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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abBatH</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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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안 봤으면 쓰지를 마라!</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Wed, 06 Aug 2008 15:18:13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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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abBatH</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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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안 봤으면 쓰지를 마라!</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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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단상들-2008년 8월 7일 : 오늘의 낚시/제2회 충무로국제영화제/기대되는 신작 웨스턴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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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b>0.</b><br />
　코엑스 메가박스 M관에서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 시사회 보고,<br />
　임원희 씨랑 한 시간 반 정도 인터뷰하고,<br />
　<a href='http://www.koreanfilm.org' target=_blank>Koreanfilm.org</a>의 Q님과 긴 대화 나누다가,<br />
　류승완 감독님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다시 긴 삼자회담을 나누고,<br />
　이제야 돌아왔습니다.<br /><br />　근데 소감은 나중에.<br />
　쫌 바빠요.<br />
<br />
<br />
<br />
　<b>1.</b> 제2회 <a href='http://www.chiffs.kr' target=_blank>충무로국제영화제</a> 시간표 떴습니다. 이거 소개글도 올리면 좋을 텐데. 두기봉 감독의 [신탐(神探, 2007)]을 볼 수 있게 돼서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필름으로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건 물론 기쁘지만 그 극장이 하필 화면 잘라먹기로 유명한 대한극장이고 지금 제 옆에 [신탐] 홍콩판 DVD가 있는데 포장도 못 뜯은 채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점은 슬픕니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라알! 지금 [어둠의 기사(The Dark Knight, 2008)]랑 [월·E(Wall·E, 2008)]와 더불어 가장 보고 싶은 영환데요.<br />
<br />
<br />
<br />
　<b>2.</b> 엄청 궁금한 영화 [Appaloosa]의 예고편. 기대의 이유요? 에드 해리스, 비고 모텐슨, 제레미 아이언스, 르네 젤위거가 출연하고 에드 해리스가 연출을 하는데 그게 웨스턴이면 기대 안할 수 있습니까?<br />
<br />
<center><embed src="http://www.traileraddict.com/emb/5849"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always" wmode="transparent" width="720" height="378"></embed></center><br />
<br />
<br />
　<b>3.</b> "단상들"이 3번에서 끝난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큰 낚시.			 ]]> 
		</description>
		<category>살아가며</category>
		<pubDate>Wed, 06 Aug 2008 15:02:28 GMT</pubDate>
		<dc:creator>sabbath</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윈체스터 '73(Winchester '73, 1950)] - 총의 땅, 총의 나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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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앤소니 만은 "이것 봐, 옛날에 나온 미국 웨스턴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라고!"라고 말하고 싶을 때 끌어들이기에 적당한 감독이다. 40년대에 주로 스튜디오의 B급 필름 누아르를 만들었던 만은 50년대에 웨스턴으로 그 주 활동영역을 옮겼는데, 그의 웨스턴들은 필름 누아르를 방불케 하는 어둡고 강박적인 심리묘사에 주력하면서 "심리적 웨스턴"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윈체스터 '73]을 시작으로 총 다섯 편의 앤소니 만 웨스턴에서 주연을 맡은 제임스 스튜어트의 변화만 봐도 그 특징은 뚜렷하다. 만의 세상으로 들어온 스튜어트는 기존에 프랭크 카프라 영화를 통해 쌓아올린 건강하고 낙천적인 이미지를 버리고 과거로부터 도피하거나, 무언가에 집착하면서 타인을 몰아세우는 불안정한 정신병자로 변해간다. 또한 만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친족들 간의 살해 의식은 웨스턴이라기보다는 마치 그리스 비극을 보는 듯한데, 특히 험준한 산맥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강렬한 액션은 인물들 간의 투쟁을 하늘을 가르고 산을 무너뜨리는 반신(半神)들의 격돌처럼 거대하게 만든다. 이처럼 풍경 안에 인물을 배치하기보다는 인물을 위해 풍경을 배치하는 만의 작업을 웨스턴 장르의 내면화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br /><br />　…라는 것이 앤소니 만을 소개할 때 쓸 법한 기본적인 소개글이겠지만, 이런 식의 간략한 설명이란 오히려 소개 대상에 대한 이해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곤 한다. "심리적 웨스턴"이나 "웨스턴의 내면화" 같은 표현은 종종 감상자로 하여금 등장인물의 내적 갈등에만 주목하게 만든다. 물론 만이 만든 웨스턴들을 발표 순서대로 보다보면 결국 그것이야말로 가장 강렬한 요소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에 만든 작품이 가장 창작자의 의도가 많이 반영된 작품이냐는 의문은 차치하더라도) 결론이 그렇다고 거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갖가지 "예외"들을 등한시해서는 곤란하다. [벌거벗은 박차(The Naked Spur, 1953)],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The Man from Laramie, 1955)], [서부의 사나이(Man of the West, 1958)] 같은 "비교적 더 대표작"들만 가지고 만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의 작품들이 웨스턴 세계의 심리를 다룬 것은 맞지만 어떤 방식으로, 무엇의 심리를 다루는가 하는 측면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br />
<br />
　만과 스튜어트가 처음 함께 작업한 [윈체스터 '73]는 그의 대표작 중 한 편이지만 그 형태는 사뭇 다르다. 물론 주인공의 갈등만 놓고 보자면 이 작품 역시 만 특유의 개인적/심리적 갈등에 주목하는 영화인 듯하다. 주인공 린 맥아담(제임스 스튜어트)은 오랜 친구 하이-스페이드 프랭키 윌슨(밀라드 미첼)과 함께 불구대천의 원수 더치 헨리 브라운(스티븐 맥넬리)을 쫓고 있다. 대체 두 사람 사이에 어떠한 원한 관계가 있는지는 영화가 끝날 무렵에야 밝혀지는데, 여기서는 핏줄과 관련된 모종의 문제라고만 말해두자. 비밀이 밝혀진 다음에는 거대한 암벽지대를 배경으로 목숨을 건 결투가 벌어진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6b7b972.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6b7b972.jpg');" /></div>　그러나 이건 표면 상의 줄거리일 뿐이다. 실제로 영화를 감상하고 있노라면 만-스튜어트의 후기 웨스턴에서 나타나는 지독한 강박이나 떨칠 수 없는 어둠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두 원수 간의 비밀은 없어도 괜찮을 것만 같으며, 있다고 한들 별다른 감흥을 더해주지 않는다. 애초에 두 사람의 갈등이 민감하게 와 닿지 않는 탓이다. 일부 감상자들은 주인공이 과연 린 맥아담인가 하는 의문마저 품을지도 모른다. 그는 꽤 호감 가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깊이 몰입하기는 힘들다. 이제 막 웨스턴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터라 아직 만의 솜씨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은 탓일까?<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7969c5c.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7969c5c.jpg');" /></div>　그렇지 않다. 더치를 쫓는 린의 여정이라는 직선적인 서사에 빠져들기 힘든 이유는 애초에 [윈체스터 '73]의 중심이 다른 부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윈체스터 '73]의 서사를 형성하는 것은 린의 여정이 아니다. 많은 장면들이 그가 없는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그는 그러한 사건들에 대해서 다 알지 못한다. 린의 시선만으로는 영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장면들을 연결하고 있는가? 바로 윈체스터 '73이라는 이름의 총이 주인공의 자리를 대신한다. 영화의 제목, 오프닝 크레딧 직후 나오는 윈체스터 '73에 대한 소개, 윈체스터 '73의 개머리판 클로즈업에서 출발하는 첫 장면, 계속해서 소유주를 바꿔가며 곳곳을 떠도는 총의 동선, 다시 개머리판을 클로즈업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영화는 시종일관 서부 사상 최고의 명기(名器)를 통해 짜여나간다. 린과 더치를 포함한 그 총의 소유주들은 윈체스터 '73이 구경하는 서부의 풍경이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8a2ca57.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8a2ca57.jpg');" /></div>　이 때 서부의 풍경이란 단지 황야의 모습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활동을 대충 뭉뚱그려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윈체스터 '73이 바라보는 서부의 풍경들은 반드시 총을 둘러싼 갈등과 관련을 맺는다. 그 갈등은 빼앗는 자와 빼앗기는 자를 통해서만 성립하며, 따라서 이 총이 만들어내는 세상은 결국 약탈의 논리에 의해 작동한다. 약탈은 어디서든 벌어진다. 두 원수 사이, 봉과 사기꾼 사이, 인디언과 기병대 사이, 악당과 악당 사이, 형과 동생 사이. 이 흐름은 모두가 서로를 물고 물며 죽이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악순환의 고리를 지연시키는 힘도 있다. 서로에 대한 조건 없는 헌신으로 맺어지는 친구/연인 관계. 그러나 그 중 어느 것도 윈체스터 '73의 이동을 완전히 가로막지는 못한다. 오히려 약탈의 논리는 종종 간신히 남아있는 긍정적인 관계의 가능성을 왜곡하기도 한다. 스티브(찰스 드레이크)는 연인 롤라(셀리 윈터스)와 함께 새 보금자리로 향하던 도중 우연히 윈체스터 '73을 손에 넣게 된다. 둘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스티브의 친구인 웨코 자니 딘(댄 듀리아)이 등장한다. 스티브와 웨코 사이에는 즉시 빼앗는 자-빼앗기는 자의 관계가 형성된다. 그런데 웨코는 총을 무력으로 빼앗아 이 관계를 즉시 끝장내는 대신 롤라를 희롱하며 스티브를 모욕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녀는 그까짓 총 줘버리라고 말하지만 그건 스티브에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는 과거 인디언들과 만났을 때 잠시 롤라를 버리고 떠나는 바람에 그녀의 신뢰를 잃은 전력이 있는 상태. 관계의 회복이라는 과제가 빼앗기-지키기의 문제와 결합한다. 그 때 스티브는 총을 지킴으로써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곧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는 방법이며 롤라를 위한 일이라는 판단을 내린다. 그의 오판은 곧 관계의 종말로 이어진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9325772.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9325772.jpg');" /></div>　그런데 결국 그런 정도의 역할 뿐이라면 윈체스터 '73의 자리를 다른 귀한 물건으로 대체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귀한 총을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갈등이 귀한 보물지도를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갈등과 무엇이 다를까. 하지만 [윈체스터 '73]에서는 차이가 있다. 이 영화에서 윈체스터 '73이란 플롯을 작동케 하는 동기일 뿐만 아니라 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서부 사회 문화의 총체이기도 하다. 이런 질문을 떠올려 보자. "보물" 윈체스터 '73이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을 갈등하게 만든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원래 보물은 그런 거니까. 그런데 왜 윈체스터 '73이 보물인가? 어째서 총이 보물이 될 수 있는가?<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9b505f1.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9b505f1.jpg');" /></div>　[윈체스터 '73]은 그건 결국 총이 이곳 사람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등장인물들은 남녀노소, 주연/조연/엑스트라를 가리지 않고 모두 총에 익숙하다. 총을 잘 쏜다거나 총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는 말은 아니다. 그보다는 총에 관한 지식이 밥을 먹고 옷을 입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초반부 닷지 시티에서 보안관에게 총을 압수당한 총잡이들은 이후 벌거벗은 느낌이 든다는 표현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데, 이것은 생활필수품으로서 총이 갖는 위치를 잘 말해준다. 그리고 그건 총잡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닷지 시티의 소년들은 다양한 총기명을 들먹이며 어느 메이커가 가장 훌륭한지에 대해 토론한다. 롤라는 총과는 관계없는 직업을 가진 인물이지만 굳이 린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권총 다루는 법쯤은 잘 알고 있으며, 심지어 인디언과 싸울 때 총알 한 발을 남겨두어야 하는 이유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웨코가 총 쏘는 모습을 한 번 보고는 그가 왼손을 주로 쓰는 총잡이라는 걸 파악한 뒤 훗날 린과 웨코 사이에 결투가 벌어지기 전에 귀띔해주기도 한다. 인디언들은 기병대의 소총이 단발식이라는 걸 알고 사격 후 장전 시간을 기다렸다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고, 기병대는 다시 그들의 전술을 파악하여 연발 소총을 남겨두었다가 역습을 가한다. 총은 있지만 총알은 없는 더치를 상대로 인디언 도매상은 당당하게 사기를 치고, 사기 당한 더치가 행패를 부리려 들자 난데없이 술집 주인이 총을 꺼내들어 그를 쫓아낸다. 이들이 바라는 바는 모두 다르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든 간에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은 총이다. 그런 환경에서 살고 있으니 총에 익숙하지 않으려야 익숙하지 않을 수 없으며, 모두들 윈체스터 '73을 보자마자 그것이 더할 나위 없이 귀한 보물임을 알아보고는 빼앗으려 든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a978543.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a978543.jpg');" /></div>　이와 같은 서부의 환경을 묘사하기 위해 [윈체스터 '73]은 줄거리, 대사, 시청각적 테크닉 등 영화의 모든 측면을 통해 총에 민감히 반응한다. 총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조차 '저건 뭔가 굉장한 것 같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윈체스터 '73의 형상. 닷지 시티 보안관 사무실에 가득 쌓인 총들의 위압적인 모습. 한 발 쏘고 장전에 여념이 없는 기병대의 모습과 쉴 새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린 사이의 대비. 총을 쏜 뒤 한참 후에야 쓰러지는 표적을 바라보며 던지는 "헨리 제품은 이게 문제야. 죽는 데 너무 오래 걸려." 같은 농담. 그리고 무엇보다도 린과 더치의 결투. 웨스턴의 총격 장면은 대게 총성 한 번으로 끝나든가 아니면 사정없이 몸을 찢어발기는 식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에서 린과 더치의 결투는 기량이 극에 달한 두 고수가 고봉준령을 날아다니며 한 수 한 수 치명적인 절초를 시전하고 또 간신히 피해가는 무협의 느낌을 선사한다. 