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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때문에 좀 바쁘긴 했지만 그럭저럭 많이 읽고 본 한 달. 영화의 경우는 본 작품을 다시 본 경우가 많았다. 〈팜므 파탈〉이나 〈아라한 장풍 대작전〉, 《반지의 제왕》, 〈범죄의 재구성〉 등등.
조셉 헬러, 『캐치-22』 : 말로만 듣던 안정효 번역의 최고작을 구한 건 꽤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이제야 읽게 됐다. 갈기갈기 씹는 거나 플롯이 마구 튀어 다니는 게 꼭 커트 보네거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중요한 차이라면 이 작품이 훨씬 더 웃겼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중의 미 공군 대대를 무대로 벌어지는 미치광이 대소동. 막스 브라더스에 막스 브라더스를 곱한 느낌의 이 난장판은 그 자체로 작게는 군대, 크게는 모든 시스템의 부조리를 풍자한다. 대체 이렇게 뒤죽박죽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어떻게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는 건가 궁금했는데 마무리마저 깔끔하기 그지없어서 감동해버렸다. 이 달에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등 여러 편의 부조리 풍자극이라고 할 만한 작품들을 읽었으나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이 단연 최고다. 특히 즐거웠던 부분 중 하나인 클레빈저 징계 위원회 장면의 일부를 발췌해 본다. "그런데 우린 지금 무슨 얘기를 하던 참이었지? 마지막 말을 다시 읽어주게." "'마지막 말을 다시 읽어주게'." 속기를 할 줄 아는 상등병이 다시 읽었다. "내가 한 마지막 말말고, 이 병신아!" 대령이 소리쳤다. "다른 사람의 얘기 말야." "'마지막 말을 다시 읽어주게'." 상등병이 다시 읽었다. "그것도 내가 한 말 아냐!"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대령이 소리쳤다. "아, 아닙니다, 대령님." 상등병이 말을 바로잡았다. "그건 제가 마지막으로 한 말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그걸 읽어드렸죠. 기억이 안 나십니까, 대령님? 조금 아까였는데요." 스티븐 킹, 『그것』 : 워터가이드가 항해 중이던 시절 카샤 님께서 추천한 이래 "언젠간 봐야 할 목록"에 넣어두고 있었던 작품. 듣던 대로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이 자주 떠올랐으며, 이야기가 소박해서 살짝 당황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이들이 "그것"을 만나 싸우는 것과 어른이 돼서 다시 "그것"을 만나 싸우는 이야기가 평행 배치된 호러 액션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스티븐 킹을 은근히 그 정도로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코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는 작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곱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들 각자의 세계를 짜는데 주력하고 있었고, 그 세계의 밑바닥에 살짝 "그것"이라는 존재를 깔아둠으로써 공포를 조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결국 스티븐 킹은 공포가 시각이 아니라 정서라는 사실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으며, 그런 공포를 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들을 한 명 한 명씩 소개해나가는 도입부에서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공감은 얼마나 진했던지(특히 대학에서 대판 싸우고 나가 공포 소설을 쓰기 시작한 빌 덴브로와, 언제나 고독해서 자신의 고독을 모르는 벤 한스컴의 이야기는 정말 절실하게 와 닿았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좀 더 할 이야기가 있지만 따로 글 하나를 기약하며 일단은 이 정도로만. 레이먼드 챈들러, 『리틀 시스터』 : 미뤄뒀던 『호수의 여인』을 날름 읽어치웠을 때만 해도 정말 죽인다고 생각했는데 『리틀 시스터』를 읽고 나니 이번엔 이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같은 작품을 쓰고 있다는 평과는 달리, 레이먼드 챈들러는 갈수록 나아가는 작가라고 본다. 차근차근 그의 작품을 순서대로 내주는(물론 『하이 윈도』보다 『안녕 내 사랑』이 먼저여야 했지만) 북하우스가 고마운 것도 그 때문이고. 특히 이 작품의 암울한 분위기는 마음에 쏙 들었는데, 해설을 읽어보니 챈들러가 할리우드 생활에서 염증을 느낄 대로 느낀 뒤에 쓴 작품이라고 한다. 원래 필립 말로가 냉소적이고 시궁창에서 구르는 남자이긴 했지만 『리틀 시스터』에서는 정말 징하다. 초기작에서 드러나는 의지로 빛이 바래 보이고. 특히 아무런 사건 없이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우울한 독백을 늘어놓는 13장에서는 깜짝 놀랐을 정도. 과거 『빅 슬립』에 심취해 있을 때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을 보고 "정말 챈들러스럽다. 하지만 더 암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챈들러 역시 『리틀 시스터』로 이미 폴란스키 수준의 성취를 이루고 있었다. 시리즈 마지막 작품이자 최고 걸작이라는 『기나긴 이별』을 무척 기대하는 중. 그러나 그 전에 『리틀 시스터』를 한 번 더 읽어야겠다. 