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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한 뒤로 귀차니즘 속에서 서울아트시네마 찾아가기를 등한시 하고 있다가 (학숙에선 1호선 쭉 타고 가다 종로3가에서 갈아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됐는데 이젠 두 번 갈아타야 하니) 아무래도 〈리오 브라보〉의 위명 앞에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결국 몸을 일으켜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아갔습니다. 이탈리아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레오파드〉도 보고 싶었고요. 〈레오파드〉가 187분, 〈리오 브라보〉가 141분이라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이렇게 여유 있을 때라도 미친 짓을 해야 하지 않겠냐며 과감하게 표를 샀지요.
허리우드 극장으로 옮긴 서울아트시네마는… 관객은 더 많이 들어갈 수 있겠지만 (그래서 혹시 인기작이 걸리더라도 매진이 좀 더 늦어질 것 같지만) 세로로 길쭉해서 뒤에 있는 관객은 괴롭겠더라고요. 게다가 메가박스와 더불어 제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그 편한 좌석도 이젠 사라졌습니다. 저처럼 앉은 키 큰 사람은 미칩니다. 앉은 키 큰 사람은 허리 숙이는 게 예의라는 소리, 각종 영화 게시판에서 수도 없이 들었지만… 젠장, 그거 얼마나 힘든데. 좌석 앞뒤 간격이라도 좁으면 다리라도 뻗을 수 있지, 그것도 아니고. 벌써 안국동 선재아트센터가 무척 그립습니다. 루키노 비스콘티의 〈레오파드〉는, 처음에는 우와~ 했다가 갈수록 힘이 떨어져 결국 좀 졸다가 끝에 가서 다시 우와~ 하면서 봤습니다. 2.35:1 화면과 테크니칼라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상영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았어요. 밝은 낮의 야외 촬영이 많은데 자막이 잘 안 보입니다. (졸았던 부분도 바로 중간쯤 주인공 파브리지오가 사냥 나가서 조카 결혼 이야기하는 부분이었음. 뙤약볕에서 대화를 하는데 자막이 보여야지 원.) 화면 하단에 깔리는 영어 자막은 누락된 부분도 꽤 있었고요. 영화 전개도 꽤 느긋한 편이었고. 그래도 버트 랭카스터와 알랭 들롱이 멋있어서 좋았습니다. 영화 분위기는, 글쎄, 배경이 시칠리 섬이라서 그랬을까요? 〈대부〉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특히 버트 랭카스터 얼굴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자꾸 말론 브란도를 연상하게 해서 더욱. 결말 부분의 무도회 장면은 그야말로 예술. 잠이 확 깨더군요. 시네마 스코프와 테크니칼라의 진수가 담긴 장면이었습니다. 향락 속에 쇠퇴하는 귀족의 모습을 바라보는 파브리지오의 모습도 일품이었고. 저 같으면 엔딩을 좀 더 화려하게 끝냈겠단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지친 파브리지오가 구석의 의자에 앉아서 화려한 실내를 바라보는 데에서부터 스테디캠 롱테이크로 물러나며 저택 바깥까지 나가서 대문이 철컥 닫히는, 다분히 스콜세지스러운 결말을 생각하고 있었더랍니다.) 아무튼 무도회 장면을 보기 위해 세 시간 동안 앉아있는 것도 제법 할만한 일일 겁니다. 자막만 괜찮으면 다시 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하지만 이 글은 〈레오파드〉를 위한 글이 아닙니다. 진수는 바로 그 다음의 〈리오 브라보〉. 영화 소개를 누가 할까 싶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김영진 평론가가 와서 하더군요. 역시 쓸데없이 폼 잡지 않고 자기 경험이랑 이야기하면서 하워드 혹스라는 감독을 슬렁슬렁 설명해주는 게 무척 좋았습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 당황한 게, 이건 화면비가 4:3이었는데 안국동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게 허리우드 극장 시설은 기본적으로 천장도 높고 좌석과 스크린 사이 거리도 멀다 보니까, 게다가 2.35:1의 〈레오파드〉를 보다 보니까 화면이 엄청 작아 보이는 겁니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안국동 때랑 크기 차이 없을 것 같은데. 아무튼 그래서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내 영화에 몰입. 