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도 눈물도 없이(2002)]
 Cooooooooool!!!

 역시 주변에서 주워들을 수 있는 평 따위를 믿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런 멋진 영화를 그까짓 녀석들의 훼방 때문에 이제사 보게 되다니!(註1)

 감히 말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이]는 대략 타란티노, 성룡 짝퉁(註2) 영화였습니다. 짝퉁이긴 했는데 오히려 그게 즐거운 영화였지요. 영화광의 유쾌함이 그대로 묻어나더군요. 돈도 많겠다, 류승완 감독은 이번엔 그냥 평소에 자기가 봐왔던 걸 직접 해보고 싶어서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딱히 '류승완만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세우기보다는 이것저것을 짜깁기해서 만들었지만 우리가 이미 [킬 빌 Vol.1(Kill Bill Vol.1, 2003)]에서 봤듯이 그런 짜깁기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지요. 신구, 백일섭, 정재영, 전도연, 이혜영, 류승범 등등 친숙한 배우들의 얼굴과 성룡을 떠올리게 하는 류승완의 액션 연출과 [트루 로맨스(True Romance, 1993)]를 좀 뜯어 고쳤을 것 같은 시나리오가 모이니까 그 매력이 제법 괜찮게 느껴졌습니다.

 최근엔 [정체성(Identity, 2003)]에서 봤던 한 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의 행위를 재배치하는 수법이라든가, 다양한 갈래의 무리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점차 연결되다가 결국 한 방에 팍 터지는 식의 시나리오는 익숙한 것이긴 했지만 진부하지는 않았습니다. 류승완 감독이 좋아하는 영화가 어떤 건지 딱 보여주더군요. 일종의 영화광적 쾌감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서로 다른 목적의 무리들이 한데 모이는 장면에서는 "완전 타란티노잖아!"하면서 폭소를 터뜨렸다니까요.

 주먹대장 류 감독의 주먹질 연출은 또 어떻고요. 이번엔 정두홍 무술감독까지 합세해서 끝내줬습니다.(註3) 다만 조금 속도감을 떨어뜨리더라도 클로즈업을 자제했더라면 더 멋진 장면이 나왔을 것 같긴 한데… 뭐, 사실상 제대로 된 자본을 가지고 한 첫 작업이었으니 앞으로 더 나아지겠지요. 아무튼 국내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액션 연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는 온갖 영화의 잡탕이지만 여전히 류승완 식의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덜 다듬어졌고, 좀 더 파고들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 안타까움과 기대감을 가진 젊은 영화죠. 게다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를 본 저 같은 사람으로서는 류승완이라는 이름에 자본이 더해질 경우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하는 걸 볼 수 있기도 했고요. 아무튼, 적어도 이 젊은 영화 감독을 제가 지지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기엔 충분히 즐거운 영화였습니다. 류승완은 분명히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반짝 스타가 아니에요. 오늘날의 젊은 감독들로 대표되는 한국 영화계에서 한 획을 담당할만한 사람입니다.



 덧 하나. 감독들과 배우들도 이런 어린 영화광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배우들의 이름도 그렇고, 도움주신 분들 목록 제일 위에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감독의 이름이 있는 걸 보고 껄껄 웃었어요. 복 많은 감독입니다, 류승완 감독은.

 덧 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영문 제목은 [Die Bad]. [피도 눈물도 없이]의 제목은 [No Blood No Tears]. 간단해서 좋다! 했는데 그걸 또 [無血無淚]라고 써놓은 걸 보니 그건 좀 웃기더라고요.



 

 1. '그러니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상인 거지요. 훗.' 등등 따위의 코멘트를 다시는 분은 분위기 파악 못하시는 분으로 간주해드리렵니다. 물론 평소엔 그럴 수 있겠지만, 만약 거기에 1만 9천원이 달려있다면, 이미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충분히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요.