읽는 사람 혼을 빼놓는 챈들러의 플롯이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애인님과 안정효 씨의 추천 때문에 읽었다. 재미있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직접 공연하는 것을 봐야 그 느낌을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지시문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대사의 리듬은 읽는 것만으로는 알기 힘들었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비록 『캐치-22』에 밀리긴 했어도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정말 2, 3권보다 4, 5권을 더 좋아한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하다. 조앤 해리스의 『초콜릿』은 상당히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정말 이야기에서 초콜릿 맛이 나더라. 달콤 쌉싸름한. 무난한 전개와 부드러운 결말 덕에 읽기가 편했다. 라세 할스트롬의 영화도 보고 싶긴 한데 원작이 다크 초콜릿이라면 영화는 밀크 초콜릿이라고 해서 살짝 망설이는 중.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전형적인 라틴 아메리카 소설. 전체 스토리는 단순해도 그 윤곽을 채우고 있는, 환상적이다 못해 엉뚱하기까지 한 라틴 아메리카식 마술이 일품이었다. 『초콜릿』이야 가능하겠지만 이건 또 어떻게 영화화 했는지 모를 일이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호수의 여인』은 놀랍게도 무슨 댄 브라운 소설처럼 후다닥 읽어버렸다. 그만큼 챈들러의 세계에 익숙해진 탓도 있지만 챈들러치고는 비교적 플롯이 평이해서 읽기가 쉬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즐거움이 덜한 것은 아니었고. 『리틀 시스터』가 믿을 놈 하나 없는 작품이었다면 『호수의 여인』은 그래도 알고 보면 좋은 놈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이어서, 그 나름대로 또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 언급하고 싶은 건 장경현 님의 해설. 지금까지 읽은 챈들러 해설 중 가장 즐거운 글이었다. 북하우스의 챈들러 선집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이라고 할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 〈에비에이터〉 : 매일매일의 감상을 기록하는 내 노트를 보면 2월 22일에 감상한 것으로 돼 있는 〈에비에이터〉 옆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This is what I call "cinema". 딱 그 느낌이었다. 정말 보는 내내 쉴 새 없이 헐떡이고, 부르르 떨고, 물을 연신 들이켜야 했다. 초반부의 아직 덜 자란 테크니칼라 색감이 좋았다. 디카프리오 눈썹 사이의 주름이 좋았다. 케이트 블란쳇, 아니 캐서린 헵번의 영국어가 좋았다. 비행 장면은 아주 끝내줬다. 신경증을 표현하는 스콜세지의 방식도, 비행의 쾌감을 표현하는 스콜세지의 방식도, 하워드 휴즈를 해석한 스콜세지의 방식도, 모두모두 좋았다. 인물이나 테마 자체는 스콜세지의 주력 아이템에서 살짝 비껴 나가고 있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더 일반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완전히 자기 때문에 몰락하는 사람이라니, 놀랍도록 멋졌다. 다시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인데 광주의 어디를 가야 2.35:1의 화면비를 잃지 않으면서 엔딩 크레딧도 끝까지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외할머니만 아니었어도 메가박스 1관에서 아주 살아버렸을 텐데. 브라이언 드 팔마, 〈스네이크 아이즈〉 : 오랫동안 이름만 들어왔던 드 팔마의 "실패작". 케이블에서 그렇게 자주해줬는데 나는 한 번도 못 봤는지라, 그리고 어차피 케이블에서 하는 건 화면비도 안 맞으니까, 할인하는 김에 구입했다. 듣던 것과는 달리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역시나 브라이언 드 팔마 좋아하는 건 고독한 일이라는 자뻑에 잠시 취하기도 했다(하기야 드 팔마 팬들 사이에서도 이 영화는 꽤나 하위에 위치해 있다.). 물론 드 팔마의 최고작은 아니었지만 그가 〈팜므 파탈〉에 가 닿기 위해 (물론 〈팜므 파탈〉이 그의 절정이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은.) 어떤 길을 선택했는지가 보여서 무척 흥미로웠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그와의 대담에서 "당신은 스릴러 영화를 찍지만 더 이상 스릴러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했던 게 무슨 뜻인지도 보다 분명히 알 수 있었고. 그에게는 더 이상 훌륭한 이야깃거리라는 게 필요하지 않다. 그는 오히려 진부한 이야기를 택해서 카메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만약 브라이언 드 팔마가 죽는다면 나는 〈스카페이스〉 같은 작품이 아니라 〈스네이크 아이즈〉 같은 영화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할 것이다. 줄스 다신, 〈리피피〉 : 모란봉13호 님의 추천 덕분에 만나게 된 영화. "무음(無音)의 절도"가 나온다기에 장 피에르 멜빌의 〈암흑가의 세 사람〉을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생각했던 거랑은 꽤 달랐다. 물론 보석상 털이 장면의 빼어남이야 〈암흑가의 세 사람〉 못지않지만 이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은 그 이후였다. 