이 때 탄환이 표적을 아슬아슬하게 빗나가거나 벽에 맞고 튀어 다시 반대편 벽으로 날아들면서 파편을 흩뿌리고 상처를 입히는 식의 묘사는 통상의 웨스턴들은 물론이거니와 만의 다른 작품들에서조차 좀처럼 보기 드문 것으로, 영화 내내 강조되어 온 "총기의 감각"은 이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바위와 절벽과 하늘과 탄환과 파편과 먼지가 자아내는 물리적 위협에 비하면 두 인물 사이의 혈족관계에서 비롯되는 원한은 미미한 요인에 불과하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b3844a1.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b3844a1.jpg');" /></div>　영화의 결말은 모두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주인공" 린이 더치에게 승리를 거둔다. 친구 하이-스페이드와 호감 가는 여인 롤라가 그를 기다린다. 윈체스터 '73은 다시 그의 손에 돌아간다. 전형적인 해피엔딩 스타일 음악도 흘러나온다. 역시 낙천적인 결말? 그러나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린은 알고 있다. 자신은 총이 지배하는 세상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는 끝까지 작은 미소 한 번 짓지 않은 채 윈체스터 '73을 내려다본다. 린 자신은 다 보지 못했지만, 관객은 안다. 그 총이 거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를. 그걸 놓지 않는다면 린 자신도 비슷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른다. 그러나 총이 없으면 벌거벗은 느낌이 드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총을 포기하는 것이 가능할까? [윈체스터 '73]을 심리적 웨스턴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심리"의 주체는 린이나 더치 같은 총잡이들이 아니라 서부 세계 자체다. 그 세계의 기본적인 성립 조건이 모든 개인에게 벗어날 길 없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건 웨스턴 판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 2002)]이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bf7f555.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bf7f555.jpg');" /></div><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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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d8b09eb.jpg" width="500" height="7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d8b09eb.jpg');" /></div><br />
<br />
<br />
　<b>덧 하나.</b> 데뷔 즈음의 록 허드슨과 토니 커티스가 단역으로 출연한다. 록 허드슨은 인디언 우두머리로, 토니 커티스는 기병대의 젊은 병사로. 두 사람 모두 윈체스터 '73을 잠시나마 손에 쥐어본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f4e0504.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f4e0504.jpg');" /></div><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f8b0546.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8/02/27/a0003527_489405f8b0546.jpg');" /></div><br />
<br />
　<b>덧 둘.</b> [윈체스터 '73]에 대한 다른 글들.<br />
　<a href='http://www.darthvedder.com/vedder/5' target=_blank>앤서니 만 | 윈체스터 '73</a> / N.<br />
　<a href='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4008&article_id=51441' target=_blank>[걸작 오디세이] 황야에 펼쳐지는 그리스 비극의 죄의식</a> / 한창호<br />
			 ]]> 
		</description>
		<category>영화 감상문</category>
		<pubDate>Sat, 02 Aug 2008 07:11:27 GMT</pubDate>
		<dc:creator>sabbath</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필름포럼 : "액션마스터 두기봉 특별전" ]]> </title>
		<link>http://sabbath.egloos.com/1791208</link>
		<guid>http://sabbath.egloos.com/1791208</guid>
		<description>
			<![CDATA[ 
  　며칠 전에 이 글을 올릴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지난 며칠 간 사정이 생겨서 블로그에 소홀해야 했습니다. 하여간, 영화는 제 사정을 고려해주지 않는 법. 이화여대 후문 쪽에 재개관한 <a href='http://cafe.naver.com/filmforum' target=_blank>필름포럼</a>에서 오늘 "액션마스터 두기봉 특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단 극장 측의 소개글을 볼까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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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ORDER-RIGHT: #4baf4b 1px solid; PADDING-RIGHT: 9px; BORDER-TOP: #4baf4b 1px solid; PADDING-LEFT: 9px; BACKGROUND: #e4ffda; PADDING-BOTTOM: 9px; BORDER-LEFT: #4baf4b 1px solid; PADDING-TOP: 9px; BORDER-BOTTOM: #4baf4b 1px solid; text-height: 180%">　필름포럼(이화여대 후문 건너편 / 연세대 동문 인근)에서 8월 1일부터 8월 7일까지 액션마스터 두기봉 특별전이 열립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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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특별전에서는 〈흑사회〉, 〈흑사회 2〉, 〈익사일〉, 〈대사건〉, 〈PTU〉이 상영되며 8월 3일 일요일 2시에는 '전주국제영화제'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특별강연 〈두기봉의 작품세계〉도 준비되어있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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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기봉 감독은 베테랑 제작자이자 장르영화의 대가이며, 최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액션의 마에스트로다. 두기봉 감독에 대한 세계 영화계의 애정은 최근 열린 유수의 해외 영화제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난다. 〈미션〉(1999)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오우삼과 서극 감독도 밟아보지 못했던 칸영화제, 베니스영화제 등의 국제 영화제 경쟁부문에 〈대사건〉(2004), 〈유도용호방〉(2004), 〈흑사회〉(2005), 〈익사일〉(2006) 등으로 초청받았다. 〈대사건〉은 시체스-카탈노냐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7년 로테르담 영화제에서는 두기봉 감독의 회고전을 열어 그의 작품 세계를 진지하게 조명하기도 했다. 또한 현재 할리우드에서는 제2의 〈디파티드〉를 기대하며 〈익사일〉의 리메이크를 결정한 상태다. 이제 세계는 그가 그저 그런 액션 영화의 다작 감독이 아닌 신 홍콩 느와르의 시대를 이끌어갈 거장임을 알아보고 주시하고 있다.</div><br />
　단평 : "액션마스터"라니, 무슨 소리야.<br /><br />　물론 지금 세계에서 두기봉 감독처럼 액션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이리라는 것, 충분히 인정합니다만 그래도 그렇지, "액션마스터"라고 해버리면 두기봉 감독에 대해서 모르시는 분들께서는 테스토스테론 풀풀 풍기는 남성향 총질 영화 떠올리시게 생겼잖습니까. 물론 상영작 다섯 편 모두 총 쏘는 영화인 것도 맞고 (멋있는) 남자들이 우루루 나오는 것도 맞지만, 그래도 "액션마스터 존 포드" 같은 소리를 듣는 것만큼이나 황당합니다. 요새는 대규모로 개봉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아닌 이상에는 "액션 영화"보다 "예술 영화"로 포장하는 편이 그나마 더 잘 팔리는 것 같던데, 홍콩 영화도 자꾸 "홍콩 누아르"스러운 이미지 말고 좀 고상한 척 하는 쪽으로다가 홍보를 해봤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살짝 궁금하네요. [도화선(導火線, 2007)]을 그렇게 홍보하면 곤란하겠지만 두기봉 영화는 정말 그럴 만한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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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기봉 감독에 대해서는 지난 <a href='http://sabbath.egloos.com/1772876' target=_blank>[PTU(2003)] 감상문</a>을 통해 간략하게나마 다루었으니 또 다시 길게 언급할 필요는 못 느끼겠습니다. 상영작 다섯 편도… 모두 그냥 취향 이런 거 따지지 말고 무조건 가셔서 멍 때리고 보면서 '아, 이다지도 훌륭한 영화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왔다니!'하면 되는 작품들입니다. 표면에 보이는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즐길 수 있는 영화이고, 그 이야기를 작동하게 만드는 영화 언어에 이르러서는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각본, 촬영, 편집, 음악, 연기, 미술 등등 무엇 하나 유려하지 않은 부분이 없습니다. 온갖 테크닉을 능숙하게 다루면서도 결코 오버하지 않고, 언제나 영화만이 가능한 표현에 몰두하는 이런 감독이 지금 얼마나 있을까요. "말로 형용할 수 없다"는 표현이 다 이런 경험을 두고 쓰이는 거고, "스타일리스트" 같은 표현도 이런 분께나 써야하는 거죠. 두기봉의 영화를 보는 것은 장르적인 즐거움과 영화 예술 자체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즐거움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경험이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8/01/27/a0003527_4892f8be14417.jpg" width="500" height="207.85714285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8/01/27/a0003527_4892f8be14417.jpg');" /></div><center><font face=바탕 color=brown>[흑사회]</font></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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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영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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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8/01/27/a0003527_4892ec853d393.jpg" width="500" height="246.93520140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8/01/27/a0003527_4892ec853d393.jpg');" /></div><br />
　짧은 일정입니다. 특히 〈흑사회〉 연작이 토, 일, 월 사흘에만 몰려 있어 당혹스러워 하시는 분들 계실 듯 한데요, 빨리 상영하고 나서 다른 영화제 쪽에 갖다 줘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짧은 기간 동안 몰아서 상영한다고 합니다. 여유부리지 마시고 기회가 닿는 대로 안간힘을 써서 극장에 찾아가시길!<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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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창화(槍火, 1999)], [흑사회(黑社會, 2005)], [흑사회 이화위귀(黑社會 以和爲貴, 2006)], <a href='http://sabbath.egloos.com/1664166' target=_blank>[방축(放․逐, 2006)]</a>으로 내정돼 있었던 상영작 목록이 [PTU], [대사건(大事件, 2004)], [흑사회], [흑사회 이화위귀], [방축]으로 바뀌어 버려 아쉬워하시는 분들 많이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영작 수는 하나 늘었지만 [창화]는 그간 구린 화질의 VHS나 DVD로만 접할 수 있었던 작품이고(지난번에도 이야기 한 것 같은데, 제발 드래곤 다이너스티 같은 곳에서 리마스터링해서 DVD 내주면 좋겠습니다), 또 이 작품은 두기봉 팬들에게 각별할 수밖에 없으니까 충분히 그럴 만합니다. 저도 두기봉 스타일의 원형이자 완성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을 필름으로 볼 기회(≒머리 빡빡 깎고 나오시는 오진우 님의 존안을 뵐 기회)가 사라져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본 영화를 다시 보는 팬의 입장에서 말고, 그냥 두기봉 영화가 어떤지 잘 모르시는 분들을 고려하자면 지금 목록이라고 나쁠 건 없지요. 그리고 어차피 두기봉 감독님 같은 분은 아무리 개무시하려고 해봐야 언젠가는 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명감독으로 추앙 받으면서 회고전 같은 거 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창화]를 필름으로 볼 기회는 찾아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요. 더구나 이런 이야기 너무 자주하면 [PTU]랑 [대사건]은 섭하죠. 그 작품들이라고 해서 '두기봉 영화 중에서는 좀 약한 영화' 취급 받을 이유는 없다고 보는데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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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하자면, 그냥 가서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두기봉 영화를 흘려 넘긴다면 대체 무슨 영화를 챙겨 봐야하겠습니까,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8/01/27/a0003527_4892f8d823a5c.jpg" width="500" height="207.85714285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8/01/27/a0003527_4892f8d823a5c.jpg');" /></div><center><font face=바탕 color=brown>[PTU]</font></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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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후문 쪽으로 옮긴 필름포럼의 위치는 이하의 안내를 참조하시길. 저도 직접 가보지는 않아서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습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8/01/27/a0003527_4892eca522e78.jpg" width="500" height="31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8/01/27/a0003527_4892eca522e78.jpg');" /></div>　-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금화터널방향으로 걸어오시면 버스정류장 쪽 벽돌색 건물입니다.<br />
　- 신촌역 3번출구 맥도날드 앞 정류장에서 7724번을 타고 이대 후문 정류장에 하차하셔서 금화터널방향으로 걸어오세요.<br />
　- 이대역 2, 3번 출구에서 이화여대를 통과하여 후문으로 걸어오세요. 이대후문 맞은편 '제시카키친' 지하 1층에 있습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8/01/27/a0003527_4892f8e7e59b4.jpg" width="500" height="21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8/01/27/a0003527_4892f8e7e59b4.jpg');" /></div><center><font face=바탕 color=brown>[방축]</font></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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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지선버스 (초록버스)</font></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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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6714</b> 양천공영차고지 - 신곡시장 - 화곡전화국 - 목동사거리 - 강서보건소 - 마포구청역 - 이대후문 - 이대부중 하차<br />
<b>7017</b> 남대문시장 - 롯데백화점 - 한국경제신문사 - 아현역 - 이대역 - 신촌기차역 - 이대후문 - 이대부중 하차<br />
<b>7024</b> 신촌역 4번 출구 - 명물거리 - 세브란스병원 - 이대후문 하차<br />