영화는, 아주 끝내줘요. 보고 집에 와서 MSN 아이디를 “하워드 혹스의 〈리오 브라보〉는 꼭 봐야 한다!!!”로 바꿨는데 친구 녀석이 그걸 보고 “네가 뭘 꼭 봐야 한다고 말하는 건 처음 본다.”고 하더군요. 정말 그렇죠. 전 뭘 보라는 식으로 추천은 않는 인간인데 말입니다. 지금은 너무 흥분해서 어쩔 수 없어요. 흥분을 가라앉히고 싶지도 않고. 이 영화, 이번 영화제 동안 네 번 상영하는데 그 네 번 다 봐 버릴까 생각 중입니다. 처음으로 웨스턴 영화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아니, “추천”이 뭐야. “강추”하고 있습니다. 존 포드 영화는 걸작이라는 건 알겠는데 진심으로 좋아하며 추천하진 않았거든요. 제가 지금까지 좋아한다고 말한 웨스턴은 샘 레이미의 〈퀵 앤 데드〉가 유일할 텐데 (월터 힐의 〈라스트맨 스탠딩〉도 좋아하지만 그건 본지 꽤 오래 됐고 사실 배경만 웨스턴이지 갱스터 영화니까.) 오늘 거기에 이 하워드 혹스의 〈리오 브라보〉를 당당히 넣었습니다. 웨스턴을 이토록 좋아하게 될 줄이야. 존 웨인을 이토록 좋아하게 될 줄이야. 이 웨스턴-액션-로맨스-코미디(!)-뮤지컬(!!) 영화는 제가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서도 초일류급에 해당하는 오락 영화입니다. 존 포드 같은 멜랑꼴리한 맛이나 정치적 함의는 없지만 (또는 있어도 얼굴에 주름 잡으면서 그 딴 거 신경 써 줄 생각 없지만) 141분 동안 아주, 무척, 엄청 신명나게 볼 수 있는 영화지요. 혹스의 불가사의할 정도로 경제적인―빼놓을 컷이 하나도 없는―연출은 도저히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할 정도이고, 훌륭한 오락 영화들이 언제나 그렇듯 인물들은 확고한 성격을 지닌 채 줄거리를 즐겁게 엮어 나갑니다. (훌륭한 오락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오락 영화의 차이는? 많이 있겠지만 저는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인물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전형적인 인물이더라도 훌륭한 오락 영화의 인물들은 관객에게 사랑받는 반면 별 볼일 없는 오락 영화의 인물들은 행동하기도 전에 관객들에게 행동을 간파당하고 비웃음을 사는 거죠.) 이 영화는 완전 고전 할리우드 영화의 극의에요. 길게 감상문을 쓰는 게 도리겠지만, 그건 훗날의 일로 미루고, 당장은 성급하게 추천부터 하렵니다. 보세요! 국내에 DVD도 안 나와 있어서 (워너 브라더스, 미친 거 아냐? 왜 이걸 아직도 안 낸 거냐!! 나더러 기어코 외화를 쓰란 말이더냐!!!) 이번 아니면 언제 볼 수 있을지 몰라요! 남은 상영은 세 번. 낙원동 구 허리우드 극장에서 4월 20일 오후 3시 50분, 4월 25일 오후 5시 50분, 5월 1일 오후 1시 30분에 합니다. 덧. 영화 시작 전에 의외의 (적어도 제게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안국동에서의 흥행 성적을 보면 할리우드 영화의 성적이 그 외 영화들보다 못했다고 하더군요. 하긴, 저처럼 미국 영화 좋아하는 사람도 안국동에서 본 영화들을 생각해보면 반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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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한 글 잘 읽었습니다..
by kinoeyes at 08/19 말씀하신대로 류승완 감.. by sabbath at 08/17 참 말할 거리가 많은 영.. by 파인로 at 08/17 그쵸. 사실상 모든 프랑.. by sabbath at 08/16 아, 그것은… 저도 무.. by sabbath at 08/16 저도 그 글을 읽어보았.. by sabbath at 08/16 제작사 외유내강 측의 .. by sabbath at 08/16 소식 고맙습니다! 포스터.. by sabbath at 08/16 가끔은 너무 만든 사람에.. by sabbath at 08/16 먼저 안 보신 분들께는 .. by sabbath at 08/16 저도 만주 벌판 액션이 참.. by sabbath at 08/16 [다찌마와 리] 속편 또.. by sabbath at 08/16 오오, 드디어 올리셨군.. by Sion at 08/16 드팔마를 떠올리는 장면.. by 다찌대박 at 08/16 저는 그놈의 잘생겼다!가.. by 은혈의륜 at 08/16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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