 신기하고, 그래서 더 진짜처럼 보이는 디테일들을 펼쳐낸다. 예를 들어 돈 많은 모던 보이들이 골프를 치는 장면. 그들이 골프를 치는 공간은 오늘날처럼 완벽하게 정돈된 골프장이 아니라 여기저기 제법 긴 수풀이 우거지기도 하고, (골프장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 높은) 언덕이 바로 옆에 붙어 있기도 한, 일종의 들판으로 보인다. 그런 공간에 대한 직접적인 코멘트가 인물의 입을 통해 제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골프를 치는 게 아니라 골프를 친다는 사실 자체를 과시하는 듯한 모던 보이들의 삶이 느껴진다. 바로 이와 같은 자잘한 인상들이 30년대의 경성, 강제된 개화기의 시대에 대한 감흥을 마련해주면서 너무나도 장르적인 줄거리 속에 실생활의 감각을 더해주면서 지루함을 덜고 흥미를 돋우었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통하여 그러한 부분들에 대해 깊은 논의를 할 생각은 없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논의를 시도할 수 있을 만큼 영화를 세밀히 본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번 상영에서 관객을 압도한 것은 변사의 존재였으며, 나 또한 거기에 압도당했다. 이 "압도"라는 표현을 강조하고 싶다. [청춘의 십자로] 상영 과정에서, 변사는 단지 무성영화의 침묵을 보조해주는 하나의 흥밋거리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무성)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화의 중심이었다.
변사 조희봉ver.beta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무엇보다도 궁금했던 점은 과연 한국 무성영화에서 자막의 사용은 어떠할 것인가, 과연 이야기의 전개는 얼마만큼 자막에 의존하고 있는 것일까, 자막은 어떠한 모습으로 제시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궁금증을 비웃기라도 하듯, [청춘의 십자로]에는 아예 자막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시각적 스토리텔링의 극점에 이르러서 아무런 자막 없이 영상만으로도 모든 내용을 전달하는 작품이었는가 하면 그것은 물론 아니고, 자막의 역할은 변사가 완전히 대신하고 있었다(혹시 변사 공연을 위해서 원래 있던 자막을 떼어놓고 상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으나 [씨네21] 김소영 교수의 글을 참조해 보건대 원래 자막이 없는 모양이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영화의 제작 단계에서부터 변사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상정되어 있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당시 변사의 "대본"은 처음부터 확정되어 몇 번을 반복해도 똑같은 것이 아니라 임기응변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체 변사가 어디까지 개입할지, 그러므로 어디까지 화면에 표현해야 할지를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이는 당대 영화인들의 증언을 참조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겠으나, [청춘의 십자로]만 놓고 보자면 이와 같은 변사 개입 영역의 불확실성은 결국 영화의 이미지에 지나치게 많은 여백을 남겨놓는 결과를 낳고 있다(그러나 이는 불확실한 추측에 불과함을 밝혀두어야 겠다. 현존하는 [청춘의 십자로]는 복원과정에서 전체 아홉 캔의 필름 중 일곱 캔 밖에 복원하지 못한 불완전판이기 때문이다. 어느 부분에서 무엇이 빠졌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각각의 필름에는 순서가 적혀 있지 않아 다른 자료를 바탕으로 한 추론을 통해 임의로 순서를 맞출 수밖에 없었고, 더군다나 이 필름들은 완성본이 아니라 NG컷까지 포함한 버전이었다고 한다. 한국영상자료원 측이 그 필름들을 어떻게 조합하였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변형시키게 되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 다만 내가 본 것이 완성판이라는, 사실은 불가능한 가정 하에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자막과 달리, 변사는 영화의 모든 순간에 이미지와 함께 존재하면서 시시각각 자신의 해석을 늘어놓는다. 예를 들어 주인공 영복(이원용)의 고향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 영화는 한 쇼트의 전경에는 연자방아를, 후경에는 지게를 짊어지고 걸어가는 영복의 모습을 배치한다. 이 때 변사는 우직하게 제 할 일 하면서 착실히 살아가는 영복이의 성격이 꼭 소와 닮았다면서 연자방아를 돌리고 있는 소를 향해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소를 너무 재촉 말라고 말함으로써 그 소를 모는 어린아이에게도 눈을 돌리면서 동시에 영복의 처지에 대한 해설을 시도한다. 영상을 보고, 엮어서, 이해하는 인지 과정에 개입하여 관객이 이미지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를 확정하는 셈이다. 그런가하면 변사는 줄거리를 자신의 마음대로 바꾸는 권력마저 지니고 있다. 영복의 고향 시절 회상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변사의 설명 없이 이미지만 보아서는 마을 처녀의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가 잘 살고 있던 그가 왜 갑자기 서울역에서 짐꾼으로 일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회상 장면의 말미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제 혼기가 다 찼으니 결혼을 하자고 말하는 듯한 처녀 쪽 부모들(이들이 부모라는 설정도 사실은 변사가 알려준 것이지만)의 모습과, 묵묵하게 물을 길어 오는 영복의 모습뿐이며, 그 이미지 어디에도 위협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렁메도 불구하고 변사는 이 순간 자신의 권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여 혼인을 앞둔 상황에서 웬 난봉꾼이 나타나 영복의 약혼녀를 빼앗는 바람에 실의에 빠져 서울로 떠나버렸다는 줄거리를 지어낸다. 눈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적기 때문에, 관객들은 들려오는 이 해설을 곧이곧대로 믿고 의지한 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영화와 변사ver.beta