<b>7737</b> 신촌 현대백화점 - 산울림소극장 - 홍대 - 홍대입구역 - 서대문우체국 - 연세대 - 이대후문 하차<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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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blue>간선버스 (파란버스)</font></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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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61</b> 방화동 - 김포공항 - 강서보건소 - 마포구청역 - 연대앞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도봉역 - 미아삼거리 - 혜화역 - 종로 - 광화문 - 독립문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b>272</b> 사가정역 - 상봉역 - 청량리역환승센터 - 신설동역 - 성북구청 - 성대입구 - 종로경찰서 - 이대부중 하차<br />
　　백련시장 - 서대문복지관 - 성산회관 - 연대앞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b>370</b> 상일동 - 천호사거리 - 동대문구청 - 동대문 - 종로 - 광화문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수색역 - 북가좌동 - 성산회관 앞 - 연대앞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b>470</b> 상암동 - 상암DMC - 북가좌동 - 연대앞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양재역 - 강남역 - 신사역 - 단국대학교 - 종로2가 - 광화문 - 독립문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b>601</b> 방화역 - 김포공항 - 강서보건소 - 마포구청역 - 연대앞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경복궁 - 인사동 종로경찰서 - 창덕궁 - 종로4가 - 광화문 - 독립문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b>606</b> 부천상동 - 시민회관 - 부천대입구 - 원미구청 - 종합운동장 - 화곡역 - 강서구청 - 마포구청 - 이대후문 하차<br />
　　경복궁 - 안국동 - 조계사 - 종로1가 - 교보빌딩 앞 - 적선동 - 이대부중 하차<br />
<b>708</b 명지대 - 모래내삼거리 - 연대앞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경복궁 - 안국동 - 조계사 - 롯데백화점 - 시청 앞 - 서울신문사 - 한국통신 앞 - 사직공원 - 이대부중 하차<br />
<b>750A</b> 덕은동차고지 - 수색역 - 북가좌동 - 성산회관 - 연대앞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서울대 - 숭실대입구역 - 상도시장 - 신용산역 - 삼각지역 - 숙대입구역 - 서대문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b>750B</b> 은평차고지 - 수색역 - 북가좌동 - 성산회관 - 연대앞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서울대 - 숭실대입구역 - 상도시장 - 신용산역 - 삼각지역 - 숙대입구역 - 서대문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b>751</b> 숭실대입구역- 노량진역 - 신용산역 - 삼각지역 - 숙대입구역 - 아현역 - 신촌기차역 - 이대후문 - 이대부중 하차  <br />
<b>8272</b> 면목역 - 상봉역 - 중랑교 - 청량리역환승센터 - 신설동역 - 성북구청 - 성대입구 - 종로경찰서 - 사직공원 - 이대부중 하차<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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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red>광역버스 (빨간버스)</font></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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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9600</b> 송내역 - 부천시청시외버스터미널 - 내동고개 - 오정대로 - 화곡역 - 강서구청 - 마포구청 - 연대앞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적선동 - 세종문화회관 - 시청앞 - 충정로역2호선 - 이화여대 입구 - 신촌기차역 - 이대부중 하차<br />
<b>9602</b> 김포시 한전앞 - 김포시청 - 개화산역 - 등촌동SBS공개홀 - 마포구청역 - 연대앞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b>9706</b> 대화동종점 - 일산3동사무소 - 국립암센터 - 백석역 - 항공대앞 - 수색역 - 북가좌동 - 연대앞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b>9708</b> 대화동종점 - 일산백병원 - 일산동구청 - 능곡역앞 - 항공대앞 - 수색역 - 북가좌동 - 연대앞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b>9713</b> 대화동종점 - 탄현역 - 일산시장앞 - 고양시청앞 - 화정전철역 -  항공대앞 - 수색역 - 북가좌동 - 이화여대후문 하차<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8/01/27/a0003527_4892ef2038ee6.jpg" width="500" height="208.57142857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8/01/27/a0003527_4892ef2038ee6.jpg');" /></div><center><font face=바탕 color=brown>[흑사회 이화위귀]</font></center>			 ]]> 
		</description>
		<category>친구 영화관들</category>
		<pubDate>Fri, 01 Aug 2008 11:52:18 GMT</pubDate>
		<dc:creator>sabbath</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내 사랑 클레멘타인(My Darling Clementine, 1946)] - 보안관, 사랑에 빠져본 적 있어요? ]]> </title>
		<link>http://sabbath.egloos.com/1789149</link>
		<guid>http://sabbath.egloos.com/1789149</guid>
		<description>
			<![CDATA[ 
  　"내 이름은 존 포드요. 웨스턴을 만들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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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튼 웨스턴은 존 포드다. 이건 하워드 혹스 팬으로서 말하는 거니까 틀림없다(물론 알프레드 히치콕 팬도, 빌리 와일더 팬도 동의해 주리라 확신한다). 앤소니 만 팬으로서 말하자면 솔직히 여러모로 배알이 꼴리지만 그래도 역시 인정해 줄 수 있다. 어쨌든 도리가 없는 일이다. 존 포드가 아니면 누가 웨스턴을 완성했겠나? 서부 총잡이가 나와서 악당들 무찌르고 마을의 평화를 되찾고 하는 따위의 "전형"을 맨 처음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웨스턴의 영역을 만들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웨스턴입니다, 를 말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래서 종종 웨스턴의 약호들을 가득 품고 있으면서도 존 포드의 영토 바깥에 위치한 영화를 볼 때면 '이걸 웨스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는 '웨스턴은 대체 무엇일까?'하는 의문에 잠기게 된다.<br /><br />　물론 그 의문들이 반드시 "역시 존 포드가 아니면 웨스턴이 아니야"라는 답을 내놓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앤소니 만의 [벌거벗은 박차(The Naked Spur, 1953)]를 보고 있으면 굳이 웨스턴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웨스턴이기에 이 정도로 위력적일 수 있었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또는 하워드 혹스의 [리오 브라보(Rio Bravo, 1959)]는 다른 감독들이 만든 웨스턴보다는 그와 크리스천 니비가 함께 만든 SF 영화 [외계에서 온 것(The Thing from Another World, 1951)]을 훨씬 더 닮았지만, 그러나 결국 웨스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그들도 어딘가 근본적으로 웨스턴인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웨스턴의 범위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기준이라는 점에서, 역시 "존 포드가 웨스턴을 만들었다"는 말은 참일 수밖에 없다. 그건 그가 이 장르를 탄생시킨 서부라는 환경에 가장 밀접하게 다가갔고, 그 안에서 뿌리박고 사는 사람들의 현실(신화가 아니라)을 표현하는 데 누구보다도 전력을 기울였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다른 감독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서부를 통해서 표현했다면 존 포드는 서부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를 찾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영화를 볼 때 이런 기분이 들게 하는 또 한 명의 감독은 샘 페킨파다. 물론 그는 웨스턴 밖에서도 뛰어난 걸작을 남겼지만 ─ [지푸라기 개(Straw Dogs, 1971)]를 어찌 거부하랴? ─ 그의 웨스턴을 보고 있으면 결국 페킨파의 영혼은 황야에 있었음이 분명해진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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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그가 만든 웨스턴 중 무엇이 가장 좋은가? 물론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은 [역마차(Stagecoach, 1939)], [수색자(The Searches, 1956)],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 1962)]다. 존 포드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걸작들이며, 그 훌륭함은 깎아내릴 길 없다. [아파치 요새(Fort Apache, 1948)]나 [노란 리본을 맨 여인(She Wore a Yellow Ribbon, 1949)] 같은 기병대 영화를 꺼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비평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대표작들에 비해서 덜 인정받는 작품들이지만 여기 나타나는 기병대 공동체의 모습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은 존 포드 정서의 정수다. 특히 이들을 보고 있으면 존 포드의 작업이 무엇인지를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다('어째서 총잡이는 없고 군대만 나오는 영화를 웨스턴이라고 부르게 되는 걸까?'). [웨건 마스터(Wagon Master, 1950)]나 [말 위의 두 사람(Two Rode Together, 1961)]처럼 좀처럼 언급되지 않는, 일반적인 "존 포드스러움"과는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작품들을 아끼는 이도 있겠다. 혹자는 [스트레이트 슈팅(Straight Shooting, 1917)]이나 [철마(The Iron Horse, 1924)]를 언급하여 존 포드 무성영화를 보지 못한 다른 팬들의 염장을 지를지도 모를 일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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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 사랑 클레멘타인]을 꼽고 싶다. 이 작품은 내 마음 속에 자리한 웨스턴의 원형과도 같다. 혹자는 이 작품이 지나치게 이상화된 서부 공동체를 그려내고 있다고 툴툴거릴지 모르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상주의에도 급이 있는 법. [내 사랑 클레멘타인]은 순진무구하고 단순하게 좋은 것만 보는 영화가 아니다. 그보다는 초기 서부 공동체의 성립 과정에서 떨어져 나가는 이들과, 그들의 이탈 이후에 남게 되는 이들 모두에게 사려 깊은 시선을 보내면서 그 안에서 그나마 가장 온화한 미래를 찾는다고 말하는 편이 보다 사실에 가깝다. 그렇게 말하지 않고서는 이 영화가 병에 걸려 죽어가는 전직 의사이자 현직 도박장 주인 닥 할리데이(빅터 마추어)나 인디언-멕시코 혼혈 정도로 보이는 술집 아가씨 치와와(린다 다넬)를 통해 보여주는 정 많고 쓸쓸한 시선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냥 까놓고 말해보자.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설정상 어떤 인물이 가장 흥미롭게 느껴질까? 와이어트 어프인가 닥 할리데이인가? 아무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강직한 보안관보다는 뭔가 울적한 과거도 있고, 무법자 같지만 의외로 섬세하고, 셰익스피어를 외울 정도로 교양도 있고, 멀리서 찾아온 여인도 있고, 지금 자신을 아끼는 또 다른 여인도 있고, 총도 잘 쏘고, 더불어 불치병까지 걸렸고, 보안관과 목장주와 자기 자신 사이에서 흔들리는 전직 의사 선생 쪽에 무게가 실리지 않나?<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b1bb14e3.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b1bb14e3.jpg');" /></div>　이야기 구조를 봐도 그렇다. 존 포드는 하워드 혹스처럼 일단 중심 줄기를 세워가면서 점차 사방팔방으로 가지를 뻗치는 대신 중심(처럼 보였던 이야기)에서 자꾸 벗어나면서 모든 요소를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고 서로 소통하게 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다. [내 사랑 클레멘타인]에서는 닥 할리데이를 통해 그러한 빗나감이 벌어진다. 영화가 시작하면 소를 몰고 캘리포니아로 향하던 카우보이 어프 4형제 중 막내가 형들이 없는 사이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는다. 와이어트 어프와 다른 둘은 잠시 툼스톤에 머무르며 보안관 직을 맡아 동생의 사건을 조사하기로 한다. 갈등의 반대편에는 이 지역의 목장주 클랜튼 일가가 있음이 암시된다. 이게 그냥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 → 멋있는 선이 악을 해치우고 평화를 찾음"식 이야기였다면 거기서부터 영화를 일직선으로 전개하면 된다.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 포드는 마치 클랜튼 일가는 잊어버렸다는 듯이 닥 할리데이라는 도박장 주인을 제시하고, 그와 와이어트 어프 사이의 갈등에 주목한다. 그게 얼추 마무리되나 싶으면 저 멀리 동부에서 클레멘타인 카터(캐시 다운스)라는 아가씨가 찾아와 닥의 과거를 헤집어 놓는다. 그러면 평소 닥을 사랑해온 치와와가 질투의 시선을 보낸다. 게다가 와이어트 어프가 클레멘타인에게 반한다. 이 곁가지 같은 이야기들이 실은 영화의 핵심이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b94b9fa4.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b94b9fa4.jpg');" /></div>　[내 사랑 클레멘타인]의 클라이맥스가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물론 전체 사건은 결국 어프 형제와 닥 할리데이가 힘을 합쳐 클랜튼 일가를 제압하는, 저 유명한 "O.K. 목장의 결투"를 통해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건 결말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지 모든 갈등이 그 모습을 선명히 드러내며 정점에 이르는 순간은 아니다(그렇다고 이 결투 장면이 시시하다는 건 아니다. 총을 든 사내들이 결전을 위해 보안관 사무실을 나선 다음. 곧바로 익스트림 롱 쇼트 속에서 툼스톤의 청명한 하늘이 펼쳐지며 이 총잡이들이 마치 점처럼 지평선 위에 선 모습이 보이는 순간은 몇 번을 보아도 아름답다). 이 영화의 진정한 클라이맥스는 그 앞부분, 치와와가 클랜튼 일가의 아들 한 명에게 총을 맞아 닥이 수술에 나서는 장면에 있다. 와이어트 어프, 닥 할리데이, 클레멘타인 카터, 치와와 모두가 한 공간 안에 놓인다. 포드는 수술을 준비하는 과정과 수술이 끝난 후의 과정을 통해 네 사람의 서로를 향한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함께 하기는 힘들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을 보여준다. 넷 중 치와와와 닥 사이의 거리감이 다소 불명확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닥이 치와와를 대하는 태도가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며(그는 그녀를 애인으로 여기는가? 아니면 흥이 날 때 같이 놀아줄 만한 대상? 또는 애인으로 여기더라도 자신의 불치병과 총잡이 인생으로서의 숙명 때문에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가?), 그럼에도 두 사람이 그 불명확한 관계 속에서 쌓아온 모종의 이해만은 분명히 전달된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c3ac5a51.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c3ac5a51.jpg');" /></div>　수술을 막 시작하는 순간, 와이어트-클레멘타인-닥 사이의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적확하게 표현된다. 닥이 클레멘타인을 부른다. "카터 양." 그는 순간 불치병에 걸린 총잡이로서의 인생을 잠시 접어두고 동부의 유망한 의사라는 자신의 과거로 돌아간다. 클레멘타인은 그 점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다. 