 2. 류승완 액션의 리얼리티에서 어떻게 성룡을 느낄 수 있는가 싶은 분도 계실텐데… 살과 살이 맞부딪치는 쾌감은 성룡 영화의 것과 동일하다고 봅니다. 생각해보세요. 이소룡은 아웃복싱처럼 연출을 합니다. 폼 잡고 있다가 번개같이 달라들어 한 방에 때려눕히지요. 이연걸의 경우는 공격을 슬쩍 피하거나 흘려보내요. 하지만 성룡은 무식하게 받아내는 면이 있습니다. 상대가 주먹질을 하면 그걸 받아치는 쾌감이랄까. 발길질의 경우도 두 팔로 받아내지요. 특히 발길질 받아내는 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도 나왔는데, 류승완 액션에서 성룡의 냄새가 가장 짙게 나는 연출이라고 봅니다.

 3. 정두홍 감독은 영화에서 말 한 마디 없는 침묵맨으로 등장해서 멋진 무술 솜씨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아아, 그 절대 고수의 풍모! 멋있었어요.
by sabbath | 2003/12/30 11:52 | 영화 감상문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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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용당주 at 2003/12/30 16:59
저도 정말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 하지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완전한 성룡(+ 확실한 류승완 감독 취향) 테이스트라면, 피도 눈물도 없이는 정두홍 감독의 취향도 짙게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정두홍 감독, 중간에 쪼개는 장면이 너무 멋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좀 의외의 영화(..)에 나와서 당황했습니다만.
Commented by G at 2003/12/30 18:41
보고. 정말. 시원했던 영화.
Commented by rill at 2003/12/30 20:16
[당연히] 베라모드님은 이걸 보셨을것이라고 생각한 건 편견이었던겁니까?;
(압권은 백일섭씨죠. 반해버렸어요+_+)
Commented by sabbath at 2003/12/30 20:30
rill / 당연히 편견이지요. 제 재력에 대한 편견.
Commented by roha at 2003/12/31 02:01
새벗님 평을 보니 보고싶어졌어요 '_' 기회가 된다면 꼭 보도록 할게요.
..아참, 이건 별로 상관없는;; 얘기이지만요, 전부터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저랑 아는 친구중에 [윤지로]라는 아이가 있답니다'_';;; 설마 지로라는 이름이 또 있을까 했는데 새벗님의 본명을 알고나서 깜짝 놀랐었지요;
Commented by 나는그네 at 2004/01/01 04:35
전 짝퉁 가이 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짝퉁 스내치, 짝퉁 락 스탁 엔 투 스모킹 배럴즈라고 해도 좋고요. 제가 보기에 액션이 아무리 좋아도, 스타일이 비슷한 건 감점 요인이 되더군요. 감독이 저랑 동갑이라는 건 좀 그렇습니다만. -_-a
Commented by 윤지로 at 2005/01/20 21:01
저는 미국에 사는 교포 아줌만데요, 저야말로 50살이 되도록 이 세상에 이런 이름은 없는 줄 알고 살았고 그래서 이름 내놓기가 무슨 노출이나 되듯 망설어졌었는데 이제 신세대 중에 몇 분 계신가 보죠? 너무 놀라고 재미있어서 이런 글을 인터넷에 올려보기는 처음이네요. 연락까지 하고 싶은 심정이구요. 아마 해평 윤 씨의 학렬을 쓰신 거 아닌가요? djyk910@yahoo.com
Commented by sabbath at 2005/01/20 21:41
윤지로 / 저 역시 블로그 운영 전에 우리나라에 이 이름 가진 이가 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 해평 윤 씨와는 아무런 관련 없답니다. 가문의 항렬을 따른 이름도 아니고요. 아버지께서 그냥 뜻과 발음을 고려해 지어주신 거죠 :-)
Commented by 무지개벌레 at 2007/03/12 13:16
영화관에서 무척이나 재미있게 본 영화였습니다. 백일섭씨가 압권이었다는 분에 저도 동감~~ , 담배 피워서 두콧구멍으로 내뿜던 연기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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