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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 영화 감상문은 비교적 냉정하게 거리를 두어가며 쓰는 편이었지만, 그러나 지금 만큼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기록해두고 싶다. 나는 조금 전 앤소니 만 감독의 1958년 작 [서부의 사나이]를 DVD로 보았다. 개리 쿠퍼가 주연을 맡은 웨스턴이다. 이 영화는 정말 굉장하다. 어느 정도로 굉장하냐면, 그냥 굉장하다. 그냥 굉장하다. 나는 전에 앤소니 만 영화를 몇 편 본 적이 있다.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The Man from Laramie, 1955)]랑 [윈체스터 '73(Winchester '73, 1950)], [벌거벗은 박차(The Naked Spur, 1953)]를 코드1 DVD로 보았고, 세 편 모두 무척 좋아했다. 존 포드의 모뉴먼트 밸리나 하워드 혹스 식의 세트와는 전혀 다른 서부의 풍경을 담고, 그 안에서 웨스턴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그리스 신화 또는 필름 누아르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의 작품들은 정말 독특했다. 그 세 편만으로도 능히 존 포드, 세르지오 레오네, 샘 페킨파와 같은 내가 좋아하는 웨스턴 전문 감독들과 같은 위치에 두고 싶었다. 하지만 [서부의 사나이]는 그 이상이다. 솔직히 이건 너무 심하다. 반칙이다. 1958년이라고. 아니, 옛날 영화가 이렇게 대단하면 어쩌자는 거냐 뭐 그런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다(내가 그런 발언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서부의 사나이]는 갑자기 시대를 박차고 뛰쳐나와서 그냥 역사 바깥에, 신화의 공간에, 순수한 영화의 자리에 위치해 버린 것 같은 작품이다. 고전기 할리우드의 문법으로 전개되는 걸작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앤소니 만은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내 머리통을 깨부수고 나갔다.
이런저런 걸작들과 더불어 웨스턴의 종말을 알리는 영화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는 접어두자. 또는 하나의 장면을 정말 악랄하다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밀고 나가면서 나를 벌벌 떨고 기가 차다 못해 헛웃음이 나오게까지 만들었던 그 시퀀스 감각에 대한 경탄도 여기서는 자제하자. 물론 그것도 있지만 지금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무엇보다도 대체 그냥 영화가 어떻게 저렇게 "보일"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이 쇼트에서는 당연히 고정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카메라가 대체 왜 움직이는가? 저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당연히 제법 가까이 다가가서 풀 쇼트 정도로 찍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만큼 멀리 떨어져서 찍고 있으며 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카메라가 움직이는 것일까? 그런데, 그런데 왜 그렇게 카메라가 움직이는 것이 쓸데없이 폼 잡고 움직이는 잉여가 되는 게 아니라 너무나도 숭고하고 경이롭게 보이는 것일까? 도저히 모르겠다. 이런 느낌은 작년에 딱 한 번,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2007)] 중 동호와 송화가 제주도 어딘가에서 소리를 하는 장면에서만 경험해봤다. 그러니까 뭐 카메라가 복잡무쌍한 동선을 그린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영화를 볼 때는 종종 카메라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이거나 또는 아예 안 움직이는 게 당연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드는 순간이 있는데, [서부의 사나이]에는 바로 그런 순간에 카메라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장면을 제공하는 신비의 광경이 있다는 거다. [천년학]에서는 그걸 딱 한 장면, 딱 한 쇼트에서 느꼈다. 그런데 [서부의 사나이]는 틈만 나면 그런 걸 보여줬다. 이건 대체 뭔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서 개리 쿠퍼가 걸어가는 걸 수평 트래킹으로 멀찍이서 잡아내는 장면들을 볼 때면 무엇보다도 폴 토머스 앤더슨의 [피를 부르리라(There Will Be Blood, 2007)]가 떠올랐음을 기록해 두자) 마지막 결투 장면을 보자. 영화를 여기까지 봤는데도 이 결투의 결과를 짐작하지 못할 관객은 한 명도 없을 거다. 게다가 여기선 변변찮은 "총싸움"도 없다. 