그녀가 대답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네, 할리데이 선생님." 그런데 이 쇼트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밝은 조명 아래 서 있던 클레멘타인이 화면 밖으로 빠져나가면 그 뒤편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 와이어트가 보인다. 술집 피아노 음악이 들린다. 그의 실루엣은 클레멘타인의 "네, 선생님."이라는 말이 던지는 의미를 곱씹듯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힘없이 고개를 돌린다. 어떻게 해도 자신은 그녀가 위치한 세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음을 이해하는 듯하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서 술집의 왁자지껄한 소음도 들려온다. 와이어트는 결국 소음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다. 다음 순간, 수술실의 정경을 담은 롱 쇼트는 그들 모두와, 빛과 어둠과, 피아노 소리와 소음을 한꺼번에 담아낸다. 거기서 숭고함을 느낀다면 그건 어느 한 인물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모두가 제각각 공동체의 한 모퉁이에 선 채 각자의 사정을 말하는 모습이 한꺼번에 다가오기 때문이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c4a6c2e8.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c4a6c2e8.jpg');" /></div>　이 장면은 수술 이후의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확장된다. 수술이 끝난 뒤 닥은 의사로서의 자긍심을 되찾는다. 와이어트가 진료 가방을 건네줄 때 그걸 받는 닥의 손은 더없이 힘차다. 그러나 술집 출구에는 클레멘타인이 서 있다. 닥의 성공에 기뻐하던 와이어트는 그가 그녀를 향해 다가가는 걸 보고는 바에 기대었던 몸을 곧게 펴며 그쪽을 바라본다. 클레멘타인은 자신을 그냥 지나치려는 닥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이 정말 자랑스러워, 존." 그는 그녀의 얼굴을 외면한 채 대답한다. "고마워, 클렘. 치와와가 참 용감했지." 되찾은 과거는 찰나일 뿐이며, 자신은 다시 클레멘타인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듯이. 그리고는 술집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녀도 잠시 굳은 얼굴로 서 있다 이내 술집을 나선다. 멀찍이서 바라보던 와이어트는 술잔을 만지작거리다 바텐더에게 묻는다. "맥, 사랑에 빠져본 적 있어요?(Mac, you ever been in love?)" 바텐더는 진지하게 대답한다. "아뇨, 전 평생 바텐더였습니다.(No, Ive been a bartender all my life.)" 와이어트는 술을 단번에 들이켠 뒤 역시 술집을 나선다. 짤막한 대사와 인물의 시선을 한데 모으는 것만으로도 포드는 서로의 마음이 어떤 방식으로 어긋나고 있는지, 그리고 각자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훤히 보여준다. 이 장면은 단지 세 인물의 사적인 심리를 드러내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고 서로를 갈구하면서도 완전히 겹칠 수는 없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입장을 통해 웨스턴적 공동체의 본질까지 매만지는 듯하다. 차라리 포드 영화에서 인물의 갈등이 전면에 드러나는 순간은 곧 웨스턴이라는 이름의 세계가 피와 살을 갖춘 채 실현되는 순간이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심지어 맥의 예기치 못한 유머조차도 단지 장면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기능을 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에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깊이를 부여한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c58f1d56.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c58f1d56.jpg');" /></div>　사실상 여기서 결론이 난다. 그 다음부터 결말까지는 대차대조표를 완성하듯이 죽을 사람은 죽고 떠날 사람은 떠나며 남는 사람은 남는다. 그리고 남은 사람은 죽은 사람을 기억하고, 떠난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웨스턴의 세계는 완성된다. 이 작품을 웨스턴의 원형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c62a651b.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c62a651b.jpg');" /></div>　자, 그런데 너무 폼을 많이 잡았다. 이것은 내가 [내 사랑 클레멘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이지만 좋아하고 마음에 품는 방식은 아니다. 같은 이야기를 헨리 폰다의 와이어트 어프를 통해서 하는 것이 훨씬 즐겁다. 앞서 말했듯이 설정이나 플롯의 측면에서 영화를 끌고 가는 인물은 닥 할리데이다. 영화가 전개됨에 따라 서서히 드러나는 그의 어둡고 복합적인 측면은 워낙 흥미진진해서 와이어트 어프는 상대적으로 뻔하게 보인다. 오죽하면 헨리 폰다가 올바르고 건실한 미국인의 초상을 연기하곤 했다는 주장을 펼 때 흔히 예로 드는 역할이 [젊은 링컨(Young Mr. Lincoln, 1939)]의 링컨 대통령과 [내 사랑 클레멘타인]의 와이어트 어프이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쉽게 판단하고 말 일이 아니다. 링컨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와이어트 어프는 정의의 보안관이라고 간단히 줄여 말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다정다감하고 신사적이며 시민들을 아끼는 사내를 기대하며 영화를 보기 시작한 관객들이라면 아마 의외로 울퉁불퉁한 그의 성격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는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거나 평화를 수호하는 데에도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애초에 동생의 복수를 위해 보안관이 된 사나이 아니던가(그는 동생이 죽기 전에도 툼스톤의 시장으로부터 보안관 제의를 받지만 단호하게 거절한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c74ab199.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c74ab199.jpg');" /></div>　도입부에서 처음 툼스톤에 들어왔을 때의 모습만 봐도 와이어트가 결코 긍정적인 가치만을 대변하는 인물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이발소에서 면도를 하던 중 길 건너 술집에서 소란이 벌어지고 총알이 날아드는 바람에 이발사가 도망치자, 그는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봐, 이발사!" 결국 그가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는 인디언을 때려잡아 사태를 해결해 주기는 하지만 ① 그것은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면도가 중단된 탓에 열을 받아 그런 것이며, ② 그는 인디언을 대하는 과정에서 인종차별적 태도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이 두 가지는 와이어트 어프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다. 특히 후자는 주의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중에 닥이 몇몇 사람들을 마을 밖으로 쫓아내려 할 때 와이어트가 "그런 건 보안관의 일이야"라며 막아서는 모습을 생각해 보면 이 장면에서 (보안관이 아닌데도 인디언을 쫓아낸) 그의 인종차별 성향은 분명하다. 더구나 그는 이후 치와와를 가혹하게 대하면서 다시금 인디언에 대한 편견을 내비친다("한 번만 더 걸리면 당신네 아파치족 보호구역으로 쫓아내겠어!"). 그걸 이 영화가 인종차별적이라고 여겨서는 곤란하다. 치와와는 분명 나름의 자긍심을 갖추면서 닥 할리데이와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는 중심인물이다. 와이어트의 가치관이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내 사랑 클레멘타인]이 지향하는 긍정적 가치들의 총집합으로서 존재하는 만능 주인공/영웅이 아니다. 그 또한 서부 세계의 한 구성원으로서 남들만큼의 장단점을 가진 사람일뿐이며, 영화는 그걸 보여준다. 바로 이 불완전함이 그를 매력적인 인물로 만든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d3ca40e1.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d3ca40e1.jpg');" /></div>　헨리 폰다의 연기는 와이어트의 다양한 측면을 섬세하게 구현한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C'era una volta il West, 1968)]의 프랭크 역이 폰다의 연기 인생에서 특별한 예외인 것처럼 말하는 팬들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그가 프랭크를 연기하며 보여준 우아한 무례함은 이미 와이어트 어프 역에서도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가늘고 긴 몸이 느리지만 확고한 걸음을 내딛으며 팔을 가볍게 늘어뜨린 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이 자가 보기에 근사하기는 하지만 어딘가 건들거리는 측면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도박장의 의자에 늘어진 채 패를 보면서 "난 이 포커란 게 참 좋아요. 저마다 손 하나에 골칫거리 하나씩 쥐는 게 말입니다."라며 능글맞게 굴 때의 그 목소리, 그리고 판이 깨진 뒤 모자를 벗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칩을 쓸어 담고 그대로 다시 모자를 쓰는 그 천연덕스러움. 그런 사람을 어떻게 "단순한 미국식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d499f847.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d499f847.jpg');" /></div>　클레멘타인이 툼스톤에 도착한 이후 와이어트의 매력은 극에 달한다. 비교적 단정해보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뼛속까지 거친 서부 사나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을에 들어선 도박꾼을 몰아세우던 그가 아름다운 숙녀 앞에서 쭈뼛거리며 말끝마다 "ma'am"을 붙이고 마차 지붕 위에 얹힌 짐 부리기를 마다 않는 모습을 보며 웃음 짓지 않을 관객 어디 있으랴? 갑자기 찾아온 풋사랑에 당황하는 소년 와이어트 어프. 툼스톤에 처음으로 교회(이제 막 터를 잡고 종탑만 세워뒀을 뿐 본체는 없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던 날 이발을 하고 잔뜩 기름 바른 머리에 향수까지 뿌린 채 클레멘타인을 에스코트하는 와이어트의 걸음걸이, 예배를 마친 뒤 모두가 한데 모여 춤을 추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사모하는 그녀에게 어떻게 춤을 신청해야 할지 몰라 하며 모자를 움켜쥐다 결국 스스로의 수줍음에 화난 듯 모자를 집어던지는 와이어트의 손, 그리고 마침내 춤을 추게 되었을 때 뻣뻣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와이어트의 다리. 이 모두에서 어떻게든 사람들의 세상 안에 들어가 함께 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 방법을 알지 못해 흉내만 내는 게 고작인 이 미숙한 사내의 마음이 느껴진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d5b752a4.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d5b752a4.jpg');" /></div><br />
　그러니 마침내 서부 사나이들의 숙명대로 역시 툼스톤을 떠나고야 마는 와이어트가 언젠가 다시 이곳에 돌아올 수도 있다고 말할 때, 그 말을 진심으로 믿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에서 "언젠가" 돌아온다고 말하지만 영영 떠나버릴 사람처럼 걸음을 옮기는 하모니카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려 노력하면서 자신의 미숙함을 점차 깨달아 온 사람이며,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인 채 장렬히 사라지기보다는 소년처럼 꿈을 가지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게 이상이라면 그 얼마나 응원해주고 싶은 이상인가. 그걸 그냥 순진하다고 말하고 싶거든 어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여관 앞 기둥에 발을 올린 채 클레멘타인을 떠올리며 스텝 밟는 연습을 하는 와이어트 어프를 보며 말해보라.<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82696f925.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82696f925.jpg');" /></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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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edc9b6be.jpg" width="385" height="59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edc9b6be.jpg');" /></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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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덧 하나.</b> 이번에 다시 보면서 새삼 어린 시절의 오승욱 감독은 정말 꼬인 아이였구나 싶었다. 아니 어떻게 [내 사랑 클레멘타인]을 보면서 클랜튼 일가를 응원할 수 있는 걸까? 아무리 클랜튼 가의 가장을 연기한 월터 브레넌이 매력적인 배우라지만, 그래도 거의 [리오 브라보]를 보면서 버뎃 패거리를 응원하는 거랑 맞먹는 태도 같은데. 작정하고 영화에서 빠져나와 아예 처음부터 "악당 이겨라"라는 마음가짐으로 보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겠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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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덧 둘.</b> 현재 [내 사랑 클레멘타인]은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1946년 10월에 공개된 이래 수십 년 동안 널리 사랑받아온 개봉판.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개봉 전인 1946년 7월에 제작된 판본. 뒤의 것은 90년대 말 UCLA 필름 아카이브에서 발견되었다. 사정은 이렇다. 1946년 6월, 존 포드는 [내 사랑 클레멘타인]의 가편집본을 만들어 내부 시사를 했다. 20세기 폭스의 총수 대릴 F. 자눅은 이 가편집본의 전체 흐름에 실망을 표했으며 일부를 편집하고 재촬영하면 더 나은 영화가 될 거라는 의견을 제시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판본이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진 [내 사랑 클레멘타인]이다. 그럼 7월에 만들어진 개봉전판은? 이것은 6월 가편집본과 10월 개봉판 사이에 놓여 있다. 이 필름의 전반부 20분은 개봉판과 완전히 동일하다. 그러나 그 뒷부분부터는 약간씩 다른 점이 보이며, 따라서 거기서부터는 아마도 6월에 포드가 내놓은 가편집본일 것으로 추정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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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에 출시된 [내 사랑 클레멘타인]의 코드1 DVD에는 이 두 판본이 모두 수록되어 있고, 개봉전판의 복원을 맡은 UCLA 아카이브의 보존 담당자 로버트 기트가 두 판본의 다른 점을 설명하는 40여분 가량의 영상도 포함돼 있다. 일부 대사를 수정한 것, 포드의 촬영분에 다른 감독의 촬영분을 끼워 넣은 것, 가편집본의 장면들을 잘라낸 것, 음악을 첨가한 것 등 바뀐 부분은 상당히 많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개봉전판을 "디렉터스 컷"이라는 식으로 말해서는 곤란하다. 애초에 6월에 포드가 내놓은 것은 가편집본이었음을 고려할 필요도 있겠고, 또 이 영화에 불후의 명성을 안겨다 준 것은 다름 아닌 개봉판이다. 한 편의 영화가 한 사람의 "작가성"만으로 완성된다는 무리한 믿음에 매달리지 않는 한 개봉판을 부정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어차피 개봉전판에도 포드가 아닌 다른 감독(로이드 베이컨)이 촬영한 장면이 수록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이며, 더군다나 복원 과정에서 쇼트가 빠진 부분들을 채워 넣기 위해서 UCLA 아카이브 측에서 임의로 끼워 넣은 부분들도 있으니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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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선호도를 밝히자면 역시 개봉전판에 애정이 간다. 각각의 변화된 부분들을 자세히 짚어가며 말해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딱 하나다. 나는 개봉전판의 엔딩이 개봉판의 엔딩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개봉판에서 와이어트 어프는 클레멘타인과 키스를 한 뒤 길을 떠난다. 개봉전판의 경우 그는 그녀에게 다가서기는 하나 결국 악수만 하고 떠난다. 사랑하지만 다가가기 힘든 여인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어 보지만 차마 입을 맞출 수는 없어 손을 내미는 모습, 그것이야말로 [내 사랑 클레멘타인]의 와이어트 어프이기에 나는 개봉전판을 아낀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f035fdee.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7/28/27/a0003527_488d7f035fdee.jpg');" /></div>			 ]]> 