 그러한 해설이 영화 속에 존재했다면, 즉 내레이션으로 존재했다면, 오히려 내레이션으로부터의 거리두기를 통해 또 다른 것을 볼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크린 바깥에 존재하는 변사는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관객에게 지나치게 가까운 존재다. 그는 1934년이라는 시간을 무시한 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농담을 던졌고, 때로는 카메라워크에 대해 감탄사를 늘어놓거나 배우들의 분장을 놀려먹는 식으로 아예 작정하고 영화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그는 영화의 일부분으로서 존재하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사적인 견해를 드러내어 발언해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조용히 하라는 타박을 듣지 않을 수 있는 특권을 지닌 강력한 관객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한국영상자료원 개관영화제의 [청춘의 십자로] 상영은 마치 영화가 관객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한 가지 적나라한 예처럼 다가왔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그것이 분명해진다. 호색한 장개철(박연)과 그 친구 주명구(양철)가 사랑하는 연인 영희(김연실)와 동생 영옥(신일선)을 농락한 것을 깨달은 영복은 두 모던 보이가 친구들과 노닥거리고 있는 연회장으로 쳐들어가 자신을 가로막는 무리들을 물리친 뒤(여담이지만, 영상자료원의 홍보와 달리 액션 자체는 대단치 않았다. 그러나 천천히 다가서는 영복의 모습을 잡은 트래킹 쇼트는 비범했다. 아직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액션 영화는 초창기 때부터 몸의 동작보다는 그 저변에 깔린 감정을 포착하는 데 주력했던 것일까?) 도망치는 개철을 붙잡아 두들겨 팬다. 변사는 영복의 입을 대신하여 갖가지 폼 잡는 대사들을 부르짖다가 마침내 그의 마지막 주먹이 개철을 때려눕히자 관객들의 박수를 부탁했다. 추측컨대 아마 1934년 당시에도 이 결말 부분은 관객들의 박수를 끌어냈을 것이다. 또는 이날 변사공연을 보러 온 적지 않은 관객들도 그 순간 내심 박수 치기를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변사의 선동과, 1930년대의 관객이 되고 싶은 마음에 이끌려 박수를 치면서도, 나는 거기에 진심으로 공감하기 힘들었다. 그 순간 이미지와 해설 사이에는 일종의 괴리가 존재했다. 개철을 때려눕힌 뒤에도 영복의 일그러진 얼굴은 펴질 줄을 모른다. 해소되지 않은 분노와 절망이 거기에 있다. 액션의 여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격하고 굳어있는 표정. 이 "액션"은 얼핏 보기에는 신파 멜로드라마 플롯 속에서 얽히고설킨 갈등을 풀어 헤치며 관객들을 행복한 결말로 안내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믿음직한 해결책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영복-영희-영옥과 개철-명구 사이의 충돌은 물론 개개인의 충돌이기도 하지만 농촌과 도시의 충돌,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등장으로 인한 충돌이기도 하다. 그 때 영복의 주먹은 이 다양한 층위의 충돌 중 어떠한 것도 해결할 수 없다. 개철과 명구가 죽거나 개심했을 리는 만무하고, 그들이 골프를 치며 술을 마시는 동안 서울역의 짐꾼들과 다방의 여급, 주유소의 가스걸들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친구들(코믹 릴리프로서 기능하는)을 끌어들여 마치 영복이 승리한 것처럼 분위기를 가볍게 띄울 때, 그리고 더 나아가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옥이 난데없는 기독교 의식을 끌어들이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영복과 영희의 앞날을 축복할 때, 문득 앞으로 돌아가 영복의 격노와 절망이 뒤섞인 표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영복/이원용의 얼굴은 갈등을 해소한 척 하고 싶어 하는 장르/관객의 욕구와, 자신이 딛고 선 땅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는 세상 사람의 의식 사이의 고뇌를 드러낸다.
 변사는 이 고뇌를 싹 지우면서 그냥 관객의 박수를 끌어내는 데 주력한다. 영복의 얼굴보다는 그를 축하하는 두 명의 코믹한 친구들이 장면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뒤이은 기독교 의식은 그냥 21세기 관객이 낄낄거리면서 재밌게 볼 만한 장면으로 남는다.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은 명랑하고 상쾌하다. 무엇보다도 멋진 쇼를 보았다는 즐거움이 가장 크다. 그런데 그렇게 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결국 스크린 바깥의 구경꾼으로 남아서 그저 받아들일 만한 즐거움만을 취한 채 기분 좋게 돌아가도 괜찮은 것일까? 세상을 질료로 삼는 영화는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그 세상 안의 다양한 균열을 포착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쇼"를 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자 찾아온 관객은 그 중 자신을 기쁘게 해줄 만한 순간만을 취한다. 게다가 영화 또한 스스로 관객에게 봉사하려 들면서 자기 안에 담긴 이미지들이 이미 드러내고 있는 균열들을 애써 못 본 척 봉합하면서 그냥 괜찮은 척을 한다. "대중" 영화가 가지는 이 모순점을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 모순이 변사라는 한 존재에 의해 적나라하게 구현되자, 새삼 그 당혹스러움이 크게 와닿았다. 영화가 관객과 호흡하는 과정에서 제작되고 수용된다는 당연한 사실이 이처럼 혼란스럽고 울적하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던 듯하다.




