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지만 너무 먼 당신, 혹은 취향차라는 이름의 치트키
 좋은 건 알겠는데 쉽게, 자주 다가서기는 힘들 것 같은, 혹은 그 정도로 내키지는 않는 그런 작품들이 있다. 분량이나 기타 등등의 문제를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바쁜 와중에 가벼운 독서를 하고 싶다면 여덟 권짜리 『사조영웅전』보다는 한 권짜리 『대도오』가 아무래도 좀 더 부담이 덜 할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사조영웅전』이 다가서기 힘든 작품인 건 아니잖은가. 혹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구로사와 기요시의 〈거미의 눈동자〉를 본 뒤 다시 볼 길이 없어 서러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적당히 팔릴 만한 작품이 아니면 내기 힘든 우리나라 DVD 시장의 상황을 안타까워 할 일이지 돈도 없고 언어도 안 돼서 코드2번 (기요시의 이 작품이 코드2번 DVD로 나왔는지 어떤지는 알지 못하지만.) DVD를 살 수 없는 감상자가 그 영화에 거리를 둔다고 판단할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한 번 접해 보니 좋은 작품인 것은 알겠고 그 작품을 다시 접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는 상황에서도 어쩐지 손이 가지는 않을 작품들이다.

 오늘 아침 『오만과 편견』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 명성 자자한 영문학의 고전을 올해 처음 읽었는데, 재미있게 읽기는 읽었으되 많은 사람들이 미친 듯이 사랑할 정도의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600페이지가 못 되는 책이 200페이지를 넘어가도록 서두인 것처럼 보이기에 그제야 '아, 내가 이 책에 대한 기대의 방향을 잘못 잡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다 읽은 지금에 와서도 (고작 한 번 읽었을 뿐이니) 작품의 즐거움을 온전히 느끼지는 못했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만간 다시 읽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닌지라 결국 『오만과 편견』은 나와는 살짝 다른 영역에 걸쳐 있다 싶은 것이다.

 영화 쪽에서는 스파이크 존즈-미셸 공드리-찰리 카우프만 삼각 편대의 작품들이 그렇다. 〈존 말코비치 되기〉, 〈휴먼 네이처〉, 〈어댑테이션〉 모두 상당히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때로는 추천도 하겠지만 도무지 다시 보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 세 작품 중 두 작품을 DVD로 소장하고 있다는 건, 나의 주체할 수 없는 소유욕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들의 작품이 그 정도로 훌륭함을 증명해주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미셸 공드리 감독, 찰리 카우프만 각본의 〈티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 역시 무척 기대하고 있지만 보고 나면 또 어찌될지 모를 일이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취향차"라는 이름의 손쉬운 치트키를 써먹으면 될 일이지만, 나는 과거 다년간의 게이머 생활(설마 프로 게이머로 읽으시는 분들은 없으시겠지.)을 통해 치트키라는 것이 게임을 즐기는 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건 되도록이면 끝까지 가 본 다음에나 쓰고 싶다. 온갖 클래식 명반들을 좀처럼 즐기지 못하는 나로서는 "클래식은 내 취향이 아니야."라는 간편한 답변을 선택하는 게 마음 편한 일이긴 하지만, 사실 그게 정말 내 취향이 그 쪽이 아닌 것인지, 아니면 클래식에 관한 지식이 전무한 탓인지는 클래식에 관한 지식을 쌓기 전에는 확실히 알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치트키라는 게, 게이머를 신의 영역으로 올리는 일인지라, 그 때부터 게임은 더 이상 게임일 수 없다. 규칙에서 벗어난 존재와는 게임이 불가능하다. 치트키를 쓰는 순간 게이머는 상대방(치트키를 쓸 수 있는 상대라면 대게 컴퓨터겠지.)과 동등한 경쟁자가 아니라 한 차원 높은 다른 영역으로 갈라서고 만다. "취향차"라는 표현이 내게 주는 느낌이 대강 그렇다. (물론 게임에서의 치트키가 대게 게이머를 신의 영역으로 올림으로써 수직관계를 형성하는 것과 달리 이 "취향차"라는 치트키는 수평관계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지만.) 이 치트키는 너무 쉽게 상대와 나를 갈라 버린다. "여기는 제 취향, 그 쪽은 당신 취향. 그러니 저와 당신이 이 문제에 대해서 공감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랍니다. 당연한 거니까 그러려니 하세요."라는 말을 듣는 기분이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맥이 빠진다. 어쩐지 먼 미래에라도 저쪽으로 넘어가면 막 혼날 것 같다.

 그래서 결국 나로서는 차라리 내가 무지한 탓이라고 넘기는 편이 더 편하다. "제가 잘 몰라서."는 좀 더 개방적이다. 여기에는 교류의 가능성이 있다. 좀 더 안다면 나도 좀 더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물론 그런 일은 생각만큼 쉽게 일어나진 않지만, 마음속에 가능성을 담아 두는 것과 가능성을 없애 버리는 건 상당히 다를 것이다.

 귀차니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게으름.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한 사람의 열렬한 팬을 잃어가고 있을 수많은 작품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 지는 않다. 그거 가지고 마음 아파하면 세상 모든 걸 즐기기 전까지는 마음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다. 그냥 비겁해 보이지만 당연하게, "아직 몰라서 그래요. 언젠간 알겠죠."라고 놔두고 넘어가는 이 남자.



 덧. 그런데 솔직히 스파이크-미셸-찰리 삼각 편대의 세 영화에 관해서라면, 이건 아무래도 취향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문제는 저 영화들을 골 때리는 결말까지 모두 좋아라 봐놓고는 입맛이 씁쓸하다고 투정부린다는 것.
by sabbath | 2005/03/03 22:56 | 20030930~20050514 | 트랙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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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인생, 뭐 좌충우돌 at 2005/12/03 07:58

제목 : 오오 좋은 글
가깝지만 너무 먼 당신, 혹은 취향차라는 이름의 치트키 좋다....more

Commented by 『한군』 at 2005/12/03 00:56
이 글 커그에 링크 하겠습니다~ 커그에서도 종종 '취향차'로 만사가 ok되는 상황이 있었고, 그런 상황을 볼 때마다 제일 생각나는게 새벗님의 이 글이었어요.
Commented by sabbath at 2005/12/03 07:36
『한군』 / 덕분에 아닌 새벽에(오전 7시면 토요일엔 새벽이죠~) 다시 읽어보게 됐는데… 중간까지는 마음에 들지만 결론이 좀 맥빠지는군요. '편한' 길을 찾아서 가다니, 비겁한 결론이에요. 보론이 필요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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