		</description>
		<category>영화 감상문</category>
		<pubDate>Mon, 28 Jul 2008 08:21:16 GMT</pubDate>
		<dc:creator>sabbath</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론 채니의 사라진 영화, [자정 이후의 런던]을 볼 수 있을까? ]]> </title>
		<link>http://sabbath.egloos.com/1788528</link>
		<guid>http://sabbath.egloos.com/1788528</guid>
		<description>
			<![CDATA[ 
  　어제 Aint It Cool.com에 들어갔다가 놀라운 글을 보았다. 해리 특유의 호들갑떠는 문체로 쓴 그 글의 제목은 <a href='http://www.aintitcool.com/node/37599' target=_blank>"Time/Warner Has Lon Chaney's LONDON AFTER MIDNIGHT?!?!?!? Use Dark Knight Money - Restore - Release - NOW!"</a>였다.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즉시 해리가 쓴 글을 읽었고, 그가 연결해 둔 링크에 들어가서 <a href='http://thehorrordrunx.yuku.com/topic/753' target=_blank>시드 테러라는 사람이 쓴 기나긴 글</a>을 스크롤+영문의 압박을 견뎌내며 단숨에 읽었다.<br /><br />　나도 호들갑을 떨고 싶지만, 일단 상황 설명을 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br />
<br />
　론 채니라는 배우가 있다. 무성영화 시절의 미국에서 활약한 배우로, 당대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최고의 스타 중 한 사람이다. [노틀담의 꼽추(The Hunchback of Notre Dame, 1923)], [불경한 3인조(The Unholy Three, 1925)],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1925)], [해병들에게 전하라(Tell It to the Marines, 1926)], [미지의 존재(The Unknown, 1927)] 등 평생 16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의 별명은 "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였는데, 이 별명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먼저, 그는 당대 할리우드에서 누구보다도 뛰어난 분장술을 지닌 사람으로, 자신의 분장을 직접 해냈다. 간단한 도구만으로도 자신의 몸을 원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으로 변화시키는 그의 분장술은 [노틀담의 꼽추]의 콰지모도나 [오페라의 유령]의 유령 역을 통해 여전히 전설로 남아있으며, 온갖 기기묘묘한 아날로그 특수효과를 본 이후에 보아도 변함없이 놀랍고 효과적이다. 한편, 그는 뛰어난 배우이기도 했다. 당대의 많은 스타들이 자신의 고정된 이미지를 끊임없이 활용하고 변주하며 그들의 실력을 발휘했던 것과 달리 론 채니는 배역에 따라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유형의 배우였다(혹자는 그를 할리우드 최초의 성격 배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는 용모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 분장 없이도 온갖 역할을 적확하게 연기해 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650449ee.jpg" width="500" height="375"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650449ee.jpg');" /></div><font color=brown; face=바탕>[오페라의 유령]에서 유령 역을 연기한 론 채니. 그는 가면 같은 걸 뒤집어 쓰거나 얼굴에 뭘 덕지덕지 덧붙이는 대신 가는 줄을 이용해 코를 잡아당기고 안와를 넓히고 보철물을 이용해 입을 벌리는 등의 수법을 이용해 직접 얼굴을 변형시켜 이러한 모습을 만들어내었다(물론 머리는 가발).</font><br />
<br />
　나는 그를 올해에야 만났고 단 네 편의 영화, [하트의 에이스(The Ace of Hearts, 1921)], [오페라의 유령], [미지의 존재], [웃어라, 광대야, 웃어라(Laugh, Clown, Laugh, 1928)]를 보았을 뿐이지만 이미 열렬한 팬이 되었다. 어느 것 하나 심장을 옥죄거나 눈물짓게 하지 않는 작품이 없었다. 특히 [오페라의 유령] 때문에 그를 공포영화 전문 배우로만 알고 있다가 TCM Archives의 Lon Chaney Collection DVD에 수록된 짝사랑 영화(!) 세 편을 연달아 보았을 때의 충격이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었다. 버트 랭카스터는 [미지의 존재] 결말부에서 론 채니가 깨어진 사랑에 대해 비통해 하는 모습을 두고 "내가 아는 한 가장 강력하고 감정을 소진시키는 연기"라고 말했다는데, 결코 과장이 아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702015cc.jpg" width="500" height="374.28571428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702015cc.jpg');" /></div><font color=brown; face=바탕>[웃어라, 광대야, 웃어라]에 출연한 론 채니. 그는 이 영화에서 자신이 주워다 기른 양녀가 어느새 숙녀가 되었음을 깨닫고 그녀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찬탄하다가 어느덧 자신이 그런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경악한다. 한 쇼트 안에서 기쁨이 경악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담아내는 론 채니의 연기는 능히 오대수를 넉다운시킬 만하다.</font><br />
<br />
　그런데 이 DVD에는 세 편의 영화 외에 한 편의 영화가 더 수록되어 있었으니, 바로 지금부터 이야기할 [자정 이후의 런던(London After Midnight, 1927)]이다. 대체 왜 영화 네 편이 들어있는데 DVD 케이스에는 세 편만 있는 것처럼 표기되었을까 하고 살펴보았는데, 이 작품은 그 필름이 사라져 현재는 스틸 사진으로만 그 형태를 확인할 수 있으며 DVD에 수록된 것은 릭 슈미들린이라는 무성 영화 학자/복원가가 그렇게 남은 스틸 사진으로만 재구성한 버전임을 알게 되었다(동영상은 하나도 없이 그냥 스틸 사진만 보여주면서 사이사이 자막을 넣어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그렇다고 아예 그림책처럼 된 것은 아니고, 스틸 사진의 일부만을 확대하거나 줌 인, 줌 아웃 등 카메라 이동을 사용하고 편집 속도도 달리하면서 나름대로 영화스러운 분위기를 주려고 하고 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7a8d9a33.jpg" width="500" height="377.85714285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7a8d9a33.jpg');" /></div>　그렇게 사실상 원형을 알 수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 DVD는 디지팩 케이스 곳곳에 [자정 이후의 런던]에 출연한 론 채니의 모습을 배치해 놓았는데,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남아있는 스틸 사진 속에서 뱀파이어로 분장하고 있는 론 채니의 모습이 워낙 강렬한 거다! 그가 출연한 160여 편의 영화 중 지금 그 필름을 찾을 수 없는 작품은 수도 없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이 [자정 이후의 런던]이 유명한 이유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 이전에 아마 남아있는 스틸 사진의 공이 지대하지 않았겠나 추측해 본다. 나 역시 그걸 본 뒤로 [자정 이후의 런던]이 간절히 보고 싶어졌고. 그러나 인터넷 여기저기를 검색한 결과 ─ 이 작품의 마지막 남은 필름은 1967년 MGM 스튜디오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고 이제는 사실상 사라진 영화로 간주된다고 한다. 어쩌겠는가. '그냥 사라진 영화라서 과대평가 되고 있겠지'하며 여우가 못 먹는 포도 보듯 넘어가야지.<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7b7baa3c.jpg" width="500" height="377.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7b7baa3c.jpg');" /></div>　그런데 최근, 바로 그 [자정 이후의 런던] 필름이 아직 남아있다는 글이 발표된 거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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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글을 직접 읽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요약하자면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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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드 테러라는 그 글의 필자는 어려서부터 열혈 공포영화 팬이었고, "사라진" 영화 [자정 이후의 런던]이 어디엔가 남아있으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은 채 수십 년 동안 극장 창고며 필름 보관소에 처박힌 오래된 필름들을 뒤져왔다. 1988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필름 배달 일을 맡게 된 그는 온갖 영화사, 필름 보관소, 제작사 등을 드나들며 안면을 텄고, 탐색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1989년, 그는 그렇게 구축한 인맥을 통해 터너 엔터테인먼트 컴퍼니(이 즈음 MGM의 많은 영화 판권들이 터너에 팔린 상태였다) 소유의 어느 필름 보관소에 [The Hypnotist]라는 이름의 필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The Hypnotist는 바로 [자정 이후의 런던]이 영국에 소개될 때 붙은 제목. 직접 필름 보관소 안에 들어가 해당 필름을 꺼낸 그는 그것이 자신이 그토록 오래도록 찾아왔던 바로 그 영화임을 확인했다. 그는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필름 속에서 영화의 타이틀, 그리고 저 유명한 론 채니의 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래된 질산염 필름이었지만, 상태는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좋았으며, 데이터베이스 상에는 릴 하나가 사라져있다고 기록돼 있었으나 기존에 알려진 상영 시간과 남아있는 릴의 수를 비교해 보았을 때 전편이 모두 남아있는 듯했다(테러는 무성영화는 초당 18프레임으로 영사되었는데 앞서 자료를 검토한 이가 초당 24프레임으로 영사하는 유성영화의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에 릴이 부족하다고 적어둔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물론 그는 터너 영화사 직원도 아니었고, 필름을 함부로 다룰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기에 다만 "The Hypnotist"라는 필름 캔 위의 제목 옆에 "aka London After Midnight"이라고 적어둔 뒤 다시 보관소를 나왔으며, 자신에게 그 필름의 소재를 알려준 회사 직원더러 데이터베이스를 업데이트 해달라고 부탁했다. 어쨌든 필름은 판권을 가진 이들의 손에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그는 터너 측에서 이 질산염 필름을 보다 안전한 필름으로 옮기고, 복원 작업을 거쳐 주리라 생각했다. 당시 터너는 이미 질산염 필름들에 대해 그런 작업들을 하고 있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6.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7c5d86f5.jpg" width="500" height="378.57142857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6.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7c5d86f5.jpg');" /></div>　90년대 초의 어느 날, 터너의 아메리칸 무비 클래식 케이블 채널에서 [자정 이후의 런던]이 방영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테러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TV 앞을 지켰으나 방영은 갑자기 취소되었고, 아무런 해명도 없었다. [자정 이후의 런던]은 그렇게 소리 없이 사라졌으며, 테러가 필름 배달 일을 그만 두고 TV쇼의 작가 겸 감독으로 일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만 갔다. 2002년, [자정 이후의 런던] 개봉 75주년이 되었을 때 이 작품이 공개된다고 했지만 그건 릭 슈미들린이 제작한 스틸 사진 재구성판이었다. 시간은 또 다시 조용히 흘러갔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7d2ddef0.jpg" width="500" height="378.57142857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7d2ddef0.jpg');" /></div>　한편, 2004년, DVD나 케이블 TV 및 해외 판매 용 영화를 선정하기 위해 LA 근교의 필름 보관소들을 뒤지는 일을 하고 있던 MGM 특별 기획과의 테드 뉴슨이라는 사람은 신기한 발견을 하게 된다. 그의 업무 중 하나는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모든 영화들을 직접 찾아 기록된 정보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는데, 목록에서 "The Hypnotist aka London After Midnight"를 본 것이다. 뉴슨은 처음에는 누군가의 장난으로 여겼으나 다른 "사라진" 영화들을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해 본 결과 보관소 내에 물적 증거가 있지 않은 영화들은 목록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자정 이후의 런던]이 어쩌면 정말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데이터베이스는 [자정 이후의 런던]에 관련된 자료가 필름인지 아니면 그냥 스틸 사진 뭉치인지, 또는 관련 자료가 어느 보관소에 있는지는 기록해두고 있지 않았다. 뉴슨은 상부에 보고했지만 MGM 측에서는 자신들에게 판권이 없는 영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터너 측에 얘기하는 과정에서는 그가 말하는 영화를 2002년에 발표한 스틸 사진 재구성판으로 여기며 대답하는 직원들을 상대해야 했고, 결국 그의 의견은 흐지부지 묵살되었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7ec33054.jpg" width="500" height="377.85714285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7ec33054.jpg');" /></div>　2008년 7월 11일, 시드 테러는 자신이 과거 [자정 이후의 런던]을 발견했던 보관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곳에 있는 필름들은 다른 보관소로 옮겨졌음을 알게 된다. 필름들은 주로 워너브라더스의 보관소 쪽으로 분산되었지만(워너는 1996년에 터너 엔터테인먼트와 타임 워너를 합병하면서 터너 & MGM 소유의 영화 판권을 획득하였다) 질산염 필름들은 UCLA 필름 아카이브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7월 17일, 테러는 워너 측의 데이터베이스를 검토해본 결과 [자정 이후의 런던]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필름은 분명히 UCLA 필름 아카이브 측에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으로서는 더 이상 접근할 루트가 없으니 이제 오랫동안 사라진 영화로 알려졌던 [자정 이후의 런던] 필름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널리 퍼뜨려 누가 되었든 세상에 공개해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질산염 필름은 손상되기 쉽다. 테러가 멀쩡한 상태의 필름을 직접 확인한지 이미 20년이 다 되어가며, 누군가 빨리 발견해주지 않으면 이 영화는 정말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7f4cbb4c.jpg" width="500" height="377.85714285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7f4cbb4c.jpg');" /></div>　이상이 시드 테러가 2008년 7월 23일에 The Horror Drunx.com에 발표한 글을 요약한 내용이다. 오랫동안 헛소문에 가슴 졸이다 실망하기를 반복한 팬들은 그의 이야기를 쉽게 믿으려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필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리고 그가 그 영화에 그토록 관심이 있었다면, 어째서 그토록 긴 세월 동안 널리 이슈화하지 않은 채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만 간간이 말했느냐는 의문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그건 나도 궁금하다. 관계자들이 좀처럼 믿어주지 않았고 접근 루트가 없었다지만, 지금과 같은 글을 보다 일찍 인터넷에 올렸더라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을 텐데.<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7ff33e62.jpg" width="500" height="377.85714285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7ff33e62.jpg');" /></div>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아무리 의심스러워도, 그의 말을 믿고 싶은 마음을 어찌 떨칠 수 있을까. 꼭 이 영화가 걸작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은 아니다. 1927년 당시 극장에서 직접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갈리는 편이다. 게다가 감독 토드 브라우닝은 훗날 이 영화의 리메이크인 [뱀파이어의 흔적(Mark of the Vampire, 1935)]을 발표했는데, 내가 본 바로 그 영화는 좋은 점들도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후진 작품이다. 원작이 꼭 좋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영화의 발견과 복원이 우수한 작품들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이유가 어디 있으랴. 이건 역사의 문제다. 그리고 사진만 바라보며 온갖 공상에 잠겼던 팬들의 꿈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 한국의 론 채니 팬이 무엇을 할 수 있으랴마는, 부디, 시드 테러의 말이 사실이기를, 그리고 너무 늦기 전에 [자정 이후의 런던]이 세상 빛을 볼 수 있기를.<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80bbfd00.jpg" width="500" height="375.714285714"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7/26/27/a0003527_488b380bbfd00.jpg');" /></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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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덧.</b> 위에 올린 [자정 이후의 런던] 스틸은 모두 스틸 사진 재구성판에서 캡처한 것이다.			 ]]> 