이번 공연을 위해 만든 [청춘의 십자로] 주제가
작곡: 박천휘 / 노래 : 임문희







 덧 하나. 변사 공연 후 관객들 사이에서는 DVD 출시에 관한 바람을 얘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나도 그러길 바라고. 이참에 만약 DVD가 나온다면 어떠한 꼴일지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설령 DVD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VOD 서비스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는 의미있지 않겠는가.


 일단 무엇보다도 김태용 감독의 "무대" 연출을 DVD로는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그냥 영화를 틀어놓고 무대를 연출한 뒤 그걸 마치 발레나 오페라, 록 콘서트 공연 DVD 만들 듯이 그냥 찍어서 DVD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스크린에 영화를 영사해 놓고 그 앞에서 공연을 하면서 그걸 다시 찍어 영화 DVD로 만든다는 건 아무래도 어리석어 보인다.

 하지만 비슷한 접근을 다듬다 보면 괜찮은 결과물이 나올지도 모른다. 전체를 공연 영상 찍듯 찍어서 DVD로 만들지 말고 "쇼"가 벌어지는 부분만 그렇게 해서 [청춘의 십자로] 영상 사이사이에 끼워 넣기만 해도 첫 번째 안보다는 나은 모양이 되겠다. 이를테면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2001)]처럼?
[춘향뎐]. 이렇게 나가다가…

가끔씩 이렇게 빠져나간다.


 그런가 하면 "쇼" 자체를 다시 영화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변사가 나와서 관객들과 상호 작용하는 걸 아예 [청춘의 십자로] 본편과 구분할 수 없게 하나의 영화처럼 만드는 거다. 글로 설명하기는 좀 어려운데… 이를테면, 영화 상영 도중에 가수가 무대에 나와서 노래 부르는 장면을 아래 [금연자(金燕子, 1968)] 속 장면 같은 느낌으로 표현해 버리는 것은 어떨까? 멀쩡히 영화를 보고 있는데 문득 프레임 왼편(그런데 이걸 프레임 안이라고 해야 할지, 바깥이라고 해야 할지)에서 웬 인물이 걸어 들어와 노래를 부르고 나가는 거다.
[금연자]. 아주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여기서 한시가 있는 배경이 스크린이 되는 거고 앞의 인물이 변사가 되는 식으로. 무대를 바로 찍은 것과 유사하지만 무대를 찍었다기보다는 원래 영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문득 영화 밖에 있던 인물이 영화 안으로 침입했다는 느낌?