이건 사실 결투라고 할 수도 없는 시시한 총질이며 그냥 일방적인 자살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장면에서, 앤소니 만은 이쪽에 사람 한 명, 저쪽에 사람 한 명 세워놓고 걸어가게 하면서 카메라를 슬쩍 움직여준다. 그러면 놀랍게도 기나길고 높디높은 벼랑이 물결치고 하늘이 촥 펼쳐지면서 저 멀리서 음울한 구름 덩어리들이 몰려온다. 그냥 인물들을 꾸며주는 배경으로 남는 게 아니다! 그것들이 화면을 구성한다. 이런 건 그냥 자연을 연출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서부의 사나이]를 보면서는 유독 하늘을 많이 보았다. 내가 영화 속의 하늘 모양새에 유달리 관심이 많아서 그리 된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정말 설명 불가능한 방식으로 자연을 출연시키고 있다. 하여간 그 안에서 뭔가 벌어지면 그건 그냥 그 자체로 경이롭게만 보인다. 또 다른 장면. 개리 쿠퍼와 그 일행들은 악당들에게 둘러싸여 무력해진다. 그들은 별 수 없이 악당들을 따라 끌려갈 수밖에 없다. 그 때, 악당들이 간밤에 머무른 숙소를 떠날 채비를 하고, 마당 한 편에서 개리 쿠퍼와 일행들이 서 있을 때, 카메라는 이만큼 멀리 떨어져서 그들 모두를 비춘다. 아, 그것 참 멋있는 구도다, 하고 감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이 카메라가 움직인다. 위로 스윽 솟구치더니 이들을 멀찍이서 내려다본다. 바로 이런 순간, 입이 딱 벌어지면서 머리가 하얗게 되고 만다. 뭐지 저건? 등장인물들, 혹은 그들이 담긴 스크린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우주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라는 표현조차 초라하기 짝이 없는 그런 기분!). 이런 건 정말 말이 안 된다. 하이 앵글은 대상의 나약함을 강조하네 어쩌네 하는, [영화의 이해(Understanding Movies)] 같은 영화 교과서들에나 나올 법한 표현 따위로는 결코 이해 불가능하고 그 감흥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내가 궁금한 건 대체 그걸 어떻게, 어째서 했느냔 말이다. 무슨 수로 알고? 정말 까놓고 말해서 세르지오 레오네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C'era una volta il West, 1968)]나 샘 페킨파의 [팻 개럿과 빌리 더 키드(Pat Garret & Billy the Kid, 1973)] 같은 영화가 담아내는 쇼트는 인간이 정말 열심히 밥 잘 먹고 살면서 머리 감싸 쥐고 하다 보면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이를 악물고 말하자면 존 포드가 만든 웨스턴도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앤소니 만의 다른 영화들도 아마 그럴 것 같다. 그렇지만 [서부의 사나이]는, 이건 뭔가. 인간이 이러는 건 너무하지 않나? 어쩌다 우연히 그렇게 됐겠지, 라고 넘기기에는 너무 많은 순간들이 그러하다. 영혼이라도 팔지 않고서야……. 영화를 백 날 천 날 보아봐야 이런 신비의 비결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건 정말 영화를 만들어야만 알 수 있겠지? 아니, 영화를 만들어 본들 알 수나 있는 걸까? 내가 어떠한 단서나 조건이나 장점 같은 것을 들먹이지 않고 그저 불가항력적으로 영화에 매료되는 이유. 그걸 오늘 [서부의 사나이]에서 보았다. ![]() 덧 하나. 예전에 시네마테크 부산의 "수요시네클럽" 프로그램을 통해 정성일 평론가가 [서부의 사나이]를 추천하면서 쓴 추천사가 있다. 덧 둘. 아, 이 영화는 차마 캡처를 못 하겠다. 덧 셋. (19:50) 그래도 아쉬워서 캡처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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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한 글 잘 읽었습니다..
by kinoeyes at 08/19 말씀하신대로 류승완 감.. by sabbath at 08/17 참 말할 거리가 많은 영.. by 파인로 at 08/17 그쵸. 사실상 모든 프랑.. by sabbath at 08/16 아, 그것은… 저도 무.. by sabbath at 08/16 저도 그 글을 읽어보았.. by sabbath at 08/16 제작사 외유내강 측의 .. by sabbath at 08/16 소식 고맙습니다! 포스터.. by sabbath at 08/16 가끔은 너무 만든 사람에.. by sabbath at 08/16 먼저 안 보신 분들께는 .. by sabbath at 08/16 저도 만주 벌판 액션이 참.. by sabbath at 08/16 [다찌마와 리] 속편 또.. by sabbath at 08/16 오오, 드디어 올리셨군.. by Sion at 08/16 드팔마를 떠올리는 장면.. by 다찌대박 at 08/16 저는 그놈의 잘생겼다!가.. by 은혈의륜 at 08/16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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