		</description>
		<category>영화 이야기</category>
		<pubDate>Sat, 26 Jul 2008 14:43:55 GMT</pubDate>
		<dc:creator>sabbath</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대초원의 철새(大草原の渡り鳥, 1960)] ]]> </title>
		<link>http://sabbath.egloos.com/1787985</link>
		<guid>http://sabbath.egloos.com/1787985</guid>
		<description>
			<![CDATA[ 
  　돌이켜보면 최근 한 해 가량은 웨스턴 팬으로서 특히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그 중 가장 팬심을 설레게 한 것이야 물론 북미 DVD 시장의 분투 덕에 꾸준히 이루어져 온 미국 고전 웨스턴과의 만남이지만(특히 앤소니 만!) 극장에서 필름을 통해 볼 수 있었던 [유마행 3시 10분 열차(3:10 to Yuma, 2007)]나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The Assassination of Jesse James by the Coward Robert Ford, 2007)]과 같은 미국 현대 웨스턴의 모습도 흥미로웠고, 영화제나 DVD를 통해 본 각양각생의 이종 웨스턴도 그 성취와는 별개로 어느 것이든 이 장르의 매력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세르지오 레오네를 필두로 한 "스파게티 웨스턴"은 물론이고 미이케 타카시의 "스시 웨스턴"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スキヤキウエスタン ジャンゴ, 2007)], 위시트 사사나티엥의 "똠얌꿍 웨스턴" [검은 호랑이의 눈물(ฟ้าทะลายโจร, 2000)], 이만희의 만주 웨스턴 [쇠사슬을 끊어라(1971)]와 그 21세기 버전인 김지운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을 보고 있노라니 장르의 표피만 가지고 장난을 치든, 정색을 가지고 경배를 바치든, 시치미 뚝 떼고 원래 자기 것인 척 하든 그 기저에는 국적이나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는 웨스턴에 대한 매혹이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역시 "서부"란 미국의 역사 내에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환상의 영토다.<br /><br />　제1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만난 닛카츠 영화사 제작, 사이토 부이치 감독의 [대초원의 철새]도 웨스턴에 대한 그와 같은 매혹을 여실히 드러내는 영화였다. 1959년부터 1962년까지 3년 동안 코바야시 아키라를 주연으로 삼아 총 아홉 편이 제작된 "철새" 시리즈 중 다섯 번째 작품인데, 이 기획은 타키라는 이름의 사내가 셰인식 가죽 재킷을 걸치고 기타 하나 든 채 말을 타고 일본의 산천을 떠돌며 도중에 만나는 이런저런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준 뒤 다시 석양을 향해 표표히 떠난다는 웨스턴의 기본 서사를 고스란히 답습하는 데 몰두한다. 물론 그러한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며, 적당히 다른 장르로 옮길 수도 있다. 하지만 [대초원의 철새]가 웨스턴을 일본 안으로 이식하고자 할 때 취하는 방법은 자뭇 흥미롭다. 기본 서사나 정신만을 도입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대신 웨스턴의 이미지를 재현하는데 온힘을 기울인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1960년대 일본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벗어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체 어떤 핑계를 대야 1960년대 일본에서 웨스턴의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을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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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초원의 철새]는 간단히 대답한다. 핑계는 없다. 그냥 만든다. 현대 일본이라는 환경을 유지하더라도 그 안에서 웨스턴스러운 모습을 그려낼 가능성이 보인다면 시치미 뚝 떼고 밀어붙인다. 그리하여 시네마스코프 화면 가득 펼쳐진 초원에서 말을 달리는 한 사내의 모습을 보여주는 오프닝 크레딧에서부터 웨스턴을 향한 열망은 막무가내로 흘러넘친다. 주인공이 입고 있는 옷은 분명 깡패 영화에나 나올 법한 번쩍거리는 검정 가죽 재킷이지만 그 형태는 [셰인(Shane, 1953)]에서 알란 래드가 입고 나오는 술 달린 가죽옷과 동일하다. 물론 총도 가지고 있다. 서부 사나이들의 6연발 리볼버보다는 닛카츠 액션 영화에 줄기차게 나온 현대적인 권총에 가까워 보이지만. 그리고 당연히 말도 탄다. 자동차가 마음껏 오가는 시대지만 설명 없이 그냥 탄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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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한 핑계가 있다면 그건 공간이다. 1960년대라는 시대를 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영화에는 현대 도시 사회가 고스란히 존재한다. 그 안에서 어떻게 말을 탈까? 역시 방법은 간단하다. 타지 않는 것이다. 대신 이야기의 중심 배경을 말을 탈 수 있는 곳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래서 산 좋고 물 맑아 보이는 홋카이도의 산천이 배경이며, 주인공은 그 안에서는 신나게 말을 탄다. 그러다가 도시로 옮겨 오는 장면에서는 갑자기 말이 사라진다. 도시 장면만 떼어놓고 보면 닛카츠에서 만든 여타 도시 배경 액션 영화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특히 악덕 사채업자가 경영하고 있는 클럽의 세트가 그렇다). 한편, 현대 도시 사회에서 웨스턴적 서사를 수행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주인공이 돕는 이들도 홋카이도 산천에 사는 아이누 족으로 설정했다. 그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은 도시의 폭력배들인데, 액션이 벌어질 때는 반드시 폭력배들을 도시 밖으로 끌어낸다. 게다가 그것만으로는 불안했던지 총의 사용을 최소화한 채(누구 하나 죽기라도 하면 주인공 대신 진짜 정의의 수호자인 경찰이 등장해야 할 테니까) 액션 장면 대부분을 주먹질로 때운다. 그 결과 [대초원의 철새]는 미야자키 하야오스러운 자연보호 영화 같기도 하고 야쿠자 의협물 같기도 한 꼴을 띤 채 정진정명 잡종 영화로 거듭난다. 위에서는 악당 두목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니면서 아이누 족의 영토를 염탐하는데 아래서는 주인공이 말을 타고 달리면서 작대기 하나로 악당 졸개들을 쓰러뜨리는 일이 염치없이 벌어지는 것이다. 적절한 시대 설정으로 구색이라도 갖춘 만주 웨스턴이나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 식의 장르 놀음 쪽이 훨씬 더 성의 있어 보인다. 적어도 내적 일관성은 갖추고 있으니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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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정작 웨스턴 팬으로서의 애정이 어느 쪽에 더 많이 가는가를 따져 보면 아무래도 [대초원의 철새] 쪽에 마음이 기운다. 그건 이 영화의 순진무구함 때문이다. 미국 바깥에서 웨스턴을 만드는 사람들은 대게 유전자 합성을 통해 사실상 새로운 꼴의 장르를 키워내는 방식을 택한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종들은 토착화 과정에서 어느 순간 본래의 종과는 저만치 거리를 두곤 한다. 이를테면 멕시코 혁명을 끌어들이면서 군부 세력과 일대 격전을 벌이는 이탈리아의 자파타 웨스턴. 또는 아예 철저하게 장르에 대한 자의식을 가지고 거리를 둔 채 공식을 비틀거나 흉내내면서 논다. 반면 [대초원의 철새]가 바라는 것은 단순한 모방이다. 가능한 한도 내에서 어떻게든 자신이 보고 자란 옛 영화들의 모양새를 재현하기를 바라는 소박한 소망.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열망. 줄거리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진부하고 통일성은 내다 버린 듯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잠시나마 그 감흥을 선보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식의 접붙이기. 실제로 [대초원의 철새]는 몇몇 장면에서 총력을 기울여 그걸 해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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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웨스턴을 가능케 하는 공간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다. 시네마스코프가 가장 위대했던 시절에 담아낸 홋카이도의 초목산천은 모래바람 부는 황야의 아름다움을 대체하기에 충분하며, 그래서 그 안을 주인공이 말을 탄 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장르 팬의 심금을 울린다. 차라리 진부한 줄거리는 다 집어치우고 상영시간 내내 말만 탔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다. 그걸 그냥 어린아이의 꿈에 불과하다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 같은 공간의 정취가 미국 바깥에서 재현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어쩔 수 없이 황홀하다. 무엇이 웨스턴을 웨스턴답게 만드는가? [대초원의 철새]는 그걸 서부 총잡이들의 정신에서 찾는 대신(오히려 야쿠자 의협물과의 유사성을 보여줌으로써 그런 것쯤은 다른 장르에서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들이 처한 공간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답에 무작정 동의하고 싶게 만든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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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7/25/27/a0003527_4889640eae109.jpg" width="403" height="568"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7/25/27/a0003527_4889640eae109.jpg');" /></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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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덧 하나.</b> 종종 미국 바깥에서 만든 웨스턴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러한 경향은 이탈리아 웨스턴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노라고 말하는 글을 만나곤 하는데, 적어도 이 "철새" 시리즈는 그렇지 않다. 일단 영화 자체의 생김새나 정서만 보더라도 [셰인]을 비롯한 고전기 할리우드 웨스턴의 영향력 내에 위치해 있음이 너무나 명확하며, 시각적 스타일도 그러하다. 또 "철새" 시리즈가 1958년에 처음 나왔으니 시대적으로도 60년대 이탈리아 웨스턴보다 2~3년 정도 앞에 위치한다. 이탈리아의 웨스턴 역사를 논하자면 191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보통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 부르는 60년대 무렵의 작품군만 따져 보면 1961년에 나온 마이클 카레라스 감독의 [잔혹한 땅(Tierra Brutal)]을 그 시초로 간주하는 모양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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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덧 둘.</b> 최근 크라이테리언에서 스즈키 세이준의 초기작을 비롯한 닛카츠 액션 영화들의 판권을 구입해서 내년 쯤 이클립스 시리즈로 출시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는데, [대초원의 철새]도 그 중 한 편인 듯하다.			 ]]> 
		</description>
		<category>영화 감상문</category>
		<pubDate>Fri, 25 Jul 2008 05:26:48 GMT</pubDate>
		<dc:creator>sabbath</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단상들-2008년 7월 22일 : 웨스턴 세미나, 레오네 최고작, 부천, 두기봉 특별전, [놈, 놈, 놈]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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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id>http://sabbath.egloos.com/1786399</guid>
		<description>
			<![CDATA[ 