 이보다 더 과격하게 나가자면─ 아예 전면적인 합성을 이용하여 변사를 확 영화 안으로 집어넣어버린다! [캣 벌루(Cat Ballou, 1965)]나 [스파이더(Spider, 2002)]의 아래 장면처럼. 너무 과격한가. 돈도 많이 들겠고, 애초에 변사가 들어갈 공간까지 염두에 두고 쇼트가 설계되었을 리 없으니 난이도도 높다. 음, 그냥 해본 소리다. 그래도 영옥과 영희가 고뇌하고 있을 때 둘이 서 있는 사이를 가수가 왔다 갔다 하면서 주제가 불러주면 재밌을 것 같은데.
[캣 벌루]. 대놓고 카메라 쳐다보면서 기타 치고 노래부르는 이 사람들은 영화 내부의 인물인 동시에 관객과 대화하는 서술자로서만 기능한다. 그럼 진짜 주인공은? 지금 저 뒤에 마차 타고 오는 하늘색 옷 입은 아가씨. 이 두 사람이 노래 부르면서 이 동네는 뭐 하는 동네라네~ 하며 해설을 한 뒤 프레임 밖으로 빠져 나갈 즈음 저 아가씨가 카메라 가까이 오면서 영화가 전개되는 거다.

[스파이더]. DVD가 없어서 일단 스틸을 사용했다. 위 장면에서 레이프 파인즈(가운데)는 실제로는 가브리엘 번(왼쪽)과 같은 시공간에 존재할 수 없는, 3인칭 객관적 관찰자이다.


 값비쌀 공상은 접어두고 그냥 상식적이고 저렴한 방법을 생각해 보자면, "쇼"를 보여주는 건 포기하고 그냥 들려주기만 하면 된다. 영화 상영 전에 나오는 변사의 마임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영화가 시작한 뒤로는 그냥 변사의 목소리, 가수의 노래, 그리고 새로 작곡한 BGM을 소리만 입히는 거다. 아주 기본적인 무성영화 DVD 만드는 방법.

 이런 식으로 만들 때도 고려할 부분은 많다. 일단 오디오 트랙. 네 종류의 오디오 트랙을 선택할 수 있게 하면 재밌을 것이다.


  김태용 감독의 연출을 반영한, 변사의 해설과 가수 및 악단의 음악이 들어간 트랙.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씬 시티(Sin City, 2005)]와 [공포의 행성(planet Terror, 2007)] DVD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건데, ①과 함께 극장에서 상영했을 때 웃고 떠들고 박수치는 관객들의 반응까지 함께 녹음한 트랙. 한국영상자료원 측에서 앞서 있었던 두 번의 상영 동안 이걸 녹음했을지는 의문이지만… 안 했으면 다시 하면 되지 뭐. ①과 ②를 나눌 필요 없이 ②만 넣어도 괜찮을 것 같다.

  아무 것도 없음. 그냥 영상만 본다.

  ③에다가 새로 작곡한 BGM만 깐다. 각종 무성영화 DVD들의 기본적인 형태. 단, 이 경우 BGM은 ①, ②에서 사용했던 것과는 달랐으면 좋겠다. 나는 서울아트시네마,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영상자료원 등에서 실황 연주를 곁들인 무성영화 상영 프로그램을 몇 차례 경험한 적이 있는데, 그 중 음악이 영화에 섞여든 꼴이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음악이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전에, 내게 무성영화 음악이라고 하면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침묵하는 일 없이 계속해서 화면에 맞게 다양한 음률이 흘러나오는 걸 뜻한다. 미국 KINO나 Criterion이나, TCM Archives에서 출시한 무성영화 DVD들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청춘의 십자로]에 BGM을 입힌다면 그 정도로 공들인 모습이 되길 바란다.
영화와 악단ver.beta