완벽하게 범죄를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때 이들을 무너뜨리는 건 외부의 침입(다른 갱들의 습격)에 의한 내부의 균열이었는데, 영화의 핵심적인 정서는 바로 이 내부의 균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배신자를 처단한다는 진부한 소재를 이만큼 격정적으로 표현한 영화가 또 어디 있을까? 세상의 수많은 누아르 중에서도 걸작의 위치에 올릴만한 멋진 작품. 로버트 시오드막의 〈암살자들〉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암살자들〉, 그리고 돈 시겔의 〈암살자들〉에 대해서는 이미 자세한 글을 올린 바 있고… 정윤철의 〈말아톤〉은 적당한 정서를 가지고 꾸준히 끌고 나가는, 마라톤하는 것 같은 영화였다. 그 "적당함"을 다소 아쉬워하는 평론가들이 종종 눈에 들어오는데, 바꿔 말하면 그 "적당함"이라는 걸 제외하면 흠 잡을 데 없이 능숙한 영화였다(그리고 사실 영화가 사회를 두드리는 정도의 문제에 관해서는 사람마다 나름의 견해가 있을 터이니 그리 객관적인 흠도 아니다.). 특히 장치를 서로 다른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각본과, 달릴 때 초원이가 느끼는 감각의 묘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은 과거 오뎃사 항구 계단 장면을 발췌 감상한 적은 있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몽타주 이론의 명장답게 빼어난 편집으로 보는 사람의 정서를 들끓게 하는 힘이 있는 영화였다. 특히 선상 반란 장면과 오뎃사 항구 계단 장면은 여러 화면의 충돌을 통해 감정을 자아낸다는 그 자신의 이론에 대한 모범적인 예시였다. 하지만 그렇게 몇몇 시퀀스만 좋았다는 건 아니고, 그 폭발의 직전에 이르기까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플롯의 흐름 자체가 탁월했다고 본다(포템킨이 항구에 정박한 이후의 장면을 살짝 짧게 했어도 좋았으리라고 생각했다는 건 비밀.). 닉 파크의 〈월레스&그로밋-화려한 외출〉은 내가 보지 못했던 〈월레스&그로밋〉 에피소드였는데, 기존에 보았던 〈전자 바지 소동〉과 〈양털 도둑〉에 비해서는 다소 지루했다. 달을 치즈라고 한 아이디어와, 스키를 타는 괴생물체(…)의 설정은 재미있었지만. 피요르트 샤페긴의 〈어느 날 한 남자가 집을 샀다〉는 투박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느낌과 더불어 굉장히 표현주의스러운 생김새가 마음에 들었다. "깨는" 전개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출품작의 특권이리라 :-) 피터 콘웰의 〈13병동〉은 상영 당시에도 참 보고 싶었던 작품인데 뒤늦게 만나게 되었다. 영영 보지 못할 줄 알았기에 기뻤으며,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작품이었기에 더욱 기뻤다. 놀라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이런 속도감을 낼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우엑"하면서 낄낄거리고 보게 되는 스플래터 호러 액션 영화. 마이클 만의 〈알리〉는, 쓰다보니 좀 길게 써야 할 것 같다. 다음 기회로. 스포츠찌라시스러운 자극적인 문구 하나 날리자면, 내겐 이 달의 가장 실망스러운 선택이었다. 커티스 핸슨의 〈LA 컨피덴셜〉은 내가 스콜세지와 드 팔마와 폴란스키를 조금 덜 사랑했더라면 이 달의 선택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폴란스키는 뭐냐고? 누아르 영화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고전기 할리우드의 필름 누아르 이후 등장한 새로운 누아르의 목록에 꼭 들어가는 게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과 커티스 핸슨의 〈LA 컨피덴셜〉이다. 〈차이나타운〉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그런 소리를 듣고 〈LA 컨피덴셜〉에서도 비슷한 걸 기대했는데 거의 마음에 들었으나 결과적으로 〈차이나타운〉보다 살짝 덜 암울해서 아쉬웠던 것이다. 여하튼 그렇다고 하더라도 누아르의 계보에 족적을 남길만한 걸작인 건 분명하다. 아카데미 사상 최악의 피해자라는 말에도 동의. 덧. 70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행한 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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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한 글 잘 읽었습니다..
by kinoeyes at 08/19 말씀하신대로 류승완 감.. by sabbath at 08/17 참 말할 거리가 많은 영.. by 파인로 at 08/17 그쵸. 사실상 모든 프랑.. by sabbath at 08/16 아, 그것은… 저도 무.. by sabbath at 08/16 저도 그 글을 읽어보았.. by sabbath at 08/16 제작사 외유내강 측의 .. by sabbath at 08/16 소식 고맙습니다! 포스터.. by sabbath at 08/16 가끔은 너무 만든 사람에.. by sabbath at 08/16 먼저 안 보신 분들께는 .. by sabbath at 08/16 저도 만주 벌판 액션이 참.. by sabbath at 08/16 [다찌마와 리] 속편 또.. by sabbath at 08/16 오오, 드디어 올리셨군.. by Sion at 08/16 드팔마를 떠올리는 장면.. by 다찌대박 at 08/16 저는 그놈의 잘생겼다!가.. by 은혈의륜 at 08/16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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