  　<b>0.</b> 최근 몇 주 간 계속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아홉시쯤에는 학교 동아리방에 들어서는 생활을 해왔다. 동아리방에는 에어컨이 있는데, 내장된 온도계를 볼 때마다 29도, 30도, 31도여서 대체 아침부터 이러면 어쩌란 말이냐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특히 상영실의 경우 에어컨이 고장 나는 바람에(그런데 학교에 신고를 했더니 무슨 영문에선지 아직까지도 수리를 안 해줘서) 한동안 영화 보기가 힘겨웠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어제부터 내린 비 때문인지 25도! 존 포드의 [내 사랑 클레멘타인(My Darling Clementine, 1946)]을 상영실에서 보는데 어찌나 기쁘던지.<br /><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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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1.</b> 문득 생각해 보니 7월 21일. 평소 "세월 참 빠르다"는 표현에 동의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이번만은 빠르게 느껴진다. 예전과는 달리 이런저런 일에 한꺼번에 발을 들여놓은 탓이다. 최근에 심경 변화가 좀 있어서 뭘 적극적으로 찾아서 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새로운 경험이 찾아왔을 때 물러나지는 말자는 식으로 살았는데, 확실히 그래놓으니 하루가 지나치게 짧다. 딱히 후회는 없지만 그래도 조율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든다. 더 밀도 높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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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2.</b> 근래 들어 웨스턴에 대한 애정과 갈증이 한층 더 심해진 차에 동아리에서 관련 세미나를 하게 되었다. 주 3회, 아침 일찍 모여 웨스턴 한 편씩을 보고, 한 시간 반 정도 토론을 하고, 매 주 적어도 한 편의 글을 쓰는 프로그램. 이 정도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정이지만 아직까지는 생각보다 잘 진행되고 있다(즉, 내가 지치지 않고 잘 버텨나간다면 아마 이 블로그에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웨스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이 올라오리라는 얘기 되겠다). 마틴 스콜세지의 장편 데뷔작 [내 문을 두드리는 건 누구지?(Who's That Knocking at My Door?, 1967)]를 보면 하비 케이틀이 연기하는 주인공 J.R.이 처음 만나는 낯선 여인에게 다가가 존 포드의 [수색자(The Searchers, 1956)]에 대한 예찬론을 펴다가 급기야 "다들 웨스턴을 좋아해야 하는데요. 웨스턴을 좋아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예요."라는 말까지 하는데,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아침 일찍 일어나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모여 웨스턴을 한 편씩 보고(신기하게도 다들 보다보면 잠이 깬다),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보니까, 정말 건강에는 좋다. 일부러 전체 일정을 면밀히 정해두지 않은 채로 상영 전날에야 상영작을 정하고 있는 것도 즐겁다. 덕분에 방학이 끝날 때까지는 계속해서 '내일은 어떤 영화를 함께 볼까?'하고 생각하며 지낼 수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초장부터 확 몰아쳐서 방학 시작하자마자 할 걸 그랬다. 앞으로 매 주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진행하면 8월말까지 모두 스무 편의 웨스턴을 보는 셈이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거대한 기획이긴 한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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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3.</b> <a href='http://sabbath.egloos.com/1779784' target=_blank>"2008 시네바캉스 서울"</a>의 세르지오 레오네 회고전이 시작하자마자 [옛날 옛적 미국에서(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를 챙겨보았는데, 그때 시간을 낼 수 없었던 애인 때문에(덕분에) 이틀 전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229분을 보낼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었으나 점점 영화에 빨려 들어간 끝에 은혜 받고 멍해져서 나왔다. 2년 전 DVD로 처음 봤을 때, 그리고 1주일 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필름으로 처음 봤을 때, 내가 이 영화에 대해서 통 모르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처음에는 그냥 잘 만든 갱스터 영화라고 생각했고, 다시 보았을 때는 갱스터 영화는 아니지만 어쨌든 비루한 남정네들 사이의 배신과 우정과 윤리에 관한 감동적인 드라마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야, 이 영화가 그런 차원을 한참 뛰어 넘어서서 작게는 미국 사회를, 크게는 관객이 영화를 보고 기억하는 행위를,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삶을 인지하고 기억하고 구성하는 방식을 낱낱이 해체해 나가는 작품임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는 이것이 왜 레오네의 최고 걸작일 수밖에 없는지를 알겠다. 또는 더 나아가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기획이며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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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ref='http://cafe.naver.com/seoulartcinema' target=_blank>네이버 서울아트시네마 카페</a>에 가보니 지난 2주 동안 레오네 회고전을 진행해 오신 김성욱 프로그래머 님께서 넋이 나간 듯한 어조로 "당신은 레오네의 어떤 영화를 왜 좋아하시나요?"라는 질문을 하셨기에 써보았다. 그쪽에 덧글을 달려고 하다 보니 어쩐지 잘 안 써지더라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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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4.</b> 제1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도 간간이 가보고 있다. "2008 시네바캉스 서울"도 있고, 웨스턴 세미나도 있고, 그 외 다른 벌려놓은 일들도 있고 해서 많이 취소해서 처음 계획 짤 때에 비하면 흥분은 덜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렇게 인상적인 작품은 없었다. 보지 못한 작품들 중에는 훌륭하다는 소문이 파다한 스튜어트 고든 감독의 [Stuck(2007)]을 가장 기대 중이고, 그 다음이 쿠마이 케이 감독의 [일본 열도(日本列島, 1965)]다. 특히 [일본 열도]는 무려 이치가와 콘 감독의 [태평양을 나홀로(太平洋ひとりぼっち, 1963)]를 포기하고 보는 건데 별로기만 해봐라.<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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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나는 국제영화제에 가도 모험심이 별로 없어서 문제인 것 같아. 관심작이 거의 다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영화들이다. 최신작을 선택한 경우는 대게는 잘 알려진 감독이나 배우가 일익을 담당한 작품이고. 이러니 9월 초에 열릴 제2회 충무로국제영화제가 벌써부터 걱정되지(하긴, 올해는 학교에 다니니까 거의 못 챙기겠구나. 불행이자 다행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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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에 가는 건 5년 만인데, 5년 전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매력이 있어 보이는 도시다. 하기야 서울에만 있다 보면 다른 도시들은 다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일산처럼 직선만 가득한 계획도시는 빼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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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5.</b> 제1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한 가지 흥미를 끄는 건 부천시청(영화제 상영관 중 하나다)에서 하고 있는 장르문학 북페어. 할인율이야 인터넷 서점 이용하는 것과 별반 차이는 없겠으나 어쨌든 마음에 쏙 드는 장르문학 서적들이 우르르 몰려있으니 덩달아 기분이 들뜨고 지갑을 꺼내고 싶어져서 혼났다. 가난이 지출을 막아주었기에 망정이지. 보아하니 하루 중 어떤 시간에는 한 번에 손에 쥘 수 있는 책들을 몽땅 권 당 2천원에 판매하는 충격적인 이벤트도 하는 모양인데, 대체 어느 시간대인지를 알 수 없으니… 그렇다고 그거 노리자고 부천시청에 죽치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고 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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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가보니 올라스 스테플든의 [이상한 존(Odd John)]이랑 빌 S. 밸린저의 [연기로 그린 초상(Portrait in Smoke)]이 출간되었더라. [연기로 그린 초상]이야 북스피어 표준이니 더 말할 필요 없겠고, [이상한 존]의 경우 이번에도 초판은 양장본이지만 기존에 오멜라스에서 낸 [사이버리아드(Cyberiada)], [솔라리스(Solaris)]와는 달리 더스트 커버는 없다. 더스트 커버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선택. 참고로 [사이버리아드]와 [솔라리스]는 양장본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초판을 거의 다 소화한 상황에서 (알라딘의 경우 [사이버리아드]는 이제 양장본이 아니다) 재고를 간신히 긁어모은 것이라니 혹시 초판양장본에 미련을 갖고 계신 분들은 참조하시길.<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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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6.</b> 조금 전 <a href='http://cafe.naver.com/filmforum' target=_blank>네이버 필름포럼 카페</a>에서 본 건데, "두기봉 특별전" 일정과 상영작이 나왔다. 기존에 소개된 것과는 조금 달라졌음. 기간은 8월 1일~7일이고 상영작은 [PTU(2003)], [흑사회(黑社會, 2005)], [흑사회 이화위귀(黑社會 以和爲貴, 2006)], [방축(放․逐, 2006)] 네 편이다. 기간은 이틀 늘었고, 상영작 중에서는 [창화(槍火, 1999)]가 [PTU]로 바뀐 것. 필름 수급 문제일까? 솔직히 좀 실망했다. [PTU]가 [창화]보다 매력이 떨어지는 영화라서 그런 건 아니다. 그렇지만 [PTU]는 화질 좋은 DVD로라도 봤으나 [창화]는 화질이 정말 울적한 DVD로 밖에 보지 못한 작품인데다(어휴, 드래곤 다이너스티에서 출시 안 해주나) [방축]이랑 연계해서 보면 특히 남는 게 많은 영화라서 아깝기 그지없다. 일단은 두기봉 영화를 필름으로 극장에서 본다는 데에 의의를 가지기로 하고, 서울아트시네마 같은 곳에서 좀 더 큰 규모의 특별전/회고전이 열리기를 기대해 보련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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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번 주 [씨네21]에 두기봉 특집 기사가 실렸다. 오랫동안 홍콩 영화에 매진해 오신 주성철 기자님의 피와 땀이 엿보이는 기획인데, 분량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즐거웠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님의 [흑사회] 리뷰(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짚고 있었던)나 홍성남 평론가의 [흑사회 이화위귀] 리뷰(기왕에 감탄하고 있었던 부분을 확인시켜 주었던)도 있고, 음지(…)에서 암약하는 두기봉 팬들의 기고도 있다. 내 글도 있는데, 쑥스럽긴 하나 그래도 아주 못 봐줄 글은 아닌 것 같다. 작년에야 두기봉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아직까지 고작 일곱 편 밖에 못 본 얼치기 팬에게 Best 5를 꼽고 비평적인 설명을 곁들여 달라는 주성철 기자님의 메일을 받았을 때 느꼈던 울적함('아, 드디어 두기봉 감독에 대한 특집이 나오는 순간이건만 나 같은 자의 글이 필요할 정도로 팬층이 얇단 말인가!'하는 마음)이 아주 가시지는 않지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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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7.</b>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은 개봉일 조조로 보았지만 글을 쓸 생각은 없다. 그 영화를 보았을 때의 심정을 되새기는 것, 그리고 그 이후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긍정적인 반응들(과 상당수의 부정적인 반응들)을 마주하는 것이 괴롭고 혼란스럽다. 내 의문은 정말 간단하다. 다른 거는 다 집어치우고, 그 액션들, 그게 정말 잘 찍은 액션이고 폼 나는 액션인가?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했고 어마어마하게 실망했고 무척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극장 밖으로 나와 보니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하여튼 그래도 액션은 괜찮았다"고 말해서 가치관이 흔들릴 것만 같은 기분이다. 정말이지 이럴 때면 스스로의 영화 보는 눈을 의심하게 되는 거지. 그런데 또 다시 시간과 돈을 준비해 극장으로 찾아갈 기력은 아직 생기지 않는다.			 ]]> 
		</description>
		<category>살아가며</category>
		<pubDate>Mon, 21 Jul 2008 16:22:37 GMT</pubDate>
		<dc:creator>sabbath</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데스트리, 다시 말을 달리다(Destry Rides Again, 1939)] - 웃음의 수정주의 ]]> </title>
		<link>http://sabbath.egloos.com/178590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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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때때로 한국에서 웨스턴 팬이 된다는 것은 한국에서 공포영화 팬이 되는 것보다 두세 배 정도 더 외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 두 장르만큼 한국에서 적극적으로 배척당하는 장르도 없지 않나 싶은데, 그나마 공포영화의 팬들은 VHS 시절부터 일종의 지하세력처럼 한데 모이며 갖은 홀대를 버텨오기라도 했지마는 웨스턴은 사실상 "팬"이라고 부를 만한 이들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데다 논의 자체를 찾아보기도 힘들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오늘날 이 장르의 신작을 극장에서 만나는 경험 자체가 드물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웨스턴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도 사실은 (주말의 명화로 대변되는) 추억의 대상으로서 호감을 지니는 데에 만족하는 경우가 잦으며, 동시대적으로, 또는 옛 것을 재발견하거나 새로이 학습한다는 입장으로 접근하는 시선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br /><br /><img class="image_left"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ce8003e4.jpg" width="300" height="79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ce8003e4.jpg');" align="left" />　그러나 웨스턴 팬으로서 느끼는 황량함을 이 이유만으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갱스터 영화나 뮤지컬 영화도 오늘날 신작이 자주 소개되는 편은 아니며 그렇다고 공포영화처럼 가시적인 팬층이 형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지마는 그쪽의 애호가들이 웨스턴 애호가들만큼 울적한가 생각해보면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제임스 캐그니와 프레드 아스테어의 팬으로서 하는 말이다). 이 우울증은 웨스턴 팬으로서 맞닥뜨리게 되는 다수 대중의 적극적인 오해와 거부감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이만큼 많은 편견들에 둘러싸인 장르가 또 있을까? 미국의 건국이념 또는 서부개척시대의 팽창주의에 대한 찬양, 악에 맞서 항상 승리하는 폼 잡는 영웅, 인디언에 대한 인종차별, 여성은 들러리로나 삼는 남성 중심적 (마초) 액션 영화 등, 웨스턴이라는 장르를 떠올릴 때 조건반사적으로 따라붙는 인상들은 스스로의 정치적 적절함을 확인 및 유지하고 싶어 하는 영화팬들에게는 넘어서기 껄끄러운 장애물이다. 물론 영화를 볼 때 정치적 적절함을 추구하는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인상들이 정당하다는 점을 확인하기는 한 건지? 대체 이 조건반사가 어떻게 학습되었는지는 정말 의문인데, 웨스턴을 단 한 편도 안 본 사람들조차(또는 그럴수록 더) 위와 같은 견해를 확신하면서 웨스턴을 안 봐버리니 그야말로 악순환이 아닐 수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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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곤란한 것은 이 편견들이 어느 정도 웨스턴에 관심이 있는 관객들의 시각에조차 왜곡을 일으키면서 우스꽝스러운 진화론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논리다. 고전 미국 웨스턴은 이러저러한 정치적 편협함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래서 나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반성과 수정이 이루어지면서 점차 미국식 서부 신화를 깨부수는 작품들이 나왔으니, 그 작품들만은 충분히 찬양할 만하도다! 이와 같은 논리는 세르지오 레오네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웨스턴, 또는 샘 페킨파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중심으로 한 "현대" 미국 웨스턴, 심지어 [수색자(The Searchers, 1956)]를 위시한 존 포드의 후기작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은 몇 가지 과격한 전제들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일단 옛날 웨스턴들은 단순하고 이상적이기만 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하면서 더욱 복잡한 태도를 갖추게 되었다는 전제. 