 한편, DVD의 구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봄직한 부분이 있다. 본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청춘의 십자로] 필름은 완전히 다듬어져 극장에서 상영하기에 부족함 없는 버전이 아니라 NG컷까지 포함된 버전이다. 그리고 일곱 개의 필름 캔이 상영되는 순서도 명확하지 않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번에 상영한 버전은 이 필름들을 다른 자료들에 의지하여 순서를 맞추고 NG컷을 잘라내 만든 것이다. 따라서 DVD를 만든다면 이렇게 "정제된" 버전과, 원래 발견되었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갖다 넣은 버전 두 가지를 넣을 수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일단 가장 자연스러우리라 생각되는 순서로 배치를 하되 DVD의 장면 선택 메뉴를 꾸밀 때 일단 캔 별로 일곱 토막을 낸 뒤, 다시 그 안에서 세부적으로 챕터를 나눈다면 연구자들에게 더 도움이 되겠다.
 혹은 한국영상자료원이 정말 막가서 김태용 감독으로 하여금 자기 버전의 [청춘의 십자로]를 만들 수 있게 해버린다면, 세 가지 버전이 들어갈 수도 있을 테고. 하여튼 부가 영상은 논외로 하고 본편을 어떤 형상으로 수록할 것인가만 고려하더라도 상상의 여지가 굉장히 많다. 자, 또 어떤 방법이 있을까?



 덧 둘. 아 참, 그래서 이 영화를 변사 공연 없이 그냥 보신 분들의 소감이 무척 궁금하다.
by sabbath | 2008/05/18 15:27 | 영화 감상문 | 트랙백 | 핑백(1)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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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충격 at 2008/05/18 15:40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멀티앵글 수록이 있겠죠.
무대 전체를 담은 영상과 영화 화면을 담은 영상을 동시수록해서
시청자가 장면에 맞춰 바꿔가면서 보고 싶은 쪽으로 볼 수 있도록.
Commented by 방문객 at 2008/05/18 19:40
dvd 정말 내 주었으면 좋겠어요. 놓친 입장에서 너무 고마울 거예요.
김태용 감독님 이번 시선 1318 옴니버스 [달리는 차은]도 걸작이라고 얘기 많이 들었는데...^^
sabbath님의 예상 오디오 트랙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네요
Commented by sabbath at 2008/05/18 22:57
충격 / 아,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공연이나 변사의 모습을 담을 때는 그런 방법도 좋겠네요.

그러고보니 영화 본편 앞에 덧붙여진 변사의 마임 단막극이 스크린 밖에서 스크린 안으로 진입하는 일종의 액자 구조를 띠고 있는 내용이니 만큼 처음에는 무대 공연 DVD의 양식을 취하다가 영화 DVD로 전환하기만 해도 나름대로 효과적일 듯합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8/05/18 23:05
방문객 / DVD에 수록할 관객들의 반응을 녹음하기 위해서라도^^ 한두 번 정도 더 공연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사의 역할 자체에 의구심을 품기는 했습니다만 그와는 별개로 김태용 감독님 연출 참 좋았어요. 필름을 새로 편집하고 변사 대본을 만들고 음악을 새로 넣고 기타 등등 이번 공연을 위해 새로이 투입된 노력들을 떠올려 보노라면 '이 작품을 김태용 감독의 연출 필모그래피에 포함시켜도 좋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물론 참여하신 다른 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 특히 도입부의 단막극이 영화 본편과 연결되는 방식이 감탄스러웠습니다. 상영 며칠 전에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라 반영하셨다더군요.
Commented by sabbath at 2008/05/18 23:11
에공. 주제가가 마음에 들었기로 블로그에 링크해두고 반복해서 들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는데 끊겨버렸네요.
Commented by nixon at 2008/05/19 13:07
DVD소식은 어디서 들으신건지요? 혹 제 블로그에서 보신거라면, 그건 리셉션에서 아는 손님과 대화 중 나온 이야기일 뿐입니다. (다른 루트가 있다면 저로서도 더 좋겠지만요.)

<청춘의 십자로> 무성영화를 제가 봤는데, 아무 소리 없이 자막도 없는 무성영화는 굉장히 낯선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줄거리의 이해가 잘 안될 정도였지요.
Commented by nixon at 2008/05/20 09:17
sabbath님... 이 글 영상자료원 블로그에 소개해도 될까요? 허락 기다립니다. 그 전에 저희 영화제에 대한 좋은 글 감사드리고요.
Commented by sabbath at 2008/05/20 10:11
nixon / 예, 그런 정도입니다. 잡담을 공식 발표로 오해하여 "영상자료원에서 [청춘의 십자로] DVD를 출시할 계획이래!"라고 알리고 다니는 것은 아니니 걱정마시길^^; 그러나 좀 더 오해를 줄일 수 있도록 문장을 손보겠습니다.