종종 이 전제는 웨스턴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로 확대되기도 한다(얼마나 많은 감상문들이 "옛날 영화치고는", "수십 년 전에 나온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등등의 어조를 사용하는가?). 그런가 하면 이전의 것을 조롱하거나 뒤엎는 반동적인 태도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도 엿보인다. 잘난 사람 비판하거나 무시한다고 자신이 잘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는 진리를 체화하기란 역시 쉽지 않은 것일까. 더구나 그런 식의 찬양은 오히려 찬양의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조차도 가로막곤 한다. 예를 들어 세르지오 레오네의 작품에 찬사를 던지는 목소리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해 보자. 그의 영화가 고전 미국 웨스턴과는 달리 보다 사실적인, 추악한, 돈만 아는 놈들이 득시글거리는 야만적인 서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데, 그럼 레오네의 웨스턴을 보는 관객들은 등장인물들과 서부의 모습에 대해 아무런 매혹도 못 느끼고 그저 '아, 미국의 서부란 저토록 악랄한 꼴이었구나'하는 깨달음만 한가득 안고 극장을 나서게 되는가? 정말 폼을 잡고 멋을 부리는 건 어느 쪽인가? 클린트 이스트우드, 리 반 클리프, 일라이 워락인가, 아니면 존 웨인, 헨리 폰다, 제임스 스튜어트, 개리 쿠퍼인가? 격한 클로즈업과 편집이며 과장된 총소리가 가득한 레오네식 결투 장면은 그렇게나 "사실적"인가? [옛날 옛적 서부에서(C'era una volta il West, 1968)]에 등장하는 수많은 고전 웨스턴에 대한 인용은 그냥 조롱하려고 넣은 거고 기차의 도착과 서부의 끝에 대한 그의 태도는 '미국인 너희들은 저 따위로 시작한 거야 임마' 식의 "비판"인가? 혹은 그런 거라고 치고, 그렇게 말할 줄 알면 그냥 대단한 건가? 존 포드가 온갖 남정네들 휘어잡으면서 집안을 꾸려나가는 여자들을 묘사하면 가정에 갇힌 채 안주하는 수동적인 여성상만을 담아내는 가부장적 한계를 드러내는 거고 레오네 영화에서 못생긴 여자를 웃음거리로 써먹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강간하는 건 서부의 악랄한 현실을 보여주는 건가? 레오네의 웨스턴을 폄하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진화론에서 출발하는 무조건적인 찬사가 오히려 그런 찬사의 대상에 대한 논의조차도 등한시하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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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개의 질문, 몇 번의 체험만으로도 쉽게 폐기처분 할 수 있는 오해들이 이토록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1939년, 유성영화가 도입된 후 웨스턴이 막 부활하던 즈음에 나왔으며 아직까지도 "고전적 웨스턴의 전형"으로나 언급되고 있는 존 포드의 [역마차(Stagecoach, 1939)] 단 한 편만이라도 주의 깊게 받아들여졌더라면 이처럼 득은 없고 실만 많은 진화론이 널리 퍼지지는 않았을 텐데. 공동체 내부의 야비한 균열, 사회적 소외자들에 대한 관심, 결국 통합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총잡이 영웅 등 후대의 웨스턴에서 나타난다고 여겨지는 수많은 "비판적" 요소들은 이미 이 고전 웨스턴에서도 (희미한 암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작품들을 조금만 훑어보아도 이게 절대 존 포드 혼자 유달리 잘나서 가능했던 일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몇 편쯤 보다 보면 대체 그 "고전 웨스턴"이라는 말에서 "고전"이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해 다시 고찰해 봐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웨스턴은, 장르는, 영화는, 단순히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갈수록 더 좋아지기만 하고 더 다양해지기만 했던 것이 아니다(제발 그랬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만약 그랬더라면 우리 살아있는 관객들이야말로 영화사상 가장 행복한 관객들일 테니!).<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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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마샬 감독의 1939년 작 [데스트리, 다시 말을 달리다]는 이 시기 고전기 할리우드 웨스턴이 뻔한 영웅주의 액션을 반복하는 순진한 처지에 머무르지 않고 이미 넘쳐나는 자의식을 가지고 자기 패러디를 통한 변주까지 해내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예다. 오프닝 크레딧 장면부터 영화의 장르적 자의식은 명확하다. 카메라가 마을 한가운데의 대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이야기의 배경이 될 서부 마을 바틀넥의 풍경을 펼쳐주고, 그 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은 함부로 총을 쏘아대고 술에 취한 채 주먹다짐을 벌이며 길바닥으로 나동그라지고 말 위에 오른 채 술집으로 달려 들어가는 등 하나 같이 야단법석이다. 그 모습은 위협적으로 다가오기보다는 웨스턴 장르가 곧잘 무대로 삼는 "법과 질서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은 무법천지 마을"을 극단적으로 과장하여 우스꽝스럽게 흉내 내는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자기 패러디. 오프닝 크레딧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 뒤에도 이 분위기는 계속 된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a82968d2.jpg" width="500" height="377.300613497"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a82968d2.jpg');" /></div>　자기 패러디를 무엇보다도 잘 드러내주는 것은 "서부 사나이" 역할을 맡고 있는 주인공의 성격이다. 잠시 도입부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 어느 날 바틀넥의 보안관은 도박판의 시비를 해결해주려다 총 맞아 죽고, 시장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마을의 유명한 주정뱅이 악사 워싱턴 '워시' 딤스데일(찰스 위닝어)을 새 보안관으로 임명한다. 워시는 법과 질서를 바로잡겠노라는 결의에 불타 과거 자신이 함께 일했던 명보안관 데스트리의 아들, 토머스 제퍼슨 '톰' 데스트리 주니어(제임스 스튜어트)를 불러들여 자신의 보안관보로 삼는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처럼 총 잘 쏘고 용맹할 줄 알았던 워시의 소망은 아들 데스트리가 총을 아예 차고 있지도 않은 순박한 사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산산이 깨어지고 만다. 총을 차지도 않은 채 무례한 악당들과의 시비를 어떻게든 말로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는 데스트리의 모습은 물론 총잡이 영웅의 전형 정반대편에 서 있다. 그의 행동은 하나하나 웨스턴의 관습을 배반하는데, 결투를 강권하는 도박장 주인 일당에게 기꺼이 모욕을 당하면서 함께 웃어버리는가 하면 악당들이 사기도박을 벌여 한 주민의 목장을 빼앗는데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니 당장 어쩔 수는 없다며 오히려 주민에게 퇴거 명령을 내릴 정도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a9657561.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a9657561.jpg');" /></div>　한편, 제임스 스튜어트의 맞은편에는 요제프 폰 슈테른베르크 감독과 함께 하면서 스타로서의 최전성기를 맛보았다가 잠시 침체기를 겪은 뒤 이 영화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한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있다. 그녀가 연기하는 술집 무희 프렌치는 남자 주인공에게 딸린 여성 캐릭터로만 머물지 않고 데스트리와 대등하게 영화를 나눠가진다(심지어 상영시간 95분 중 초반 20분 동안 데스트리는 나오지도 않으며, 그 동안 프렌치 혼자 영화 중심에 선다). 고전기 미국 웨스턴에서 강인한 여성 캐릭터란 어쩌다가 한 번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써먹는 희귀한 존재가 아니라 감독을 막론하고 쉽게 만날 수 있는 이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프렌치의 존재감은 특별해 보인다. 심지어 이 영화는 종종 자기가 [데스트리, 다시 말을 달리다]라는 제목의 웨스턴임을 망각한 채 아예 그냥 폰 슈테른베르크 식 디트리히 영화가 되기까지 한다. 술집에서 프렌치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들은 그녀를 바라보는 남성적 시선들을 거의 배제하고 있으며, 잠시 플롯에서 빠져나온 채로 디트리히의 마력을 온전히 전달하는 데에만 최선을 다한다. 한편 프렌치는 타락한 마을의 중심지인 술집을 관장하는 인물로서(모두들 그녀를 "바틀넥의 진짜 보스"라고 부른다) 보안관 측과 맞서는 양심 없는 악당인가 하면 그의 말에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반성하고 변화를 꾀하고자 노력할 줄 아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건 그냥 거창한 말뿐인 설정이 아니다. 프렌치는 언제나 화면을 장악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웨스턴이 여자의 무대가 아니라는 편견을 정통으로 작살낸다. 특히 프렌치가 도박을 통해 한 남자의 바지를 빼앗은 다음 남편의 바지를 찾으러 온 아낙과 함께 바닥을 구르며 싸움을 벌이고, 데스트리가 둘을 말리자 아예 술집을 때려 부술 듯 덤비면서 웨스턴 역사상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박력을 선보이는 장면에서는 장르적 관습을 두들기는 이 작품의 성격이 뼈저리게 와 닿는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aa32ac32.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aa32ac32.jpg');" /></div>　하지만 [데스트리, 다시 말을 달리다]의 훌륭한 점은 갖가지 요소들을 비틀어 한바탕 웃고 넘기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처럼 자신이 비튼 설정들을 1회용으로 소비하는 대신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웨스턴이라는 장르의 영역이나 정서는 그대로 유지한 채로(즉, 생긴 것만 웨스턴이지 사실은 웨스턴이 아니어도 아무런 상관없는 영화가 되지 않은 채로) 그 안에서 새로운 결말을 제시해낸다는 데 있다. 이 때 코미디 웨스턴으로서의 [데스트리, 다시 말을 달리다]가 지닌 코미디의 성격이 중요해진다. 물론 웃음의 근원지는 일반적인 총잡이 보안관들과 대비되는 데스트리의 성격과 태도다. 여기서 그가 유발하는 웃음이란 직접적으로 관객들을 향한 것, 즉 장르적 패러디로서의 웃음이나 웃음을 위한 웃음이 아니라 작품 속 다른 등장인물과 바틀넥이라는 사회를 대하는 일종의 전략으로 작용한다. 전통적 맥락에서 웨스턴 속 총잡이 영웅은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홀로 떠맡은 채 폭력이라는 미봉책으로 간신히 해결한 뒤 자신이 (잠시나마) 구해낸 공동체로부터 배척당하는 역할을 떠맡기 마련인데, 그것이 웨스턴 특유의 신경병적 증세나 직업윤리에 대한 집착을 자아내는 원인이라고도 한다면 데스트리는 바로 그러한 서부 총잡이의 직업병을 유머를 통해 비켜나가고 있다. 그는 직접 나서서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웃음거리의 역할을 떠맡으며 악당들의 조롱을 이끌어내어 마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쇼(show)가 부지불식간에 공동체 구성원들의 관심과 참여를 끌어들이는 셈이다. 총잡이를 끌어들이는 웨스턴들이 사회의 문제를 개인화하고자 한다면 이 영화는 그처럼 개인에게 떠맡겨진 문제를 다시 사회 전체를 향해 돌려주는 방식으로 대꾸한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aab75cb4.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aab75cb4.jpg');" /></div>　따라서 데스트리의 액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소화한 채로 마을 사람들 전체의 카니발적인 폭발을 중심에 두는 결말(이 장면의 연출은 거의 소비에트 무성영화를 연상시킨다)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돌이켜 보면 이 영화는 첫 장면에서부터 한두 명의 인물이 중심이 될 때조차 활력 가득한 카메라 움직임과 딥 포커스 촬영을 통해 다수의 군중이 뿜어내는 왁자지껄한 역동성을 강조하는데, 이러한 인상들을 모두 마지막 대규모 군중 장면의 감흥을 준비하기 위한 시각적 전제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비록 결말부에서 데스트리가 총을 잡기는 하지만, 정작 액션이 시작된 뒤에는 그 또한 군중의 일부로만 존재하고 있으며(그가 있거나 없거나 액션의 결과는 전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사건이 해결된 뒤 데스트리는 다시 총을 내려놓은 채 계속 바틀넥에 머무른다. 마을의 문제는 마을 전체가 직접 해결해 버렸고, 그는 타인의 업보를 대신 짊어진 채 공동체 바깥을 향해 사라져야 할 의무가 없다. 이처럼 장르적 패러디에서 출발한 설정이 스크린 밖의 관객들에게 윙크를 던지는 데에만 만족하지 않고 이야기 내에서 생명력을 획득하는 순간, 웨스턴에서 보기 드물게 건강한(그러나 천진난만하지 않은) 결말이 탄생한다.<br />
<div style="text-align:center"><img class="image_mid"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ab321ec7.jpg" width="500" height="372.142857143"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ab321ec7.jpg');" /></div>　그렇다면 프렌치는? 흥미롭게도 그녀야 말로 이 영화에서 데스트리가 줄곧 피하고자 하는 전통적인 서부 사나이의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데스트리의 영향을 받은 프렌치가 무질서한 바틀넥과 새로운 질서 사이에 선 중재자로 변화하는 것이다. 헌데 그런 그녀가 결말에서 택하는 해결책은 자뭇 흥미롭다. 프렌치는 홀로 나서 폭력으로 폭력을 제압하며 한 쪽을 "삭제"하려 하는 대신(물론 그녀는 총잡이가 아니므로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선과 악으로 나뉜 대립 구조 속에 (여성) 집단을 끌어들임으로써 양자를 모두 뒤섞는 대혼란을 만들어내면서 아예 공동체 전체를 포맷 후 재설치하는 편을 택하고 있다. 이는 결코 순진한 해결책이 아니다. 일단 두 패로 갈린 남성 집단이 서로 총을 겨눈 채 학살극을 벌일 참에 그들의 아내들을 총구 사이로 끌고 들어가 발포를 막아서는 태도는 논리적으로도 충분히 합당해 보인다. 더구나 그러한 선택은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갈등의 양상, 또는 웨스턴 장르가 제공하는 공동체 안의 갈등이라는 것이 남자들끼리 서로 쏘아 죽이면 끝날 갈등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갈등임을 분명히 해주며, 서로 모두 죽여 버리는 자멸 대신 모두가 살아남는 상생의 방법까지 제시한다. 이 정도면 "초기 사회 공동체의 내적 균열"이라는 웨스턴 장르의 주요 주제에 대한 이해와 재고가 두루 담긴 결말로 보기에 충분하지 않은지. 자기반영적 패러디에서 출발한 웃음이 이 정도로 정밀하게 사용된 예는 후대의 소위 "수정주의" 웨스턴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니, [데스트리, 다시 말을 달리다]가 해내고 있는 것이 "수정"이 아니라면 대체 뭘 "수정"이라고 해야 하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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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img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c592833b.jpg" width="300" height="460"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c592833b.jpg');" />　<img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c639586c.jpg" width="300" height="446"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c639586c.jpg');"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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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9.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c6989c3b.jpg" width="300" height="432"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9.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c6989c3b.jpg');" />　<img border="0" onmouseover="this.style.cursor='pointer'" alt="" src="http://pds8.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c6e67195.jpg" width="300" height="431" onclick="Control.Modal.openDialog(this, event, 'http://pds8.egloos.com/pds/200807/21/27/a0003527_48835c6e67195.jpg');"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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