예. 줄거리 이해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필름 두 캔이 사라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변사의 개입 영역이 너무 넓기 때문이리라는 추측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영옥이 개철의 집에서 도망갔다가 다음 장면에서는 다시 개철, 명구와 함께 골프장에 있는 전개만 해도 변사의 해설 없이는 대체 뭐하는 전개인가 당혹스러울 것 같더라고요.

물론 소개하셔도 됩니다. 블로그에 올리셨던 변사 공연 사진 관련글에 트랙백도 보냈는 걸요.
Commented by sabbath at 2008/05/20 10:13
주제가 다시 나오네요^^
Commented by 이도훈 at 2008/05/20 15:13
다녀갑니다. 세상이 무서운지, 그대가 유명한건지, 안가르쳐줘도 저 혼자 찾아왔어요 ㅋ 즐겨찾기 하고 갑니다. ^^
Commented by nixon at 2008/05/20 15:17
참고로 변사의 대사 작업 과정을 알려드리면, 우선 어떤 분이 전담해서 대본을 쓰셨답니다. <청춘의 십자로>를 보고 큰 틀을 잡아가며 대본을 쓰신 다음, 감독 김태용, 변사 조희봉, 작가분께서 영화를 반복해서 보며 한 줄 한 줄 수정해나가셨다 하네요. 그 과정에서 조희봉 씨의 애드립도 꽤 많이 들어갔다고 하고요. 또한 김태용의 의지로 옛것에 대한 낯섦에서 오는 웃음을 최대한 억제했다 해요. (그런거 있잖아요. 대책없는 복고가 나오면 웃게 되는...) 그러고보면 그런 장면들도 제법 있었을 것 같은데, 킥킥대는 웃음은 거의 없었죠?

확실하진 않지만 재공연을 추진중입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8/05/27 00:08
예. 그런 캠피한 웃음은 없었지요. 오히려 감탄이 더 컸어요. 1930년대라고 하면 지금 관객들에게는 아득히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데 의외로 거기 담긴 모습이 현대적인 것이어서. 특히 영옥의 등장 장면은 ㅠㅠ)b
Commented by 모모씨 at 2008/05/22 02:32
안녕하세요.. 이 공연을 기획, 진행했던 사람으로서 진심어린 감사와 함께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책임감을 포함해서요) 몇 가지 해명(?) 혹은 부연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일단 <청춘의 십자로> 공연을 위해 제작진 전체가 당시 신문기사, 안종화감독이 남긴 기록, 변사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나운규 일생> 같은 이전 영화, 50년대 통속소설(이른바 '딱지판'이라 불렸던) 등 구할 수 있는 자료들을 함께 보고, 논의를 했고 한국영화 연구가에게 자문도 받는 등 나름의 고증과 학습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캐스팅과 시나리오 작업, 음악 작곡에 들어갔는데요, 대사는 안종화 감독님이 남긴 줄거리와 당시 신문기사를 참고로 기본 틀을 삼고 작가가 초고를 쓰고, 김태용 감독, 변사를 맡아주신 조희봉씨, 무대감독 등 제작진 모두가 영화를 계속해서 돌려보며 장면을 분석하고, 줄거리의 빈 부문들을 매꾸고 구체적인 대사를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한 줄 한 줄 먼들어낸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동의했던 것은 변사의 역할을 크게 하고(과거 변사는 영화의 또 다른 창작자이자 해설자이며 일종의 종합 엔터테이너였으니까요. 변사에 따라 같은 영화도 다 달라졌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과거의 시간이나 그 어쩔수없는 거리감을 웃음거리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변사의 개입이 불편하셨거나 혹은 과도하게 느껴지셨더라도 그건 이번 공연의 한 컨셉이며, (만약 기회가 만들어진다면) 또 다른 공연에서는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그러니까 수없이 가능한 버전 중 한 가지 버전으로 받아주셧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희들도 그러한 생각으로 이번 작업을 시작했고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1934년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분명 영화 중 자막을 언급한 내용이 있습니다만('자막에 잘못된 부분이 없어 훌륭하다..'는 기사가 있거든요), 자료원에서 발굴, 복원한 필름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쉽게도 구체적으로 어떤 자막이, 어느 부분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사실, 이 영화에는 굉장히 많은 미스테리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앞으로 자료원과 학계에서 확인해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연 실황은 모두 녹음이 되어 있으며, 제작과정과 공연전후, 관객의 반응까지 담은 간단한 메이킹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DVD의 모습이 어떤 식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향후 발매될 DVD 제작이나 다른 결과물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작업과 소스 확보는 처음부터 기획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물들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공개할지 여부는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가운 소식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재공연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예산이 문제인지라(한 번의 공연을 올리기 위해 필요한 아주 최소한의 비용들이...) 구체적인 시기, 방식, 예산확보 등의 문제를 놓고 고민이 많습니다(훌쩍..., 사실 이번 <청춘의 십자로> 공연은 기획부터 치자면 지난 해 말부터 시작된 것이니 제법 오랜시간 공을 들인 것이고, 개관영화제 프로그램 중 하나로 전체 프로그램과 함께 진행하느라 마지막 두 달은 거의 매일밤을 세우다시피 했던 차라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남다르네요). 이번 공연에 대한 애정과 관심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조만간 반가운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기를 저도 진심으로 바라며,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Commented by sabbath at 2008/05/27 00:19
긴 말씀 고맙습니다. 물론 저도 이번 상영판이 절대적인 버전이라고 생각하며 ─ 다시 말해, [청춘의 십자로]는 정확히 이런 모양이고 또한 한국 무성 영화는 이런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글 전체 내내 '~같다', '~인 듯하다', '~은 아닐까?' 등등의 추측성 어미를 반복하기는 곤란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또한 제가 무슨 [청춘의 십자로]에 대한 비평을 쓰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환경에서 이루어진 한 번의 감상에 대한 소감을 쓰는 글이었기에 조금 무리를 했습니다. 참고로 제 블로그의 영화감상문 제목은 기본적으로 다른 부제 없이 해당 영화의 제목만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이 글 제목에 "한국영상자료원 개관영화제 변사 공연"이라는 말을 넣은 것도 그와 같은 인식에서 나온 것이랍니다.

한편 자막이 있었단 말씀은 특히 흥미진진합니다. "자막에 잘못된 부분이 없어"라니, 그렇다면 다른 무성영화 자막들에서는 어떤 "잘못"이 있었단 말인가 싶기도 하고요. 말씀하신대로 현 단계에서는 그저 상상해 볼 도리 밖에는 없겠지요. 모쪼록 더 많은 한국 무성영화들이 발굴되기를 기원해봅니다.

두 번의 변사 공연이 모두 매진되었고 못 보신 분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주변에도 여럿 있어요) 재공연을 하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이겠습니다.

이번 공연 뿐만 아니라 개관영화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만 거리가 거리인지라 자주 가질 못해 안타깝습니다. 한 번 가려면 그냥 마음 편하게 '오늘 하루는 영상자료원에'하며 가야해서 말이죠^^;

참, 이 글을 다른 곳 ─ 한국영화를 다루는 학교 교양 강의 게시판입니다 ─ 에도 올렸는데, 혹시 그 글에 위에 쓰신 내용을 첨부해도 괜찮을까요? 그 수업 듣는 분들 중 이 공연 보신 분들이 계신데, 역시 좋은 정보가 될 듯합니다. 물론 불편하시다면 그냥 제가 간접적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언급하는 글을 따로 쓰겠습니다.
Commented by 모모씨 at 2008/06/11 22:35
아..정말로 늦은 답신이옵니다~ 개관전 이후 한동안 폐인모드로 있었기에...물론, 이 내용을 첨부하셔도 좋고, 이러한 이야기를 언급하는 글을 따로 쓰셔도 좋습니다... 그저 감사드릴 따름~~ 그리고 자막에 잘못이 없다는 기사는 아마도 지금으로 치면 오타가 없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다른 영화들의 경우 오자가 많았다고 하더라고요..여튼 재공연 준비가 착착...되고 있다고는 말씀 못드리겠고(훌쩍..) 여튼 진행되고 있어용...참 감독님께 언급해주신 가상 dvd 버전에 대한 말씀을 드렸어요..무척 좋아하시더라고요..쿄쿄쿄쿄..글고 음악감독님은 이미 읽으셨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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